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탄핵 찬반 집회를 보는 보수 언론의 시선

지옥에서도 양비론을 펼칠까
등록 2017.03.06 16:39
조회 400

모든 양비론이 비겁하거나 음험한 논리는 아닐 터이다. 조선시대 영조는 탕평책을 펴기 전 양비론을 구사했고, 학술 논문에서 선행 연구들을 비판하면서 논지를 세우는 것도 일종의 양비론에 속한다. 양비론에서는 적어도 비판 대상이 되는 사안이 동등해야 하고 납득할만한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시비비 불문곡직의 사이비 논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탄핵 찬반이 진보-보수라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앞두고 보수 언론들이 펼치는 논조가 바로 그렇다. 3.1절을 전후해 벌어진 촛불집회와 친박 집회에 대해 “극단적 대립” “두 쪽 난 사회” “파괴적 정면충돌” 등등 자극적 용어를 써서 대립과 분열을 한껏 부각한 다음 양자를 싸잡아 비판한다. 이를 두고 70년 전 해방 직후 좌우 대립을 연상하며(조선일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나라를 두 동강 낼 수준으로 심화되고 있다”(중앙일보)고 표현한다.

 

무엇보다 우선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찬반 의견을 “좌-우” “보수-진보”로 환원시키는 논법이 놀랍다. 촛불집회에 참가하거나 탄핵을 요구하는 이들이 어찌하여 좌파, 진보세력인가? 마찬가지로 태극기에 성조기를 겹쳐 흔들며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이 이 나라의 보수를 대변하는가? 여러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탄핵 찬반 의견 분포 ‘약 8대 2’를 좌-우 또는 보-혁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99호-시시비비-01-fin.jpg

 

극단적 대립을 강조하고 충돌을 우려하며 양측의 자제, 집회 중단을 요구하는 논조는 더더욱 그렇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촛불이 보여준 평화적 시위문화를 칭찬하던 언론들이 아니던가? 그러다 이른바 ‘태극기 집회’가 기세를 올리면서 위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중동은 이들의 극렬한 언행을 따로 꾸짖지 않고 꼭 촛불집회와 함께 싸잡아 비판한다. 촛불집회는 여전히 평화적이고 문화적인데도 말이다. 그래도 양비론을 펼치려니 ‘허구적 대립’ 기법을 쓴다.

 

친박 집회 주최 측의 공식적인 언행과 촛불집회 참가자의 퍼포먼스를 대비시킨다. 연단에 올라 테러 위협을 가하고 내란을 선동한 언행과 자신의 결의를 혈서로 표현한 행위를 등치 한다. 헌법재판관의 신상을 털고 특검의 자택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몰려간 망동을 ‘18원 후원금’을 보내는 정치적 의사표현과 같다고 본다. 비판의 대상이 된 사례가 동등하지 않으니 허구적 대립을 내세운 음험한 양비론이 된다. 정녕 걱정이 된다면 친박집회 측의 도발적 언행을 엄중히 비판하고 촛불 집회 측은 여기에 자극받아 휘둘리지 말라고 충고 또는 경고하면 되지, 둘 다 집회를 그만두라고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허구의 대립, 동등하지 않은 대비

 

집회 중단, 그것이 이번 양비론의 대안이다. 한때 물밑으로 타진됐던 대통령 하야와 탄핵심판 각하가 친박 측 태도로 보아 물 건너간 듯하자 이제 기다릴 건 헌재 결정밖에 없다. 여기에는 집회가 계속되면 헌법재판관들이 압박을 받을 거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헌법상 보장된 법관의 독립적 신분과 양심을 저해하는 행위는 마땅히 제한되어야 하지만, 재판에 대해 의사를 표명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 문제는 법관의 신상을 털고 위협을 가하는 친박 측의 행위에 있는 것이다.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문제도 마찬가지다. 탄핵 찬반 여부를 떠나 재판 절차에 하자가 없는 한 결과에 대한 승복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마녀 재판하듯이 거두절미하고 따를 거냐 말 거냐고 몰아붙이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승복 여부가 이슈가 되는 것은 역시 친박단체 측의 공공연한 불복 발언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타당한 질문은 “심판 절차가 공정했다고 보느냐 아니냐”인 것이다. 친박 측은 이미 답했다. 불공정하니 각하해야 하고 아니면 따르지 않겠다고. 그러니 화살은 박 대통령과 친박에게 돌려야 한다. 

 

99ho-sisi-02.jpg

 

양비론이여 영원하라?

 

친박 집단의 극성과 상관없이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심판과정에서 정치적 보수세력은 스스로 궤멸을 이야기할 정도로 지리멸렬했다. 이에 대한 퇴행적 반동이 태극기를 희화화하며 거리를 휩쓰는 친박 극우세력인지도 모른다. 조중동이 진정 보수에서 정체성을 찾으려면 이들과는 단호히 결별해야 하는데 좀 어려울 것 같다. 박근혜 정부 출범 4년을 맞는 날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두 보수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모두 보수개혁을 외면하고 있다는 논지인데, ‘탄핵 기각’을 당론으로 정하고 소속 의원들이 친박집회에 열성적으로 나서는 자유한국당이야 그렇다지만 친박세력의 세 결집에 눌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는 바른 정당은 억울할 법도 하겠다. 

 

시비를 가려야 할 때나 잘못의 경중을 따져야 할 때 기계적 중립을 취하는 것은 오히려 잘못을 용인하는 불공정한 태도다. 진실과 거짓, 가짜(fake)와 사실(fact) 사이에는 양비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지 않으면 지옥에 가서도 중얼거릴지 모른다. “악마도 문제지만 하느님도 문제라고…….”  

 

엄주웅(민언련 정책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