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모니터_
건설노조 ‘분신 방조’ 주장한 조선일보, 대기업 직원 죽음은 모르쇠?LG디스플레이 직원이 5월 19일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유족은 “팀장으로 승진한 뒤 업무가 과중해 힘들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Blind)’에 “(해당 직원이) 결혼기념일에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는 등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유족 진술과 고인의 동료들이 남긴 글을 바탕으로 해당 직원 죽음의 이면에 ‘업무 과중’이 자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뉴스1, LG디스플레이 공식 입장 뒤에야 보도
LG디스플레이 직원의 죽음을 처음 보도한 것은 한겨레입니다. 한겨레 <LG계열사 팀장 숨진 채 발견…유족 “과도한 업무 시달려”>(5월 21일 김가윤‧고병찬 기자)에서 보도했듯, 서울 마포경찰서가 “숨진 채 한강을 표류 중이던 엘지 계열사 직원을 발견했다”고 밝히면서 해당 사건이 언론에 처음 알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한겨레 이후 연합뉴스TV, MBC, 허프포스트코리아, 국민일보, 프레시안, 여성신문, 국제뉴스, YTN, 데일리안, 동아일보, 중앙일보, 머니투데이, 뉴시스, 이데일리, 서울파이낸스, 세계일보, 시사저널, 파이낸셜뉴스, 대전일보, 한국면세뉴스, OBS, KBS, 경향신문, 여성조선, 인천일보, 프레스맨, 글로벌에픽, 위메이크뉴스, 매일노동뉴스 등이 해당 소식을 전했습니다.
해당 직원이 유명을 달리한 지 4일 만에, 사건이 언론에 알려진 지 2일 만에 LG디스플레이 공식 입장이 나왔습니다. 뉴시스 <단독/‘직원 사망’ LG디스플레이, ‘대책위원회’ 가동>(5월 23일 이현주 기자)에서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CEO)은 이날 자신의 명의로 된 전사 메일을 통해 최근 직원 사망과 관련해 대책위원회를 가동하겠다고 공지했다”며 사외이사가 지휘하는 독립적인 대책위원회를 꾸려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근본 해결책을 찾겠다는 LG디스플레이 입장이 알려진 겁니다.
해당 직원의 죽음이 알려진 5월 21일부터 이틀간 관련 보도를 전혀 하지 않던 언론은 LG디스플레이 공식 입장이 나오자 뒤늦게 보도에 나섰는데요. 연합뉴스, SBS비즈, EBN, 딜라이트, 조선비즈, IT조선, 브릿지경제, 뉴스핌, 아이뉴스24, 리버티코리아포스트, 인베스트조선, 더팩트, 전자신문, CEO스코어데일리, 아시아투데이, 노컷뉴스, 뉴데일리, 뉴스1, 서울와이어, 서울파이낸스 등입니다.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의 입장 표명에 초점이 맞춰진 보도입니다.
분신 방조 주장한 조선일보, 대기업 직원 죽음엔 한참 침묵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3대 보수신문 중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5월 22일 해당 사건을 보도했지만, 조선일보는 5월 23일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관련 보도 1건을 냈습니다. LG디스플레이 입장이 전해진 후 조선비즈, IT조선, 인베스트조선 등 조선미디어그룹 일부 계열사들이 관련 보도를 낼 때도 침묵을 지키던 조선일보가 한참이 지나서야 사건을 전한 것인데요.
△ ‘미심쩍은 부분’ 있다며 ‘분신방조’ 주장한 조선일보(5/17), 대기업 직원 죽음의 배경보다 사장 입장에 초점(5/23)
조선일보의 최근 보도행태에 비춰볼 때 의아함이 남습니다. 조선일보는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5월 16일 최훈민 기자)를 통해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과 함께 있던 건설노조 간부가 양 지대장의 분신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이튿날 지면에서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며 사실상 ‘분신 방조’를 주장했습니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소셜미디어에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혹시나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며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이런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글을 남겼습니다. 뉴데일리, 이데일리, 문화저널21, 파이낸스투데이, 더퍼블릭, 문화뉴스, 민주신문, 매일신문, 시사오늘 등은 조선일보 보도를 검증 없이 그대로 옮기며 확대 재생산했습니다.
직원 죽음의 배경보다 사장 입장에 초점 둔 보도
그러나 한겨레 <“분신 안 말렸다”는 조선일보…경찰 수사는 “계속 만류했다”>(5월 17일 박수혁 기자)와 MBC <“분신 방조라니‥계속 말리고 설득했다”>(5월 17일 차주혁 기자)는 “해당 (건설노조) 간부는 양(회동)씨의 극단 선택을 만류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강릉경찰서 관계자 발언을 전하며 조선일보 보도를 일축했습니다. 이어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종합민원실 건물의 CCTV 화면이 조선일보에 제공된 것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지만, 조선일보의 해명은 없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양회동 지대장 관련 보도를 내며 “자살보도 권고 기준에 입각, 해당 사건 보도를 최소화”했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보도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분신 방조’를 주장하며 내건 근거는 정체불명의 취재원입니다. 경찰 조사에서 ‘해당 간부가 양 지대장을 말렸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왔지만, 조선일보는 목격자 진술보다 익명 취재원 발언에 무게를 둔 것이죠. 앞서 말했듯 조선일보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며 내놓은 ‘분신 방조’ 의혹 보도는 고인과 유족에게 상처만 남겼으며, 한겨레와 MBC 등의 보도를 통해 일축되었습니다.
반면, LG디스플레이 직원의 죽음은 ‘미심쩍은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유족들이 경찰 조사에서 고인이 과중한 업무에 힘들어했다고 진술했으며, 고인의 동료들 역시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고인이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물론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무조건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블라인드는 해당 회사 직원만 가입할 수 있고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돼 신뢰도가 높은 편이며, 직원들이 회사의 부조리함을 내부 고발하는 창구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취재와 근거도 없이 내놓은 ‘분신 방조’ 의혹 보도와 달리 이번 사건의 경우 보도해야 할 이유, 즉 ‘미심쩍은 부분’이 뚜렷합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3대 보수신문 중 가장 늦게 해당 사건을 전했습니다. 그마저도 LG디스플레이 직원의 죽음과 그 배경이 아닌 LG디스플레이 사장의 입장 표명에 초점을 맞춘 보도였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5월 16일~23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된 ‘분신방조’ 의혹 관련 기사 전체, 2023년 5월 21일~23일 16시 ‘LG디스플레이 직원 극단 선택’ 관련 기사 전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