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모니터_
‘박근혜 재판’을 가십으로 다루는 TV조선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이 3개월 째 진행 중입니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범으로서 뇌물수수 등 총 18가지의 혐의를 받고 있어 지난한 재판이 이어지고 있죠. 게다가 박 씨의 재판이 있을 때마다 많은 지지자들이 법원을 찾아 소란을 피우고 시민들과 다툼을 벌여 논란이 큰 상황입니다. 종편 시사 프로그램도 종종 박근혜 씨 재판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는데요. 과연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법정이 끝난 뒤 소리를 질렀는데 감치 됐으니 특이한 사건’? TV조선의 이상한 진단
17일 박근혜 재판에서 소란을 피운 지지자가 처음으로 감치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는 재판이 종료된 직후, 검찰한테 ‘반드시 처벌 받을 겁니다’라고 소리쳤고 끌려 나가면서도 ‘너희들 총살감이다’라고 폭언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상식을 벗어난 박근혜 씨 지지자들의 행태는 사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데요. 이를 바라보는 TV조선의 시각은 좀 다릅니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8/18)에서 엄성섭 앵커는 “검찰에서 반드시 처벌받을 것이라 소리쳤고 제지당한 뒤 끌려 나가면서도 ‘너희들 총살감이다’라고 외친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김미선 앵커는 “여기서 좀 특이한 점이 있었죠?”라고 물었고요. 박상현 기자는 이에 대해서 “그렇죠. 재판이 끝난 다음에 소리를 질렀거든요. 그런데 처벌을 받았어요. 왜 이렇게 됐느냐? 재판이 끝났는데 재판부는 법정에 남아 있었어요.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하고 최순실 씨 공판이 속행된 다음에 끝나고 나서 별도로 그 부분에 대해서 감치재판을 열어가지고 이 남성한테 감치 5일의 결정을 내렸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상현 기자의 설명은 사실관계를 모호하게 비틀어 버렸습니다. 일단 박 기자의 표현에는 재판이 끝난 뒤에 소리를 지른 것은 문제가 아닌데 법원이 무리하게 처벌을 내렸다는 뉘앙스가 담겨있습니다. ‘특이하다’라는 규정은 이런 왜곡을 더욱 부추깁니다. 자칫 시청자들은 ‘빨리 가지 않고 남아있던 재판부가 자신들을 비난하는 외침을 듣고 재판 이후 감치 재판까지 열어서 감치 명령을 내린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치 결정 당시 재판부는 “법정질서 유지를 위한 재판장의 명령을 위반하고 폭언을 함으로써 재판 위신을 현저하게 훼손했다. 다만 공판 진행 중이 아니라 종료 직후여서 심리에 직접 영향은 없었던 점 등까지 고려해 감치일수(5일)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특이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없는 명백한 범죄 행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재판부의 결정 역시 마땅한 처벌이었음에도, TV조선은 재판부가 무리한 결정을 한 것처럼 묘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검찰 협박해 감치된 박근혜 지지자가 “일리 있는 주장했다”고?
이후 김미선 앵커는 “발언이 조금 센데 이분은 왜 이렇게 흥분했죠?”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엄성섭 앵커는 “증인으로 나온 이상화 전 KB하나은행 독일 프랑크푸르트 법인장의 증인 진술 때문인데 검찰이 이 씨에게 최순실 씨한테 인사 청탁을 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질문한 것에 흥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엄 앵커는 “곽 씨(박근혜 지지자)가 검사들에게 ‘사람의 마음 속 욕망은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고 해명을 했습니다. 물론 나름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검찰을 향해 ‘너희도 처벌받을 것’, ‘총살감’이라 협박한 행위에 대해서는 비판 한 마디 없이, ‘마음 속 욕망은 처벌할 수 없다’는 말만 가지고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감싼 것입니다.
‘박근혜 지지자’의 ‘스타일’ 분석한 TV조선, 국정농단 본질 흐린다
한편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8/18)에서는 ‘박근혜 지지자 스타일’을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도 황당합니다. 먼저 박상현 기자가 “재판 초기에는 각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재판이 길어지자 최근에는 박 전 대통령 지지자가 방청객의 주를 이뤘다. 그러다 보니 강경일변도로 치닫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백대우 기자는 “지난 8.15 때 탄핵 반대 지지자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그 이후 조금 더 응집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김미선 앵커가 “박 전 대통령 공판에서 퇴정당한 지지자들, 나름대로 그 스타일을 분류할 수 있습니다”라며 대뜸 ‘박근혜 지지자 스타일 분석’으로 나아갔습니다. TV조선은 이런 말도 안되는 논리로 ‘퇴정당한 지지자’라고 칭한 사람들의 행위를 정리하고, 그들의 행태를 흥미로운 가십으로 다룬 것이죠.
