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무의미한 표절 공방에 ‘매카시즘’까지, ‘저질 청문회’ ‘중계’만 한 방송 뉴스29일, 김상곤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사상검증의 장으로 전락했습니다. 교육 정책과 관련된 검증은 사라졌고 난데없은 ‘사회주의자’ 공방이 오갔습니다. 심지어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반성하라”고 몰아붙였는데 그 이유는 과거에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정 사안에 개인적인 소신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김 후보자를 무조건 ‘불온한 사회주의자’로 규정한 겁니다. ‘매카시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청문회 시작 전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장 밖 벽면에 김 후보자의 논문 표절 의혹 관련 유인물을 게시해 논란이 컸습니다. 여당은 “청문회에서 검증해야 할 내용을 기정사실인 양 밖 벽에 붙여놓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반발했습니다. 실제로 김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교육 개혁 및 입시 정책과 관련한 후보자의 견해를 듣기 어려웠습니다. 오로지 논문 표절과 사상 검증으로만 점철됐기 때문입니다. 방송사들도 일제히 이런 상황을 단지 중계하기 바빴습니다. JTBC만이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는데요. 과연 이런 보도들은 적절한 걸까요?
자유한국당의 일방적인 주장 중계하면 끝? 반론도 부실
김상곤 후보자 인사 청문회를 보도하는 방송사들의 태도는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습니다. 논문 표절이 확실하고 사회주의자라 장관이 될 수 없다고 공세를 가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여기에 김상곤 후보자의 답변이나 여당 의원의 반론을 붙여주기는 하지만 그 분량이 매우 적어 기계적 중립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29일, 김상곤 후보자 청문회 관련 보도는 KBS‧MBC‧SBS 1건, JTBC‧TV조선‧채널A 2건, MBN 3건인데요. 지상파 3사의 경우 1건의 보도에서 자유한국당의 표절 공세와 사상 검증을 우겨 넣어 사실상 ‘자유한국당 중계 방송’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MBC <후보 자질 놓고 사활 건 여야 ‘대리전’>(6/29 https://bit.ly/2u5jpnm)입니다. MBC는 청문회에 대해 “여야가 정면충돌”, “김 후보자의 논문표절 의혹과 이념편향 문제를 놓고 거친 표현과 고성이 오갔”다고 전했습니다. 김준형 기자는 먼저 청문회 전부터 대립을 촉발한 야당의 벽보 시위를 단순 공방 처리 했습니다. “야당이 노트북에는 피켓을, 청문회장 밖에는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한 벽보까지 붙이며 압박하자, 여당은 지나치다고 반발했”다는 겁니다. 이어서 김 후보자의 자료 제출이 미흡하다는 야당 주장을 받아쓰면서 “제목만 저희가 요구한 자료를 붙여놓고…'남자 이유미'가 아니냐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김세연 바른정당 의원 발언 장면을 보여줬습니다. 김 후보자를 국민의당 녹취 조작의 당사자인 이유미 씨와 비유한 모욕성 발언이지만 MBC는 반론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의원들이 김 후보자에 무려 1500여 건의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해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를 했다는 점, 그런 와중에도 김 후보자가 90%에 가까운 자료 제출 비율을 보였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표절 공방과 사상 검증 등 청문회 아닌 ‘여야 대리전’을 자유한국당 중심으로 중계한 MBC(6/29)
△ 표절 공방과 사상 검증 등 청문회 아닌 ‘여야 대리전’을 자유한국당 중심으로 중계한 MBC(6/29)
다음 내용은 “그대로 다 베꼈어요. 이게 번역서지 논문입니까? 출처 표시 없습니다”라며 표절 의혹을 제기한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 발언, “솔직하게 이야기하셔야 합니다.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반성하고 사과할 줄 알아야지!”라고 외친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 발언입니다. 놀랍게도 이 보도에서 청문회 시작 후 후보자에 질의를 하는 의원들은 모두 자유한국당 의원들뿐입니다. MBC는 여당 의원의 경우 “정책 능력을 검증해야 되는 오늘 이 자리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고”라며 ‘사상 검증’에 항의한 박경미 민주당 의원의 모습만 소개했습니다.
‘여야 대리전’이 정상적인 상황인가…‘중계 보도’는 사실상 편파 보도
얼핏 보기에 청문회 상황을 단순히 전달한 듯 보이는 MBC 보도는 사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일단 MBC는 보도 제목을 ‘여야 대리전’으로 뽑았는데요. 청문회는 공직 후보자의 정책 비전과 능력을 들어보고 검증하는 자리로서 후보자의 견해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공방을 펼치며 대리전을 벌이는 것은 청문회 취지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자유한국당의 벽보 시위와 사상 검증이 부적절한 이유도 후보자의 직무 검증과 동떨어진 신상 관련 공세로 청문회의 본질을 흐렸기 때문입니다.
