언론의 ‘과학 분별력’ 시험한 초전도 해프닝 | 공시형 미디어감시팀 활동가
등록 2023.09.27 14:56
조회 729

7월 22일 외국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진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 논문이 오픈 엑세스 저널 arxiv.org에 공개됐다는 소식은 참으로 놀랄만한 이야기였다. 초전도체란 전기저항이 0인 물질인데, 초전도체 전선을 이용하면 전력이 손실되지 않고 저항 때문에 일어나는 전자기기의 발열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초전도현상은 매우 낮은 온도이거나 아주 높은 압력에서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만약 실온에서도 초전도성을 가지는 물질의 개발이 사실이라면, 발명자인 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원들은 불과 바퀴의 발명에 비견할 만한 인류사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이었다. 당연히 쉽사리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사실 과학계에서도 부실한 논문이 꽤 많이 제출된다. 특히 동료평가가 필요없는 arxiv.org에는 수학자 그레고리 페렐만의 ‘세계 7대 수학 난제 증명’같은 위대한 논문들도 있지만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영구기관 개발에 도전한다는 논문같이 수준 이하의 논문이 실리기도 한다. 그런데 LK-99 공개 논문이 특별했던 점은 일반적인 부실 연구와는 달리 재료와 제작법이 간단해 보였고 제작 과정을 나름 자세하게 공개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과학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재현성’과 ‘반증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 초전도체 개발이 사실이든 아니든, 연구자들이 제작과정을 시연해 보거나 샘플을 얻어 전기저항이 0인지 측정해 보면 간단하게 끝나는 문제 같았다.

 

그런데 상황이 단순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7월말부터 8월 초까지 각국 연구자들이 진행한 재현 실험 결과가 다소 혼란스러운 가운데, 7월 31일과 8월 1일 각각 중국, 미국 과학자들이 이론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면 전환의 계기를 맞았다. 이후 해외 관련 분야 권위자들로 이뤄진 막스 플랑크 연구소 연구팀이 ‘황화구리 불순물설’을 발표하고 국내에서도 한국초전도저온학회가 재현연구를 진행하면서 LK-99가 상온·상압 초전도체라는 주장이 맞을 확률은 굉장히 희박해졌다. 하지만 과학적 논쟁의 특성상 아직 모든 논쟁이 종결된 것은 아니다. LK-99가 초전도체일 확률 자체는 낮지만 왜 초전도체가 아닌지에 대한 ‘황화구리 불순물’ 주장은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해 보이며, 물리학자들은 ‘왜 자석이 아닌 물질들을 섞었는데 자석과 같은 성질을 보이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초전도체 해프닝’은 누구의 말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처럼 과학자들이 사실을 어떤 식으로 검증하는지, 언론들은 이를 어떻게 보도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국내 주요 매체에서 LK-99를 다루기 시작한 7월 27일부터 초전도체 관련 보도들을 지켜본 결과부터 말하자면, 언론들은 일부 정쟁화된 문제가 아니라면 과학적 논쟁을 꽤 잘 소화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든 주제가 주식으로 빨려들어가는 경향을 보였다.

 

조선비즈 7월 27일자 보도, 논쟁적 과학보도 모범 삼을 만 해

 

‘LK-99’를 가장 빨리 보도한 것은 조선비즈 인터넷판이었다. <‘노벨상감상온 초전도체 세계 최초 개발했다는 한국 연구과학계 회의론넘을까>(7/27)는 사건 관련 첫 보도였음에도 논문의 주요 내용과 사실이라면 왜 중요한지, 어떤 점에서 학계의 의심을 받고 있는지 종합적으로 잘 보도했다. 특히 세 명 이상 전문가들의 반론을 담았고 당사자인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의 인터뷰도 포함됐다. 다음 날인 7월 28일에는 다른 주요 언론들도 보도하기 시작했는데 보도 내용은 대체로 조선비즈와 비슷했다.

 

동아사이언스 <물리학 난제 '상온 초전도체' 구현 한국 연구팀 논문학계 '회의적'>(7/28)은 취재원 수는 많았지만 다소 전문적 설명이 부족했다. 연합뉴스 <'상온 초전도체 구현' 한국 연구에 국내외 논란"검증 거쳐야">(7/28)은 LK-99에 대한 설명보다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논란’에 집중해 보도했다. KBS <‘상온 초전도체 최초 구현한국 연구진 논문 논란검증 거쳐야”>(7/28)의 경우, 과학계 회의론을 전하면서도 ‘사이언스’ 기사만 인용하고 과학자들의 의견은 ‘과학계’로 뭉뚱그려 보도한 점이 아쉬웠다. SBS는 29일 온라인 단신으로 보도했고, 30일에는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가 ‘논란’으로 처리해 보도했다.

