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보도_
경제신문 일일브리핑(D-27)
경제지의 대선후보 ‘친기업성향 길 들이기’경제지들이 어떤 사안에 주목하고 어떤 사안을 소홀히 하는지 살펴보면 그들이 주로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으며, 그들이 기피하는 논의는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태도는 경제지가 대선을 바라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늘 경제기사 모니터 보고서는 특정 기사의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는 이런 보도가 적절한가를 묻고, 시민과 공유하고자 한다.
1. 지금 재계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노동계와 기업 간 균형이 현격히 깨져 있나?
매일경제가 지난 4월 7일 지면 1면 톱에 게재한 <문캠프 “좋은 일자리는 성장서 나온다”>(4/6 정욱․오수현․강영운 기자 https://goo.gl/LCFq1I)와 12면에 게재한 <재계 “한국 경제 추락직전…대대적 디체킹 필요”>(4/6 정욱․오수현․강영운 기자 https://goo.gl/3KImG9)는 이번 대선을 바라보는 재계와 경제지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 문재인 후보 당사자도 아닌 캠프의 재계 친화적 입장을 비중 있게 보도한 매일경제(4/6)
기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가 전날 대한상공회의소, 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임원을 초청해 국회에서 가진 ‘경제현안 점검회의’ 관련 보도를 전하고 있다. 간담회는 문재인 후보가 직접 참석한 것도 아니고 캠프 김진표 공동선대위원장 등이 참석한 자리였다. 그런데 이 1면 머리기사의 리드문은 “(문 캠프가) 재계에 유화적인 발언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집권이 유력해 보이는 대통령 후보와 주요 경제단체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필요하기도 하다. 다만 경제계의 인식이나 이를 전달하는 경제지의 보도태도가 바람직한 것인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경제계는 사실 상대적으로 진보에 속하는 문재인 후보의 집권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문 후보가 지지도에서 가장 앞서 있는 현실에서는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문 후보를 최대한 재계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친 기업적, 더 정확히 말하면 친 대기업적 인식을 갖도록 견인하려는 것이다. 그런 점들이 문 후보 본인이 직접 온 것도 아닌 간담회 소식을 이렇게 비중 있게 보도한 이유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재계 대표들은 “한국 경제가 새 활로를 찾지 못하면 추락할 수밖에 없다”며 “규제 완화, 구조 개혁으로 기업이 뛰놀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기사는 이날 문재인 캠프 측이 ‘노동계만이 아니라 기업 목소리를 듣겠다’며 종전에 쌓인 반기업 이미지를 터는 데 주력했다고 평가했다. 이용섭 더문캠 비상경제대책단장이 “그동안 노동계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앞으로는 재계 의견도 경청하면서 균형을 맞춰나가겠다”고 말한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정말 기사가 단정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계와 기업 간 균형이 현격히 깨져 있는 것일까? “노동계뿐만 아니라 기업 목소리도 함께 듣고 균형 있는 정책을 만들겠다”는 이용섭 단장의 말을 시비 삼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인식 또한 사실에 입각한 것일까? 여기서 고용노동부라는 부처가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부처가 따로 필요했던 것은 자본 측에 비해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노동계를 특별히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즉 노동부라는 명칭이나 그 기능부터가 노동과 자본 간의 힘의 관계가 구조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는 이 균형을 그나마 복원하는 기회다. 평형수를 붓는 기회다. 그러니 선거를 맞아 노동계가 어느 때보다 그 목소리가 활발히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계는 이를 ‘균형의 파괴’라고 표현하고 우려하고 비판한다. 또 이런 경제계의 주장을 경제지들은 크게 실어주며 뒷받침하고 나아가 부추기고 있다.
2. 대기업과 총수는 어떤 죄를 짓더라도 수사도 구속도 안되나?
4월 3일자 한국경제의 <사설/‘30대그룹 2만명 감소…그렇게 때리는데 일자리 생기겠나’>(4/3 https://goo.gl/2JmIr6)도 선거와 정치에 대한 경제지의 부정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사설은 기업경영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30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사업보고서를 낸 253개사의 고용현황을 집계한 결과 작년 말 고용인원이 93만124명으로 1년 전보다 1만9903명(2.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것을 인용해 논지를 폈다. 사설은 “주력업종 침체와 구조조정 등으로 ‘고용절벽’이 예상되긴 했어도 30대 그룹에서 2만 명이나 감소한 것은 심상치 않은 신호다”라고 했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 느닷없이 ‘정치에 휘말린 대기업들이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가 됐다’고 말한다. “총수들이 수시로 국회로, 검찰로 불려 다니고 심지어 구속까지 된 마당이다”고 해 총수에 대한 검찰 수사와 혐의가 입증돼 구속된 재벌총수에 대해 부당한 피해라도 당한 것처럼 서술한다. ‘반대기업 정서’ 지적이 나오지 않을 리 없다. ‘국회가 만연한 반대기업 정서에 편승해 규제 법안들을 무더기로 내놓고 있다’고 비판하고는 “이렇게 대기업 때리기에 혈안인데 고용이 늘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일 것이다”고 한탄한다. 경제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기업 때리기’론의 반복이지만 논리의 비약이 지나치다.
