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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흘리고 언론이 받아썼다’ 이선균 죽음에 사회적 흉기된 언론
등록 2023.12.29 08:49
조회 527

배우 이선균 씨가 27일 자신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씨는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는데요. 유흥업소 실장의 진술에 의존해 3개월 넘게 이어진 수사에서 경찰은 이 씨를 소환조사마다 포토라인에 세웠고, 범죄 혐의가 확인되기도 전에 피의 사실을 언론에 흘렸습니다. 언론은 무분별한 경찰 발 받아쓰기에 이어 사생활까지 선정적으로 전했는데요. 이 씨 죽음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언론 보도의 문제를 살펴봤습니다.

 

사망 도구 공개한 언론, 자살보도 권고기준 무시

이선균 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7일, 언론은 ‘속보’를 앞세우며 경쟁적으로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TV조선 보도를 시작으로 24시간 동안 2,600건이 넘는 기사가 네이버에 올라왔습니다. OSEN 70건, 스포츠조선은 60건, 위키트리 50건 등 비슷한 내용에도 언론들은 반복적으로 기사를 작성했는데요. 무분별하게 쏟아진 기사에는 사망 도구를 언급한 제목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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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균 씨의 사망 방법을 노출한 기사 제목 (12/27)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자살보도 윤리강령>에는 “언론은 자살 장소 및 자살 방법, 자살까지의 자세한 경위를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자살 사건을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적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엔 ‘000’이란 단어부터 기사 제목에 버젓이 사용됐습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도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은 보도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는데요. “자살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거나 묘사하면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살에 관한 정보나 암시를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특히 “유명인의 자살이나 자살시도를 다루는 보도는 모방 자살을 초래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는 것을 유념”하며 신중히 보도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유명인의 죽음을 앞세워 언론이 조회수 장사를 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언론은 사망 소식을 전할 때, 보도 말미에 모방 자살을 막기 위해 자살 예방 전문가 상담 전화 안내 문구를 남깁니다. 이선균 씨 사망 소식을 전한 언론 보도도 마찬가지인데요. 기사에서는 구체적인 자살 방법을 알리고 기사 하단엔 자살 방지 상담 전화 문구를 남기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제력을 잃은 속보 경쟁 속에 무책임한 언론의 기사는 사회적 흉기가 될 뿐입니다.


TV조선, ‘단독’ 달고 유서 공개

TV조선은 이선균 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당일 저녁종합뉴스에서 이 씨의 유서 내용 일부를 보도했습니다. TV조선 <“이것밖에 방법 없어”...‘거짓말 조사’ 자청>(12월 27일 전정원 기자)은 “‘이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취지의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아내와 소속사 대표에게 남긴 유서 내용을 ‘단독보도’라며 공개했습니다. 직접 취재한 것도 아닌 전해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유서 공개는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위반이고, 도덕적으로도 부적절합니다. 윤리강령은 “언론은 자살 보도에서 자살자와 그 유족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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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균 씨의 유서 내용을 보도한 TV조선(12/28)

 

더 큰 문제는 TV조선의 보도 이후 이를 문제의식 없이 받아쓴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는 점입니다. 스타뉴스 <고 이선균 유서 공개..아내 전혜진에 “어쩔 수 없다”>(12월 27일 이승훈 기자)가 가장 먼저 해당 소식을 받아썼는데요. 스타뉴스는 TV조선이 공개한 유서 내용에 덧붙여 “경찰이 유족들의 요청에 의해 이선균의 유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했음에도 “이선균의 유서를 공개한 TV조선을 향해 (대중들이)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TV조선 측이 어떠한 경로로 이선균의 유서를 입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유족들의 요청을 완벽하게 무시한 채 배려라곤 전혀 하지 않은 보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는데요.

