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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인 언론의 ‘몹쓸’ 성범죄 보도 언제까지 봐야 하나성범죄 적시하지 않고, ‘속옷·더듬더듬·나쁜 손’ 자극적 표현 수두룩
경기 의정부지법은 8월 23일 유사 강간·심신미약자 추행 혐의로 3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을 전하는 언론의 태도는 신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언론은 이번 사건을 두고 기사 제목에 ‘성추행’으로 적시하는 대신 범죄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선정적 표현으로 클릭 수를 유도하는 자극적인 보도를 냈습니다.
잘못된 보도는 피해자에게 상처를 남기는 2차 가해이자 인권침해가 됩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성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보도 행태와 함께 개선 방향을 살펴봤습니다.
‘성범죄’ 적시 대신 ‘범죄행위’ 묘사
이번 성추행 사건을 전한 언론 보도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 결과 총 9건입니다. 모두 8월 23일 보도됐는데요. 뉴시스 <집들이 과정서 만취 친구의 여자친구 추행한 30대 집행유예>(송주현 기자)처럼 제목에 ‘추행’이라고 범죄사실을 명확하게 적시한 기사도 있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며 범죄 상황을 묘사한 기사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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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3일 의정부지법 성추행 선고를 보도한 기사(8/23) ©민주언론시민연합
특히 머니투데이 <남자친구 옆에서 잠들었는데 ‘더듬더듬’…남친의 친구였다>(황예림 기자)는 범죄 사실을 적시하지 않은 채 ‘더듬더듬’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성추행 상황을 노골적으로 묘사했으며, 위키트리 <친구의 여자친구를…30대 남성, ‘집들이’ 한 후 정말 파렴치한 짓>(김유표 기자)와 서울경제 <술취해 잠들었는데 ‘나쁜손’…남친의 친구였다>(박성규 기자)는 ‘성추행’ 대신 ‘파렴치한 짓’ ‘나쁜 손’이라며 가해 행위를 모호하게 표현했습니다. 세계일보 <만취해 잠든 친구의 여친 옆에 누워 추행한 30대 ‘집행유예’>(김현주 기자) 역시 성추행 상황을 설명하는 불필요한 내용을 제목에 담았습니다.
기사 내용은 더욱 심각합니다. 서로 베껴 쓴 듯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은 성추행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추행 범죄 사실과 처벌 내용만 보도해도 충분한데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상황 설명까지 덧붙인 부적절한 보도입니다.
제목에 ‘속옷, 속바지, 몸매’ 자극적 단어 포함
8월 22일부터 보도된 또 다른 선정적인 사건 기사가 있습니다. 바로 연예기획사 대표가 소속 연습생에게 부적절한 사진을 요구했다는 기사인데요. 처음 ‘단독 보도’를 시작한 YTN은 이틀 동안 총 8건에 달하는 가장 많은 보도를 했습니다. YTN <단독/“몸매 확인하게 속옷 사진 보내라”…연예기획사 강요>(8월 22일 황윤태 기자)는 ‘연예기획사 대표와 여성 연습생들이 나눈 모바일 메시지’ 영상 자료와 함께 “앞, 뒤, 옆모습을 찍은 전신사진을 요구”하고, “간혹 2주 연속 같은 색깔 속옷 사진을 보내면 지난주 것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며 범죄 상황을 소상히 전했습니다. 이후 YTN을 포함한 대부분 언론은 ‘연예기획사 대표의 성범죄 의혹’으로 범죄사실을 명확하고 간단하게 기술해도 되는데, ‘속옷, 속바지, 몸매’ 등 자극적 표현을 제목에 포함해 보도했습니다.
연예기획사 대표 성범죄 의혹을 보도하며 제목에 ‘속옷, 속바지, 몸매’ 등을 넣은 언론사(문제보도 개수) |
YTN(8), 광명지역신문, 매일안전신문, 한국농업신문, 뉴스인사이드, 충청매일, 셀럽미디어, KBS(2), 펜앤드마이크, 스포츠서울(2), 인천일보, 키즈맘, 매일경제TV, 뷰어스, 대전일보, 이투데이, 한국경제TV, SBS(3), 이데일리, 허프포스트코리아, 서울경제, 머니투데이, 스포티비뉴스, MBC(2), 공감심문, 디지털타임스, KBS광주방송, 스포츠동아, 세계일보, 직썰, 부산일보, 엑스포츠뉴스, 매일신문, 시사저널, 스포츠월드, 데일리안, OBS, 머니S, 스포츠조선, 아이뉴스24, MBN, 한국경제(2), 서울신문, 톱스타뉴스, 조이뉴스24, 스포츠경향, 헤럴드경제, 연합뉴스, 매일경제, 조선일보, 위키트리, 중앙일보, 한국면세뉴스, 뉴시스, 인사이트, 국민일보 |
△ 연예기획사 대표 성범죄 의혹 기사 제목에 ‘자극적 단어’를 넣은 언론사(8/22~23) ©민주언론시민연합
MBN <매주 ‘속옷사진’ 요구한 기획사 대표…“속바지는 허벅지 가려서 안돼”>(8월 22일 최유나 기자)와 위키트리 <소속사가 여자연습생에게 “속바지 벗고 사진 보내라 ㅋㅋ…앞·뒤·옆 다 볼수 있게”>(8월 22일 안준영 기자)는 가해자의 구체적인 문자 내용을 제목에 그대로 적어 선정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뉴스인사이드 <연습생에 속옷사진 요구한 연예기획사 대표, “성적인 의도 없었다”>(8월 23일 김희선 기자)와 한국경제 <걸그룹 연습생에 속옷사진 요구한 대표 고발…“성적 의도 없었다”>(8월 22일 신현보 기자)는 가해자 해명을 제목에 싣고 ‘연습생으로부터 동의를 받았다’거나 ‘체중관리 등은 모델라인 업계에서 교본이 있다’는 주장을 담았습니다. 이처럼 가해 내용과 가해자 주장에 집중해 보도하면 성범죄 행위만 부각될 우려가 있는데요. 피해자를 배려하지 못한 기사 제목은 가해 사실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보도해 성폭행 피해 사실 자체를 흥밋거리로 인식하게 할 뿐 아니라 2차 피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 연예기획사 대표 성범죄 의혹을 보도한 기사. 네이버 검색 캡처 화면
