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폴란드 ‘역사미화법’ 악용해 ‘5‧18특별법’ 왜곡한 조선일보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시 처벌할 수 있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 이른바 ‘5‧18역사왜곡처벌법’은 2021년 1월 5일 첫 시행됐습니다. 광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12월 22일 이 법을 처음 적용해 5·18을 왜곡한 인터넷 게시물과 유튜브 영상 등을 올린 네티즌 12명을 입건해 11명을 검찰에 송치했는데요.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악의적인 역사왜곡이 아닌 ‘표현의 자유’ 위축이라고 주장하며 ‘폴란드 역사왜곡금지법’ 피해자 얀 그라보프스키 교수와의 이메일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얀 그라보프스키 교수 주장과 조선일보 주장이 일치하는지, 해당 주장이 맞는지를 포함해 악의적 역사왜곡에 ‘표현의 자유’를 앞세우는 게 적절한지 살펴봤습니다.
폴란드 사례 들어 역사왜곡처벌법 반대한 조선일보
5·18왜곡처벌법 줄곧 비판하더니 첫 적용 보도
△ ‘역사왜곡’ 처벌을 두고 ‘표현의 자유 위축’이라고 주장한 조선일보(12/23)
12월 23일 ‘5‧18역사왜곡처벌법’ 첫 적용 사례를 보도한 신문은 모니터대상 일간지 중 조선일보가 유일했습니다. 조선일보는 10면 머리기사로 <‘5·18 왜곡처벌법’ 첫 적용, 11명 검찰송치>(12월 23일 김성현 기자)를 싣고 “수사 대상이 된 인터넷 게시글과 영상물은 5·18을 ‘폭동’ 또는 ‘반란’으로 규정하거나, ‘북한군 개입설’ 등을 주장하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며 5·18 왜곡 혐의를 받는 이들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진 소식을 전했습니다. 온라인판 기사에서는 경찰 수사 이후에도 삭제되지 않은 일부 문제 게시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이어 5·18역사왜곡처벌법을 설명하며 “법 통과 당시 ‘5·18에 대한 다른 견해를 밝히는 것을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며 “검찰이 경찰의 기소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일지도 주목된다”고 썼습니다. 5·18역사왜곡처벌법을 비판해온 조선일보가 첫 적용 사례를 보도한 자체도 이례적인데요. 하지만 곧바로 이 법을 비판한 다른 기사를 지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목에 ‘폴란드’ 삭제, 무엇을 노렸나
△ 역사왜곡처벌법을 두고 정부가 학계를 협박한다고 보도한 조선일보(12/23)
같은 날, 조선일보는 34면 머리기사로 <정부, 어용단체 내세워 소송전…역사학자들 입 닫고 공포 분위기>(12월 23일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그 다음으로 <“학계 협박하는 정부, 역사에서 손 떼야”>를 싣고 ‘폴란드판 역사왜곡금지법’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머리기사 제목의 ‘정부’ 앞에 아무런 수식어가 붙지 않아 우리나라 정부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이는 ‘폴란드 정부’를 의미합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폴란드에는 “유태인 학살에 대해 폴란드 민족에 책임이 있다거나 공범이었다고 주장해 폴란드 민족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을 처벌하는 법안”인 ‘민족기억연구소법’ 수정안이 있는데,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이 법으로 소송에 휘말린 “나치 점령기 유태인 학살 연구자인 얀 그라보프스키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를 인터뷰하고 사례를 자세히 실어 ‘역사왜곡금지법’을 비판했습니다.
제목에 국가명을 생략하고 본문엔 우리나라 ‘5·18역사왜곡처벌법’ 상황을 추가한 조선일보 의도는 무엇일까요. 마치 우리나라 정부가 어용단체를 내세워 소송전을 벌이고 역사학자들이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쓰고 싶었던 걸까요.
