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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포르노’ 정쟁 받아쓰기, 엉뚱한 ‘포르노 논쟁’만 키웠다
‘악의적 스토킹’이란 조선일보, 영부인에겐 안 된다는 JTBC
등록 2022.11.21 17:08
조회 1689

윤석열 대통령의 4박 5일간 동남아 해외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는 주최국이 준비한 각국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 참여 대신 개인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김 여사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12일(현지시간)에 선천성 심장질환 환아를 방문했는데요. 대통령실이 공개한 김 여사가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과거 소말리아 유니세프를 방문한 오드리 햅번을 연상시킨다는 이야기와 함께 ‘빈곤 포르노’라며 비판하는 여론이 일었습니다.

 

‘빈곤 포르노’는 기부·모금 캠페인이나 미디어에서 빈곤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대중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모금이나 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사진·영상물을 말합니다. 하지만 ‘포르노’에 꽂힌 정치권과 이를 비판 없이 받아쓰는 언론의 무책임함이 반복되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논란이 흘러가고 있는데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빈곤 포르노’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빈곤 포르노’ 보도, 정치권 막말 퍼레이드만 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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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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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 포르노’ 관련 신문 지면(11/15~18)과 방송사 저녁 종합뉴스(11/14~16) 보도량 ©민주언론시민연합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건희 여사의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 논란이 되고 있”다며 “가난과 고통은 절대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 누구의 홍보수단으로 사용돼서도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지적된 ‘빈곤 포르노’ 논란이 국회의원 입을 통해 언급되자 언론 보도가 늘었는데요. 장경태 의원의 발언을 기준으로 11월 14~16일 지상파 3사·종편 4사 저녁종합뉴스와 11월 15~18일 6개 종합일간지‧2개 경제일간지 지면 보도를 살펴봤습니다(다른 주제의 기사에 ‘빈곤 포르노’가 잠깐 언급된 기사는 제외).

 

신문 지면과 저녁종합뉴스의 경우 보도량은 적었지만, 정치권의 ‘빈곤 포르노’ 관련 발언을 중계하며 정쟁으로 다뤘습니다. TV조선 <여, 장경태 윤리위 제소...“사과 의사 없어”>(11월 16일 황병준 기자)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장 의원의 발언이 있을 수 없는 패륜적 발언이라고 맹비난했”다며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제소 대상도 될 수 없는 ‘인간 이하’라고 비판했고, 여성의원들은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일보 <“이재명 방탄용 국조 수용 불가” 국민의힘, 민주당 향해 총공세>(11월 16일 김민순·김윤정 인턴기자)는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11월 15일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유례없는 ‘대통령 부인 스토킹’ 정당이 돼 버렸다. 참으로 천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적었으며, 주호영 원내대표는 “여성, 영부인에 대해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표현한 자체가 인격 모욕적이고 반여성적”이라고 질타했다고 전했습니다. ‘빈곤 포르노’가 여성 모욕이라는 주 원내대표의 주장은 ‘포르노’ 대상이 여성이라는 편견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런 잘못된 주장 역시 그대로 보도됐습니다. ‘빈곤 포르노’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정치권의 잘못된 주장을 짚은 보도는 찾기 어렵고, 받아쓴 기사는 넘쳤습니다.

 

JTBC “선정성 때문에 영부인 향한 표현으로 부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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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 포르노’ 표현이 영부인에겐 부적절하다는 JTBC(11/16)

언론에는 ‘빈곤 포르노’가 김건희 여사에게 부적절하다거나 일부러 트집 잡는 것이라는 주장도 등장했습니다. JTBC <박성태의 다시보기/‘빈곤 포르노’ ‘대한민국 국모’…영부인 향한 발언들>(11월 16일 박성태 앵커)에서 박성태 앵커는 “장(경태) 의원은 학술적 용어라고 했고, 당사자도 아닌 제3자들은 얘기 안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3자가 보기에도 단어 자체가 가진 선정성 때문에 영부인을 향한 표현으로는 부적절해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일보 <사설/국회 제 1당 주요 활동 된 대통령 부인 스토킹>(11월 17일)은 “장(경태) 최고위원 자신도 소외 계층 봉사 활동을 했는데 그것도 빈곤 포르노인가”냐고 물으며 “역대 대통령 부인들은 누구나 순방 과정에서 소외 계층을 만나고 봉사 활동을 해왔다. 그걸 어떻게 포르노에 비유할 수 있나” “김 여사를 표적 삼아 무조건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국회를 장악한 한국 제1당의 주요 활동이 대통령 부인 스토킹인 것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라며 ‘악의적 스토킹’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매일경제 <필동정담/정말 웃기는 사람들>(11월 17일 박봉권 논설위원)은 “김건희 여사가 심장병 환아를 안아준 걸 갖고 ‘빈곤 포르노’ ‘외교 참사’ 생트집을 잡는 건 한 편의 코미디”라며 “국내에서 치료할 길이 열렸다니 좋은 일 아니”냐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불온하게 보는 사람이 더 문제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라며 “‘웃기고 있네’라는 비아냥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면” 그만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언론은 ‘빈곤 포르노’에 대한 이해 없이 ‘김건희 여사’에 집중해 영부인에게 쓰기엔 적절하지 않은 단어라고 지적하거나 무조건적인 트집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빈곤 포르노’는 모금을 위해 가난과 불행을 팔지 말라고 지적한 인간 존엄의 문제입니다. 김 여사가 아닌 그 누가 했더라도 ‘빈곤 포르노’를 이용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며, 인권 존중을 주문할 문제입니다.

