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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미국의 대통령실 도청에 “왜 도청하냐 따지면 웃음거리”뉴욕타임스는 현지시각 4월 8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을 도청한 정황이 담긴 미국 국방부 기밀 문건이 소셜미디어에 유출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해당 문건에는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일 포탄을 미국에 제공할지 고심하는 등 민감한 대화 내용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둔 상황에서 불거진 도청 의혹으로 대통령실 입장 표명에 관심이 모아졌는데요. 대통령실은 “과거의 전례, 다른 나라의 사례를 검토해서 대응책을 한 번 보겠다”면서도 “미국 국방부와 법무부가 조사를 요청한 만큼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며 “미국 측과 필요한 협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여야 모두 도청 우려, 졸속 이전으로 ‘대형 보안사고’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도청 의혹으로 불거진 대통령실 용산 졸속 이전 문제를 꺼냈습니다. 경향신문 <용산 이전 때 여야 모두 ‘도청‘ 경고…우려가 현실 됐다>(4월 11일 이유진 기자)는 “(지난해 5월)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 도청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나왔다”며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의 국가안보실 논의를 도청한 사실이 미국 기밀문서로 떠오르면서 대통령실 용산 졸속 이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겨레 <용산 대화 이미 샜는데…대통령실 “청와대보다 보안 완벽”>(4월 11일 조윤영‧권혁철‧배지현 기자)은 “윤석열 대통령이 보안 취약 등에 대한 우려에도 ‘용산 대통령 시대’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이번 같은 ‘대형 보안사고’가 터졌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해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기면서 내부 시설 공사를 급하게 하는 과정에서…외국 정보기관이 벽이나 천정 등에 도청장치를 설치했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 만큼, “보안이나 안전은 오히려 (청와대보다) 여기가(용산이) 더 안전하다”는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 본질은 ‘미국 기밀 유출’
조선일보는 도청 의혹에 대한 대통령실 대응을 ‘원칙적 대응’으로 평가했습니다. 미국 정보당국의 도‧감청 의혹에도 대통령실이 미국 정부에 항의하지 않고 미국 측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내자 상당수 시민들이 ‘저자세 외교’라며 질타했는데요. 이와 달리 조선일보는 <미 기밀문서 유출… 한국·이스라엘 도청 정황도>(4월 10일 김진명‧정철환 특파원)에서 “공개된 내용이 (한국 정부의) 종전 입장과 다르지 않으며 미국 측과 필요한 협의를 하겠다”는 대통령실 입장 표명을 “원칙적 입장”으로 평가한 겁니다.
△ 미국 기밀문건 유출에 ‘러시아 조작 가능성’ 제기하며 이미 알려진 내용이라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문건 내용에 대해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포탄을 한국에 요청했다는 사실”로 “이미 알려진 내용”이라고 전했는데요. <“러, 자유진영 이간질하려 미 문서 조작해 흘렸을 수도”>(4월 10일 김진명‧정철환 특파원)에서도 “한국에 포탄 요청했다는 문건의 내용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유출된 문서 내용도 이런 정황과 일치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 유출된 터라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뉘앙스입니다. 또한 “러시아가 선택적으로 문서를 위조해 허위 정보를 역(逆)으로 흘렸을 수 있다”거나 “러시아를 통해 나온 정보는 사실 여부를 떠나 매우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이번 기밀 유출에 “미국이 우방을 감청했다는 정보를 흘려 자유 진영을 이간질하려는 러시아 측의 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데 무게를 뒀습니다.
조선일보는 도청 의혹의 본질을 ‘미국 기밀문서 유출’로 한정하기도 했습니다. <팔면봉>(4월 10일)에서 “국가 기밀 문서 유출‧확산 한 달 뒤에야 알아차린 미 정보 당국.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아시는지”라며 이번 사안을 단순히 미국 정부에 국한된 일인 양 언급한 겁니다. 미국 정보당국의 한국 정부 도‧감청 의혹은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을 불법 도‧감청했다는 점과 우리 외교당국의 민감한 정보가 노출됐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인데도 말입니다.
한겨레 “저자세 외교”, 경향‧중앙‧한국‧매경 “미국에 재발방지 요구해야”
한겨레는 미국 정보당국에 도청당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항의하지 않는 윤석열 정부의 저자세 외교를 비판했습니다. <사설/‘도청’에 주권침해 당하고도 미국 눈치 보는 대통령실>(4월 11일)에서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국가안보실을 훤히 들여다보며 도청을 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지만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미국 눈치를 보며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라며 “아무리 미국 한국의 안보에 절대적인 영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든 태도”라고 지적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방문에 이번 사태의 불똥이 튈까 봐 전전긍긍하며 스스로 한국의 외교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경향신문, 중앙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는 미국에 경위 설명과 재발 방지를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경향신문 <사설/미 CIA 용산 안보실 도청, 사과·재발방지 약속 받아라>(4월 11일)는 “굳건한 동맹은 신뢰가 바탕”이라며 “정부는 미국에 유출된 기밀 내용‧규모‧경로 등에 대한 경위 설명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도청이 확인된다면 정부는 분명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도 받아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중앙일보 <사설/미국은 도·감청 해명하고, 동맹에 악영향 없도록 해야>(4월 11일)는 “미국은 빠른 시간 안에 경위를 파악해 설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며 정부에 단호한 자세를 촉구했습니다.
