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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언론을 박탈당한 캄캄한 암흑시대를 살고 있다. 말할 권리, 알 권리, 알릴 권리가 인간의 천부적인 기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의한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의 말살로 우리는 ‘말’을 잃어버린, 침묵을 강요당한 언론부재시대를 살고 있다. 말하고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요구가 있는 곳에 자유로운 표현의 권리와 수단이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민중은 오늘 그 같은 기본적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표현수단이어야 할 기존 언론기관으로부터도 거꾸로 지배당하고 박해당하는 일찌기 경험하지 못했던 언론소외를 겪고 있다.

 

오늘의 언론현실은 민중의 표현수단이 소수의 반민중적인 언론기관에 의해 독점되어 있는 데서, 그리고 그 언론이 지배체제에 편입되어 권력의 소리와 의지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지배도구로 전락한 데서 단적으로 대변되고 있다. 오늘의 언론은 사실보도라는 언론의 기본적 책무를 포기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진실의 왜곡조차 서슴지 않음으로써 사회 전체의 인식능력과 이성을 마비시켜 이 사회와 민족의 운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무지와 환상의 세계를 조성해놓고 있다.

 

이같은 언론의 모습은 민족과 민중의 주체적 각성과 힘에 의해 참다운 민족・민중언론을 쟁취, 구현해보지 못한 우리 언론의 지난 날의 역사가 마침내 빚어낸 언론의 종말적 양상이다. 1896년 독립신문의 창간으로 민족・민주언론이 이 땅에 자생적으로 탄생된 바 있으나, 그것이 소멸된 이후의 언론은 크게 보아 반민족적, 반민중적 세력에 의해 지배당해 온 것이 우리 언론의 역사라 보아 마땅하다. 이 땅의 근대적 언론이 일제 식민주의자들의 식민통치정책의 일환으로 `주어진` 언론이었으며, 이 같은 식민주의 언론을 바로잡으려는 저항과 노력이 부분적으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해방을 맞았던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해방 이후까지도 연장된 식민 언론의 미청산, 민족분단에 의한 이데올로기, 냉전 이데올로기의 언론 지배, 그리고 정권유지를 위한 정치권력의 무자비한 언론탄압으로 언론은 민족과 민중적 토대 위에 서는 참다운 언론을 건설할 기회를 박탈당하여 마침내 오늘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언론의 참담한 모습에 이르고 있다. 언론이 민족적 토대 위에 서서 그 이익을 추구하는 언론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오늘 우리 삶의 고통의 원천인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고 모든 형태의 식민지주의에 맞서 민족의 이익을 지키고 진정한 민족문화의 건설에 이바지해야 하는 언론이어야 할 것이고, 그것이 민주적 민중적 언론이라면 고난받는 민중과 더불어 민중의 현실과 의사를 대변하는 언론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이와는 거리가 먼 반민족적, 반민중적 언론의 모습이다. 지금의 언론이 우리의 민족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으며, 민중의 현실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가를 본다면 이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언론은 언론을 말살하고 있는 권력에 의해 일체의 저항을 포기한 채, 오히려 권력과 야합하여 민중을 박해하면서 어느때 보다도 더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 우리는 언론기관의 존폐여부가 정부의 자의적 판단과 권한에 의해 결정될 수 있도록 규정한 공공연한 언론탄압장치인 언론기본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오늘의 언론이 주장한 바를 들어본 적이 없으며 「보도지침」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의 언론조작(言論操作)을 거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외부 권력의 언론탄압으로부터 언론을 수호해야 할 일차적 책임이 언론을 직접 제작하고 있는 언론기관과 언론당사자에게 부과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1975년과 1980년 죽어가는 언론을 되살리고자 민주언론을 외치며 싸우던 언론인들을 언론기관 스스로가 대거 수백명씩이나 언론현장에서 추방한, 언론에 의한 언론의 부정이라는 자기부정의 극치를 경험했었다. 이같은 언론의 자기부정이 가져온 것이 오늘의 제도언론이다.