 

국민의힘 의원 ‘빈곤 포르노’ 지적해놓고...

대다수 국민의힘 의원들은 ‘빈곤 포르노’에 대한 이해 없이 ‘포르노’라는 단어에 꽂혀 엉뚱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채널A <여랑야랑/‘빈곤 포르노’ 점입가경>(11월 17일 김민지 기자)은 국민의힘 인사들이 “포르노 앞에 여러 단어들을 붙여가며 야권을 비판”하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김종혁 비대위원은 “어려운 분들을 위해 김장해주고 연탄 날라주는 건 ‘김장 포르노’ ‘연탄 포르노’입니까”라 주장하고, 조은희 의원은 “김정숙 여사가 전용기 타고 타지마할 가신 것을 관광 포르노라 그러면 국민들이 너무 한다 그러시지 않겠어요?”라고 발언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상파 광고 영상 문제를 지적하며 ‘빈곤 포르노’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연합뉴스 <윤두현 “‘빈곤 포르노’ 표현수위 조절해야…과도한 자극 안돼”>(10월 13일 이정현 기자)에서 윤두현 의원은 “지원이 필요한 국내외 취약계층에 대한 후원과 모금 광고의 필요성에 매우 공감하며, 후원자와 구호단체의 활동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영상은 다른 문제”라고 짚으며 “과도하게 자극적인 영상으로 영상 속 등장인물들에 피해를 주면 안”되고 “인권을 고려해 표현의 적절한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 역시 ‘빈곤 포르노’의 문제를 경계하고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빈곤 포르노’가 아니면 무엇인가

경향신문 <잘못된 시선 ‘빈곤 포르노>(11월 17일 박은하 기자)는 모금을 위해 “가엾은 아이들을 내세운 이미지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부추기고 동정의 대상이 된 사람들의 존엄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왔으며 상대적 우월함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굶주린 아이의 이미지는 포르노에 가까울 정도로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국제구호개발 NGO와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가 아동을 중심에 둔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굶주리고 병든 아동의 이미지를 이용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탈피해야” 하며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더 극심한 상황을 연출해서는 안 된다”고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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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OC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가 제작한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

 

반면, 해당 사진을 공개하면서 대통령실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아동이 처한 어려움을 나열했습니다. 뉴스1 <김건희 여사 “생명 길 열렸다”…심장병 아동 후원 문의 쇄도>(11월 14일 나연준 기자)은 대통령실이 공개한 아동의 소식을 자세히 전하며 “사연이 알려진 뒤 국내의 후원 문의가 쇄도했고” 김 여사도 안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아동의 불행한 현재 상황을 자세히 전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통해 모금에 나서는 것이 ‘빈곤 포르노’가 아니면 무엇인가요?

 

유명인 역시 ‘빈곤 포르노’ 비판받았다

하지만 정치권과 받아쓰는 언론은 이 논란을 그만 둘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데일리안 <“민주당, 또 헛짚었다”…‘전 세계 빈곤 포르노’ 꺼낸 국민의힘>(11월 20일 김민석 기자)은 국민의힘 일각에서 “과거 세계 유명인사들이 펼쳤던 봉사활동”을 공유하며 “민주당은 이분들도 ‘빈곤 포르노’ 화보촬영을 했는지” 답변을 요구하고, “구호활동 단체도 포르노단체냐”고 직격했다며 “민주당이 잘못된 프레임의 정쟁을 걸었다고 비판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빈곤 포르노’가 비판의 대상이 된지는 오래됐고 세계적인 유명인사들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노르웨이 학생·학자 국제지원펀드’가 만든 캠페인 단체 <Radi-Aid>는 ‘빈곤 포르노’를 만든 유명인사에게 <Rusty Radiator Award> ‘녹슨 라디에이터상’을 수여합니다. 경향신문 <팝가수 에드 시런, 라이베리아 어린이 도우려다 ‘망신’>(2017/12/13 심윤지 기자)은 유명 팝 가수 에드 시런이 “후원 독려 영상을 제작했다가 망신을 당했”다며 영상이 “피구호자를 수동적이고 불쌍한 존재로만 묘사”하고 애드 시런 본인 중심이며 “정치적 상황이나 빈곤의 구조적 원인은 생략”해 녹슨 라디에이터상을 받았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어 “영국 배우 톰 하디와 에디 레드메인도 올해의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며 “유명인사가 구호 영상을 제작함으로써 더 많은 이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는 반론도 나”오지만 심사위원은 “전형적인 ‘백인 구세주’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고 전했습니다.

