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촛불 방송법, 이용마법 개정을 제안한다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과 관련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정책 제안
등록 2017.11.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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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의 사장 선임을 비롯한 주요 의사 결정은 철저히 수의 게임에 의해 좌우돼 왔다. 우선, 법에서 정한 바 없음에도 여야 정치권이 ‘관례’라는 이름으로 공영방송의 관리·감독을 맡는 이사회 구성 권한을 나눠 가졌다. 여기서 첫 번째 수의 게임이 시작된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에서 이사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할 권한을 갖는 것으로, KBS이사회의 경우 11인 이사 중 7인을,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의 경우 9인 중 6인을 여당에서 추천해왔기 때문이다. 압도적 수의 우위를 차지한 이른바 ‘여당 추천’ 이사들은 다수결의 원칙을 앞세워 모든 의사 결정을 자신들의, 사실상 추천권자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다. 사장 선임(KBS의 경우 추천)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당 추천’ 이사들의 지원만 받으면 설사 공영방송에 부적합한 인사라도 공영방송 사장직에 오를 수 있었다. 이렇게 사장을 여당의 의지대로 선출하면서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여당의 의지가 공영방송의 운영에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지난 2016년 7월, 162인의 국회의원이 함께 국회에 제출한 방송법 등의 개정안, 이른바 언론장악방지법안은 당시 MBC 사장의 임기 만료를 계기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여당 성향의 다수 이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파적인 사장을 선임하는 종전의 방식을 개선하여 상대적으로 독성이 덜한 사장을 뽑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KBS이사회와 방문진의 이사 구성을 13인으로 동일하게 조정한 후 여야에 각각 7대 6의 추천권을 공식 부여하는 대신, 사장을 선임할 때는 과반이 아닌 3분의 2 이상의 찬성(특별다수제)을 받아야만 하도록 했다. 즉, 여야 추천 이사 모두가 거부하지 않는 인물이어야만 공영방송 사장이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기에는 많은 점에서 부족했지만 그나마 자유한국당이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는 협상안이었다.

이는 수많은 해고자와 자신의 직무에서 배제되어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수백명의 언론인들을 조기에 제자리로 돌려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최악의 사장을 피하고 그리하여 해고자 복직과 유배자 원직 복직을 성사시키기 위한 차악의 방책이었다. 그러나 당리당략에 매몰된 자유한국당이 정략적으로 적극 반대함에 따라 언론장악방지법안은 입법되지 못했다. 아니, 법안 심의조차 진행되지 않은 채, 국회에서 사장돼 있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원 대표성과 방송 전문성 보완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언론장악방지법안이 제출되었던 당시의 효용을 부정하지 않는다. 공영방송 의사결정의 모든 과정에서 정권의 의지를 반영하도록 하는 구조에 최소한 브레이크라도 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의 대리인 역할에 충실한 사람들이 다수를 점하는 공영방송 이사회에서 사장 선임을 비롯한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게 과연 공영방송을 위한 최선책인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대선을 앞둔 시기인 지난 4월 발표한 ‘2017년 언론개혁 과제’에서도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있어 여야의 이사 추천을 대등하게 하되, 현업 방송·언론인들의 총의를 대표할 정치적 중립지대를 창출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금 이 안을 발전시켜 KBS이사회와 방문진 이사를 각각 9인으로 조정하고, 그 구성을 여당 추천 3인, 야당 추천 3인, 그리고 방송의 전문성과 구성원의 대표성을 갖는 3인(사업자 추천 1인, 구성원 추천 1인, 방송 관련 학계 추천 1인)으로 개선하자고 제안한다. 국회는 민의를 대표하는 헌법 기관인 만큼 여야의 추천권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공영방송 이사회 운영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과도한 대표성은 민의를 변형시킬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구성원의 대표성과 방송의 전문성을 보완할 수 있는 집단을 이사회에 참여시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조정과 중재의 역할을 맡도록 하는 한편, 과도하게 정파적으로 편향된 의사결정을 극복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토록 하자는 취지다.

 

○ 공영방송 사장 선출, 국민의 손으로

지난해 겨울과 올해 봄, 촛불항쟁을 거치면서 광장의 국민들은 “언론도 공범이다”, “언론적폐 청산하자” 등의 비판과 요구를 소리 높여 외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를 대표한다”며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압도적인 요구를 분출했다. 방송관계법 개정도 공영방송의 실질적 주인인 국민들의 뜻에 따라야 함은 민주주의의 기본에 해당한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공영방송 적폐 청산 작업은 그대로 진행하되, 이와 별도로 향후 다시는 이러한 적폐가 가능하지 않도록 공영방송 사장 선임을 정치권에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라 선출하는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 즉,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대폭 강화하는 방식으로 방송관계법을 개정하는 것이 광장에서 표출된 촛불 민의에 부합하는 길이다.

