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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상속세 폐지 논란’에 ‘한국도’ 외치며 반색한 조선일보·경제지, 영국언론은 어떻게 보도했나?9월 24일(현지시각)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가 단계적으로 상속세를 폐지할 계획이라는 유력매체 ‘더 타임즈’ 보도로 영국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전임 리즈 트러스 총리가 때에 맞지 않는 감세정책을 추진하다가 취임 45일 만에 사임하는 불명예를 안았기 때문에, 영국에서 감세정책은 뜨거운 주제입니다. 그런데 영국의 ‘단계적 상속세 폐지 계획’ 보도에 뜬금없게도 바다 건너 한국 언론들이 크게 환영하고 나섰습니다.
상속세 폐지 보도에 대한 영국 4대 정론지 ‘더 타임즈’, ‘더 가디언’, ‘인디펜던트’, ‘텔레그래프’ 보도를 살펴본 결과, ‘텔레그래프’가 상속세 폐지 캠페인을 주도하는 가운데 진보성향의 ‘더 가디언’, ‘인디펜던트’가 상속세 폐지 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경제지 등 국내 일부 매체는 ‘상속세에 대해 영국인들의 부정적 여론이 많다’는 점만 부각하며 상속세 폐지 여론전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조선일보‧경제지 ‘영국 상속세 폐지 시도 가능성’에 일제히 “상속세 손봐야”
조선일보는 9월 26일 1면과 6면에 걸쳐 관련 소식을 다뤘는데요. <상속세 원조 영국도 단계적 폐지 추진>(9월 26일 정석우‧류재민 기자)에서는 영국의 상속세 폐지 움직임을 중요하게 다뤘고, <기자의 시각/상속세, 성실납세자 우롱하나>(9월 27일 정석우 기자)에서는 상속세가 ‘이중·삼중 과세’라며 “성실 납세자를 우롱하는 상속세는 이제 고칠 때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매일경제 <사설/상속세 폐지 속도내는 영국, 우리도 세계 최고세율 손봐야>(9월 26일), 서울경제 <만파식적/상속세 폐지 나서는 영국>(9월 25일)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고, 한국경제 <데스크 칼럼/행동주의펀드도 비판하는 상속세>(9월 24일 이상열 기자)처럼 지난 9월 중순 행동주의 펀드 대표들이 최근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며 비판한 내용을 언급하며 상속세 개편을 주장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 언론들이 많이 인용한 ‘더 타임즈’의 24일 자(현지시각) 기사 <리시 수낵 총리 상속세 감면 계획>을 보면, 영국의 상속세 폐지 계획은 아직 공식화된 것이 아닙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상속세 감면 계획이 있다고 말한 영국 정부 내 익명 취재원은 3명이지만 또 다른 익명의 영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상속세 폐지를 공약으로 할 것을 고려하는 참모들은 10명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영국 언론은 영국 내 사망자의 3.76%만이 상속세 납부 대상이지만, 여론조사 결과 31%의 영국민이 상속세를 내게 될 것으로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15%의 영국민이 상속세를 낼 만큼 충분한 상속을 받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는 대목을 지적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아서, 2021년 발표된 논문 <상속세 및 증여세 개선방안 연구 : 공제조항 및 부동산 과세체계를 중심으로>(박준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상속세 대상이 되는 피상속인의 수는 전체 사망자의 2.7%이며 실효세율은 15.7% 수준입니다. 그러나 국내 언론 기사에서 이런 지적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국 언론들 지적은 거르고 익명 취재원 발언 ‘가장 혐오스러운 세금’ 제목으로 부각한 한국언론
△ 영국 언론들의 우려는 전하지 않은 채 ‘가장 혐오스러운 세금’이라는 표현만 인용해 기사 제목으로 부각시킨 언론들.
하지만 이는 사실 영국 언론에서 인용한 익명 취재원의 말을 전한 것에 불과하다.(9/26, 네이버 검색화면)
리시 수낵 총리가 상속세 폐지를 고려하고 있는 배경에는, 영국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당에 10% 이상 지지율이 밀리고 있는 집권 보수당 상황이 반영됐다는 것이 영국 언론들의 평가입니다. ‘더 타임즈’는 “정부 내부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정치적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며, “여론조사에 따르면 (상속세는) 영국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세금”이라는 익명 취재원의 말을 전했습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를 포함해 12개 매체가 관련 소식을 전하며 ‘가장 혐오스러운 세금’이라는 표현을 기사 제목에 썼지만, 이는 영국 언론에서 인용한 익명 취재원의 말을 전한 것에 불과합니다.
영국 내에서도 리시 수낵 총리의 상속세 폐지 움직임에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디펜던트’ 24일 자(현지시각) 보도 <영국 최고 부자들을 위한 수낵 ‘상속세 인하’, 그리고 전면 폐지를 원하다>는 영국 노동당의 대런 존스 하원의원을 인용해 “1년 전 리즈 트러스는 재정 지원 없는 세금 감면으로 경제를 쓰레기통에 던졌다”며, “이제 리시 수낵 총리는 리즈 트러스가 원했던 일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1998년부터 ‘더 가디언’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폴리 토인비는 앞서 6월 6일(현지시각) 칼럼 <억만장자에 의해 주도되는 상속세 반대 캠페인? 지금은 보수당에게 진짜 절박한 시기다>에서 나딤 자하위 전 보수당 대표가 세금 미납 논란으로 해임당한 것을 꼬집으며 “상속세 폐지 캠페인을 주도하는 억만장자 나딤 자하위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것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국 내의 지적들 역시 국내 언론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모니터 대상 : 2023년 9월 21일~26일 ‘상속세’ 관련 온라인, 신문 지면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