한국일보 <사설/대통령 방미 전 ‘안보실 감청’ 악재… 당당하게 대응하라>(4월 11일)는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신속한 매듭이 필요”하지만 “미국에 당당하게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매일경제 <사설/동맹 불신 키운 미 불법감청, 사과·재발방지 약속 받아야>(4월 11일)도 “도청이 사실로 밝혀지면 아무리 우리의 맹방이더라도 따질 건 따져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경제 “우리도 바이든 정부 기류 알아내야”
동아일보는 대통령실의 취약한 보안인프라 보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사설/감청에 뚫린 대통령실…취약한 보안인프라 보강 서둘러야>(4월 11일)는 “대통령실의 보안시스템은 지난해 이전 검토 시점부터 군 출신의 여야 의원 모두가 제기했던 문제”로 “대통령실은 내부 보안 인프라를 전면 재점검하고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관계를 철저히 확인하고 상응 조치를 미국으로부터 받아”내야 한다고 미국의 사과와 재발방지 요구를 ‘상응 조치’로 에둘러 말하며, 대통령실의 보안인프라 보강이 우선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경제는 도청 의혹에서 중요한 것은 ‘보안의식’이라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사설/도·감청에 뚫리는 국가 안보, 이래서야 정보·외교 전쟁에서 살아남겠나>(4월 11일)는 “미국 언론을 통한 유출 정보를 보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심지어 이스라엘 같은 미국의 전통 우방국 기밀도 있다”며 “한국을 특정한 정보 수집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안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한국의 안보‧보안 인식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며 “중요한 것은 우리의 보안의식”이라고 주장한 것인데요.
우리나라는 “4강국 틈새에서 열전과 냉전, 다시 ‘신(新)냉전‧신열전’으로 급변하는 시대의 최전선에서 생존해야 하는 국가가 맞나 싶을 때가 잦다”며 “‘카카오 먹통’ 사고 때 마비된 카톡 행정을 보면 보안의식 부재는 공공부문에 만연”해 있으니, “미국 감청에 흥분할 게 아니라 우리도 조 바이든 정부의 내밀한 기류까지 어떻게든 확보하도록 각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감청에 흥분할 게 아니라 우리 정부도 미국 정부를 도‧감청해서 바이든 정부의 내밀한 기류까지 알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경제는 도‧감청이 불법이고, 특히 동맹국에 대한 도‧감청은 동맹 간 신뢰를 깨뜨리는 중대행위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요?
조선일보, 미국 도청능력 감탄 “왜 도청하냐 따지면 웃음거리”
조선일보는 미국 도청능력에 관해 자세히 전했습니다. <미 첩보수집 정보기관만 18곳…메르켈 등 35국 정상 도청하기도>(4월 11일 김진명 특파원, 정석우 기자)는 “미국의 도청 역량”과 “미국의 동맹국 도청 역사”를 상세히 짚었는데요. “적국과 우방을 가리지 않는 미국의 전방위적 도청은 과거에도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고 “미국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며 도청 문제에 대처”해왔다면서도 미국 정보당국의 도‧감청을 비판하거나 우리 정부의 단호한 대응을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바닷속에서도 도청하고, 우주에서도 도청한다”는 말을 인용해 미국의 도청 역량에 감탄했을 뿐입니다.
조선일보는 <“안보문제는 초당적 사안…야당, 정부 비방 소재로 삼아선 안돼”>(4월 11일 노석조‧김은중 기자)에서 외교‧안보 원로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정보전에는 피아가 따로 없다며 우리 정부의 첩보 대응력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조선일보가 취재한 외교‧안보 원로는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김숙 전 유엔 대사(전 국정원 1차장),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 이용준 전 북핵 대사,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 등 모두 보수정부에서 외교‧안보 관련 직책을 역임했던 인사입니다. 초당적 사안인 안보문제에서 보수 측 조언만 들은 겁니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외교‧안보 원로 조언은 “우방도 첩보전 벌이는 게 현실”로 “동맹인데 왜 도청하냐 따지면 웃음거리”가 된다거나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항상 내 말 누가 듣는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미국 정보당국 도‧감청에 대한 비판은 없고 “미국 측과 협의”하겠다는 대통령실 대응에 대해 “감정적 대응”을 자제한 것으로 적절하다고 평가하고, 우리 정부를 향해 ‘조심성’을 당부했습니다. 유출된 내용은 “언론에 수차례 보도된 것으로 특별히 새로운 것도 예민한 내용도 없다”며 “(러시아가) 미국과 우방국의 전열에 균열을 일으키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독일‧프랑스가 미국에 항의한 것도 세상물정 몰라서일까
미국 국가안보국(NS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년 10월 미국의 무차별적인 감청 행태를 폭로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감청 대상에는 동맹국인 독일, 프랑스, 브라질 등 각국 정상이 포함됐고, 당시 오바마 대통령에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사실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국가안보국 정보수집 행위에 대한 항의 표시로 예정된 미국 국빈방문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덴마크 공영방송 DR의 2021년 5월 보도로 미국 국가안보국의 감청 사실이 또다시 드러나자,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사실이라면 동맹국 사이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미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독일, 프랑스, 브라질 등의 각국 정상이 조선일보가 인용한 원로 발언처럼 우방 사이에서도 첩보전을 벌이는 게 현실이라는 것을 모르고 웃음거리가 되기 위해 미국 정보당국의 도‧감청에 강력하게 항의한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게나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데요. 그러나 단순히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앞서 우호적인 외교관계가 왜 필요한지 분명히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외교관계에서 우리나라의 자존감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외교관계는 우호가 아니라 종속에 가깝습니다. 외교는 자국의 주권 및 생존권과 함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우리 정부가 자존감을 지키면서도 우호적 관계를 깨뜨리지 않는 외교를 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 있는 보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4월 10~11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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