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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미화 일색 <건국전쟁> 흥행 불지핀 조선일보, 38건 보도 압도적
등록 2024.02.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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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 3주 만에 8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건국전쟁은 제작사의 푯값 환급 이벤트, 관객 강제동원 등 각종 논란의 중심에 있는데요.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과오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공적만 부각하며 편향성을 보인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여당 지도부와 여권 인사들이 영화 관람 인증에 나서면서 관련 보도도 급증했는데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영화 ‘건국전쟁’ 언론보도를 살펴봤습니다.

 

조선일보 38건 보도, 다른 언론의 7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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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뉴스(1/12~2/22)와 신문 지면(1/12~2/23) 영화 ‘건국전쟁’ 관련 보도건수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의 경우 첫 보도가 나온 1월 12일부터 2월 22일까지 KBS, MBC, SBS 등 지상파3사와 JTBC,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편4사 방송 뉴스를 살펴봤습니다. 신문의 경우 첫 보도가 나온 1월 12일부터 2월 23일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6개 종합일간지와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2개 경제일간지 지면 기사를 살펴봤습니다.

 

조선일보가 38건으로 가장 많이 보도했습니다. 15개 언론사 평균 보도건수가 약 5.7건임을 감안할 때 약 7배나 더 많이 보도한 것입니다. 조선일보 다음으로는 중앙일보 15건, KBS 9.5건, TV조선 6건입니다.

 

건국전쟁 대부분 보도가 영화 흥행세를 알리며 시작된 것과 달리 조선일보, KBS, 중앙일보, 채널A는 일찍부터 건국전쟁에 주목했습니다. 조선일보 <이승만 다큐 ‘건국전쟁’ 좌석판매율 32%로 1위 ‘이례적 돌풍’>(2월 6일 고운호‧신정선 기자)이 흥행세를 처음 알린 보도인데요. 해당 보도 이전인 2월 5일까지 조선일보 9건, KBS 2건, 중앙일보 1건, 채널A 1건을 보도했습니다.

 

이승만 재조명으로 흥행 군불 지핀 조선일보‧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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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전쟁 홍보성 기사로 지면 채운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건국전쟁 보도건수 38건 중 9건을 흥행 시작 이전에 보도했습니다. 15개 언론사 중 건국전쟁 보도를 가장 처음 낸 곳도 조선일보인데요. 조선일보는 <1954년 이승만의 미국 국빈 방문… 뉴욕 카퍼레이드 영상 70년 만에 첫 공개>(1월 12일 유석재 기자)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에서 ‘영웅 행진’ 카퍼레이드를 하는 동영상이 70년 만에 발굴”됐다고 전했습니다.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 자료의 발굴을 알리는 것처럼 운을 떼고 있지만 건국전쟁 홍보 의도가 짙습니다. “독재자로 폄훼됐던 건국 대통령”이 “자료 발굴․인터뷰(를) 통해 재조명”됐다며 영화가 주장하는 바를 반박이나 비판 없이 그대로 실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날 문화면에서 지면의 절반 이상을 건국전쟁으로 채웠습니다. 이후에도 지면 절반 가까이 많게는 2개 지면을 할애해 건국전쟁 개봉 하루 전 광주 시사회 풍경김덕영 감독 인터뷰 등 건국전쟁 홍보성 기사를 냈습니다. 영화가 이 전 대통령의 공적만 부각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고 영화와 감독 일방의 주장으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중앙일보 <토지개혁, 대미 외교력…이승만을 다시 본다>(1월 15일 나원정 기자)도 대부분 김덕영 감독의 주장을 전달해 홍보 의도가 짙습니다. 하지만 “‘건국전쟁’에서 이 전 대통령의 과오를 제대로 다루지 않거나, 오히려 성과로 재해석한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조선일보와 차이를 보였습니다.

 

KBS는 매주 금요일 <뉴스광장>, <930뉴스>에서 해당 주 개봉된 영화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은 1월 10일 개봉했지만 1월 12일 뉴스에서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건국전쟁은 2월 1일 개봉 다음 날인 2월 2일 뉴스에 소개됐습니다. 정치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공통점에도 건국전쟁만 소개된 것에는 의문이 남습니다.

