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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결코 못하는 체온이 필요한 보도, 지역언론에겐 기회다
[2024년 8월 수상자] 탄광촌 여성노동자 ‘선탄부’ 재조명한 최기영 강원일보 기자
등록 2024.09.0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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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광촌 여성노동자 ‘선탄부’의 삶을 조명한 강원일보 ‘광부엄마’ (출처 : 강원일보)

 

‘광부엄마’ 취재를 총괄한 최기영 기자에게 지역언론의 어려움을 묻자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강원일보 기사와 영상을 선보일 수 있는 최근 상황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AI가 대체할 직업에 기자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사람 체온이 필요한 보도는 AI가 할 수 없다”며 “깊숙이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보도는 지역언론이 잘할 수 있는 것이니 오히려 지역언론에겐 지금이 기회”라고 확신했다.

 

강원일보 ‘광부엄마’는 여성을 터부시하는 탄광에서 열악한 대우에도 꿋꿋이 버틴 여성노동자 ‘선탄부’의 힘겨운 노동을 기록하고, 고단하지만 자부심이 느껴지는 여성광부 삶을 발굴한 지역밀착형 보도로 호평받아 2024년 8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받았다. 다들 언론환경이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상황에서 지역언론의 힘을 믿고 꿋꿋이 나아가는 최기영 기자를 만났다.

 

탄광도시에서 느낀 ‘모순’,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취재 계기는 무엇인가.

최기영 : 독자들에게 탄광도시 특유의 ‘모순’을 잘 전달하고 싶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산업화에서 석탄산업은 큰 공헌을 했다. 광부들에게는 ‘산업역군’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탄광은 매우 황폐화돼 있고 태백시는 시인데도 인구가 3만 7천 명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웬만한 군 지역보다 인구가 적다.

1995년 폐광지역개발지원 특별법이 제정됐다. 석탄산업 사양화로 폐광지가 너무 힘드니 대체 산업이나 경제진흥사업을 해서 지역을 좀 살려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1995년 폐광지역 4개시군 인구가 25만 명이었는데 30년가량 흐른 지금은 16~17만 명이다. 특별법으로 막대한 지원이 이뤄졌는데도 인구가 10만 명 이상 줄어들었다. 탄광도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제가 이런 상황을 접하며 처음 느낀 감정이 ‘모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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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영 기자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선탄부’ 존재는 취재 전부터 알고 있었나?

최기영 : 몰랐다. 사실 도내에 탄광도시 출신 기자들이 거의 없다. 강원일보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저도 바닷가 출신이다 보니 탄광촌 문화나 역사는 잘 몰랐다. 산업화 시기 영국에서는 여성‧아동의 탄광노동을 금지하지 않았나. 그래서 당연히 광업소에 여성노동자는 없을 줄 알았는데 취재과정에서 ‘선탄부’ 존재를 알게 됐다.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의욕적으로 취재할 수 있었다.

탄광도시들이 지금껏 우리나라 현대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고, 석탄산업이 사양화에 접어들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탄광도시 보도는 찾아보면 수도 없이 나온다. 강원일보도 많은 기획보도를 해왔다. 다 똑같은 얘기고 달라진 건 없다. 선탄부는 대부분 산업재해 피해자들로 탄광에서 남편 등 가족을 잃고도 탄광에서 일하게 된 분들이다. 어찌 보면 이 자체가 모순인데 이분들의 삶을 보여준다면 독자들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폐광지가 처한 현실을 잘 전달하고 공감하도록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폐광으로 비자발적 실업자 된 선탄부

현역 선탄부들이 취재에 호의적이었나.

최기영 : 현역 선탄부들 섭외가 쉽지 않았다. 사람이 사진 한 장을 찍으러 가도 옷매무시 단정히 하고 머리도 다시 한번 빗고 가지 않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면서 늘 시커멓게 칠이 된 얼굴을 지인이나 아들딸들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취재에 응하기 쉽지 않으셨을 거다.

하도 거절하고 사양하셔서 ‘폐광되면 여러분들 많이 힘들 텐데 여성광부들의 삶을 조명해서 어떻게든 도움되는 방향으로 기사를 쓰겠다’고 설득했다. 그제야 취재에 동의해주셨다. 잘 보도해달라고 하더라. ‘태백에 장성광업소 문 닫고 나면 일자리 없다’ ‘근데 우리 지금 50세밖에 안 됐다’ ‘나이 50이면 일 안 하기엔 너무 젊지 않냐’며 기사를 잘 써달라고 했다.

광업소 폐광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광부와 선탄부가 400명 정도다. 간접적으로 일자리를 잃는 분도 있다. 광업소 주변에서 식당하시는 분들, 운송하시는 분들, 청소하시는 분들, 광업소 보안경비 등이다. 단순히 광업소 폐광의 문제가 아니라 한 지역이 초토화되는 문제인 거다. 그래서 이분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취재에 응해주신 게 아닐까 싶다.

