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경제학회 보도’, 누구의 주장을 인용했나
등록 2019.02.18 18:06
조회 479

2019년 2월 14일 한국경제학회가 주관하는 경제학 공동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선성장 후분배론’의 대표주자인 ‘서강학파’로 분류되는 일부 경제학 교수들은 여러 경제지표를 제시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습니다. 발표 후 패널 토론에서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 중 도입된 것이라고는 최저임금을 제외하고는 없으며, 1년 데이터로는 정책효과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반대 토론도 있었습니다.

언론들은 이 내용을 어떻게 보도하였을까요?

 

일제히 일부 학자들 주장에 힘 실은 언론들

학술대회 직후인 15일, 모니터 대상인 중앙일간지 5곳과 경제지 2곳에서는 모두 이번 경제학회 관련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관련 내용이 언급된 사설까지 포함하면 총 13건이었습니다.

 

신문사

중합일간지

경제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매일경제

한국경제

스트레이트

1

1

1

1

1

2

3

사설

-

-

1

1

-

1

-

총보도량

1

1

2

2

1

3

3

△ 한국경제학회 관련 보도량(2/15) ⓒ민주언론시민연합

 

보도 제목을 보면 보도에 신문사의 주관이 반영됐음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각각 <소득주도성장론 효과 없어 판단 아직 일러 학자들 이견 팽팽>(2/15, 유희곤 기자), <“효과 안 보인다”-“실패 단정 근거부족소주성 실증분석 놓고 경제학계 충돌>(2/15, 방준호 기자)에서 양측 입장을 나열한 중립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 반면, 나머지 언론들은 모두 소득주도성장이 효과 없다고 발표한 교수들의 주장만을 부각하는 보도 제목을 내놓았습니다. 다음은 각 신문들의 관련 보도(사설 제외) 제목입니다.

 

신문사

보도제목

중앙

일간지

경향신문

소득주도성장론 효과 없어 판단 아직 일러 학자들 이견 팽팽

동아일보

“소득주도성장 이후 GDP-투자-고용 증가율 동반 하락”

조선일보

경제학회 소주성 1년, GDP·투자·고용 모두 역주행

중앙일보

경제학회 학술대회 “소득주도성장 효과 미미임금 올라도 GDP·투자·고용 모두 감소”

한겨레

“효과 안 보인다”-“실패 단정 근거부족” 소주성 실증분석 놓고 경제학계 충돌

경제지

매일경제

성장잠재력 깎아먹은 소득주도성장 … 분배효과도 회의적

소주성 부메랑 … GDP 투자 고용 역주행

한국경제

“소주성, 성장은 물론 분배효과도 없었다”

“소주성, 소득은 못 올리고 GDP·투자· 고용·생산성에 모두 악영향”

“올해 경제 경착륙 가능성 높아져 재정만으론 역부족, 세율 낮춰야”

△ 한국경제학회 관련 각 언론사의 보도 제목(2/15) ⓒ민주언론시민연합

 

경향‧한겨레를 제외한 신문들은 모두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비판한 입장을 따옴표 처리해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제목의 경향이 판이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사 내용은 대동소이하다는 것입니다. 아예 반대 토론 내용을 언급하지 않은 동아일보를 제외하면, 분량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했다고 주장한 교수들의 발표 내용을 인용한 뒤, 다른 교수들의 반론도 덧붙였습니다. 즉, 똑같은 내용을 보도하고도 어떤 언론사는 그것을 ‘경제학자들 사이의 의견대립’으로 보도하고, 어떤 언론사는 ‘경제학자들의 소득주도성장 실패 결론’으로 보도한 것입니다. 당연히 ‘학자 간 이견’을 ‘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패’라는 제목으로 전한 언론사들은 왜곡의 여지가 큽니다.

 

‘학회 발표자’의 주장이 ‘학회의 주장’으로 둔갑

언론사가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사설로 가면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경제학회 관련 보도 내용을 인용하여 사설을 낸 신문사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였습니다. 황당하게도 조선일보와 매일경제는 학계 일부 학자들의 주장을 ‘학회의 입장’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설/3040대 일자리 감소 29만명, 경제 주력 무너진다는 뜻>(2/15)에서 “한국경제학회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 시작된 후 성장률과 투자, 고용이 모두 감소했다고 분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매일경제도 <사설/더 늦기 전에 정책방향 전환하라는 경제학자들의 고언>(2/15)에서 “한국경제학회와 한국금융학회는 14~15일 진행하는 ‘2019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소득주도성장 실험에 대한 실증적 평가를 내놓았다. 평가는 무척 냉정하다”고 썼습니다.

중앙일보 역시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해야 한다는 사설을 냈고 사설에서 다른 경제학자의 반론 내용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국경제학회가 개최한 공동학술대회에서 나온 실증 분석”이라고 써 최소한의 양심을 보여줬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의 이준구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요즈음 경제상황에 비추어 볼 때 소득주도성장이 호의적인 평가를 받기 어려운 것은 사실” 이라면서도, “문제는 그것이 한국의 경제학자 집단을 대표하는 견해인가라는 데 있습니다(중략)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기사를 읽으면 그것이 한국경제학회가 내린 결론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여 언론들의 보도 태도를 강하게 질타하였습니다. 비록 이준구 교수는 조선일보만 언급하였지만, 위에서 보듯 일부 경제학자의 발표를 경제학계 전체의 통일된 주장인 양 보도한 다른 언론들도 이러한 비판을 면키 어렵습니다.

 

언론사들의 ‘경제학자 골라먹기’ 보도는 명백한 왜곡

학문적 업적은 기나긴 토론과 검증을 거쳐 누적되는 것입니다. 현재는 널리 사실로 인정되는 상대성 이론도 측정 기술의 발달로 미세한 상대론적 시간지연이나 중력으로 인한 시공간 왜곡 효과가 실제로 관측되는 과정을 거쳐 정립된 것입니다. 실제로 이론이 맞는지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과학계도 이렇습니다.

하물며, 경제학 연구에서 인간 사회의 복잡, 다양한 요인들이 연구결과에 개입하기 때문에 일단 다른 요인들을 없는 것으로 가정하거나 효과를 제거하고 설명한다는 의미의 ‘ceteris paribus’, 즉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이라는 오랜 격언이 말해주듯 명확한 관측이라고 할 만한 것이 극히 적은 경제학 분야에서는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크게 갈리기 마련입니다.

한국경제학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공동학술대회 일정을 보면, 이 학술대회에서 발표되는 논문은 400여 편에 달합니다. 이 중에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보다 적은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과 황선웅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 등의 논문도 있습니다. 한겨레 <경기 변화·구조적 요인 빼면최저임금 인상, 고용 영향은?>(2019/2/15, 방준호 기자)에 따르면, 오상봉 연구위원은 “(이전 년도는 물론)2018년 최저임금 16.4%인상도 전체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고, 황선웅 교수는 최저임금이 고용을 감소시켰다는 김대일․이정민 서울대 교수의 연구에 대해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며 고용이 급감하는 상황을 감안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최저임금의 효과에 관해 경제학계의 의견이 뜨겁게 부딪히고 있는 상황인데도, 마치 이미 소득주도성장 폐기가 경제학계의 총의인 것처럼 포장하는 언론들의 보도는 명백한 왜곡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2월 15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경제 보도(신문에 게재된 보도에 한함), 한겨레(온라인)

 

monitor_20190218_63 .hwp


<끝>
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 정리 공시형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