 

이후에도 이데일리, 천지일보, OSEN 등이 TV조선을 언급하며 이 씨의 유서 내용을 전했고, 지금까지 150건이 넘는 기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자들은 TV조선이 전한 유서의 내용이 어떤 방식으로 공개되었는지 의문이라면서도 불확실한 입수 경로를 가진 기사 내용을 전하는데 서슴없었는데요. 윤리강령도 저널리즘의 원칙도 무시된 자극적이며 경쟁적인 언론의 민낯이 또다시 드러났습니다.

 

유흥업소 실장과의 대화 공개한 KBS

이선균 씨의 마약 투약 혐의를 명확한 증거 없이 무리하게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계속 제기됐던 상황이지만 수사가 계속됐던 이유 중 하나는 유흥업소 실장 A씨의 진술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KBS <“이선균, 5차례 투약” “허위주장”>(11월 24일 윤아림 기자)는 “이선균 씨와 유흥업소 실장 A 씨의 전화 통화 내용을 입수”했는데, “두 사람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등장”한다고 보도했습니다.

 

KBS는 마약 음성 판정 결과보다 이선균 씨와 유흥업소 실장 A 씨와의 친분을 강조하고, A 씨의 진술에 의존해 수사를 펼치고 있는 경찰 조사에 힘을 실은 것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적 친분이 마약을 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이 씨 측에서 A 씨의 주장이 ‘악의적 비방’이며 ‘허위 사실’이라고 밝히는 상황인데 직접적인 증언 대신 개인 사이의 대화를 공개한 KBS 보도는 대중의 호기심 뒤에 숨어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침해했을 뿐입니다.

 

경찰이 흘린 진술 내용을 단독이라 보도한 JTBC

이선균 씨가 사망하기 전날, JTBC는 <“수면제로 알고 빨대 이용해 코로 흡입”>(12월 26일 윤정주 기자)에서 경찰이 “유흥업소 실장으로부터 ‘이 씨가 빨대를 이용해 코로 흡입하는 걸 봤다’는 진술을 확보한 걸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경찰이 ‘흘린 것’으로 보이는 진술 내용을 JTBC가 단독이라 보도한 것인데요. 이 씨 측이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유흥업소 실장 A 씨가 이선균 씨가 “마약이라는 걸 알고 했다”고 진술한 내용이 수사 과정에서 보도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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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균 씨와 실장 김 씨의 경찰 진술 내용을 입수해 보도한 JTBC (12/26)

 

이 씨의 마약 수사 내용은 수사 초기부터 공공연하게 언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언론은 마약 투약 배우라고 의심이 될 만한 내용이나 새어 나와서는 안 되는 경찰 조사 내용도 무분별하게 보도했습니다. 결국 경찰의 무책임한 피의 사실 흘리기와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는 이 씨를 극단으로 몰고 갔습니다.

 

반복되는 무책임한 언론 보도, 구체적 대안 제시해야

이선균 씨의 사망 이후에도 비정한 언론 보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겨레 <사설/이선균 죽음, 경찰 ‘무리한 수사’ 아니라고 할 수 있나>(12월 27일)는 경찰은 “이 씨가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피의자 인권 보호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며 “그를 소환할 때마다 포토라인에 세우고 검증되지도 않은 조사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경찰은 언론 핑계를 대지만, “내사 사실을 경찰이 흘리지 않았다면 수사권도 없는 언론이 무슨 수로 알 수 있겠나”며 “경찰이 강제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물이 언론에 공개된 것을 경찰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면 과연 누가 믿겠냐”고 일갈했습니다.

 

이선균 씨를 포토라인에 세우며 피의 사실을 흘린 경찰과 확인되지 않은 의혹과 사생활을 가십거리로 다룬 언론까지 모두 그의 죽음에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유명인을 ‘망신 주기 수사’로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개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무책임한 보도가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자살 예방 문구만을 기계처럼 적어 넣을 것이 아니라 언론은 자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12월 24일~28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된 ‘이선균’ 관련 보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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