 

기사 제목을 ‘광부엄마’로 하게 된 이유는?

최기영 : 제가 정했다. 제목에 대한 아이디어는 무척 많았지만 4월 초 선탄장 취재 당시만 해도 정해지지 않았다. 광업소에서 석탄 캐고 일하는 모습은 TV에서나 가끔씩 볼 뿐 경험해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만큼 대중이 광부와 선탄부의 삶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거다.

그런데 제가 선탄장 취재를 다 하고 딱 휴게실에 들어갔을 때 김치찌개 냄새가 코를 찌르더라. 아직 추울 때라 석탄난로를 피워놓고 그 위에 선탄부들이 도시락과 함께 끼니를 때울 김치찌개가 끓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때 그 김치찌개 냄새가 잊히질 않더라.

생각해보니 선탄장도 휴게실도 다 삶의 공간이고 선탄부들도 누군가의 엄마 혹은 누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에 그런 부분을 살리면 독자들이 탄광도시 이야기를 좀 더 일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조금 신파적일 수는 있지만 ‘광부엄마’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산재 입은 선탄부 향한 각박한 시선

보도 이후 산업재해 선탄부들의 불합리한 보상체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나.

최기영 : 산업재해를 입은 선탄부들의 보상체계는 관련 법 개정과 국가 지원이 필요해 지자체보다는 국가 사무에 가깝다. 정부에서 나서줘야 할 일이고 지자체 차원에서는 당장 크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어서 답답하고 안타깝다. 현재 전체 선탄부 중 산업재해 지원 대상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 황당할 따름이다. 우리가 보도한 은퇴 선탄부 중 한 분은 진폐의증이다. 진폐증이 의심된다고는 하지만 진폐증이 아니라 진폐의증이라 장해등급을 못 받는다. 등급을 못 받으니 지원도 못 받는다. 그런데 그분은 폐 한쪽이 없다. 장해등급을 못 받는 분의 상황이 이럴진대, 장해등급 받은 분들은 얼마나 심각하게 아프시다는 이야기이겠나.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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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일보 ‘광부엄마’는 은퇴 선탄부들이 진폐장해등급을 받고도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출처 : 강원일보)

 

산업재해 입은 선탄부들을 위해 어떤 제도개선이 시급한가.

최기영 : 앞서 ‘모순’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산업재해를 입은 선탄부들을 지원하겠다는 말만 있을 뿐 실제 지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굉장히 모순적인 상황이다. 지금 당장 큰 움직임은 없지만 제도 개선과 관련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는 건 분명하다.

광부로서 선탄부로서 평생을 일하다가 진폐증에 시달리면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본인이 먹고 살려고 스스로 택한 일인데 그걸 왜 국가에서 책임져야 하느냐’ 같은 인식이 비일비재하다.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국가 지원에 대한 인식이 각박해서 안타깝다.

광부와 선탄부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 얘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이분들은 대부분 고령이라 국가 지원에 사회적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 지원하지 않으면 10~20년 뒤 이분들은 돌아가시고 없다. 즉 광부와 선탄부에 대한 지원은 자연스럽게 일몰되는 지원이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 다 불필요한 비용으로 보는 사회 인식은 상당히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탄부를 다루면서 피해자보다는 산업역군이자 누군가의 엄마이자 누나란 점을 강조했는데?

최기영 : ‘광부엄마’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신파로 흐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 해도 노골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파는 독자들이 외면할 테니 말이다. 담백하게 그려내고 싶었다. 선탄부들도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지만 엄연히 지역사회 구성원이기를 바라고 선탄부로서 자긍심도 갖고 있다. 피해자보다는 광업소 노동자, 누군가의 아내, 엄마, 딸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선탄부들이 지역사회 구성원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가장 황당한 터부는 무엇이었나.

최기영 : 여러 가지를 들었다. 도시락은 꼭 빨간색 보자기로 싸야 하고, 밥을 숟가락으로 담는 횟수도 정해져 있고, 광부 남편이 출근하면 조심히 잘 들어오라는 의미로 신발은 집으로 들어오는 방향으로 돌려놔야 하고, 여자 목소리가 옆집 밖으로 새면 안 된다는 등이다.

가장 충격적인 건 광부가 출근하는데 여자가 앞을 가로질러 가면 ‘오늘 재수없다’ 하고 출근 안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광부가 집으로 돌아가면 대개 집에 있는 부인이 남편 앞을 가로질러 간 여성을 찾아가 ‘우리 남편이 당신 때문에 일을 못 나갔으니 오늘 일당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는데 그러면 요구받은 분이 자연스럽게 일당을 줬다고 한다. 그분들은 그런 시절을 살아왔던 건데 굉장히 충격받은 터부 중 하나다.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다큐 제작

보도만 해도 힘들 텐데 다큐까지 기획한 이유는?