현재의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은 여당에서 추천한 이사가 압도적 수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뜻대로 사장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기존 언론장악방지법안은 여야 추천 7대 6이라는 팽팽한 구도 속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는, 즉 야권 일부의 동의까지도 끌어낸 후보여야만 사장이 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야권의 비토권을 사실상 전면 인정하는 이 방안을 적용할 경우 의사 결정의 지난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또한 이렇게 여야 추천 이사들이 모두 만족해하는 인물이 과연 공영방송을 위한 최선의 인물일 수 있는지 장담하기 어렵다. 여야 모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인물이 과연 정치 독립성을 최우선에 두는 공영방송 사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또 현재 처절하게 망가져 있는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회복하는 공영방송 혁신 작업을 원칙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공영방송 사장의 시선이 정치권이 아닌 국민을 향해야 한다고 본다. 공영방송 존립의 가장 큰 이유는 시청자인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진실을 전달하는 데 있다. 그런 만큼 시청자인 국민이 공영방송의 사장 후보를 직접 선출하는 게 공영방송의 존재 양식에도 합당하다.

이를 위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처럼 만 19세 이상의 국민 100명 이상을 무작위로 선발해 가칭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한다. 공영방송 이사회가 사장 후보 공모와 면접의 진행 등 형식적 절차를 맡되, 후보 압축과 실질적인 심층 면접 그리고 선출은 국민 사장추천위원들이 맡도록 하는 것이다. 공영방송 이사회는 사장추천위원회에서 최종 선발·추천한 후보를 승인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공영방송 사장은 여야 정치권의 당리당략보다 국민의 이익 즉 공익을 대변할 것이다. 국민의 대표로 뽑힌 사장이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려 노력하면, 공영방송의 언론인들이 방송법에서 규정한 민주적 여론 형성, 방송의 공적 책임 제고와 시청자의 권익보호 등의 책무와 가치를 더욱 구현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 제작자율성 보장 이중 장치, 임명동의제·노사동수 편성위원회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급격하게 추락한 배경엔 임명권자, 즉 정권의 이익을 위해 관리·감독 권한을 휘두른 이사회와 인사권을 쥐고 경영부터 제작·보도·편성 전반까지 모두를 뒤흔들어 공영방송을 ‘정권바라기’ 방송으로 전락시킨 사장이 있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공영방송을 대표한 사장들은 보도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을 무너트리기 위해 단체협약 속 공정방송 규정을 무시하거나 아예 단체협약을 파기하기까지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편성·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와 편성위원회 등의 설치를 제안하는 이유다.

앞서 162인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언론장악방지법안도 지상파와 종합편성·보도전문편성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방송 내용을 좌우하지 않고 방송 현업 종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을 강제하는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62인의 국회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언론장악방지법 속 이 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적극 동의한다. 이에 더해 지상파를 비롯한 종합편성·보도전문편성 사업자가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을 위해 편성·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실시할 것을 추가로 제안한다. 아울러 이러한 내적 자율성 관련 규정들이 훈시 규정으로 치부되면서 사실상 사문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수준의 법적 강제가 가능토록 명시하기를 제안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이번 제안은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을 통해 지난 9년 동안 위임된 권력이 마음대로 강탈한 공영방송을 국민에게 되돌려주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공영방송은 애초부터 국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에서 시청자인 국민의 참여를 보장해, 호시탐탐 공영방송에 개입할 기회를 엿보는 정치 세력과 정치권의 이해를 대변하고자 하는 일부 공영방송 종사자들에게 공영방송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시킬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아직도 지난 9년 동안과 마찬가지로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표리부동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적폐 이사와 적폐 사장을 교체하여 공영방송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저지하려 지난해 자신들이 앞장서 반대했던 방송법 등의 개정안을 아무런 성찰과정도 없이 태도를 표변하여 이제 와서 그대로 처리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3개월 안에 공영방송 이사진을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 만큼 방송적폐 청산과 공영방송 사장 교체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현재의 적폐 이사진과 사장단을 그대로 유지․온존시켜 결국 다가오는 내년 지방선거를 편파․왜곡보도로 점철된 기존의 공영방송 구도 속에서 치르려는 정략적 속셈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이런 꼼수에 기대어 교체 대상으로 지목된 고대영 KBS 사장과 이인호 KBS 이사장도 자신의 거취와 방송법 등의 개정을 연계시키는 꼼수를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원래 국민의 것이었던 공영방송을 국민에게 되돌려주기 위한 논의에 어떤 정치적 계산이나 타협이 끼어들어선 안 된다고 분명히 경고한다. 특히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발의한 방송법 등의 개정안이 당론이었다는 데 얽매여 촛불시민들의 요구를 올곧게 반영하지 못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여 공영방송을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은 시대의 요구다. 억지 주장을 하는 거대 야당과 또 모두를 비판하고 모두를 반대함으로써 존재감을 찾으려는 동조 세력의 눈치를 보며 적당한 주고받기로, 시대적 과제를 왜곡시키는 건 어떤 말로 포장해도 야합에 불과할 뿐 진정한 ‘협치’일 수 없다는 걸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을 위해, 국민의 손으로 만드는 공영방송을 위한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 <끝>

 

* 별첨 : 방송법 및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전문

 

11월 20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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