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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탈법’이었던 신고리 5‧6호기, 언론은 왜 숨기나
등록 2017.07.1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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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백지화 여부를 3개월 간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이틀 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에 공론화 기간 중 공사를 일시 중단해달라는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습니다. 한수원은 7일 이사회를 열어 건설 임시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으나 한수원 노조의 반대로 의결하지 못했습니다. 13일 이사회 재소집이 예정되어 있지만, 노조가 다시 강경한 저지 투쟁을 예고하면서 난항이 예상됩니다. 이런 가운데 9일 한수원과 건설업체가 정부의 공사 중단 협조 요청이 위법하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10일에는 일부 노동자들이 임금 보전 대책을 요구하며 일체의 작업을 거부했습니다. 이로 인해 임시 중단 여부가 결정되기도 전에 공사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10일, 산업통산자원부는 “에너지법 제4조는 에너지 공급자인 한수원이 국가에너지 시책에 적극 협력할 포괄적인 의무가 규정돼 있다”며 공기업인 한수원이 공론화 기간 중 건설 일시 중단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협조 요청이 위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10일 방송사들도 보도를 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복잡한 사실관계와 맥락을 지워 버리고 건설업계의 입장만 대변한 반쪽짜리 보도였습니다.  

 

정부가 공사 중단을 강행했다고? 인터넷판 제목으로 왜곡한 TV조선
특히 TV조선 <건설사 반발…‘중단’ 곧 결정>(7/10 윤창기 기자 https://bit.ly/2sJWpcG)에서는 많은 왜곡이 발견됩니다. 일단 TV조선은 실제 방송에서는 보도 제목을 “건설사 반발…‘중단’ 곧 결정”으로 내보냈지만 인터넷판 제목은 “건설사 반발에도…5, 6호기 중단 강행”으로 뽑았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검색을 통해 주로 뉴스를 보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마치 정부가 건설사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공사 중단을 강행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수원은 공사의 일시 중단 여부도 결정하지 않았고 정부의 협조 요청에 따라 중지했던 잔업과 주말 특근도 재개할 방침을 세웠습니다. TV조선이 자극적인 인터넷 노출 제목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한 겁니다. 

 

‘공사 일시 중단 협조 요청’이 위법? 정부 측 반론도 얼버무린 TV조선
또한 TV조선은 정부의 건설 일시 중단 요청이 위법이라는 건설사들의 입장을 부각하면서 이에 대한 정부의 반론은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TV조선은 “일부 시공사는 공사 중단의 법적 근거가 없다며 강력 반발”, “국책 사업을 쉽게 결정해선 안된다는 견해” 등 원자력업계와 건설사들의 입장을 전했고 여기다 “국가의 정책이 바뀌었다. 정책 기조가 바뀐 게 이유이잖아요. 적법한 근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라는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의 인터뷰도 덧붙였습니다. 


산자부는 이런 의견에 10일, 반론을 냈습니다. “에너지법 제4조 ③항에 의하면 에너지공급자와 에너지사용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에너지시책에 적극 참여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공기업인 한수원에 대한 ‘일시 중단 협조 요청’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데 TV조선은 이런 입장을 “공론화 기간이 필요하고, 그 기간 동안 일시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법적 절차를 따진 시공사들의 비판에도 정부가 무조건 ‘우리가 바람직하다’며 밀어붙이는 것으로 묘사한 셈입니다.   

공사 중단시 진짜로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나
TV조선은 이 보도에서 “영구 중단되면 2조 6천억 원 이상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시공사 입장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과장된 것입니다. TV조선이 피해라고 보도한 ‘2조 6천억 원’ 중 1조 6천억 원이 이미 집행된 비용, 즉 순수한 매몰 비용입니다. 이중서도 절반인 8천 5백억 원은 ‘주기기계약비용’으로서 말 그대로 주기기를 구입한 비용입니다. 주기기는 재활용과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보전이 가능합니다. 또한 TV조선이 순수 매몰 비용에 추가적으로 1조원을 더해 ‘2조 6천억 원’이라고 보도했는데요. 이 1조원은 계약 파기에 따른 위약금을 가정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공론화와 협상 과정을 통해 조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2조 6천억 원 피해’는 예상되는 손실 비용을 최대한 부풀리고 과장한 것입니다.  

 

정부의 절차상 위법 논란, 타사도 부실 보도
정부의 공사 일시 중단 요청이 위법하다는 건설업계의 주장에 논란이 커진 상황입니다. 산자부의 반론도 나온 만큼 구체적으로 보도를 해야 시청자들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TV조선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들도 이 문제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SBS‧JTBC‧MBN을 제외한 4개 방송사가 모두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 논란을 보도했는데요. MBC, TV조선, 채널A가 ‘정부가 절차상 위법’이라는 업계 입장을 다뤘습니다. 


채널A <공문 1장에 500여 업체 손놓아>(7/10 조현선 기자 https://bit.ly/2tI9Gnr)는 “(현행법상) 취소나 중지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한 대통령 아니라 그 누가 와도 이 공사를 중단시킬 수가 없는 것”이라는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의 발언, “정부가 이런 식으로 요청한 것은 딱히 법률상으로 나와있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행정지도적 권고요청을 한 것”이라는 이관섭 한수원 사장 발언을 화면으로 보여줬습니다. 정부의 반론은 “공사 중단은 국무회의를 거쳐 결정된 것으로, 절차에 위법은 없었다”는 것으로 갈음해 TV조선처럼 핵심 내용은 누락했습니다. 