최기영 : ‘감춰진 진실-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보도로 202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키긴 했지만 영상으로 기록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저는 천생 신문기자라 활자매체가 주는 묵직한 메시지와 울림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훨씬 더 빠르게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건 영상을 따라갈 방법이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기 위해서라도 영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보도를 준비하면서 무조건 다큐를 제작하겠다고 생각했다. 밑져야 본전이고 안 되면 그만이라는 맘으로 시작했는데 결과가 좋아 만족스럽다.

 

유튜브에서 다큐로 공개한 지 열흘 만에 1400여 명이 봤는데.

최기영 : 다큐가 ‘광부엄마’ 보도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다큐를 처음 만들어보는지라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취재진 중 한 명이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탄광도시 이해도도 높은 편이라 무사히 제작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보셨고 특히 지역에서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지금도 하루에 20회 이상 조회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엄마 생각난다’ ‘아버지 생각난다’ ‘굉장히 감동받았다’고 해주시더라. 회사 차원에서 단체상영 혹은 다큐가 담긴 USB 배포 등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는 방법을 강구 중이다.

 

다큐에 내레이션을 넣지 않았더라.

최기영 : 내레이션을 넣을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 지상파 다큐멘터리를 보면 배우들이 내레이션을 해서 화제가 되고, 많은 시청자들이 보게 되는 경우가 꽤 있지 않나. 그래서 처음 나온 아이디어가 ‘강원도 정선 출신 배우에게 연락해서 내레이션을 부탁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원빈 배우 말고는 정선 출신 배우가 별로 없더라(웃음).

배우 내레이션이 여의치 않게 되니 AI 내레이션도 고민했지만 감정을 온전히 전달해주지 못하는 느낌이라 포기했다. 결국 내레이션을 아예 빼고 철저하게 현장음으로 가기로 했다. 대신 다큐 시작과 말미에 은퇴하신 선탄부 전옥화 님의 ‘지독한 가난’이라는 시를 넣었다. 지금껏 이야기한 탄광도시의 모습이 굉장히 잘 녹아 있는 시라서 전옥화 님이 직접 읽어주시면 진정성이 훨씬 잘 전달될 거라 생각했다.

 

지역언론이 더 큰 시장에서 경쟁할 길 열릴 것

디지털미디어국 기자 2명을 제외하고 취재진 부서가 다르더라. 어떻게 팀을 이루게 되었나.

최기영 : 어느 조직이나 부서 간 칸막이라는 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언론사 대부분이 마찬가지겠지만 지역언론은 특히 기획보도를 하는 게 더 녹록치 않다. 인원은 한정돼 있고 기획취재 외에 각자 일상으로 맡은 바 임무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회사와 데스크 차원에서 ‘광부엄마’ 보도를 야심차게 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지원이 충분히 이뤄진 덕분에 팀을 꾸릴 수 있었다. 서로 부서는 다르지만 하나의 주제를 갖고 팀을 이뤄 취재하는 게 기획보도가 지향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경인일보가 4월 수상소감에서 “지역언론이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지만 고군분투하면서 좋은 기사를 많이 쓰고 있다”고 했다. 지역언론으로서 강원일보의 어려움이 있다면.

최기영 : 언론환경 자체가 너무 어렵다. 신문은 사양산업이고 방송도 경쟁해야 할 플랫폼이 많다. 지역언론은 더 어렵다. 지역 인구감소는 지역소멸이라는 표현까지 쓸 수준으로 심각하다. 독자 감소가 눈에 띄게 보인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위기이고 우리만의 위기도 아니다.

2007년 강원일보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제가 쓴 기사를 서울까지 닿게 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때 ‘광부엄마’ 보도를 했다면 민언련에서 좋게 평가해주시지 못했을 거다. 강원일보 홈페이지 외에는 보도를 접할 기회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강원일보 기사를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예전엔 방송사가 아니면 영상을 보여줄 수 없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영상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지역언론에겐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지역언론이 더 큰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열릴 거라고 본다.

 

모두가 언론의 위기를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기회’라고 말하는 게 흥미롭다.

최기영 : AI가 기사를 쓰고 편집하는 시대가 아직 올듯 말듯 안 오고 있는데 거의 온 것 같다. 나날이 정교해지고 있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AI가 훨씬 잘 쓰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느끼는 게 ‘광부엄마’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체온으로 취재해야 하는 보도는 AI가 결코 할 수 없는 보도라는 거다.

독자들은 사람의 체온이 필요한 보도에 더욱 열광하고 깊게 공감한다. 그런 보도를 하려면 취재영역이 읍, 면, 동을 넘어 통, 반, 리 단위까지 들어가야 한다. 더 깊숙이 골목으로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보도 말이다.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지역언론이기 때문에 생각을 바꿔본다면 오히려 지금이 지역언론에겐 열려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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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일보 ‘광부엄마’가 2024년 8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