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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만 바뀌고 더욱 악화된 ‘디지털 성폭력’, 언론은 무엇을 했나
등록 2020.05.0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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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일 텔레그램 N번방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수위를 강화하는 내용의 ‘N번방 방지법’들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불법 성적 촬영물을 배포․판매한 행위만 처벌 했으나,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에는 소지·구입·저장한 사람은 물론 시청한 사람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한 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강요한 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이외에도 아동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은 아동청소년 대상 불법 성적 촬영물 배포 시 신상정보 등록 대상에 포함했으며, 형법 개정안은 성폭력 범죄 모의 시 예비·음모죄로 처벌하는 내용을 신설했습니다. N번방 참여자 전원의 신상공개와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등 수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항의한 결과입니다.

 

의미 있는 일보 진전이지만, 사실 너무 늦었고,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다크웹, 그리고 N번방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공간 내 성폭력은 무대만 바뀐 채 반복되었고, 그사이 수많은 피해자가 고통을 받았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성폭력과 디지털 성착취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제도의 개선이 이처럼 더디게 이루어진 배경에 언론이 있다고 봤습니다. 언론이 디지털 성착취를 주요한 의제로 부각하지도 않았으며, 흥미위주의 언론보도에 그치는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민언련은 그간 벌어진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서 우리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살펴봤습니다. 모니터 대상은 2015년 1월 1일부터 2020년 1월 1일까지 7개 일간지(경향신문‧국민일보‧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국일보‧한겨레)와 8개 방송사(KBS‧MBC‧SBS‧TV조선‧JTBC‧MBN‧채널A‧ YTN), 뉴스통신사 연합뉴스에 실린 디지털 성범죄 관련 보도입니다.

 

이들 언론이 이 시기에 디지털 성폭력을 주요하고 시급한 의제로 다뤄서 깊이 있고 집요하게 다루면서 문제해결의 디딤돌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무관심하고 부실한 보도로 걸림돌이 되었을까요?

 

1. 불법 촬영물 유포의 시초격 ‘소라넷’…폐지에만 17년 걸려

 

소라넷이 폐지되기까지

불법 촬영물 온라인 유통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소라넷은 1999년에 시작돼 2016년 4월에 폐쇄됐습니다. 회원이 무려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소라넷은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고 성범죄를 모의한 불법 인터넷 사이트였습니다. 소라넷 회원들은 길거리·화장실·샤워실 등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찍어 유포‧소비하거나, 연인 간 합의로 또는 몰래 찍은 성관계 영상을 ‘국산 야동’이라며 제작‧소비했습니다. 모텔에서 술 취한 여성의 사진을 찍어 올려 윤간을 유도하는 성범죄도 자행됐습니다.

 

2015년 여성차별·성폭력에 적극적으로 맞선 ‘메갈리아’는 소라넷의 불법 성적 촬영물 유포와 성범죄 모의를 폭로하며 ‘소라넷 폐쇄’ 운동을 벌였고,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의 전신인 ‘소라넷 아웃 프로젝트’는 소라넷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불법행위를 수사당국에 고발했습니다. 2015년 9월 온라인 행동 네트워크 ‘아바즈’에 게재된 ‘불법 성인사이트 소라넷을 폐쇄해주세요’ 서명운동에는 시민 9만여 명이 동참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청원을 언급하며 강신명 경찰청장에 소라넷 폐지를 요구했습니다. SBS는 〈그것이 알고 싶다〉 ‘새벽의 위험한 초대’(2015.12.26)에서 소라넷의 실상을 파헤쳤습니다. ‘해외에 서버가 있어서 수사가 어렵다’던 경찰은 이후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고, 소라넷은 운영된 지 17년 만에 폐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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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행동 네트워크 ‘아바즈’에 게재된 ‘불법 성인사이트 소라넷을 폐쇄해주세요’ 서명운동에는 시민 9만여 명이 동참했​다(2015.9)


‘디지털 성범죄’의 개념조차 없던 언론…소라넷을 ‘음란 사이트’로 치부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인 소라넷이 여성들의 분노와 항의로 어렵사리 폐쇄되는 동안 언론은 ‘소라넷’을 그다지 중요한 의제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2015년 1월1일부터 2016년 12월 31일까지 모니터 대상 16개 매체의 ‘소라넷’ 키워드가 들어간 네이버 기사는 382건이었습니다. 약 2년의 기간에 비하면 기사량이 적은 편입니다.