 

이후 국면에서도 눈여겨 볼 기사들이 있었다. LK-99 관련 첫 보도를 냈던 조선비즈 이병철 기자는 8월 1일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LK-99가 초전도체의 일부 특징과 비슷한 특성을 지닐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과학자 “LK-99, 상온 초전도체 가능성시뮬레이션 공개 실험으로 검증될 때까지 지켜봐야”>(8/1)를 내고 발표의 의미와 추가 검증 필요성을 균형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8월 11일 세계적 권위의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순수한 LK-99 합성에 성공하고, ‘초전도 현상처럼 보였던 것은 황화구리 불순물 때문’이라는 8월 초부터 제기된 주장을 뒷받침했던 사건은 8월 17일 ‘네이처’ 기사 인용 형식으로 보도됐다.

 

설명기사보다 수백 배 더 많은 ‘주식 기사’ 어찌해야 할까

 

noname01.png

△ 네이버 포털 '초전도체' 키워드 검색 결과.

초전도체 관련 기사는 '테마주' 기사에 묻혀 찾기가 쉽지 않다(7/28)

 

이처럼 주요 언론사들의 과학분야 취재 기자들이 제대로 보도한 기사들은 대체로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거나 질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런 기사들보다 양적으로 수백~수천 배 많은 ‘주식 속보’ 기사와 단순 인용 보도들이다.

 

‘초전도체’ 테마주로 묶인 기업들의 주가는 7월 27일 조선비즈 첫 보도 다음날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LK-99가 초전도체인지 여부를 떠나 테마주로 묶인 기업들은 퀀텀에너지연구소와의 관련성이 매우 희박했을 뿐 아니라, 초전도체가 개발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는 기업도 섞여있어 대체로 테마주로 볼 근거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7월 28일부터 수많은 ‘테마주 부각’ 기사들이 포털에 넘치기 시작했다. 비전문가가 봤을 때 상온·상압 초전도체 개발이 사실이라고 오해하기 쉬웠던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발표 이후에는 각종 인터넷 유머들을 단순 인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퍼오기’ 기사까지 합세해, 오히려 포털에서는 LK-99에 관한 정보를 찾기가 더 어려운 지경이 됐다.

 

8월 초가 되면, 정상적인 기사에도 주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시작한다. 8월 2일자 한국일보 2면에 실린 기사 <대세는 초전도체?... 관련주 개장 직후 상한가 직행>(8/2)는 초전도체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많다며 테마주 광풍을 경고하는 내용인데도 제목에서는 전혀 경각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같은 날 보도된 뉴스1 <'상온·상압 초전도체' 개발 주장과학계 "검증이 우선, 신중해야">(8/2), 연합뉴스 <뜨거운 '초전도 테마주' 주의보일부는 치솟던 주가 '와르르'>(8/2), 중앙일보 <미국선 60% 폭등했다'초전도체' 뉴스에 전세계 주식 들썩>(8/2)에도 관련 주식 동향이 중요하게 언급됐다.

 

‘황우석 백신’ 맞고 조금은 나아진 언론보도, 하지만 새로운 문제

 

이번 논란 과정에서 나타난 언론들의 신중한 태도는 ‘황우석 사건’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MBC PD수첩이 2005년 11월 22일 황우석 교수 연구팀의 난자 채취 과정을 문제삼았지만, 대중과 언론들의 난타 끝에 폐지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나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황우석 교수 연구팀의 논문조작이 드러나며 언론들은 매체 가릴 것 없이 대망신을 당했다. 그 사건의 교훈으로 과학 보도의 질이 조금은 나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몇 안되는 기사들은 지나친 상업주의와 포털 중심 언론환경의 부작용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주식 관련 기사가 많은 것은 언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주식시장은 언제나 비이성적 과열과 공포의 위험이 존재하고, 여기 휘둘리는 언론 소비자들도 사건의 본질보다는 주가 변동 정보를 원할지도 모른다. 거의 ‘매크로’ 수준으로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들을 제외하면 주요 언론들은 기사에서 테마주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기왕 비이성적 테마주 투기를 경고하고 싶었다면, 테마주 언급만으로도 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과학기술 자체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지 않았을까? 투자를 할지 말지에 대한 평가는 주식 기사에 으레 붙곤 하는 “본 기사는 투자판단의 참고용이며, 이를 근거로 한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라는 경고문처럼 정말로 독자에게 맡기고 말이다.

 

공시형 미디어감시팀 활동가

 

[레이아웃] 서촌 다이어리.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