산자부는 에너지법 4조에 따라 공기업인 한수원이 국가의 에너지 시책에 적극 참여할 의무가 있으므로 ‘공론화 기간 중 공사 일시 중단’을 행정적으로 협조 요청을 할 수 있다고 밝혔죠. 동시에 이런 일시 중단 협조 요청은 “사업자 귀책사유, 당초 허가된 계획과의 불일치” 등 허가 취소 또는 공사 정지 사유에 따라 건설을 중단시키는 원자력안전법 제17조와는 다른 사안임을 짚어주기도 했습니다. 채널A는 산자부가 밝힌 내용을 모두 외면했습니다. 


그나마 MBC가 정부 측 반론을 제대로 실어준 편입니다. MBC <“공사 중단 근거 없다”‥시공사 강력 반발>(7/10 김재경 기자 https://bit.ly/2v6d1ff)은 정부의 입장을 “에너지법 4조에 따르면, 에너지공급자는 국가 시책에 적극 협력해야 할 의무가 명시돼 있으며, 한수원이 공기업이라는 특수성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으로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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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방송사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 관련 보도 제목(7/10) 화면 갈무리

 

‘시공사 피해’ ‘사회갈등비용’ 부각한 KBS
1건만 보도한 타사와 달리 KBS는 이날 유일하게 2건을 보도했는데, 시공사들의 피해와 사회갈등비용을 부각했습니다. KBS <공사 중단 앞두고 업체‧근로자 ‘막막’>(7/10 https://bit.ly/2u4unvM)은 “크레인이 멈춰 서 있는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을 보여주면서 “현장에 있는 시공사들도 타격을 입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언제 중단할 지 결정이 미뤄지면서 초기 투자금이라도 회수할 수 있을지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다 일손을 놓은 근로자들을 조명하며 “신고리 5·6호기 건설 관련 계약을 맺은 업체는 모두 512곳, 투입되는 인력은 무려 2만9천여 명입니다”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지는 KBS <늘어나는 갈등 비용…13일 중단 여부 결정>(7/10 https://bit.ly/2u4unvM)에서는 이렇게 “업체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을 이유로 “공론 조사 과정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사회적 갈등 비용만 키우는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KBS 보도는 이미 공사가 중단되어 시공사와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확정된 것처럼 보이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일시 중단 요청은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한 공론 과정을 거치기 위한 절차일 뿐입니다. 아직 공사 중단이 이뤄진 것이 아니고, 더구나 한수원은 일시 중단 시 발생할 천 억 여원의 비용 손실을 업체들에게 떠넘기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구성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는 ‘사회적 갈등 관리’도 주요 분야로 포함되어 있어 향후 노동자들의 피해 보전 등 갈등 요소를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하게 됩니다. KBS는 이런 사실은 외면한 채 이미 상당히 부정적인 결과가 현실화된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시작부터 잘못된 신고리 5‧6호기 눈감더니…‘탈원전’에 ‘네거티브’하는 언론
이렇듯 방송사들은 일제히 건설업계의 입장에 무게를 두면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 실현’을 부정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반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공론에 맡긴 취지나 탈원전의 필요성은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중단 여부를 고심하면서 그 판단을 공론화위원회, 즉 국민에게 맡긴 이유는 사업의 시작부터 탈법과 졸속으로 얼룩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6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 곳에 원전 10기가 밀집된 곳은 전 세계에서 고리가 유일하다. 고리 원전 반경 30km에는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인구의 22배에 해당하는 무려 382만 명의 국민이 살고 있”다며 공익감사를 청구했습니다. 원전의 과다 밀집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결정 당시에도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건설 허가를 결정할 당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개별 원전이 사고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된 만큼 여러 원전이 모여 있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여 파문이 일었습니다. ‘원전 하나하나가 모두 안전하므로 집중되어있어도 안전하다’는 황당한 논리를 편 겁니다. 이에 원안위 회의에 참석한 김익중 교수 등 전문가들이 항의했으나 건설이 허가됐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원자력안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건설허가를 얻는 데 필요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 중대사고로 인한 평가 내용이 들어가야 하지만 원안위 고시에는 ‘중대사고는 제외한다’고 규정해 상위법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있습니다. 


또한 윤종오 국회의원은 지난해 6월 한수원이 건설 허가가 나기도 전에 먼저 현장 공사를 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에서 수직구 공사가 9개월간 진행되었다는 것인데요. 한수원 측은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른 임시공사라고 하였지만, 해당 공사가 지름 13m, 깊이 67.5m에 이르는 대형 공사이며, 원전설비에 반드시 필요한 설비인 만큼 윤 의원실은 본 공사로 봐야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한수원이 건설 허가 전에 삼성 물산 컨소시엄과 1조 1775억 원의 건설계약을, 두산중공업과는 2조 3천억 원의 주기기계약을 진행했다는 점도 한수원이 절차를 거치기 전에 이미 건설을 결정해놨다는 의혹을 방증합니다. 신고리 5‧6호기는 이처럼 건설 허가 당시부터 안전성부터 절차상 합리성까지 모두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지난해 건설 허가 당시부터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먼저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은 탈원전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탈핵은 분명 큰 사회적 비용이 필요한 일이며,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하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정책 실현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과 장․단기적 문제점을 해결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국민과의 소통, 그리고 투명한 정보공개한 절실합니다. 언론의 역할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전문성이 필요한 핵에너지 문제를 국민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산적한 문제점들을 설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를 다해야 민주적인 공론장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원전에 대한 찬반 논리와 정보제공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방송 보도들은 일방적으로 ‘찬핵’ 주장만 집중 조명하면서 ‘탈원전’을 터부시하고 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7월 10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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