 

당시 언론은 ‘디저털 성폭력’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소라넷은 그저 흔한 ‘음란 사이트’로 정도로 치부되었습니다. 동아일보 <국내 최대 음란 사이트 ‘소라넷’ 해외 핵심 서버 폐쇄>(2016/4/7), 한겨레 <몰카에서 성폭행 모의까지…음란사이트 소라넷 폐쇄 추진>(2015/11/26), 연합뉴스 <‘아동 음란물 제작‧배포’ 소라넷 회원 불법행위도 수사>(2016/4/11), MBN <“음란사이트 소탕”…소라넷 카페 운영자 등 검거>(2015/12/31) 등 대부분의 언론이 소라넷을 ‘음란 사이트’라고 표현했습니다. 명백한 성폭력인 디지털 성범죄를 ‘야한 동영상’쯤으로 치부한 것입니다. 소라넷이 불법 성착취 촬영물을 유포하고 강간 모의까지 한 점을 보면, 이런 기사들은 언론의 낮은 성인지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당시에도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여성단체의 지적이 있었으나, 여전히 가해자의 개인신상정보에 집중한 보도가 나왔습니다. 조선일보 <음란물 포털 ‘소라넷’ 창립자는 서울대 출신>(16/6/14) 동아일보 <소라넷 창립자는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 부부>(2016/6/14 김호경 기자) YTN <음란 포털 소라넷 창립자 정체 “서울대 출신 부부”>(2016/6/13)에서 소라넷 핵심 운영자가 ‘서울대 출신 부부’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반면, 소라넷에 가입한 100만 명의 가해자를 문제 삼는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 불법 촬영물을 돌려본 수많은 회원은 ‘가해자’로 호명되지 않았습니다. 수사당국도 소라넷의 불법 촬영물 시청자들을 적극적으로 색출하지 않았습니다.

 

‘소라넷’ 가해자에 감정이입…2차가해 보도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에 감정이입하며 2차 가해를 한 기사도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소라넷은 어떻게 17년을 살아남았나>(2016/4/8 삭제)에서 소라넷 폐쇄를 앞두고 가해자인 가상의 운영자 시점에서 쓴 기사를 보도했는데, 다음은 해당 기사의 일부 내용입니다.

 

‘식구’끼리니까 하소연 좀 해도 되지? 요즘 내가 참 힘들다. 알 사람들은 다 알거야. 최근 우리 사이트(소라넷)가 폐쇄된 거. ……(중략) 리벤지 포르노, 강간 모의, 집단 성행위. 이 단어를 느꼈을 때 움찔했는가 아니면 친근함이 느껴졌나.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 고객임이 분명하다. 소라넷 운영자 A다. 아 부끄러워마라.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다. (중략) 관음증, 일탈, 폭력 등 익명성 뒤에서 우리 회원들은 쌓아둔 것을 마음껏 발산하지 (중략) 이번 사태로 정말 소라넷이 절멸될지도 몰라. 그러나 언젠가 당신들의 은밀한 욕망이 우릴 불러낼걸? 믿기 힘들다고? ……(중략) 내가 왜 이렇게 집착하느냐.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들 중 많은 사람이 바로 나의 사용자들이자 고객들이기 때문이지….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연합뉴스는 소라넷에서 벌어진 디지털 성폭력의 심각성을 은폐하고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면서 소라넷 100만 이용자에게 “부끄러워마라. 당신은 이상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해당 기사는 논란 직후 삭제됐으나, 당시 언론인의 성인지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기사입니다.

