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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을 수행비서로 썼냐”고 묻는 언론들
등록 2018.03.1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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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왜 여성을 수행비서로 썼냐”고 묻는 언론들
‘피해자 책임론’과 ‘펜스룰’을 부추기는 성폭력 보도 관행을 깨라 -
정민영 /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민언련 정책위원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파장이 쉽게 사그러들 것 같지 않다. 그의 수행비서이던 김지은 씨가 방송에 나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말하자, 안 전 지사와 김 씨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말에 다른 말이 보태지면서 SNS에서, 포털 댓글 게시판에서, 술자리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넘쳐난다. 유명인사의 성폭력 사건은 그 자체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어서, 사건 내용에 대한 대중의 과도한 호기심은 상수에 가깝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는 다르다. 언론이 사안에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 대중의 관심은 생산적 담론으로 연결될 수도, 피해자의 상처를 후벼 파는 칼이 될 수도 있다.

김 씨의 폭로가 있은 지 며칠 뒤 몇몇 언론은 “왜 여성을 수행비서로 했을까”에 대해 다루기 시작했다. “여직원을 수행비서로 채용한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안희정 지사가 남자이기 때문에 이성인 여성이 24시간 보좌하는 수행비서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냐는 얘기가 있었다”, “여성이 수행비서를 맡은 건 이번이 최초였다”… 대체로 애초 수행비서가 남성이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다. 안 전 지사가 여성을 수행비서로 임명하는데도 이를 제지하지 않은 보좌진들에게 사건의 책임 중 일부가 전가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된다. 우리는 다른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말들을 무수히 보아왔다. ‘짧은 치마를 입고 밤거리를 다닌 피해자도 일부 책임이 있다’, ‘평소 품행이 방정하지 않은 피해자가 문제의 원인을 일부 제공한 측면이 있다’… 이 사건에서 비슷하다. “이성인 상급자와 24시간 밀착해 있어야 하는 상황을 선택한” 김지은 씨에게도 조금의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부지불식간에 확산된다. 여기에 ‘본능을 억제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남성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불과 십여 년 전까지 성폭력 형사판결문에서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라는 문구가 단골로 등장했다)까지 더해지면 가해자의 범죄는 우발적인 실수로 둔갑하기까지 한다. 폭행이나 강도를 당한 사람에게 “그러게 왜 그때 그곳에 갔냐”고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의 책임을 떠안을 이유는 없다. 강도와 폭력이 범죄이듯 성폭력도 그 자체로 범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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