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모니터_
공식사망자만 1534명 가습기살균제 참사, 조정안 무산조차 ‘무보도’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구제 조정안이 무산됐습니다. 조정과정에 참여한 9개 기업 중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이 4월 4일 조정금액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조정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제품 판매량 및 피해자 발생 1‧2위를 기록한 이들 기업은 분담해야 할 지원금이 전체 조정액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원료를 공급한 SK 측도 분담률을 높이는 것에 반대해 추가 논의도 중단됐습니다. 피해구제 책임이 큰 기업들의 조정안 회피로 이번 조정 대상자 7,027명(사망자 1,534명 포함)은 가해 기업으로부터 보상받을 길이 막혔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참사조사위원회 등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는 350~400만 명에 이르고 피해자는 약 95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밝혀지지 못한 피해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최근 어린이용 점토, 손소독제, 방향제 등에서도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줬는데요.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이번 조정안의 한계를 알리고,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배‧보상이 이뤄질 때까지 적극 감시해야 합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옥시와 애경의 조정안 거부 입장이 알려진 4월 5일부터 4월 19일까지 언론보도를 살펴봤습니다.
11년 만에 나온 조정안 무산…동아‧조선‧매경‧JTBC‧TV조선‧MBN ‘외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가 4월 11일 공식 발표한 조정안은 피해정도에 따른 6개 등급과 연령을 기준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 치료가 필요한 피해자의 ‘미래 치료권’을 확실하게 보장하지 못한 점, 국가 책임이 명시되지 않은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되는데요. 어렵게 만들어진 조정안이지만 물거품이 될 상황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4월 30일 종료를 앞둔 조정위 활동기한 연장도 옥시와 애경의 불참으로 무산됐습니다.
신문사 |
경향신문 |
동아일보 |
조선일보 |
중앙일보 |
한겨레 |
한국일보 |
매일경제 |
한국경제 |
보도 건수 |
5 |
0 |
0 |
2 |
3 |
2 |
0 |
1 |
방송사 |
KBS |
MBC |
SBS |
JTBC |
TV조선 |
채널A |
MBN |
|
보도 건수 |
1 |
1 |
1 |
0 |
0 |
1 |
0 |
|
△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의 최종 조정안 거부 관련 신문 지면, 방송 저녁종합뉴스 보도 여부
(방송 4/5~4/14, 신문 4/6~4/14, 사진제외) ©민주언론시민연합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언론의 관심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몇몇 언론은 이번 조정안 무산을 외면했습니다. 종합편성채널 4사 중 JTBC‧TV조선‧MBN은 저녁종합뉴스에서 관련 소식을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고 채널A만 <11년 고통 속 합의…옥시·애경 ‘어깃장’>(4월 11일 홍유라 기자)에서 관련 소식을 전했습니다. 지상파 3사는 모두 조정안 무산 소식을 다뤘습니다. 신문 중에서는 동아일보‧조선일보‧매일경제가 옥시와 애경의 조정안 거부 소식을 지면에서 전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경향신문, 유일하게 1면 배치
△ 가습기살균제 조정안 무산 소식을 1면에 배치한 경향신문(4/7)
무보도로 일관한 언론사도 있지만 조정안이나 기업 측 주장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짚은 곳도 있습니다. 옥시와 애경의 조정안 거부 입장이 알려진 직후인 4월 6일, 경향신문은 모니터 대상 중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고 4월 7일엔 신문 중 유일하게 조정안 무산 소식을 1면에 실었습니다. 방송에서는 톱으로 이번 소식을 전한 곳은 없습니다.
경향신문은 14면에 <피해자 0.8%만 책임지는 것조차 외면…“살인기업 적반하장”>(4월 7일 김한솔‧강한들 기자)을 싣고 “조정안은 가장 높은 피해등급인 ‘초고도’ 피해자의 경우 최소 8392만(84세 이상)~최대 5억3522만원(1세)”인데, “초고도 피해자는 10명에 불과”하고 최대 금액을 받게 될 1세 피해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처음 알려진) 2011년에 태어난 피해 아동도 현재 11세”라 “존재하지 않는다”며 조정액이 과도하다는 기업 측 주장을 짚었습니다.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 조정안 무산을 적극 비판한 곳도 있습니다. 한겨레 <사설/가습기 살균제 11년 고통, 더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4월 8일)는 “가장 많은 돈을 내야 할 업체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피해 구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음은 자명하다”며 “두 기업도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전향적인 자세로 피해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중앙일보 <분수대/공기살인>(4월 14일 장주영 사회에디터)은 “기업·피해자 간 협의라는 사적 조정 원칙을 이유로 뒤로 빠져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 <사설/살균제 조정안 거부한 옥시·애경, ‘11년 고통’ 외면할 텐가>(4월 7일)는 “옥시 측은 이미 개별 보상을 마쳤다고 하지만, 3000명이 넘는 피해자 가운데 405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식 사망자만 1,534명 왜 보도하지 않을까
공식 사망자 수가 1,500명 이상인 데다 여전히 수십만 명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정부나 가해 기업뿐 아니라 언론에도 있습니다. 2016년 한국환경사회학회 가을 학술대회 자료집에 실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언론 보도에 대한 고찰 : 숨을 빼앗긴 피해자들, 과학저널리즘은 작동했는가?’에 따르면, “2011년 8월부터 검찰의 수사팀 편성을 계기로 보도가 폭발한 2016년 7월 초까지”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단순 사실 전달 위주의 스트레이트 기사가 77.5%”를 차지했고, “보도 계기는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나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 정부 발표가 43.2%”였다고 분석했는데요. 즉, 피해자 목소리를 듣거나 심층 취재를 하기보단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받아쓰기’로 일관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회적참사조사위원회 2020년 3월 웹진에 실린 <가습기살균제참사 공범, 한국 언론>(김기범 경향신문 기자)은 “2016년 8월 청문회에서는 일부 국회의원들이 가습기살균제 원인 물질을 제조한 SK케미칼의 책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원인 물질을 제조한 대기업의 책임이 처음으로 거론된 것이었기에 충분히 보도 가치가 있는 내용”이었지만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언론사에 있어 중요한 광고주인 SK그룹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습니다. 이번 조정안 무산 소식을 보도하지 않은 일부 언론은 옥시와 애경, 분담률 조정을 거부한 SK가 주요 광고주라는 점을 고려했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 참사는 ‘언론 참사’이기도 했다
사회적 참사의 배경엔 늘 언론도 있습니다. 4월 16일 8주기가 된 세월호 참사는 ‘세월호 보도 참사’라 불리기도 합니다. 무비판적 받아쓰기에서 촉발된 오보, 구조 중에도 사망보험금을 먼저 계산하는 보도, 구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인 양 소식을 전한 거짓보도 등이 구조를 방해하고 피해자를 외면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검찰이 조사 결과를 내놓자 겨우 ‘받아쓰기’를 시작했고, 2019년 민언련 보고서 <가습기살균제 청문회 외면하는 언론, 가해 기업과 무엇이 다른가>(2019년 8월 26일)에 따르면 “첫 사참위 차원의 청문회를 생중계하는 곳은 TBS와 KBS”뿐이었고, KBS도 국회 요청이 오자 뒤늦게 청문회를 편성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 등은 정부·피해자·기업 모두 참여한 2기 조정위 구성, 국가의 책임 인정과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며 또 다시 거리로 나섰습니다. 언론은 지금이라도 피해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가해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2년 4월 4일~18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 2022년 4월 4일~19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