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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별로 짚어본 정의연 보도⑦ 길원옥 할머니 치매 이용해 돈을 빼갔다?
등록 2023.08.0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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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선생이 기자회견을 열자 언론은 경쟁적으로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이용수 선생이 문제를 제기한 본질과 거리가 먼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부정 의혹’, ‘윤미향 의원 기부금 유용 의혹’ 등이 언론을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관련 보도 다수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확인조차 거치지 않았습니다.

2023년 2월,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정의연 활동가에 대한 혐의는 전부 무죄, 윤미향 의원의 경우 일부 횡령 혐의에 대해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윤 의원도 사실상 대부분 무죄를 판결받은 셈입니다. 그러나 언론은 2020년 무차별로 쏟아낸 오보나 왜곡보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존 보도 내용을 기정사실화하고, 심지어 법원 판결과 검찰 수사를 비판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3년 전 언론보도 실태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언론보도를 위한 저널리즘 원칙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나온 의혹과 쟁점을 정리한 총 9편의 보고서를 싣습니다.

 

‘치매 이용 기부하게 했다’의 시작 : 조선일보

2020년 5월 7일 이용수 선생의 기자회견 중 ‘모인 돈이 할머니한테 쓰이지 않는다’는 문제제기가 나오자, 이후 언론은 ‘정의연 기부금 운영에 문제가 있다’, ‘윤미향 의원이 기부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검찰이 관련 수사에 나서며 2020년 5월 21일 정의연 마포 쉼터 ‘평화의 우리집’을 압수수색하기도 했습니다. 마포 쉼터는 안성 쉼터가 의혹 대상이 되면서(정의연 전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시한 ‘2019년 공익법인 결산서류’를 근거로 한국일보가 처음 문제제기함.) 안성 쉼터와 함께 ‘불투명 운영’ 의혹을 받았는데요(동아일보, 연합뉴스 참조). 이후 2020년 6월 7일, 정의연 마포 쉼터 소장이 전날 경기도 파주시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이후, 조선일보 <[단독] 할머니 가족 “숨진 소장이 돈 빼내” 정의연 “아들이 돈 요구”>(2020/6/12 조유진 원우식 황지윤 기자)에서 “지난 6일 숨진 채 발견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마포쉼터 소장 손모(60)씨가 쉼터에서 머물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계좌를 활용해 돈 세탁을 했으며, 이 문제를 제기하자 손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주장이 할머니 가족으로부터 제기됐다”는 단독 보도를 하게 됩니다.

 

조선일보 기사의 출처는 네이버 기사 댓글과 마포 쉼터에서 마지막까지 머문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며느리 “조모씨”와 가진 “본지 인터뷰”인데요. 조선일보는 “지난 7일 손씨 사망 소식을 전한 네이버 기사에 ‘위안부 할머니 가족’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면서 시작하는 댓글이 달렸다”며 “글쓴이는 ‘저 소장님이 할머니 은행 계좌에서 엄청난 금액을 빼내서 다른 은행 계좌에다가 보내는 등의 돈세탁을 해온 걸 알게 돼서, (소장에게) 그 금액을 쓴 내역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저런 선택을…’이라고 썼다”고 댓글을 인용했습니다.

 

또한 조선일보는 며느리가 “해당 댓글을 쓴 필자가 자신의 딸이라고 확인했다”며 “(국가에서 위안부 피해자에게) 돈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몰랐다”고 했다고 알렸습니다. 조선일보는 정부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얼마의 금액을 지원받는지 쓴 뒤, 며느리 조 모 씨가 숨진 마포 쉼터 소장에게 보냈다는 문자 내용 등을 기사에 덧붙였습니다. 즉, 소장이 숨진 뒤 길원옥 할머니 양자 부부 가족의 주장을 토대로 쓰인 기사인 것입니다.

 

