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탄핵 국면 이후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

나쁜 언론은 나쁜 정부보다 더 나쁘다
등록 2016.12.2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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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싸잡아 몰아붙일 수는 없겠다. 이른바 ‘촛불 혁명’에 제도언론의 역할이 적지 않았음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최순실 사건 보도를 선도한 TV조선·한겨레·JTBC의 취재진은 한해를 결산하는 각종 언론상을 석권할 기세다. 특히 보수 성향의 종합편성 채널들의 적극적인 보도는 진보 쪽으로부터 “탄핵 방아쇠가 종편이었다는 걸 직시하자”(민교협 정치시평, 12.17)는 반응을 낳게 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 집단으로 하여금 “종편 방송 폐지”라는 구호를 외치게 했다.

 

언론의 무책임에 어이가 없다

 

하지만 촛불 민심에 불을 지핀 게 그들 언론이었다면 왜 이제야 그리되었을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어제오늘 벌어진 일이 아닐진대, 어찌하여 박근혜 정권 거의 말년에 그것도 한겨울에 알려져 시민들을 추운 날씨에 수고롭게 한단 말인가? 이런 착잡한 생각이 든 건 지난 15일 국정조사 5차 청문회에 나온 전직 언론사 사장의 증언 때문만은 아니다. 언론인이라면 기사나 화면을 통해 말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한 그는 “국정 농단 방치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자인했다. TV 조선은 고영태 이사로부터 충분한 제보를 받고도 2년 가까이 묵혀 뒀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외부 또는 사측으로부터의 압력이나 통제, 취재원 보호의 어려움 등등.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 최근의 보도는 실상 “그때 말할 수 있었고” 또 “말해야 했던” 것들에 다름 아니다. 하룻밤 묵기 위해 호텔의 인테리어를 뜯어고쳤다(14일 중앙일보 분수대)는 대통령의 결벽 강박을 뒤늦게 알린 것은 그렇다 쳐도. “‘알고 보니’ 주로 관저에 머물고 집무실엔 잘 나오지 않았다”(15일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거나 소통을 중시해야 할 대통령이 시대를 앞선 ‘혼밥족’이어서 어이가 없다는 기사(13일 동아일보 횡설수설)를 보면 정말 어이없어야 할 사람은 이런 언론을 대하는 국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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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언론사마다 유능하다는 기자들이 청와대를 상시 출입하고 있지만 대통령의 극심한 소통 부재 실상을 제대로 알려준 적 없었다. 해외순방 때마다 전용기로 따라가는 수십 명의 기자들은 성형외과 의사 등 의외의 동행인에 의심을 갖지 않았고 방송은 대통령의 옷차림을 패션 외교라고 치켜세웠다. 중요한 계기에 기자회견 같은 게 없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어쩌다 회견이나 담화가 있어도 질문 한 번 하지 못하고 고분고분 받아 적기만 했다. 언감생심 권력에 대한 감시는 고사하고 청와대가 보여주고 알려주는 메시지와 이미지만을 충실히 소비했을 뿐이다. 

 

진영논리는 영원하다

 

사실, 주류 보수언론은 그간 박근혜에 관해 조작된 이미지를 생성하고 확산시켜 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선거 전부터 후보로서의 자질과 사생활 문제에 대한 검증은 부실했고, ‘박정희의 딸’로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기대 섞인 허상에 매달렸다. 세월호 참사 당시 눈물을 아낀 것이 대단하다고 치켜세웠고, 개성공단 폐쇄 때는 “박근혜 정부의 유일한 남자는 박근혜”라며 결단력을 높이 평가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작년 7월 재벌총수들과의 회동 직후 어느 신문의 고정 칼럼에는 ‘창조경제’를 직접 챙긴 박근혜 대통령의 ‘뚝심’을 아버지 박정희에 비견하며 칭송한 글이 실렸다.

 

이런 글을 쓴 분들이 반성은커녕 아니 해명조차도 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무능과 착오를 가리기라도 하듯 ‘박근혜 때리기’에 함께 열을 올리는 것은 보면 새삼 우리 언론의 하이에나 같은 속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반대하던 탄핵소추 결의가 이루어져 한 국면을 넘은 지금 이들 언론은 재차 진영논리에 충실히 복귀한다. 우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차분히 기다리자며 촛불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자신들이 보기에 차기 정권을 넘기게 될 야권과 그 대선 주자들에 대한 흠집 잡기에 매진한다. 조선일보는 14일 “촛불은 사기극이고 참가자 수도 뻥튀기”라는 요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 글은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국정 개입 의혹까지도 ‘좌파의 음모’로 불거졌다고 우기며 박사모 등의 집회에 모인 “엄청난 숫자”와 중복응답이 가능한 탄핵 관련 사이트의 예를 들어 바닥 민심이 촛불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일종의 확증 편집증이 어찌도 그리 박근혜 대통령과 닮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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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해 개헌보다 더 중요한 것

 

하지만 그 무엇보다 참담한 것은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공영방송의 추락이 확연히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서는 심지어 종편과 같은 선정주의적 비리보도조차도 드물었다. 진영논리에 물든 MBC는 촛불 취재현장에서 아예 이름을 숨겨야 했다. 국민의 공공적 재원과 소유로 운영되는 이들 방송이 민영보다도 소극적이고 종편보다도 못한 게 현실이다. 최근 전모가 공개된 청와대 참모의 비망록에는 박근혜 정권 내내 권력에 의해 주물러진 언론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근 두 달간의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는 “나쁜 언론은 나쁜 정부보다 더 나쁘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 국민이 이처럼 무능하고 왜곡된 언론을 갖는 한 제2, 제3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진행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지금 개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론장악 방지법’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엄주웅(민언련 정책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