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한일정상회담 신문 모니터②

‘폭탄주와 세대 갈라치기’ 집중한 한일정상회담 보도, 피해자는 없었다
등록 2023.03.23 15:52
조회 320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6~17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배상안을 내놓은 직후 일본 정부 초청으로 열리는 회담인 만큼 중앙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조치와 화답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가 “1998년 10월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 전체를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한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진로이즈백+에비스’ 폭탄주는 “한일 우호의 맛”

 2차 만찬.jpg

△ 한일 정상이 마신 폭탄주에 집중한 언론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정상회담과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후 도쿄 긴자의 노포 두 곳에서 2차에 걸쳐 만찬을 했습니다.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를 제외한 언론은 양국 정상 만찬에서도 특히 ‘술’에 집중했습니다.

 

동아일보 <기시다, 2차만찬때 “한국서 자리 이어가자” 윤 “임기중 한일관계 가장 좋게 만들고 싶다”>(3월 18일 장관석 기자)는 양국 정상이 “일본맥주와 한국소주로 ‘폭탄주’”를 마시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이어”갔다고 전했고, 중앙일보 <한·일 정상, 만찬서 러브샷… 오부치 딸도 화제에 올라>(3월 20일 강태화 기자)는 “만찬엔 한국이 준비해 간 소주(참이슬)와 일본 맥주(에비수)를 섞은 ‘폭탄주’”로 “두 정상의 ‘러브샷’도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매일경제 <어려운 결단 내린 윤대통령 마음으로부터 경의 표한다>(3월 18일 박인혜 기자, 김규식 특파원)도 “한국 소주와 일본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놓고 두 사람은 이를 ‘화합주’ ‘한일 우호주’라고 부르며 웃음을 터뜨리는 등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전했습니다. 한국경제 <“한소주 함께 마시자” ‘소맥’ 건배한 두 정상 기시다 “우호의 맛”>(3월 18일 오형주 기자)은 “맥주잔을 기울이던 윤 대통령은 화합의 뜻으로 한국 소주를 함께 마셔보자고 제안했고, ‘소맥’을 마신 기시다 총리는 ‘한‧일 우호의 맛’이라는 표현으로 화답”했다고 전했습니다.

 

조선일보 <진로소주·에비스맥주로 ‘화합주’…기시다 “한일 우호의 맛”>(3월 18일 최경운 기자)은 2차 만찬이 열린 식당에서 가져온 맥주가 “일본산 ‘에비스’ 맥주”인데 “대화가 무르익자 한국산 소주 ‘진로이즈백’도 상에 올랐다”며, “맥주와 한국 소주를 함께 마셔보자”는 윤 대통령 제안에 “이를 맛본 기시다 총리는 ‘한일 우호의 맛’이라는 표현으로 화답”했다고 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기시다 총리가 만찬 도중 “윤 대통령의 솔직한 모습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혼네(本音·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겉마음)가 다른 일본 문화에서 솔직함을 언급한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라며 외교 소식통 말을 빌려 양국 정상 만찬에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국가 간 정상외교에서 오찬이나 만찬은 ‘식탁외교’로 불릴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안에도 기시다 총리가 명백한 사죄 표명 없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모두 계승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면서, 기시다 총리의 만찬 대접은 의미가 다소 퇴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한겨레 <긴자 유명 식당서 부부동반 만찬 ‘환대’ 부각>(3월 17일 배지현 기자)도 “대통령실은 ‘굴욕외교’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일본 쪽이 보여준 ‘극진한 환대’를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고 평가했죠.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어떤 술을 어떻게 마셨는지 상세히 전하며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인상을 줍니다.