‘더듬더듬, 몹쓸 짓, 손버릇 나쁜’…성범죄에 모호한 표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2022년 4월 개정한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은 △가해자의 가해행위를 자세히 또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거나 사건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 △충격이나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범죄행위를 필요 이상으로 묘사하거나 범죄에 이용될 수 있는 가해자의 범행수법과 과정, 양태 및 수사기관의 수사기법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가해행위를 미화하거나 모호하게 표현(‘몹쓸짓’, ‘나쁜 손’, ‘몰카’, ‘성추문’ 등)하여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게 하거나 가해행위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범죄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거나 범죄 상황을 ‘더듬더듬’ 등으로 묘사하는 등 부적절한 제목을 포함한 보도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무용 강습중 미성년 제자 몸 더듬더듬…뮤지컬 배우의 몹쓸짓>(2월 3일 장구슬 기자)은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미성년자 성폭행 범죄를 ‘더듬더듬’ ‘몹쓸 짓’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머니투데이 <퇴마 핑계로 ‘더듬더듬’…손버릇 나쁜 무속인 “동의받았다”>(7월 21일 박효주 기자)는 여성 20여 명을 유사강간 또는 강제추행한 범죄를 ‘더듬더듬’ ‘손버릇 나쁜’으로 표현하면서 가해자 해명을 제목에 실었습니다. 아이뉴스24 <후임병 바지 속에 손 넣고…‘더듬더듬’ 징역 6개월>(1월 24일 홍수현 기자)은 강제추행 범죄를 두고 제목엔 ‘바지 속에 손 넣었’고 ‘더듬더듬’이라며 불필요하게 상황을 묘사해 성추행 내용을 언급하며 가해자와 피해자로 보이는 삽화까지 넣었습니다.
언론사 |
기사 제목 |
머니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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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타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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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
<‘충격 폭로’ 멘디, 감금방에 여성들 가둔 뒤 몹쓸 짓...“휴대폰도 빼앗았다”>(8월 17일 곽힘찬 기자) |
세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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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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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
△ 성범죄를 ‘몹쓸 짓’이라고 모호하게 보도한 기사(8/1~31) ©민주언론시민연합
제목에 ‘몹쓸 짓’이 등장한 기사는 더 많습니다. 네이버 검색 결과 8월 한 달에만 ‘몹쓸 짓’을 제목에 언급한 기사는 총 6건입니다. 디지털타임스 <n번방도 놀란 ‘성착취’ 초교 교사…13세에 몹쓸 짓까지 ‘충격’>(8월 14일 김성준 기자)를 제외하고는 ‘성폭력’ ‘성추행’ ‘성착취’라는 명확한 범죄용어 대신 ‘몹쓸 짓’이라며 부적합한 단어로 성범죄를 표현했습니다. 이는 가해행위의 심각성을 약화시키고 인권침해 범죄를 가볍게 인식하게 해 매우 부적절한 보도입니다. 하지만 반복된 지적에도 언론은 문제의식 없이 잘못된 보도관행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엉망인 성범죄 보도를 봐야 할까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인하대 학생 사망 사건, 언론은 선정적‧성차별적 표현 쓰지 말라>(7월 15일), <‘승무원 룩북’ 성상품화 문제라더니…선정적 제목·사진·영상까지>(2021년 12월 15일) 등 보고서에서 언론의 잘못된 성범죄 보도관행을 여러 번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피해자가 있는 성범죄 보도를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보도하며 ‘클릭 수’를 높이는 데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범죄 보도 지침이 왜 있을까요? 신중하고 절제된 보도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의 개정을 거친 성희롱·성폭력 사건 보도 참고 수첩(2014)이 세상에 나온 지 8년이 지났습니다. 언제까지 보도지침을 무시한 채 ‘클릭 수’에 매몰돼 돈벌이만 우선하는 언론 보도를 봐야 하는 걸까요. 피해자의 권리를 우선하고 성범죄를 명확하게 기술하는 보도가 필요합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8월 22일~24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의정부지법 형사합의 13부’·‘속옷사진’으로 검색한 관련 기사 전체.
2022년 1월 1일~8월 24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더듬더듬’·‘나쁜 손’·‘몹쓸 짓’·’‘성추행’·‘성폭력’으로 검색한 관련 기사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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