‘치매 이용 기부하게 했다’의 사실 : 1심 무죄

2020년 9월 14일 검찰은 윤 의원을 보조금관리법 위반 등 8가지 혐의로 기소했는데요. 이 중 윤 의원이 ‘숨진 마포 쉼터 소장과 공모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치매를 앓고 있는 길원옥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하여 그의 상금 등 7920만 원을 정의연에 기부·증여하게 했다’며 준사기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그러나 1심 판결은 달랐는데요.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검찰은 2017년 11월 길원옥 할머니가 받은 여성인권상 상금 1억 원 중 5000만 원을 정의기억연대에 후원한 것을 문제 삼았으나 재판부는 같은 출처 돈 1억 원 중 1000만 원을 길원옥 할머니가 양자에 준 사실에 비춰 “길씨가 1000만 원 지급에 대해선 정상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5000만 원에 대해선 그렇지 못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길원옥 할머니 양자인 목사 황 모 씨가 법적으로 입양된 시점은 2020년 6월인데, 재판부는 “입양은 수천만 원을 기부하는 재산상 법률행위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인 점에 비춰 (2020년 6월) 이전의 각 기부행위도 길씨 의사에 따라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또한 “재판부는 길씨가 치매 진단을 받은 건 사실이나 형법상 ‘심신미약’ 상태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는데요. 검찰이 근거로 삼은 ‘K-MMSE’라는 치매 진단 지표의 경우 “치매진단을 위해 고안된 검사가 아니고 약 처방시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검사 정확성의 오류, 1년에 한 번씩 반복 검사하는 환자의 학습효과로 인한 오류 때문에 의사들은 이 점수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더불어 길원옥 할머니가 2002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재일조선학교, 대북 지원, 전쟁 피해자 등의 문제에 활발히 연대해온 점 등을 종합해 재판부는 길원옥 할머니가 자기 의사에 따라 기부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결론 냈습니다.

 

‘치매 이용 기부하게 했다’ 보도 양상은?

양자 부부 주장 그대로 옮긴 조선 “근본 원인은 정의연”

조선일보 <[단독] 할머니 가족 “숨진 소장이 돈 빼내” 정의연 “아들이 돈 요구”>(2020/6/12 조유진 원우식 황지윤 기자) 이후 위키트리, 국민일보, 한국경제, MBN, 서울경제, 중앙일보, 세계일보에서 이를 받아쓴 기사가 나왔습니다.

 

다음날 지면에는 조선일보가 <[사설] “숨진 소장이 돈 빼” “가족이 돈 달라 해” 이 기회에 다 밝혀야>(2020/6/13)를 싣고 “정의기억연대가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 계좌를 활용해 돈세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길 할머니가 머물던 쉼터 소장의 사망도 이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며 “이런 일까지 생기게 된 근본 원인은 정의연이 불투명한 회계 처리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조선일보가 또다시 <[단독] “길원옥 할머니 통장서 돈 빠져… 이유 묻자 쉼터소장 무릎 꿇더라”>(2020/6/17 원우식 기자)라는 기사를 냈습니다. 길 할머니 양자 부부 특히 며느리 조 모 씨와 마포 쉼터 소장 사이에 있었던 일이 주된 내용으로, 조선일보가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이라고 밝혔으나 주된 내용은 며느리 조 모 씨와 이를 조사한 수사당국의 말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가 한창이던 2020년 6월 1일 “황모 목사와 그의 아내인 조씨는” “마포쉼터를 방문”했고 “조씨는 손씨에게” 길원옥 할머니 명의의 통장 내역을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이를 확인하던 도중 ‘손 씨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 며느리 조 모 씨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주장은 곧바로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 되었고, 이 기사는 국민일보, 한국경제에서 받아썼습니다.

 

당일 오후 중앙일보가 ‘검찰이 길원옥 할머니 아들 부부를 2020년 6월 16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는 내용으로 <[단독]길원옥 할머니 가족 “뭉터기로 돈 빠져나갔다” 검 진술>(2020/6/17 이우림 정진호 기자)이란 단독보도를 냈습니다. 기사 본문 중 길 할머니 가족이 ‘뭉터기로 돈이 빠져나갔다’고 말한 내용은 없으나, 제목에는 해당 내용이 실렸습니다. 이날 검찰 수사 내용과 당시 미래통합당 위안부 할머니 피해 진상규명 TF 위원장이었던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이 페이스북에서 한 말, 수요집회에서 정의기억연대의 발언 내용 등이 다수 기사화됐습니다.

 

줄줄이 이어지는 조선일보 단독보도

이후 눈에 띄는 단독 기사는 대부분 조선일보에서 나왔습니다. 조선일보 <[단독] 길원옥 할머니, 쉼터 떠나며 외쳤다 “이제 우리집 간다!”>(2020/6/19 원우식 기자)는 “본지가 입수한 길 할머니 며느리 조모씨의 입장을 담은 문서”를 바탕으로 쓰인 것으로 길 할머니가 마포 쉼터를 떠나기로 결정한 뒤 ‘이제 우리 집 간다!’고 말했다는 내용입니다.