MBC가 그러한 자유한국당의 행태를 그대로 중계한 것도 사실상의 편파 보도입니다. 청문회 장에서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표절 공세로 인해 격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김상곤 후보자는 ‘지금의 기준에서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다’면서도 ‘당시의 기준과 관행으로 보면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표절 의혹을 부인했는데요. 논란이 된 것은 1982년 석사 논문과 1992년 박사 논문입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석‧박사 논문 등 총 250여 곳을 표절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연구진실성위원회는 박사 논문의 경우 “한국어 문헌들과 관련하여 20군데, 일본어 문헌들과 관련하여 24군데에서 출처표시를 하지 않았다”면서 ‘연구부적절행위’로 판단했습니다. 박사 논문이 표절을 의미하는 ‘연구부정행위’가 아닌 ‘부적절행위’인 이유는 ‘완전하게 연속된 2개 이상의 문장을 동일하게 사용한 경우는 없다’, ‘참고문헌 란에는 해당 문헌을 언급하고 있다’, ‘1992년 무렵의 경영학 박사논문 작성 관례를 고려해야 한다’, ‘연구윤리 위반의 정도는 제반 사정에 비추어 경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제시했습니다. 이를 김 후보자와 여당 의원들이 설명했지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듣지 않았고 오로지 “지금 기준으로는 표절”이라 몰아붙인 겁니다.
‘현재 기준으로는 표절’이라는 주장에도 많은 반론이 제기됐습니다. 논문 표절에 관한 학계의 기준이 마련된 것은 황우석 사태가 터진 직후인 2006년이기 때문에 그 이전 논문들이 대부분 표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굳이 공직 후보자의 논문을 검증하고자 한다면 석․박사 논문이 아니라 교수가 된 이후의 최근 연구 실적을 봐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MBC를 비롯한 대부분의 방송사들은 이런 반론들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타사도 모두 ‘중계 보도’…JTBC만 비판적 시각 드러내
다른 방송사들도 MBC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TV조선‧채널A‧MBN은 표절 공세와 사상 검증을 나눠 각각 1건의 보도로 중계하는 열성을 보였습니다. TV조선 <시작부터 파행…‘표절’ 놓고 난타전>(6/29 https://bit.ly/2t7Mm28)은 “관행이 그랬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는 게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곽상도), “본인 연구실적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는 게 지금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이은재), “석사 논문이 잘못됐으면 표절이면 박사도 받을 수 없는 거고 박사도 가짜고 교수도 가짜고 모든 게 다 가짜예요”(이종배) 등 김 후보자가 표절을 했다고 몰아 붙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질의 모습을 연달아 보여줬습니다. 여당 측 반론은 누락했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공세에 “아니요. 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며 수세적으로 답하는 김 후보자 모습만 덧붙였습니다.
TV조선 <“이념 편향” VS "아니다" 고성>(6/29 https://bit.ly/2t7mDqD)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사상 검증’만 따로 모아 중계했습니다. 리포트는 “김상곤 후보자가 사이버노동대학 총장 시절 학생들에게 사회주의적 선동구호를 가르쳤다”, “과거 국보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에 앞장섰다”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사상 검증을 나열했고 “근거없는 헤이트 스피치(증오 발언)가 난무하는 데에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고”라고 항의한 박경미 민주당 의원 모습을 덧붙였습니다.
△ 자유한국당의 ‘사상 검증’ 따로 1건으로 조명한 TV조선(6/29)
이렇게 특정 정당의 공세를 보여주기만 하는 보도 경향은 사실상 바로 그 정당의 목소리 뒤에 숨어 ‘사상 검증’을 옹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언론이라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고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나마 JTBC가 그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JTBC <고성 오간 ‘벽보 시위’ 청문회>(6/29 https://bit.ly/2twg3wH)는 “청문회장 바깥에도 야당이 붙여놓은 후보자 비판 벽보 때문에 소동이 벌어졌”다면서 “정작 청문회의 질의응답은 뒷전인 듯한 분위기”라 지적했습니다. JTBC는 청문회 내용을 전달한 <김상곤 청문회 내내 ‘사상 검증’ 공방>(6/29 https://bit.ly/2tqXklO)에서도 중립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JTBC는 사상 검증 관련 공방에서 여야 의원 발언의 기계적 중립을 맞췄고 표절 공방의 경우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 검증했지만 표절은 아니라고 말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당시 기준과 관행에 따라 했다는 것” 등 아예 김 후보자 입장만 전달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질의 내용이 이미 많이 알려져 있고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만큼, 굳이 구체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6월 29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판>,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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