 

KBS는 <칸 황금종려상 ‘추락의 해부’…개봉 영화>(2월 2일 이정은 기자)에서 건국전쟁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한 자료 등을 토대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삶과 건국 1세대의 투쟁을 집중 조명”했다고 소개하면서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적을 부각하고 과오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런승만’은 전부 다 거짓말”이란 조선일보의 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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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승만’은 전부 다 거짓말”이라는 건국전쟁 주장 실은 조선일보 기사(1/12~2/21)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선일보 <6·25때 “서울 남으라” 했다 런승만 연설은 없었다>(2월 19일 유석재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승만을 공격한 기존 주장”과 “영화 ‘건국전쟁’이 밝힌 내용”을 비교하며 “(한강 다리 폭파 등) 과연 어디까지 사실인지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한강 인도교 폭파 당시) 한강 다리의 민간인 진입은 통제된 상태”로 “국방부 ‘한국전쟁사’는 경찰 76명이 순직”했다고 기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강 인도교 폭파 때 민간인 희생자는 없었다”, “경찰 70명 사망”이라는 건국전쟁 주장을 반복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와 육군사관학교 『한국전쟁사』를 참고하여 한국전쟁 당시 ‘한강교 폭파사건(한강 인도교 폭파)’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한공산군의 한강이남 진격을 저지할 목적으로 한강다리를 폭파”할 때 “공병경계분대와 헌병대가 배치되어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으나, 이들의 신호를 무시한 채 달려 내려오던 수십 대의 차량들이 대파되고 수많은 인파가 파편과 폭음 속에 사상(死傷)”을 입었다는 것이죠.

 

한겨레 <김봉규의 사람아 사람아/한강인도교 폭파는 학살의 시작이었다>(2022년 12월 7일 김봉규 기자)는 “한강 다리의 민간인 진입은 통제된 상태”로 “경찰 76명이 순직”했다는 사실만 확인되었다는 조선일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당시 국방부는 사망자 대부분은 다리를 건너고 잇던 경찰 77명뿐이라고 발표”했지만 “평화재향군인회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가 펴낸 ‘한강인도교 폭파 증언록’들을 발췌한 자료와 폭파 당시를 목격한 미 군사고문의 발언 등을 종합하면, 피난민 500~800명가량이 폭살되거나 한강에 빠져 익사했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할 때 조선일보 보도는 ‘팩트체크’라는 이름 아래 일부 사실만 취사선택해 “‘런승만’은 전부 다 거짓말”이라는 건국전쟁의 주장을 검증된 사실인 양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3‧15 부정선거 이승만과 관련없다” 허위주장 반박하지 않은 중앙일보

신문의 경우 건국전쟁 감독 인터뷰를 전한 곳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입니다. 조선일보는 <박돈규 기자의 2사 만루/“한강 다리 폭파한 ‘런승만’ 전부 다 거짓말이었습니다”>(2월 3일 박돈규 기자)에서 “전쟁 때 한강 다리 폭파하고 도망간 ‘런승만’”은 “다큐를 보면 알겠지만 다 거짓말”이라는 김덕영 감독 주장을 전했습니다. 반박이나 비판 질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박돈규 기자는 “팩트체크”를 해보자면서도 “‘런승만은 왜 거짓”이냐고 물으며 감독이 다시 한번 “한강 다리 폭파 사건도 왜곡”이라는 주장을 펼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승만, 100년 내다보고 자유민주국가 수립”>(1월 12일 유석재 기자)<박돈규 기자의 2사 만루/“이승만 죽이기는 북한의 공작… 이제 ‘진짜 이승만’을 마주하세요”>(2월 3일 박돈규 기자)에서도 김덕영 감독 입장만 충실히 전했습니다.