내용을 상세히 보겠습니다. 문승진 기자는 “첫 번째는 박근혜 전 대통령만 보는 충성형입니다. 바로 열성 지지자답게 대통령께 대하여 경례를 외치거나 끝까지 응원합니다 라고 크게 소리를 질러서 퇴정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요. 박 전 대통령의 입장과 퇴정할 때 ‘사랑합니다, 힘내세요’라고 외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는 황당형입니다. 바로 7월 3일이죠, 재판에서 한 방청객이 대통령님의 딸입니다. 엄마 저 박근혜 대통령님 딸 입니다고 외쳤다가 퇴정당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이 됐고요. 또 황당형의 또 다른 예는 변호사와 판사에게 질문을 한 방청객도 있었어요. 이에 재판부가 처음으로 감치 재판을 열어서 과태로 50만 원의 처분을 내리기도 했었고요”라며 두 번째 유형을 설명했습니다. 문 기자는 마지막으로 “비매너형도 있는데. 박 전 대통령의 재판 1호 퇴청자가 누구냐면 바로 이 비매너형입니다. 녹음하다가 법정 경위에게 들킨 방청객인데요. 왜 했는지 이유를 묻자 잘 안 들려서 녹음했다가 나중에 들으려고 녹음했다. 또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퇴청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라고 정리했습니다. TV조선은 이 과정에서 지지자들의 각 스타일마다 삽화까지 그려 보여줬습니다.
△ ‘박근혜 지지자’의 ‘퇴정 스타일’ 분석한 TV조선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8/18) 화면 갈무리
재판부를 모독하고 법정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박근혜 지지자들이 응집력을 지니게 된 과정과 그들의 ‘스타일’이 무엇인지에 이렇게 공을 들여 길게 방송한 TV조선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도대체 어떤 뉴스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일까요? 굳이 고민하자면 극렬 박근혜 지지자들이 몸조심을 하게 하는 경고 효과 정도는 있을까요? 도무지 긍정적 효과를 생각해내기 힘들어 ‘전파 낭비’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방송은 단순히 전파 낭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TV조선의 이런 행태의 문제점은 ‘박근혜 재판’이라는 세기의 사건에서 본질을 지우는 데 있습니다. TV조선은 법정모욕죄에 해당하는 행위들을 흥밋거리로 처리하면서, 정작 박근혜 씨의 18가지에 이르는 혐의는 제대로 다룬 적이 없습니다. 이런 식의 방송 행태가 박근혜 국정농단 자체를 희화화한다는 점에서도 대단히 부적절합니다.
‘박근혜 의상 조명’도 여전…국정농단을 ‘가십’으로 다루는 TV조선
‘박근혜 재판’의 본질을 흐리는 행태 ‘지지자들 스타일 분석’만이 아닙니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8/18)은 박근혜 씨의 머리 모양과 의상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TV조선이 지난해 국정농단 국면 당시부터 꾸준히 관심을 보인 가십 소재입니다.
TV조선은 박근혜 씨가 버스에 내려 재판정으로 걸어가는 영상을 보여줬고 백대우 기자가 “8·15 이후에 의상이 바뀌었습니다. 어제와 오늘 같은 회색 정장을 입고 서울법원중앙종합청사에 등장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바지는 그대로인 것으로 보이고요. 여전히 네 번째 발가락에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라 편의성이 좋은 샌들을 변함없이 신고 출석했습니다. 어제는 교도관의 도움 없이 혼자 걸었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씨의 모습을 묘사하며 박근혜 씨가 발가락이 아팠다는 사실도 굳이 상기시킨 것이죠. 그러나 정작 화면에서는 박근혜 씨의 신발이나 바지가 담기지도 않았습니다. TV조선에게 한마디 하자면,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8월 18일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민언련 종편 모니터 보고서는 패널 호칭을 처음에만 직책으로, 이후에는 ○○○ 씨로 통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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