폴란드 사례 가져와 5·18역사왜곡처벌법 비판
조선일보는 얀 그라보프스키 교수 소송 사례를 들어 폴란드 ‘민족기억연구소법 수정안’ 시행이 문제라고 보도했습니다. 얀 그라보프스키 교수는 12월 2월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해 공개 사과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는 책에서 “폴란드인들이 유태인 학살에 공범으로 활약했다는 사실을 담았”는데요. “2018년 2월 폴란드 의회가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대해 폴란드 민족에 책임이 있다거나 공범이었다고 주장해 폴란드 민족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을 처벌하는 법안(’민족기억연구소법’ 수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이 법에 따라 법정에 섰습니다. 8월 열린 항소심에서 공개 사과를 안 해도 된다는 판결을 받긴 했지만 그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번 재판으로 역사학자들 사이엔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한국 정부의 역사왜곡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어 조선일보는 우리나라 상황까지 덧붙여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역사왜곡금지법’은 대선을 앞둔 국내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라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지난달 광주광역시를 찾아 ‘역사왜곡단죄법을 반드시 만들어내겠다’고 약속했다”, “여당이 단독 처리한 ‘5·18민주화운동법 개정안’(5·18역사왜곡처벌법)을 확대해 독립운동과 일본군위안부, 전쟁범죄 등 현대사 관련 사건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온라인판 기사에는 조선일보가 이날 10면 머리기사로 실은 5·18왜곡처벌법 첫 적용 사례는 물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단체나 세월호 참사도 적용 대상으로 언급했습니다. 즉, 역사왜곡처벌법은 문제이고 그 처벌 범위가 너무 넓다는 주장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교과서 반대에 앞장서며 매일같이 항의시위에 나섰던” 역사 관련 단체들이 지난 6월 역사왜곡방지법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낸 이후 아무 움직임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조선일보 제목에 대입해 보면, 우리나라 ‘역사학회와 한국사연구회, 한국연사연구회 등 역사 관련 단체’들이 공포 분위기로 인해 입을 닫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데요. 해당 단체를 취재한 내용은 본문에 없어 조선일보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팩트체크 : ‘민족기억연구소법 수정안’ 조선일보 보도
폴란드 ‘민족기억연구소법 수정안’은 무엇인가
조선일보가 사례로 가져온 ‘폴란드 민족기억연구소법 수정안’은 ‘5·18역사왜곡처벌법’과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민족기억연구소법 수정안’은 ‘사실’을 말하는 학계 주장을 정부가 규제하는 법안이고, ‘5·18역사왜곡처벌법’은 5·18에 대한 허위사실유포를 막는 법안이기 때문입니다.
‘민족기억연구소법 수정안’은 2년 전 제정됐습니다. 한겨레 <유럽 우파의 ‘역사 세탁’…폴란드 대통령, ‘폴란드 수용소법’ 서명>(2018/02/07 김미나 기자)에 따르면 2018년 2월 6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폴란드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두다 대통령은 “폴란드와 폴란드인들의 좋은 이름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아우슈비츠 등 강제수용소를 ‘폴란드의’ 수용소라고 언급하면 국적과 관계없이 벌금이나 최대 징역 3년에 처해”지며 “나치 만행에 대해 폴란드나 폴란드인에게 공동 책임을 묻는 표현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법입니다. 한겨레는 이 법으로 “유럽 내 ‘역사 세탁’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보도된 뉴시스 <폴란드, ‘유대인 학살에 폴란드 연루’ 발언의 형사처벌 철회>(2018/06/27 김재영 기자)에 따르면 “폴란드는 나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에 ‘폴란드인이 연루되었다’는 발언을 하면 형사 처벌하기로 한 법안을 결국 처벌 없는 훈계로 완화”시켰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역사를 망각·왜곡시키는 세뇌 법”이라 강하게 비판하자 처벌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얀 그라보프스키 교수에 내려진 불합리한 판결
조선일보가 인용한 얀 그라보프스키 교수의 판결은 올해 초 국내에 전해졌습니다. 연합뉴스 <폴란드 법원, 나치부역자 지목한 역사학자들에 ‘사과 명령’ 논란>(2021/02/10 이광빈 기자)은 BBC 보도를 인용해 얀 그라보프스키 교수를 포함한 역사학자 2명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부역자에 대한 기록을 연구서에 남겼다가 법원으로부터 사과 명령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즉, 두 역사학자는 “학술연구서 ‘끝없는 밤’에서 나치 독일의 폴란드 점령 당시 에드바르트 말리노프스키(당시 폴란드 북동부 한 도시 시장)가” “숨어있던 유대인 22명의 거처를 독일군에게 밀고해” 유대인이 처형에 이르게 된 사실을 썼는데, 말리노프스키의 조카가 이 학술연구서엔 “삼촌이 전후 재판에서 나치 부역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이 빠져있는 데다, 오히려 유대인을 도왔다”고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에 재판부는 두 역사학자가 말리노프스키 조카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폴란드인의 책임을 묻는 표현을 규제하는 ‘민족기억연구소법 수정안’에 따라 사실을 기술했음에도 ‘사과하라’는 불합리한 판결이 내려진 것입니다.
