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9 이태원참사 100일, ‘2차 가해자’는 누구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고 이주영님 아버지)가 토론회가 끝난 후 소감을 발언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이태원 참사 100일에 열린 ‘2차 가해자는 누구인가’ 토론회를 동영상으로 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번갈아 생기고 지나갔다. 그중에서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든 감정은 분노와 연민 같다.
토론자로 나온 <경향신문> 이유진 기자는 세월호 참사 때와 다름없이 아무런 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참사 현장에 내몰린 사건기자들의 황망함을 이야기했다. 이유진 기자가 속한 <경향신문> 사건팀의 자체 보도 평가회에서 한 후배기자는 “참사 당일 현장으로 돌아간다면 단 10분을 요구하고 싶다. 재난보도준칙을 읽고 우리는 왜 이 취재를 해야 하는가 논하는 10분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한다. 이유진 기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9년이 지났고 현재의 사건기자들은 참사(를 취재한) 경험이 없다. 이럴 때 중요한 건 경험 있는 선배들의 당부와 조언이고 준칙을 숙지하는 일인데,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전승받지 못한 채 재난보도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다시 써야 했다.”고 했다. 나는 이유진 기자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안타까움과 죄책감, 분노까지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다른 토론자인 서강대 서수민 교수의 발언 내용은 이 기자의 그것과 분명하게 대비되었다. 서 교수는 언론 본연의 핵심 업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언론은)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일본 NHK는 날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정에 재난 재해 보도 연습을 한다고 한다. 오늘 이 순간 여의도 한복판에 폭탄이 떨어지더라도 거기에 흥분하지 않고 시청률에 목매이지 않고 기본을 지킬 수 있는 언론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했다.
두 토론자의 발언은 9년 전 누구나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어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그 이후 우리 사회가, 보다 좁게는 언론이 반드시 배우고 익혔어야 할 교훈을 제대로 익혔는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의심은 “왜 여전히 제대로 준비 못 하고 있지?”라는 분노의 감정으로 연결되었다. 분노의 밑바탕에는 아마도 다시 비슷한 참사가 재발할 수 있고, 그때는 또다시 우리가 대비 안 된 상태로 맞아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한 것 같다.
분노와 함께 마음을 격탕시킨 다른 감정은 공감과 연민.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고 이주영 씨의 아버지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처음에 언론 앞에 나설 때 기자들이 본인 이야기를 지면에 어떻게 표현할까 두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왜 안 그랬을까. 그럴 때 힘이 되어 준 것이 인터뷰하던 어떤 기자의 말이다. 이 부대표에게 “공감하고 항상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해 주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수민 교수의 발언에서도 기자들의 공감과 연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서 교수는 “참사 이후에 언론사 내부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심지어는 유가족들이 중복된 인터뷰에 고통스러워하니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취재내용을 자발적으로 공유한 기자도 보았다. 인터뷰할 때도 늦더라도 정신과 의사들한테 ‘이렇게 물어도 될까요?’라고 확인하는 기자도 있다.”고 했다.
이 부대표와 서 교수의 발언을 들으면서 자연스레 연민이라는 감정을 떠올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 그리고 연민은 우리의 본능, 즉 자기를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혐오하고 배제하고 차별하려는 본능을 억누르고 마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 공동체를 유지시켜 주는 큰 힘이 된다고 믿는다.
토론회를 보며 분노와 연민 사이를 서성이다가 결국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론이 사회적 재난에 철저히 대비하도록 촉구하는 역할을 내가 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원식 참여소통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