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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의료대란 없었다’ 뻔뻔한 정부, 편드는 언론
등록 2024.09.2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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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이어진 의료계 집단휴업으로 의료공백이 길어지는 가운데, 추석연휴를 앞두고 의료상황에 대한 우려도 높아졌습니다. 정부가 비상의료체계를 준비했다고 밝혔지만, 지칠 대로 지친 의료현장과 몇 개월째 계속된 의료지연으로 시민 불안은 커져만 갔는데요. 정부는 9월 11일부터 25일까지 2주간을 비상응급 주간으로 정하고, ‘비응급·경증 환자의 응급실 진료비 인상’, ‘응급실 군의관 파견’, ‘응급실 전담관 지정’ 등 대책을 내놨습니다.

 

특히 응급실로 환자가 몰릴 것을 우려해 정부는 경증환자 응급실 본인부담금을 60%에서 90%로 인상하고, 응급의료 이용안내 홍보자료를 배포하는 등 경증환자의 방문자제를 촉구했는데요. 응급상황 판단을 국민에 떠넘기고 건강기본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정부의 무책임한 대책에도 언론은 ‘시민의식’을 강조하며 응급실 방문자제를 덩달아 촉구하고, 응급실 대란이 없었다는 정부의 자화자찬에 동조하는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시민의식으로 응급실 대란 이겨내자’는 국민일보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9월 4일)에 출연한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전화가 가능하고, 열이 많이 나거나 배가 아픈 것, 찢어져 피가 많이 나는 것’ 등을 경증환자라 설명하며 대형병원 응급실은 중증·응급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게 경증환자는 동네병원을 이용해달라 요구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9월 12일 ‘응급의료 종합상황 브리핑’을 열어 “일각에서 걱정하시는 것처럼 ‘의료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결코 아니”라며 “더 위중한 이웃에 응급실을 양보하는 시민의식이 절실하다”고 발언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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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의 ‘경증환자’ 발언을 보도한 MBC(9/5)

 

국민일보는 의료권을 보장하기는커녕 시민들에게 응급실 방문자제를 촉구하는 무책임한 정부 대책에 적극 동조하고 나섰습니다. <사설/추석 응급실 대란 막아낼 시민의식 발휘를>(9월 14일)는 정부의 추석연휴 의료대책을 늘어놓으며 “구급대와 응급실 이용을 자제하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배려와 노력이 모인다면 위기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환자 생명을 볼모 삼은 집단 이기주의에 불안한 연휴를 보내게 된 지금, 국민 모두가 지혜와 인내를 발휘해 함께 극복하는 시민의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의료계에 책임을 돌렸습니다.

 

부자들만의 응급실, 정부 대책 비판 쏟아져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정부의 응급실 방문자제 촉구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MBC <‘경질론’ 박민수..“전화할 수 있는 환자는 경증”>(9월 5일 윤수한 기자)은 “의료계에선 즉각 ‘머리 아프다는 환자 중 뇌출혈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배가 갑자기 아픈 건 심근경색 증상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며 의료진의 정밀진단을 거쳐야 심각성이 판단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겨레 <응급실 문턱은 평등하지 않다>(9월 12일 양창모 강원도의 왕진의사) 역시 “환자가 자신이 경증인지 중증인지 어떻게 아냐”며 “증상은 중증이지만 최종 진단은 경증으로 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증상은 경증이지만 검사 결과 중증으로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일갈했습니다. 이어 무너진 응급의료에 대한 최종 책임자인 정부가 그 책임을 환자인 국민에게 지운다고 비판했는데요. “환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며 ‘비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환자’는 문턱에 걸려 넘어질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한국일보 <부자들만의 응급실>(9월 12일 이영태 논설위원)도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의 발언을 인용하며, “한밤중에 아이가 열이 펄펄 끓어도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경증 판정을 받아 치료비 덤터기를 쓸까 겁이 나는 서민들을 노린 발언”이냐고 질책했는데요. “의료 최전선인 응급실이야말로 최하위계층에까지 열려 있어야 하는 곳”이라며 “부담금이 60%든 90%든 큰 상관”없는 “부자들만의 응급실이 되지 않을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아프지 마세요”, 국민 건강 담보 잡힌 추석

정부의 위험한 대책 속에 추석연휴가 시작되자 언론에는 응급대책을 정리한 보도와 동시에 우려가 이어졌습니다. 경향신문 <사설/“추석 아프지 마세요” 주고받는 국민들, “어디에 죽어나가냐”는 총리>(9월 13일)는 “국민적 불안감은 커지는데 의·정 협의는 한 걸음도 못 나아가고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며 “정말 국민들이 죽어나가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것”이냐고 꾸짖었는데요. 아프지 말라는 “인사말이 오가는 세상이 어이없을 뿐”이라며 “생명을 볼모로 벌이는 이 치킨게임을 보는 국민 분노도 일촉즉발 직전임을 무겁게 새기라”고 덧붙였습니다.

 

영남일보 <사설/응급실 뺑뺑이 걱정해야 하는 추석연휴…국민은 분노한다>(9월 13일)도 추석을 앞두고 “외출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상비약을 구입하는 것”은 시민 불안을 대변한다고 언급했는데요. 민족 최대의 명절을 앞두고 “건강이 담보로 잡힌 이런 상황에 분노를 느낀다”고 개탄했습니다.