 

며칠 뒤 나온 조선일보 <[단독] 길할머니 성금 1억, 1시간새 1원도 안남고 다 빠져나갔다>(2020/6/28 조유진 기자)는 “본지가 확인한 길 할머니 통장 내역에 따르면”이라고 기사 내용의 출처를 밝히고 있는데요. 조선일보는 길원옥 할머니가 2017년 11월 받은 여성인권상 상금 1억 원에 대해 “그 1억원은 그날 오전 11시 56분 4차례에 걸쳐 전액 출금됐다”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정의연이 “500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하시고 1000만원은 양아들에게 지급”했다고 해명한 것을 기사에 실으면서도 “나머지 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고 썼습니다. 조선일보가 기사화한 해당 내용, 즉 상금 1억 원 중 5천만 원을 정의연에 기부하게 했다는 것이 검찰이 윤 의원에 준사기 혐의를 적용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 조선일보 <[단독] 현실·꿈 구분 못하는 길 할머니에 유언장 쓰게 한 정의연>(2020/6/30 원우식 기자)은 “본지가 미래통합당 박성중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길원옥 할머니가 “2016년 이전부터 치매를 알았다”고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조선일보가 박성중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보고서란 정의연의 전신 정대협이 “2017~2019년 여성가족부로부터 매년 피해자 쉼터 운영비로 1500만~3000만원을 지원받고, 그에 따른 활동 내역과 할머니들의 건강 상태를 기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 최종 결과보고서’”입니다. 조선일보는 해당 보고서를 바탕으로 ‘길 할머니가 2016년 이전부터 치매를 앓아왔다’고 주장하며 “이런 상태일 때 길 할머니가 유언장을 작성하고 윤 대표와 대화하는 모습이 담긴 유언 동영상이 제작돼 유튜브에 올라왔다”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어 같은 보고서를 바탕으로 조선일보는 <[단독] 정의연, 힘겨워한 길할머니 후원행사 끌고다녀>(2020/6/30 원우식 기자)라는 단독보도를 또 냈습니다. 조선일보는 해당 보고서를 인용해 “길 할머니는 치매 이외에도 파킨슨병 등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했다. 그러나 정의연은 이러한 길 할머니를 정의연 모금 행사 등 대외 활동에 여러 차례 대동했다”, “길 할머니는 정의연 행사 참석 후 고통을 호소했다”고 단편적으로 기사화했습니다.

 

이후 조선일보 입장은?

‘치매 이용 기부’ 기소에 조선, 1면 머리기사로 배치

2020년 9월 14일 검찰이 윤 의원을 기소하자 <검찰 “윤미향, 정대협 기부금 1억 횡령”…사기 등 8개혐의 기소>(2020/9/14 원우식 기자)를 낸 조선일보는 그중 ‘길 할머니의 치매를 이용해 정의연에 기부하게 했다’는 혐의만 따로 떼어 <검찰 “윤미향, 치매 할머니 5000만원 정의연 기부하게 해” 준사기 혐의>(2020/9/14 김동하 기자)란 기사를 하나 더 썼습니다.

 

조선일보가 해당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은 다음날 1면 머리기사로 배치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윤미향, 치매 할머니 돈까지 기부 유도”>(2020/9/15 원우식 기자)를 실었습니다. 이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는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특혜 휴가 의혹 관련 내용으로, 조선일보는 이 논란보다 검찰의 윤 의원 기소사실 중 준사기 혐의에 방점을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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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기소 다음날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지면 1면(2020/9/15)

 

조선일보는 검찰 기소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단독보도를 냈습니다. <[단독]검찰 “윤미향, 길원옥 할머니 치매 알고 있었다”>(2020/9/16 표태준 남지현 기자)에서 조선일보는 “검찰 등을 본지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윤 의원과 마포 쉼터 소장 손모(사망)씨는 이미 2014년부터 길 할머니의 치매 증세를 알고 있었고 병원에 데려가 진단까지 받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런데도 윤 의원과 손씨는 2017년 11월 길 할머니 계좌로 전달된 여성인권상금 1억원 중 5000만원을 정의기억재단(현 정의연)에 기부하게 했다”고 적었습니다.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진단까지 받았다’는 근거는 1심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K-MMSE’ 검사 결과로 재판부는 “해당 검사는 간이 정신상태 검사로 환자의 인지기능을 간단히 알아보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참고: 한겨레 기사).

   

무죄 판결에 “윤 의원 입장만 받아줘”

2023년 2월 10일 법원 1심 판결이 나오자 다음날 1면 지면에서 조선일보는 <윤미향 1심서 벌금형… 법조계 “납득 어려워”>(2023/2/11 신지인 안준현 기자)를 싣고 ‘법조계’ 이름을 빌려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날 <[사설] 2년 5개월 끌다 면죄부성 벌금형 선고한 윤미향 판결>(2023/2/11)에서도 “법원이 윤 의원 측 주장만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면서도 별다른 근거를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윤 의원을 기소한 것은 문재인 정권의 검찰이었다”며 또다시 전 정권 이야기를 꺼내 “당시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안 한 것인지,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20년 5월 7일~2023년 2월 17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윤미향 길원옥’, ‘윤미향 치매’로 검색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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