 

‘가난 동정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언론, 지금은....

과거 우리 언론 역시 ‘빈곤 포르노’를 공론화하며 문제를 지적해왔습니다. 중앙일보 <기부 필요한 배고픈 아이들 사진, 왜 항상 웃고 있을까>(2019/3/20)는 조희경 한국 컴패션 후원개발실장의 기고 글을 전했는데요. 그는 “비참한 상황을 접하면 안타까움에 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다며 “일부러 빈곤 포르노를 이용하는 곳은 없을 것”이지만, “그럴 때마다 정말 이들을 위하는 마음을 지녔는지, 그들을 인격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본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어린이를 돕는 일은 부모의 마음을 담아야 한다”며 “만약 내가 이 아이의 엄마라면,” “내 자식의 비참한 사진으로 한 끼 식사를 구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비참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어선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머니투데이 <“가난하다고 동정하지마”… ‘아프리카의 진주’가 뿔났다>(2019/10/21 이재은 기자)는 우간다가 ‘빈곤 포르노’로 인해 비슷한 경제 수준의 네팔에 비해 가혹한 이미지를 가진 국가로 자리잡았다며 “최대한 자극적으로 묘사해 동정심을 일으”켜 모금을 유도하는 ‘빈곤 포르노’가 키는데, “모금에 효과적일지도 모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다양한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했습니다. “빈곤 원인 해소 등 근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데다가, 기부 수혜자들을 무력하고 희망 없는 이미지로만 그려” 기부자의 지속적인 후원 참여 의지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는데요. “선진국 자선 단체들이 주축이 돼 만드는 이 같은 이미지는 일견 폭력적이기까지 하다”고 비판하며 “빈곤 포르노 없이도 얼마든지 이들이 원하는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반성적 운동’을 희극으로 만든 정치권

중앙일보 <“헵번도 포르노 찍었냐”…‘포르노’만 집착한 한(국)정치 코미디>(11월 17일 윤성민 기자·심정보 PD)는 “‘빈곤 포르노’ 공방이 점점 한국 정치 수준을 보여주는 희극이 되고 있다”며 참담한 현실을 담은 “이미지를 모금에 사용하지 말자는 반성적 운동 과정에서 나온 용어가 빈곤 포르노”라고 설명했습니다. 중앙일보는 “그러나 정치권은 이런 역사적 맥락이나 문제의식엔 관심이 없”고 “‘포르노’라는 표현에 집중되거나, 아니면 ‘빈곤 포르노라는 용어가 선정적이냐, 아니냐’ 또는 ‘오드리 헵번을 따라 했냐, 아니냐’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디어오늘 <‘빈곤 포르노’를 ‘포르노 논쟁’으로 키운 정치권의 유해성>(11월 17일 노지민 기자)도 정치권이 “엉뚱한 논쟁만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빈곤 포르노’ 지적을 여성혐오이자 모욕으로 규정한 집권여당 대응은 여성혐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조장”하고 있는데,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김 여사를 옹호한다면서 ‘역대 영부인 중 이렇게 미모가 아름다운 분이 있었느냐’고 말한 것은 여성을 외모로 품평하는 전형적 여성혐오”라고 지적했습니다.

 

‘빈곤 포르노’는 새로운 지적도 아니고, 김건희 여사를 비판하기 위해 트집을 잡는 것도 아니며 세계적인 유명 인사와 구호단체 역시 비판받아온 내용으로, 언론 역시 숙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엉뚱한 논쟁으로 확산시키는 정치권과 이를 중계하고 정쟁에 참여하는 언론으로 인해 의미 없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진 촬영 조명 사용 여부’로 까지 논란이 번지고 있는데요. 정치인들의 입만 중계할 것이 아니라 언론이 초기부터 ‘빈곤 포르노’ 문제를 제대로 짚었으면 어땠을까요? 언론은 싸움 중계자도 당사자도 아닙니다. 모르는 채 잘못된 주장을 계속 받아쓸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소모적인 논쟁을 줄일 수 있도록 언론이 역할을 다하길 바랍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11월 15~18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서울경제,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2022년 11월 14~16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7>(평일)/<뉴스센터>(주말), 2022년 11월 14~21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빈곤 포르노’으로 검색한 기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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