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 출연자 하차 통보 취소하라
등록 2018.01.1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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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가 내달 종영 예정인 <까칠남녀> 녹화 2회분을 남기고 성소수자 출연자인 은하선 씨에게 하차 통보를 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25일과 올해 1월 2일 ‘성소수자 특집’ 이후 일부 개신교 단체와 학부모 단체가 일산 EBS 사옥 앞에서 <까칠남녀> 폐지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EBS가 은하선 씨에게 이런 통보를 했다는 점은 여러 측면에서 의문과 우려를 낳는다.

 

우선 지적할 문제는 공영방송이 일부의 혐오와 차별 행위에 굴복해서, 특별한 잘못이 없음에도 방송에서 누군가를 중도 하차시키는 상황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의 방송미디어에서 성소수자는 예능 프로그램의 희화화된 캐릭터로만 등장할 수 있었다. 성소수자를 사회의 일원으로, 다르지 않은 존재로 등장시킬 경우 해당 방송은 장르를 불문하고 특정 집단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됐다. 이런 경험을 학습한 방송 제작자들에게 성별이나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을 해선 안 된다는, 소수자에게도 의견 개진의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방송법과 각 사의 방송편성규약 속 조항들은 ‘죽은’ 조항으로 남아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까칠남녀> 제작진은 성소수자인 은하선 씨를 출연자로 발탁했다. 은하선 씨 또한 방송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히며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성소수자의 입장을 적극 대변했다. 남성과 여성만으로 성(sex)을 나누고 이성애 중심의 고정된 성 역할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서 최초의 ‘젠더(gender) 토크쇼’를 표방한 <까칠남녀>가 지난 9개월 동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다.

이와 같은 기획·제작의도를 내세운 <까칠남녀>가 ‘성소수자 특집’ 이후 맞닥뜨린 일부 단체들의 거센 항의에 밀려 성소수자 출연자를 강제 하차시킨 것은, 성별이나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 방송편성규약에 위반되고 또 방송 내용의 다양성 보장이라는 대의에 역행하는 조치로 매우 우려스럽다.

 

두 번째 문제는 제작 자율성 침해 여부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제작진은 필요에 따라 어떤 출연자를 기용하고 하차시킬지 결정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은하선 씨 하차는 일선 제작진들이 아닌 ‘윗선’의 결정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EBS 방송편성규약은 제작책임자로 하여금 제작실무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제작 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EBS노조나 PD협회 등 제작 자율성 보장의 주요 단위들은 이번 결정에서 방송 정상화의 제1조건인 제작 자율성에 대한 부당한 침해가 있었는지 또 하차를 통보받은 성소수자 출연자에게도 의견개진의 절차가 있었는지 등에 대하여 철저히 진상조사 해야 한다. 그 후 이에 따른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안에 대한 EBS 회사 차원의 입장표명과 후속조치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소수자에 대한 차별로 지지 세력을 규합하려는 일부 정치 세력들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자유한국당 측 간사인 박대출 의원은 <까칠남녀>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들의 국회 기자회견 개최에 협력하며 “EBS에서 반교육적 내용을 방송한 데 대해 관련자 문책 등 국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대선 토론 과정에서도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며 소수자 집단을 차별하고 고립시킴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모으려는 수법으로 일관했다. 수십 년 동안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지지 세력을 규합하던 모습에서 이제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수단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공영 교육방송인 EBS의 방송내용에 대한 개입 또한 노골화 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에게 되묻는다. 구체적으로 EBS <까칠남녀>의 어떤 점이 반교육적 내용이라는 것인가? 자신들이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반인권적 관점에 동의하지 않으면 반교육적이라는 것인가?

 

방송은 결코 혐오와 차별의 선전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오히려 방송은 국민의 인권의식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인권 담론을 형성하고, 방송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까칠남녀> 제작진과 EBS 경영진이 출연자 한 명을 하차시키는 문제가 아니다. <까칠남녀>는 공영방송으로서 충분히 다룰 수 있고 다뤄야 마땅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며, 교육방송이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사안을 다룬 것이다. 그럼에도 EBS가 부당한 차별과 혐오의 목소리에 굴복한다면, 이는 다른 방송 제작진들에게 성소수자 관련 아이템을 다루면 안 된다는 위축의 경험을 학습시킬 수 있다. EBS가 지금이라도 이번 중도하차 조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끝>

 

1월 1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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