 

동아일보는 <지금 SNS에서는/소라넷 폐쇄, 음란물 비상구는?>(2016/4/22 김호경 기자)에서 소라넷 폐쇄를 두고 위와 비슷한 기사를 썼습니다. 다음은 일부 내용입니다

 

설마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강신명 경찰청장이 국회에서 “소라넷 사이트의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느낀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중략) (소라넷은) 국내 인터넷 음란물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음란물계의 ‘네이버’와 같은 곳이죠 (중략) 아무런 공지도 없이 사이트가 열리지 않자 소라넷 회원들은 당황했습니다. 경찰의 서버 압수를 알지 못했던 일부 회원들은 트위터를 통해 운영진을 겨냥해 ‘회원들이 우습게 보이냐’며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경찰이 서버를 압수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에는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죠 (중략) P.S. 요즘 카카오톡으로 음란 사진이나 영상을 주고받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보는 것은 괜찮아도 다른 곳에 퍼나르면 불법입니다.

 

이 기사는 소라넷의 불법 성적 촬영물을 ‘음란물’로 가볍게 소비하며 또 다른 음란물 공유사이트가 나올 것이라고 암시했습니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쓴 기사이며 명백한 2차 가해입니다. 기자의 성인지 수준은 소라넷 회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언론의 수준이 이러하니 수사당국도 소라넷 회원들을 처벌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처벌받지 않은 소라넷 후예들은 동아일보 기자의 말대로 ‘비상구’를 찾았습니다. 바로 ‘웹하드’입니다.

 

2. 처벌받지 않은 소라넷 후예들이 ‘웹하드 카르텔’ 키워


‘웹하드 카르텔’은 무엇?

폐쇄된 소라넷의 뒤를 이어 불법 촬영물의 유통 공간으로 ‘웹하드’가 부상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파일과 영상을 공유하는 웹하드에선 소라넷과 비슷하게 화장실·탈의실·길거리 등 공공장소를 이용하는 일반인을 도촬한 사진과 성관계를 몰래 찍은 촬영물들이 유포됐습니다. 피해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유작’이라는 이름을 붙었습니다. 해외에 서버를 둔 소라넷과 다르게 국내에 서버를 두고 합법적으로 운영 중인 ‘웹하드’에서 버젓이 범죄 촬영물이 유통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는 웹하드 회사와 불법 촬영물을 필터링하고 삭제해주는 업체의 실소유주가 같다는 이른바 ‘웹하드 카르텔’이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2017년부터 웹하드 카르텔을 추적해온 한국사이버성폭력센터(한사성) 2018년 2월 경찰에 ‘웹하드 카르텔’을 고발하며 공론화에 나섰습니다. 이어 SBS <그것이 알고싶다> ‘웹하드 불법 동영상의 진실’(2018.7.28.)에서 웹하드 카르텔의 중심에 있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을 고발했습니다. 방송에 따르면, 양 씨는 불법 촬영물을 올리는 사람들을 ‘헤비 업로더’라고 부르며 이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했습니다. 그러면서 양 씨는 불법촬영물을 삭제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디지털 장의사’ 업체와 불법 촬영물을 필터링하는 업체에 은밀히 관여했습니다. 영상을 올리는 사람도 올라온 영상을 삭제하겠다는 사람도 같았던 것입니다. 이런 불법 촬영물을 돈을 주고 산 수 만명의 남성들에 의해 양 씨는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양 씨가 실소유한 웹하드 1위 업체인의 2017년 한해 매출은 210억 원, 영업이익률 25%입니다. SBS 보도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 수사를 요구한다>(2018/7/29)라는 청원이 올라와 20만 여명이 참여했고, 경찰청장이 ‘웹하드 카르텔’을 엄정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2018년 10월 30일, ‘셜록’과 ‘뉴스타파가 설록과 함께 양진호 씨가 자신의 직원의 뺨을 때리거나 생닭을 칼로 베라고 지시했다는 등의 일탈 행위를 폭로하면서 양 씨는 다시 화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양진호의 ‘엽기 행각’에 주목한 언론들