‘역사미화법’과 ‘역사왜곡방지법’이 같다는 조선일보
조선일보 기사에는 폴란드의 ‘민족기억연구소법 수정안’과 우리나라 ‘5·18역사왜곡처벌법’을 비교하면서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도 여럿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국제사회의 “비판 덕분에 형사처벌 규정은 삭제됐다”면서도 기사 곳곳에 해당 법안이 “최고 징역 3년까지 처벌”한다고 적었습니다. 왜곡된 거짓이자 앞뒤가 다른 내용을 동시에 써놓은 것입니다.
△ 처벌규정이 있다는 설명과 삭제됐다는 설명을 동시에 쓴 조선일보(12/23)
또한 조선일보는 “폴란드판 ‘역사왜곡금지법’은 극우 포퓰리즘 성향 ‘법과 정의’(PiS)당이 주도했다”며 “2015년 재집권을 이들은 (중략) ‘퍼주기’ 재정 정책을 펴면서 국민들을 공짜 복지에 중독시켜 표를 얻었다”고 설명했는데요. 연합뉴스 <폴란드 총선서 ‘난민반대’ 보수야당 8년만에 정권교체>(2015/10/26 한미희 기자)에 따르면 난민 사태가 2015년 폴란드 총선 주요 이슈였습니다. 2015년 당시 유럽으로 대규모 난민 이동이 있었는데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보수성향 법과정의당이 다득표를 차지한 것입니다.
조선일보의 가장 중요한 오류는 ‘표현에 자유’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점은 무시했다는 점입니다. 폴란드의 ‘민족기억연구소법 수정안’은 사실을 말할지라도 폴란드 민족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을 처벌한다는 것으로 일종의 ‘역사미화’ 법안입니다. 얀 그라보프스키 교수가 “학계를 협박하는 정부, 역사에서 손 떼야”라고 한 발언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학계에서 밝혀내는 불편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지, 역사왜곡을 손 놓고 지켜보란 주장은 아닙니다.
막무가내식 표현의 자유는 폭력이자 범죄
오마이뉴스 <“5·18을 마음껏 평가”? 자유가 아니라 ‘범죄’ 가깝다>(12월 8일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는 아직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5·18왜곡 게시글을 지적하며 “온통 왜곡이자 과장된 이러한 막무가내식 ‘표현의 자유’로 인해, 그 피해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게 된다”며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노골적인 폭력이고 분명한 범죄에 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나치의 집단학살, 즉 홀로코스트 부인 문제를 표현의 자유에 관한 사안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은 전후 세대들이 전쟁과 학살의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극우주의적 사고에 노출되며 이와 결부된 범(汎)유럽적 위기 상황과 병폐가 단지 일시적 현상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깊은 고민과 우려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국가 폭력에 대항한 민중항쟁으로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시민들의 저항입니다. 4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해자들의 사과와 반성 없이 은폐된 진실만 남아 피해자들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일부 국회의원들이 극우 인사를 국회로 초청해 북한군 개입설 등5·18 허위주장을 말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고, 최근엔 제1야당 대선캠프 영입인사의 5·18망언이 논란이 됐습니다. 5·18 당시 군부독재의 민간인 학살은 이미 헌정질서 파괴범죄행위로 사법적 판단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정치적 도구나 수단으로 보수·극우세력이 활용하며 왜곡과 폄훼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왜곡처벌법은 불가피합니다.
조선일보는 인터뷰에서 얀 그라보프스키 교수가 “많은 사람이 거짓에 기초한 좋은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며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는데요. 명백한 사실엔 눈 감은 채 ‘거짓에 기초한’ 5·18역사왜곡 이야기를 더 좋아한 것은 누구인가요? 역사 부정은 표현의 자유로 보기 어려운 폭력이자 범죄일 뿐입니다. 역사왜곡에 앞장서는 조선일보부터 역사에서 손 떼길 바랍니다.
* 모니터 대상 : 2021년 12월 23일 조선일보 지면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