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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경제6단체 환영광고 1면 게재, 사회적 책임 방기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3월 16~17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합니다.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안을 내놓은 지 3일 만인 3월 9일 대통령실의 발표 내용입니다. 경향신문, 동아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6개 종합일간지와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2개 경제일간지 중 조선일보를 제외한 모든 신문이 다음 날 1면에서 해당 소식을 전했습니다. 또한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신문은 일제히 경제6단체의 윤석열 정부 배상안 환영광고를 실었습니다.
경제6단체 정부안 환영광고, 경향‧한겨레 빼고 모두 게재
△ 경향‧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신문이 실은 경제6단체의 윤석열 정부 배상안 환영광고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의 정부 배상안 환영광고 제목은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한 결단을 응원합니다”입니다. 해당 광고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고 마음의 위로”를 보낸다는 짤막한 언급 이후, 줄곧 정부 배상안을 ‘응원’했습니다. 경제6단체는 “한일간 합의는 양국 간 협력 강화와 동북아 안보 공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번 합의정신에 따라 한일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는데요.
이번 광고는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 중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신문 1면에 실렸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그동안 “한국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판결(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계기로 악화된 한일 간 정치‧외교관계가 경제교류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양국관계의 조속한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2022년 한일 양국 국민 인식조사 결과 발표와 2월 27일 청년세대 대상 한일관계 인식 설문조사 결과 발표에서도 응답자 과반이 “과거보다 ‘미래’를 중시”했다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강조했습니다. 이번 정부 배상안 발표 직후엔 곧바로 환영성명을 냈고요.
조선일보 “일본 영화와 한국 노래 인기, 한일교류 활발”
대통령실의 한일 정상회담 발표와 경제계 환영광고에 일부 신문은 정부 배상안을 뒷받침하는 사설과 칼럼으로 화답했는데요. 조선일보 <사설/징용 해법 낸 윤 방일, 이제 한일 관계 전적으로 일 호응에 달려>(3월 10일)는 “두 나라에 모두 반일, 반한 감정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세력”이 있지만 “국민 교류는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며 “올 들어 일본을 찾은 관광객 3명 중 1명이 한국인”이며 “한국에선 ‘슬램덩크’ 같은 일본 영화가 인기를 끌고, 일본 가요 차트에선 한국 노래가 상위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1998년 10월 일본 대중문화 유입을 전격 허용키로 하면서 양국은 서로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향유해왔습니다. 2002년 가수 보아가 한국 가수로는 처음 일본 가요 차트인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후 한국 가수가 일본 가요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건 일상이 됐습니다. 애니메이션 등 일본 영화가 한국에서 인기를 끈 지도 오래됐습니다. 2017년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한국에서 30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았으며, 지금도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슬램덩크>, <귀멸의 칼날> 등이 박스오피스 상위권입니다. 즉, 한일 양국 국민 교류가 활발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하나의 일상이라는 얘기입니다. 국민 교류가 활발한 것과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조선일보가 해당 사설에서 주장했듯 “사과는 피해자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해야 진짜 사과”가 되는 것이죠.
중앙 “원한‧분노로 일본 못 이겨”, 한경 “특정 판결만 절대시해선 안 돼”
중앙일보 <이혁의 한반도평화워치/강제징용 결단한 한국, ‘실용외교’로 일본 넘어서야>(3월 10일 이혁 전 주베트남 대사)는 “전경련에 따르면 대법원의 징용 판결에 따른 한‧일 관계 악화로 약국 요역 규모는 그 전보다 10%(20조원)가량 줄었다”며 “이번 타결(윤석열 정부 배상안)을 우리가 일본과의 미래 경쟁에서 필히 이기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 삼자고 주장했습니다. “원한과 분노가 일본을 이기기 위한 전략이 될 수 없다”며 “일본과의 협력 지평을 넓혀”서 “하루빨리 일본보다 잘 살고 세계 평화와 번영하는 공헌하는 한국”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는데요.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일본에 대한 원한과 분노’로 해석한 주장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진의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정부 배상안에 반발한 이유는 배상안에 피해를 입힌 일본 정부와 일본 전범기업의 사죄와 배상이 전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와 일본 전범기업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일본보다 잘 살고 일본을 이기려는 이기심의 발로가 아닙니다. 이를 일본에 대한 원한과 분노로 치환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입니다.
한국경제 <백광엽 칼럼/진실을 말하면 고통주는 사회>(3월 10일 백광엽 논설위원)는 “‘진실에 대한 반지성적 태도’는 우리의 고질병”이라며 “한국 사법부 내 판결도 엇갈린다는 분명한 사실을 많은 이가 외면”하고 “‘건국하는 심정으로 썼다’던 특정 재판부의 판결(2012년 대법원 판결)만 바이블처럼 절대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법원마저 오락가락하는 현실”에서 “특정 재판부의 판결문만을 절대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한국경제 3월 6일 사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한국 법원은 오락가락한 적이 없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2012년 대법원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습니다. 이후 파기환송심을 거친 뒤 2018년, 대법원은 다시 한번 “개인의 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일본 전범기업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과 미쓰비시 중공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습니다. 2021년 서울중앙지법에서 대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각하했지만, 대법원 등 최고사법기관 판례를 따르는 하급심 판결과 대법원 판결을 비교하며 “한국 사법부 내 판결도 엇갈린다”고 주장하는 것은 왜곡입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 망각한 언론
민언련 보고서 <강제동원 피해자 내팽개친 보수언론, “윤석열 희생정신 발로” 찬양까지>(3월 9일)에서 언급했듯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한 신문보도에서 피해자 중심적 접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경제6단체가 정부 배상안에 대한 자신들 입장과 일치하는 신문에만 정부 배상안 환영광고를 실은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6단체가 입맛에 맞는 신문에 광고료를 지불하고 입맛에 맞는 광고를 실은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문은 언론이고 언론에는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은 “언론은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국제규범과 헌법에서 보장된 인권이 실현되도록 노력”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제8조는 “모든 사람은 헌법 또는 법률이 부여한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권한 있는 국내법정에서 실효성 있는 구제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밝히고 있죠. 유엔총회가 2005년 채택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은 배상에는 ‘사실의 인정과 책임의 승인을 포함한 공식적 사죄’, ‘피해자에 대한 기념과 추모’, ‘모든 수준의 교육에서 위반행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포함돼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보수신문을 포함한 상당수 언론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경제6단체의 정부 배상안 환영광고를 신문 1면에 버젓이 싣는가 하면, 얼토당토않은 근거와 주장으로 정부 배상안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과연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3월 10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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