문제는 언론이 양진호 씨 개인의 엽기적인 행동과 갑질에만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이번엔 ‘닭 잡는 워크숍’…양진호에 경찰 수사팀 42명 투입>(2018/11/1), 서울경제 <양궁으로 닭쏴라 폭행 논란 양진호 워크숍셔 엽기행각>(2018/11/1), YTN <“사람을 물건처럼”...양진호 회장, 소시오패스 가능성?>(2018/11/1), KBS <물컵 던지고 성추행까지…양진호 ‘갑질’ 일삼아>(2018/12/5) 등 많은 언론이 ‘웹하드 카르텔’이라는 집단적인 디지털 성범죄보단 양진호의 폭력에 주목했습니다.

 

2018년 7월 28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웹하드 카르텔’의 심각성을 방송한 이후부터 뉴스타파의 양진호 엽기행각 관련 폭로 보도가 나오기 직전인 10월 29일까지 모니터 대상 매체에서 <그것이 알고싶다>의 의제를 얼마나 확산했는지 살펴보면 형편없습니다. 일단 이 기간에 <그것이 알고싶다>에 대한 후속 기사는 고작 7건 정도입니다. ‘웹하드 카르텔’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31건, ‘웹하드 불법촬영물’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로 넓혀 봐도 105건뿐이었습니다.

 

반면 뉴스타파와 셜록의 폭로 이후인 2018년 10월 30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 ‘양진호’씨가 검색된 기사는 2,500여건에 이릅니다. 언론이 어떤 이슈에 반응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언론, 양진호가 아니라 ‘웹하드 카르텔’ 문제 해결에 주목했어야

여성단체들은 본질은 웹하드 카르텔이라며 언론의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다시함께상담센터 등은 2018년 11월 6일 기자회견을 열어 “양진호 개인의 도덕성 문제만을 증폭하고 웹하드 카르텔에 대한 내용은 축소하면서 필터링 기술조치에 대한 불법행위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며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신지예 당시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위원장은 이날 회견에서 “양진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핵심은 웹하드 카르텔이고, 거대한 웹하드 카르텔에 비하면 양진호(의 갑질)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3.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성착취 영상물 공유, 다크웹 사이트

 

다크웹 사이트 사건, 사실상 언론은 침묵

2018년 3월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 ‘웰 컴투 비디오’를 운영한 한국인 손정우 씨가 검찰에 검거됐습니다. ‘웰 컴투 비디오’는 특정한 프로그램으로만 접속 가능한 ‘다크웹’ 기반 사이트로, 이곳에서 비밀스럽게 아동 성착취 영상물이 유통됐습니다. 120만 여명의 이용자와 4천여 명의 유료 회원이 아동 성적 학대 영상 25만개를 돌려봤습니다. 사건을 수사한 미국 연방 검사 제시 리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사악한 형태의 아동 성착취 영상 사이트”였다며 수사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아동 성착취물 영상을 구매해 본 영국인은 22년형, 미국인은 15년형 등 무거운 처벌을 받았으나, 정작 이 사이트를 운영한 한국인 손 씨는 징역 1년 6개월에 그쳤습니다. 또, 2018년 3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국내 이용자 235명을 검거했으나 이들 중 일부는 ‘무죄’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웰 컴투 비디오’ 사건이 불거졌던 2018년 당시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2018년 1월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 모니터 대상 매체에서 ‘웰 컴투 비디오’ 손 씨 관련 ‘다크웹’이 언급된 네이버 기사는 10여 건에 불과했습니다. 다크웹에서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한 한국인이 붙잡혔다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최근 ‘N번방 사건’ 이슈가 터지고, 운영자인 손 씨의 출소가 임박하자 언론의 관심이 높아졌으나, 가해자 검거 당시에는 주요 이슈가 아니었습니다.