이 사설의 결론은 역시 마지막 부분에 있다. “올해에도 대기업 고용이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면서 대선을 앞두고 각 당 후보들은 하나같이 재벌개혁을 공언하고 있는 것에 대해 “누가 되든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경영을 과잉 범죄화하는 개혁몰이에 나설 게 뻔하며” “경영권을 위협할 상법 개정안, 기업 부담을 늘릴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 등도 재추진될 것이며” 그래서 “실적이 개선되고 수출이 반등하고 있다 해도 기업들이 선뜻 고용을 늘리기 힘든 환경이다”고 우려한다. 대선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을 ‘마약 같은 포퓰리즘 경쟁’이라고 호되게 꾸짖으며 “일자리는 정치가 아니라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는 훈계와 “청년들의 한숨 소리만 커져 간다”는 개탄으로 끝낸다.
이 같은 논리대로라면 대기업은(특히 그 총수는) 어떤 죄를 짓더라도 수사를 받아서도 안 되고 감옥에 보내서도 안 된다는 얘기인가. 그 같은 논리의 일단을 보여주는 기사가 매일경제의 <‘사령탑 부재’ 투자적기 놓칠라…3년 뒤가 두려운 삼성>(4/7 김동은․이용건 기자 https://goo.gl/4aBXg6)이라는 기사다. 사실 이 기사의 문제는 본문보다는 제목이다. 기사에 전혀 언급되지 않는 내용을 제목으로 뽑은 데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삼성그룹에 대한 이 신문의 깊은 걱정과 염려가 읽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1분기 영업이익이 9조 9000억 원으로 ‘어닝 서프라이즈’에 해당되는 실적을 올렸다는 이 기사는 반도체 부문에서 사상 최고 실적을 올렸으며 이 같은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이 삼성전자만의 ‘차별화된 기술력’에 있다고 서술한다. 기사를 끝까지 읽어봐도 제목의 ‘사령탑 부재로 인해 투자 적기를 놓칠 수 있으며 그래서 3년 뒤가 걱정이다’는 대목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제목은 사령탑 없어서 걱정이라고 뽑은 것이다. 구속된 재벌 총수를 석방시켜 경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이런 ‘무리’도 무릅쓰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하겠다.
3.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는 왜 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나?
이렇듯 대기업을 위해서는 열성적으로 대변하고 염려하는 경제지들이지만 잘 얘기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보도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사회책임 관련 제도와 법규를 강화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고, 어느 때보다 그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우리의 경제지에서는 그에 대한 보도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가령 CSR의 한 부분인 사회책임투자(SRI·Social Responsibility Investment), 즉 기업의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성과를 반영해 투자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큰 흐름이 된 지 오래지만 우리 경제지는 이에 대한 소개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적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세계 사회책임투자 시장 규모는 22조 달러에 달하는데 한국은 0.1%도 안 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SRI 시장 규모는 72억 달러 수준에 그친다. 국민연금만 봐도 올해 1월 적립금이 561조원인데 이중 사회책임투자는 6조 원 가량에 불과하다.
“사회책임투자는 결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기능을 하고 있고 기업이 사회적책임을 다하면 그 자체로 경제민주화 많은 부분을 실현할 수 있다”는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의 말처럼 사회책임투자는 경제 민주화의 한 방도다. 우리 경제의 앞날에 매우 중요한 논의이지만 한국의 경제지에서는 이에 대한 소개를 극히 꺼린다.
그런 점에서 한국경제에 <‘기업 경영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의 범위’>(3/23 윤종원 주 OECD 대사 https://goo.gl/kxHCnd)라는 칼럼이 실린 것이 오히려 이채로울 정도다. 내부 필자가 아닌 외부 필자(윤종원 < 주 OECD 대사 >)의 기고인 이 칼럼은 “기업활동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원칙이 한국 사회에서 명확하게 정립된 것 같지 않다”면서 “기업이 국가사회에 기여한다고 경영상 자유를 무한정 용인할 수는 없다. 법 테두리 밖에 있어도 사회적 해악이 큰 행위에 대한 책임이 면탈되는 건 아니다”고 지적한다. 다만 “그 책임 기준은 법령으로 사전에 명확히 정해야 하며 그래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범위를 규율하는 데 기업책임경영 논의가 좋은 준거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기업은 사회적 해악이 예상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절제와 배려, 자유에 걸맞은 책임이 꼭 필요하다”는 주문을 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주문이며 동시에 경제지에 대한 주문으로 읽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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