 

조선일보, 오카쿠라 덴신 ‘침략론자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3월 17일 일본 게이오대 강연에서 일본 메이지 시대 사상가 오카쿠라 덴신의 “용기는 생명의 열쇠”라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한겨레 <대통령실, 조선 멸시론자 발언 알고도 넣었다>(3월 20일 김미나 기자)는 윤 대통령이 “일본의 아시아 국가 침략을 정당화하는 슬로건인 ‘대동아공영권’으로 연결”되는 ‘아시아 중심 사상’을 주장한 오카쿠라 발언을 인용해 논란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대통령실 관계자가 “새로운 한-일 관계로 가기 위해서…어마어마한 반발과 우려가 있었음에도 ‘용기’를 낸 것처럼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이며 “‘조선 멸시론’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해명했지만, “‘용기’를 강조하기 위해 오카쿠라를 둘러싼 논란을 알면서도 연설에 활용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경향신문 <여적/오카쿠라 덴신>(3월 20일 서의동 논설위원)도 오카쿠라의 저서 『일본의 각성』 내용을 언급하며 오카쿠라는 “일본의 조선 병합이 타당하다는 논리를 서구로 전파”했으며 “그의 ‘아시아는 하나’론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대통령실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도 인용했다면 심각한 문제이고, 몰랐다면 역사에 남을 실수”라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조선일보 <윤이 인용 오카쿠라 학계 “침략론자 아닌 아시아론자가 맞아”>(3월 20일 유석재 기자)는 “(오카쿠라가 『일본의 각성』에서 ‘조선이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 사람이 고대사 전문가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한다면 걸려들지 않을 당시 일본 지식인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말을 전한 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발언을 빌려 “대통령이 그런 취지로 인용한 것이 아닌데 ‘침략’과 연관시켜서 꼬투리를 잡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라고 주장했는데요. 경향신문, 조선일보, 한겨레를 제외한 다른 언론은 윤 대통령의 오카쿠라 인용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논문 「오카쿠라 텐신의 아시아통합론과 불교」(2005년 최유경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종교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는 “(오카쿠라는) 아시아 문명의 부활자로서 일본의 권리와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는 데에 그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일본의 각성』에서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는 의식”을 명확하게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조선이 일본의 황조신인 아마테라스의 남동생, 스사노의 아들에 의해 설립된 국가로 고대로부터 일본의 식민지였으며 도쿠가와막부에게 조공을 받쳐온 일본의 식민지”로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만주와 조선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지역의 패권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의 정당성을 피력”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논문 「서구의 외부 ‘태동(泰東)’과 ‘아시아’의 내부 ‘일본제국’ 사이에서」(2014년 전성곤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HK교수)도 오카쿠라가 일본을 아시아의 중심으로 놓고 주장한 ‘아시아는 하나다’를 오카와 슈메이가 계승하고 발전시켜 일본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대동아공영권으로 이어졌다고 기술했습니다. 이처럼 오카쿠라의 조선 침략 정당화는 각종 자료에서 드러나는데도 조선일보는 상반된 주장을 한 것입니다.

 

강제동원 배상안 옹호하려 ‘MZ세대’로 세대 갈라치기?

언론은 한일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며 MZ세대를 언급했습니다. 매일경제 <사케·위스키 없어 못 먹고…애니메이션 슬램덩크 돌풍>(3월 20일 신익수 여행전문기자)은 한국 문화‧유통가의 일본제품 인기를 소개하며, “문화‧유통 산업계의 예스 재팬 배경에도 2030세대의 당당함이 숨어 있다”, “애국심과 소비 성향을 결부시키지 않는 MZ세대의 소비 성향이 한몫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양국은 겨우 ‘다시 동행할 결심’”을 하고 있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는 훨씬 앞서 나가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동아일보 <정용관 칼럼/기시다의 침묵, 그래도 진 게임은 아니다>(3월 20일 정용관 논설실장)는 “(윤석열 대통령의 강제동원 배상안과 방일이) 한일 관계를 복원하려는 노력의 일환임을 스스로도 알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이완용이니 제2의 을사늑약이니 하며 철 지난 ‘매국노’ 노래만 틀어대니 MZ세대를 비롯한 국민 반응도 시큰둥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일보 <장부승의 해외사정/‘다나카상’과 ‘마부장’이 오가는 한일…청년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3월 18일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KBS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징용 배상안에 대해 전 국민의 53%는 반대라지만 20대의 51%는 ‘잘한 결정’이라 답했다”며 “과거의 아픈 기억에만 집착하며 일본의 말과 문화를 금기시해온 것”은 기성세대이고 “미래로 가야 할 것은 젊은이들이 아니라 기성세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KBS <“강제동원 배상안 잘못” 53.1%>(3월 9일 신선민 기자)에 따르면 “(강제동원 배상안에 대해) 20대와 60세 이상에서 ‘잘한 결정’이란 응답이 절반 이상인 반면, 30·40·50대는 절반 이상이 ‘잘못한 결정’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전체 응답자의 72.1%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안은) 일본 전범 기업의 참여와 사과가 없다는 점에서 반쪽 해법”이라고 했으며, 72.5%가 “우리 정부가 피해자 배상 이후, 일본 전범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했고, 이런 흐름은 20대부터 60세 이상까지 전 연령층에서 동일했습니다.