 

4. 불법촬영 영상물 편파 수사를 규탄한 ‘혜화역 시위’

 

인터넷 다음 카페에 개설된 ‘불편한 용기’는 2018년 5월 19일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열었습니다. 당시 한 대학의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누드모델의 사진을 찍은 뒤 그의 외모를 품평한 게시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에 올라온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해당 사건은 언론에 주목을 받았고, 경찰은 수사 개시 직후 불법 촬영물을 유포한 안 모씨를 12일 만에 구속했습니다. 안 씨는 여성이었습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인권침해성 사진과 글이 게시되는 것은 모두 부적절합니다. 그러나 평소 많은 여성이 ‘불법 촬영물’로 고통 받을 때 언론과 사법당국이 보여준 행태는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소라넷’이 폐지되는데 17년씩이나 걸렸다는 것은 접어두고라도, 평소 남초 커뮤니티에 불법 도촬·촬영물이 수시로 올라왔지만 그간 경찰은 이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응해왔고 언론은 이런 사건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혜화역 집회는 대상 디지털 성폭력 범죄에도 강력히 수사해줄 것을 촉구하며 “(불법촬영물) 생산자, 유포자, 소비자뿐 아니라 웹하드의 유착관계를 철저히 조사하고 수사하여 처벌하라” “우리는 공중화장실에서, 탈의실, 지하철, 길거리, 집에서조차 불법촬영 공포를 느끼며 살아왔다. 여성의 모든 것을 성적 도구로 소비하는 한국 남성들의 미개한 행태에 분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들불처럼 번진’ 이 시위는 같은 해 12월 22일을 마지막으로 총 6차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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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혜화역 시위 포스터

 

‘과격발언 논란’에 집중한 언론

그렇다면 혜화역 집회에 대해서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요? 보도량부터 살펴보면, 혜화역 첫 시위(5/19)부터 마지막 시위(12/22)까지 ‘혜화역 시위’ 키워드가 포함된 모니터 대상 네이버 기사는 총 457건입니다.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만큼 일정 수준의 보도량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혜화역 시위의 본질보단 곁가지에 집중했습니다. 시위 참가자가 여성 정책에 소극적인 정부를 비판하며 ‘문재인 재기해’를 구호로 외쳤는데, 언론은 이 ‘재기해’라는 단어에 주목한 것입니다. ‘재기해’는 2013년 남성연대 대표로 여성혐오 논란을 빚은 고 성재기씨가 마포대교에서 투신한 것을 조롱하는 은어입니다. 결국, 혜화역 시위는 ‘대통령 비하’ ‘남혐 논란’ ‘고인 모독’ 논란 등으로 번졌습니다.

 

중앙일보 <시위 장소 옮긴 ‘혜화역 지보히’…워마드 관련설, 영향 미칠까?>(2018/8/3) <“문재인 재기해!” 구호 외친 혜화역 시위…일부 참석자들 “너무 나갔다”>(2018/7/7) 등에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이라는 본질에 벗어난 일부 과격 발언에 집중했습니다.

 

이 같은 언론보도가 디지털 성범죄에 극심한 피해를 느끼는 여성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소모적 논쟁만 키운다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당시 ‘불편한 용기’는 <언론의 왜곡된 보도에 따른 불편한 용기 운영진의 입장문>(2018/7/11) 입장문을 내어 “언론사들은 ‘불편한 용기’측의 의견을 각 언론사의 입맛대로 재단하고 왜곡하며, 이를 날조하여 보도하고 있다”며 “옆에서 죽어가는 자매들을 바라보며 무력감을 느껴온 여성들은 이제야 겨우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 목소리마저 입막음하려는 언론의 억압에 통탄한다”고 밝혔습니다. 언론이 본질과 동떨어진 자극적 장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집회의 본 취지는 희석되고 소모적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5. 추적단 불꽃과 한겨레의 ‘N번방 사건’ 보도

 

텔레그램 N번방은 제대로 다뤄줬을까?