 

중앙일보 <“업적만 부각 좌파 일색 정치다큐와 균형 맞추기 위한 것”>(2월 17일 문소영 기자)은 “민감한 부분 중 하나가 3‧15 부정선거가 이승만과 관련 없다는 영화의 입장”이라고 질문했습니다. 김덕영 감독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그의 건강”이며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고자 하는 자유당의 문제 있는 세력들이 3‧15 부정선거라는 역사의 비극을 획책한 것”이라고 왜곡된 주장을 폈는데요. 3‧15부정선거는 1959년 1월 6일 대통령 불출마를 표명한 이승만 대통령을 필두로 자유당 정권이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선거와 제5대 부통령선거에서 대대적인 선거부정행위를 자행한 사건입니다. 3‧15부정선거가 이승만 전 대통령과 관계없다는 주장은 바로잡아야 함이 마땅함에도 중앙일보는 반박하거나 추가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4‧19 부상자 위문 뒤 하야” 허위주장도 그대로 전달

방송의 경우 건국전쟁 감독 인터뷰를 전한 곳은 TV조선, 채널A, MBN입니다. TV조선은 건국전쟁 관련 비판 질문을 하지 않았고, 채널A와 MBN은 건국전쟁의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을 질문하고도 감독의 문제적인 답변에 추가질문이나 지적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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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전쟁 감독의 왜곡된 주장 바로잡지 않은 채널A와 MBN

 

채널A <오픈 인터뷰/이승만 재조명? 역사 미화?…건국전쟁 ‘김덕영 감독’ 말하다>(2월 17일 김윤수 앵커)는 “3‧15부정선거는 사실상 명백하게 이승만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김덕영 감독 주장에 추가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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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3‧15부정선거는 이승만 대통령을 필두로 한 자유당 정권이 1960년 3월 15일 제4‧5대 정‧부통령선거에서 대대적인 선거부정행위를 자행한 사건입니다. 김덕영 감독은 “(4‧19혁명에서) 경찰이 발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고 “4‧19에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대학교병원에 찾아가” 부상자들을 위문했다고 주장했는데요. 왜곡된 주장입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사전』에 따르면, 4‧19혁명에서 고등학생을 비롯해 대학생들이 많이 희생당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4일 만에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 중인 시위 부상자들을 위문하고, 이튿날 “자유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대통령직에만 전념하겠다”며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이렇게 미봉책만 쏟아내던 이승만 정권을 지켜보던 대학 교수들은 4‧25대학교수단시위를 벌였고, 이승만 대통령 퇴진 요구가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4‧19혁명 직후 이승만 대통령이 부상자를 위문하고 하야 수순에 들어갔다는 김덕영 감독의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제주4·3사건 왜곡 바로잡지 않은 MBN 김주하 앵커

MBN <뜨거운 감자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에게 듣는다>(2월 22일 김주하 앵커)는 김덕영 감독의 제주4‧3사건 왜곡을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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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하 앵커가 “제주4‧3사건 때 민간인 학살”을 건국전쟁에서 미화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고 질문하자, 김덕영 감독은 “제주4‧3은 1948년 5월 10일 날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총선을 갖다가 방해하려는 사실상 남로당의 무장투쟁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김주하 앵커는 “그거는 어디까지나 감독님의 생각” 아니냐고 물었지만 김덕영 감독은 “그거는 사료가 뒷받침”하고 있다고 답했고 추가질문은 없었습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경찰·서북청년단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 및 토벌대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김주하 앵커는 제주4‧3사건에서의 수많은 민간인 희생이 이승만 대통령의 과오라고 지적했지만, 김덕영 감독은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의 무장봉기에 초점을 맞춰 제주4‧3사건의 본질을 흐렸습니다. 사실상 제주4‧3사건을 왜곡한 것이지만 김주하 앵커는 이를 제대로 반박하지도 추가질문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 모니터 대상

① 방송 : 2024년 1월 12일~2월 22일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MBN ‘건국전쟁’ 관련 방송 뉴스

② 신문 : 2024년 1월 12일~2월 23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건국전쟁’ 관련 지면 기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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