 

「청년기본법」은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장부승 교수는 20~30대가 아닌 20대 응답 수치만 제시하고, ‘반쪽해법’과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구상권 청구’ 응답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한일 양국의 미래상을 청년들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의도로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안을 잘한 결정이라 응답한 20대 응답 수치만 인용하고, 다른 응답 수치를 외면한 것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또한 국민여론과 의식은 특정세대가 이끌고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전 연령층이 대표하고 구성하는 것입니다. MZ세대는 1981~1996년생인 밀레니얼세대(M세대)와 1997~2012년생인 Z세대를 지칭하는 신조어로, ‘18세부터 41세까지를 한 세대로 묶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지만 언론은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는데요. 언론이 주장하는 바를 뒷받침하려 특정세대의 특성이나 의견 일부를 떼어 인용하는 것은 세대 갈라치기를 통한 여론 왜곡일 뿐입니다.

 

또다시 등장한 “사법자제는 글로벌 스탠더드”

사법 자제.jpg

△ 대법원 판결이 ‘사법 자제’ 어겼다며 비판한 동아일보와 한국일보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안 발표 전후로 조선일보(1월 26일 칼럼, 3월 6일 사설, 3월 9일 칼럼)에서 나왔던 “‘사법 자제’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이번에는 한국일보와 동아일보에서 등장했습니다. 한국일보 <메아리/해묵은 친일 논쟁 안 할 수 없나>(3월 18일 김영화 뉴스1부문장 겸 정치부장)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외교문제에 대한 사법자제라는 관례를 벗어나면서 문제를 꼬이게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동아일보 <송평인 칼럼/계묘국치, 진짜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3월 22일 송평인 논설위원)은 “외교에는 (사법부냐 행정부냐 입법부냐를 넘어 국가 전체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한목소리 원칙(one voice principle)’”이 있는데, 2018년 대법원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오지(奧地) 국가에서나 나올 법한 판결”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현대국가에서는 행정행위를 포함한 국가작용은 모두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띤 국가기관 행위의 경우 예외적으로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이를 ‘사법 자제’라고 합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동아일보는 바로 이 사법 자제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요. 그러나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주요국제문제분석 세미나에서 발표한 「외교행위에 대한 사법심사에 관하여」(2022년 12월 19일 김덕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유럽‧러시아연구부 교수)에 따르면 “국민의 기본권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 특히 인권 분야와 같이 국제법적 보호가 증가하는 영역과 관련된 경우”에 “사법자제 원리의 개념을 부정하거나 그 범위를 제한 및 축소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덕주 교수가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주요국 현황을 살펴본 결과, “전통적으로 외교문제에의 개입을 자제”해온 프랑스 사법부마저도 “유럽통합의 가속화 및 유럽인권협약 가입 등의 외생적인 요인”으로 이런 관행에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즉, 사법자제는 조선일보, 한국일보, 동아일보 주장과 달리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닙니다.

 

한겨레 <세상 읽기/한일관계 정상화? 앞으로 일어날 일들>(3월 22일 임재성 변호사‧사회학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을 맡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는 “피해자의 권리를 빼앗고…수평적‧호혜적 외교가 아닌 일방적‧종속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한-일 관계) 정상화”가 정상화가 맞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금전’이 아닙니다.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를 겪은 한국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한 뒤 사죄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입니다. 언론이 한일 정상의 폭탄주에 집중하고, 조선 침략론자를 ‘아시아론자’로 포장하고, 세대 갈라치기로 특정세대 여론만 부각하며 어김없이 ‘사법자제’를 외칠 때, 과연 진정한 ‘한일관계 정상화’를 바라며 ‘당연한 이치’를 지켜주길 바랐던 강제동원 피해자와 국민은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3월 17~2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기사

 

<끝>

 

monitor_20230323_026.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