‘디지털 성폭력’은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다크웹 사이트를 거쳐 ‘N번방 사건’으로 진화했습니다. 이 사건도 정부나 언론이 아니라 기자를 지망하는 여성 대학생들에 의해 처음으로 폭로됐습니다. 2019년 9월 2일 뉴스통신진흥회가 주최한 ‘제1화 탐사르포 취재물 공모전’에 공모한 대학생 기자단 ‘추척단 불꽃’의 취재물 <미성년자 음란물 파나요? 텔래그램 불법 활개>이 우수작으로 선정된 것입니다.

 

지금은 ‘N번방 사건’이 대한민국 초유의 사건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으나, 당시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진 언론은 적었습니다. 모니터 대상 매체 중에서 애초 추적단 불꽃의 수상 소식을 전한 기사는 연합뉴스의 스트레이트 2건 뿐이었습니다. 추적단 불꽃의 취재물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기성 언론사 중에서는 한겨레가 11월에 N번방 관련 보도를 내놨습니다. 한겨레가 <단독/ 청소년 ‘텔레그램 비밀방’에 불법 성착취 영상 활개>(2019/11/10)가 10대가 텔레그램에 비밀 채팅방을 통해 2만여 개의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을 유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N번방 사건’ 관련 첫 보도를 낸 것입니다. 보도 이틀 만에 경찰은 용의자를 체포했고, 관련 스트레이트 기사가 일부 매체에 보도됐습니다. 이후 11월 25일 한겨레는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연속 보도를 통해 보다 자세히 ‘N번방’ 사건을 다뤘습니다. 이후 SBS <단독/텔레그램 보안 믿고 음란대화방...운영자잡혔다>(2019/12/13), 2020년 1월 17일 SBS <궁금한 이야기Y> 등 일부 매체에서 관련 보도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N번방 사태를 이슈화한 것은 언론이라기보다는 시민이었습니다. 2020년 1월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성착취 사건은 ‘n번방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 수사를 청원합니다>라는 게시물이 올라와, 1월 24일 20만명 동의를 넘어섰습니다. 또한, 1월 15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 올라와 2월 10일까지 10만명을 넘어서는 등 공론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이번 사건에 대해 분노한 국민의 뜻이 국민청원으로 모아지면서 언론의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2020년 2월 20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가 관련 내용을 방송했고, 2020년 3월 국민일보가 <N번방 추적기>를 연재하면서 ‘N번방 사건’ 공론화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이렇게 ‘N번방’이 언급된 청와대 국민 청원이 올라온 1월 2일부터 조주빈 신상공개 전인 3월 22일까지 ‘N번방’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는 370건 수준이었습니다. 3월 23일부터 5월 1일까지 모니터 대상 매체 중 ‘N번방’ 키워드가 포함된 네이버 기사는 약 6,900건으로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민언련은 '2020 총선미디어감시연대'의 간사 단체로 선거 및 코로나19 보도에 집중하느라 2020년 1월부터 4월까지 벌어진 ‘N번방 사건’과 관련된 보도를 깊이있게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소라넷’부터 ‘N번방’까지 수법만 바뀐 채 계속 악화된 디지털 성착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언론의 역할은 그 어느 사안보다 중요합니다. 언론은 이번 사안에 대해서 더 이상 무관심하거나, 흥미위주의 무개념 보도를 내거나, 수박 겉핥기 식의 보도를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조주빈 검거 이후 많은 보도들이 조주빈의 악마화를 통한 가해자 서사로 그칠 뿐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접근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민언련은 ‘N번방 사건’ 관련 보도의 문제점을 신문, 방송, 종편, 유튜브 등을 종합적으로 모니터하여 발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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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5/1/1~2020/1/1 종합일간지(국민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방송사(KBS, MBC, SBS, TV조선, JTBC, MBN, 채널A, 보도전문채널 YTN), 뉴스통신사 연합뉴스의 지면, 총 16개 메체(네이버 검색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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