 

정부 ‘응급실 대란 없었다’ 자화자찬 발맞춘 언론

조선일보는 연휴가 끝난 9월 19일 <시민과 의사가 추석 응급실 위기 막았다>(안준용·김석모 기자)를 1면 머리기사로 실어 추석연휴 ‘의료대란’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응급실을 찾은 경증·비응급 환자 수가 작년 추석연휴 대비 40% 가까이 감소”했고 “추석연휴에도 문을 연 병의원은 하루 평균 9,781곳에 달했다”며 응급치료를 받은 환자와 병원을 지킨 의료진의 인터뷰를 실었는데요. ‘경증 시민은 동네병원 가고, 의사는 쪽잠 진료’로 응급실 위기를 막았다며 추석기간 응급의료를 후하게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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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을 시민과 의사들이 막아냈다고 1면 머리기사로 실은 조선일보(9/19)

 

한국경제 <사설/경증 환자는 동네 병원으로...추석 ‘응급실 대란’ 피했다>(9월 18일)와 매일경제 <응급환자 작년보다 20% 줄어...추석연휴 의료대란 피했다>(9월 19일), TV조선 <추석 응급실 대란 없었다...일부선 ‘뺑뺑이’도>(9월 18일 신경희 기자) 등도 경증·비응급 환자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연휴기간 응급실이 풀가동 돼 전반적으로 의료체계가 원활히 작동했다며 “응급실이 원래 기능인 중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부 강요에 응급실 방문을 자제한 수많은 환자의 아픔을 무시하고,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응급실 위기를 감추는 것은 제대로 된 보도라고 볼 수 없는데요. 정부와 일부 언론의 자화자찬과 달리 추석연휴 의료현장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응급실 뺑뺑이에 무한대기, ‘발 동동’ 구른 시민들

한국일보 <“추석 대란 없었다”는 정부...‘무한 대기’전쟁 치른 환자>(9월 19일 이유진·김태연·전유진 기자)는 “15~18일 나흘간 지켜본 3곳의 권역응급의료센터(세브란스병원,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종로구 서울대병원) 현장은 정부 진단과 달리 매 순간순간이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심각한 병세에도 응급 처치조차 받지 못한 환자들의 상황을 전하며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병원 간 이동, 전화 뺑뺑이도 여전”했고 “경증 환자 치료를 맡은 동네 병의원”도 무한 대기로 상황이 심각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연합뉴스 <“응급실 가도 될까요” 잇단 뺑뺑이 소식에 환자만 전전긍긍>(9월 17일 김잔디 기자)에서 알 수 있듯 시민들은 응급실 방문을 고민하고, 적시 치료가 어려운 상황과 더불어 응급실 정보를 공유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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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기간 응급실 미수용 사례, 동아일보(9/19)

 

경향신문 <사설/‘응급실 뺑뺑이’로 얼룩진 추석, 정부는 ‘고비 넘겼다’ 자찬>(9월 19일)은 “추석 연휴 우려했던 대로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잇따라 발생했다”며 연휴기간 내원 환자가 크게 줄어든 것은 “경증환자의 본인부담금을 대폭 올린 데다 정부의 겁박에 시민들이 의료서비스 이용을 자제한 탓”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심각한 의료상황에도 “차근차근 밀고 나가겠다”는 정부 인식은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안이한 상황인식”이라며 “시민 불만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경고했습니다.

 

‘무릎 꿇리면’ ‘희생양 제물’ 등 의정갈등 부추긴 한국경제

의정갈등은 의료계와 협의 없이 밀어붙인 윤석열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에서 비롯됐습니다. 2월부터 지속된 양측의 첨예한 대치로 환자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는데요.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경제 <윤 정부 무릎 꿇리면 의사들이 승리한 것인가>(9월 11일 조일훈 논설실장)는 의사들이 정부를 무릎 꿇리려 한다며 “의사 집단의 저항은 생각 이상으로 교묘하고 강력하다”고 비난했는데요. “전공의들의 이탈이나 대학가의 집단 유급 사태는 자해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윤 정부는 용서할 수 없다는 보복심리의 발로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의료계가 “스스로 괴물이 되어 희생양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한다”며 “실로 나라 꼴이 우습게 됐다”고 한탄했는데요. 물론 환자를 버리고 의료 현장을 이탈해 버린 의료진들의 무책임한 태도는 질책받아 마땅하지만, 볼모로 잡힌 국민의 건강은 승패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경제는 평행선을 달리는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을 중재하고 국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을 주문하기는커녕, ‘항복’과 ‘희생’이란 자극적 표현으로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실종된 통계와 의료공백 피해

동아일보 <불리한 죽음은 집계되지 않는다>(9월 14일 장원재 정책사회부장)는 “더 이상 구급차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뉴스가 아니게 됐고, 24시간 365일 열어야 하는 대형병원 응급실이 문을 닫는 비상식이 ‘뉴 노멀’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는 예전부터 있었고 이 때문에라도 의료개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렇게 버틸 수 있는 건 의료공백 피해 사례가 따로 집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는데요. 정부는 응급의료 공백 사망자 통계를 내지 않고, ‘병원을 떠난 의사 때문’이라는 비판에 의사 역시 의료공백 피해 인정을 꺼리다보니, “불리한 죽음은 집계되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동아일보는 “모두가 느끼는 것처럼 ‘의료대란’이란 유령은 지금도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지만, “애써 보려 하지 않는 대통령실과 정부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며 참담한 심경을 드러냈는데요. 정부가 현실을 감추고 불완전한 사실을 근거로 자화자찬에 나선다면 언론은 그 뒤에 숨겨진 환자들의 고충을 드러내야 합니다. 7개월째 이어진 의료공백의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의료계가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게 언론의 적극적 보도가 절실합니다.

 

* 모니터 대상 : 2024년 9월 1일~20일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서 ‘응급실’로 검색한 보도,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 채널A <뉴스A>, MBN <뉴스7>,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기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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