 

신문, 방송을 비롯한 오늘의 일체의 제도언론은 폭력이다. 강제된 힘에 의해 의사를 지배하려는 것이 폭력이라면 오늘의 제도언론은 가장 큰 정신적인 폭력이다. 이 땅에 정의로운 민주사회를 건설하려는 수많은 민주화운동단체와 학생들의 노력이, 가혹한 조건 속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고 있는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오늘의 언론에 의해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가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의 학생운동은 일부 `좌경 극렬학생`의 분별없는 극단행위로 보도되고 있으며 생존권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운동은 사회안정을 해치는 일부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왜곡 보도되어 이중 삼중의 박해를 받고 있다. 이같은 언론의 폭력에 대한 민중의 분노는 곳곳에서 번져나가고 있다. 그것은 언론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서 언론에 대한 적대관계로까지 발전되고 있다. 여러 사건현장에서 기자들이 취재를 거부당하고 돌팔매질 당하고 있는 것은 민중의 분노의 표현이자 자연스런 자위권의 발동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같은 제도언론의 횡포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지금 이 땅에서 전개되고 있는 당면한 위기에 대한 민중의 각성은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하게 참다운 민주・민족언론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 우리사회가 총체적인 위기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은 양심의 눈으로 보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인식이다. 민족분단에 의한 총체적 삶의 분단, 강대국의 각축에 의한 민족절멸의 위기, 민주주의의 사멸과 정치 부재, 예속경제에 의한 민족경제의 파탄, 빈부격차의 심화에 따른 사회의 분열,, 식민지주의 문화에 의한 민족문화의 말살, 자원약탈및 공해에 의한 자연환경의 무자비한 파괴, 불신풍조의 만연 및 인간성의 황폐화가 우리의 삶을 전면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위기의 극복은 참다운 언론의 기능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왜냐하면 언론이란 더불어 나누는 말이며, 밝힘이며, 사회적 인식의 수단이며, 의지를 공유케 하는 유대의 끈이며, 자유의 무기이며, 그리하여 마침내는 인간해방의 고귀한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 언론의 죽음 속에서 새로운 민주・민족언론이 탄생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표현수단을 빼앗긴 민중으로부터 자기의 삶을 스스로 표현하려는 민중언론이 태동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의 거짓된 지배문화를 거부하고 진정한 민족•민중문화를 건설하려는 새로운 문화운동과 더불어 민중언론은 도처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우리 민주언론운동협의회는 이같은 새로운 언론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여 일찌기 우리가 가져보지 못했던 참다운 민주・민족언론을 창조하고자 한다. 그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제도언론을 부정, 극복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민중적 민족적 요구에 굳건히 선 새로운 언론의 창조를 뜻한다. 오늘의 제도언론이 우리의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의 하나라면 새로운 언론이 이같은 반민주적 거짓 언론의 극복 없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며, 그렇기 때문에 제도언론의 정체를 바로 보고 이를 타파•극복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모든 사람들의 중요한 의무이다. 제도언론의 극복이 언론활동의 기초를 이루는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의 확보 없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이 기본적 자유의 확보는 더 말할 나위없이 민주언론운동의 선결적 과제가 될 것이다. 언론활동이란 모든 종류의 말할 권리와 알릴 권리의 실천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신문, 방송, 출판을 비롯한 모든 언론매체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포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우리는 민주언론을 실현하고자 하는 모든 분야의 자생적 언론 종사자들과 함께 이 운동을 펴나갈 것이다.

 

제도언론 속에서 오늘의 범죄적 언론에 양심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 역시 이 운동의 대열에 참가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언론민주화란 사회의 전반적 민주화와의 통일적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언론의 민주화 없이 사회의 민주화가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민주화없이 언론의 민주화가 독립적으로 실현될 수 없음 또한 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언론민주화운동이 사회의 민주화운동과의 연대 속에서 추진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진정한 여론 없이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의 호응과 지원을 기대한다. 진정한 민주언론은 인간다운 삶의 관건이기에 우리의 이 민주언론운동은 민중의 언론운동으로 발전할 것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언론은 천부의 인권이기에, 그리고 민주•민족언론에 대한 민중의 요구가 어느 때보다도 드높은 것이기에 이 운동은 끝내 막을 수 없을 것이며, 험난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기필코 목표를 성취하고야 말 것이다.

 

1984년 12월 19일 민주언론운동협의회 발기인 일동

권근술 김도연 김동호 김승균 김인한 김종철 김태진 김태홍 나병식 노향기 성유보 성한표 송건호 신홍범

윤활식 이경일 이병주 이부영 이종욱 이호웅 이태호 임채정 정동익 정상모 최장학 현이섭 홍수원

 

 

※ 창립선언문 원문을 그대로 올립니다. 맞춤법 등 표기는 1984년 기준을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