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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는 경제지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⑤] ‘더 나은 세상’ 내건 ESG 열풍, 언론에겐 그저 돈벌이 먹잇감인가?
등록 2021.09.2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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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코인·부동산 등 재테크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경제지 구독이 크게 늘었고, 특히 198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사람들을 뜻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비중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당신이 보는 경제지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은 이런 현상 속에서 과연 경제지를 보면 경제를 제대로 알 수 있는가, 경제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경제지들이 알리지 않거나 혹은 알리지 못한 우리 사회 이야기를 MZ세대 관점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나눠볼 예정이다.

 

따뜻한 자본주의. 언뜻 어색하게 들리지만, 최근 문재인 대통령도 ESG를 강조하면서 언급한 표현입니다. 문 대통령은 3월 31일 제48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올해를 ESG 경영 확산의 원년으로 삼겠다"며 "따뜻한 자본주의 시대를 열어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기업과 경제단체에 이어 대통령까지 ESG를 외치고 있는데요. 

도대체 ESG가 뭐길래 이러는 걸까요?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합니다.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수익과 같은 재무적 요소뿐만 아니라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더불어 지배구조까지 고려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는 친환경 자동차를 만드는지, 미디어 회사는 제작진과 출연진 다양화 등에 신경 쓰는지를 보자는 겁니다. 우리 사회를 진일보하게 만드는 ESG 도입 열풍, 기쁘게 받아들이고 싶은데요.

ESG 시상식, 고액 회원클럽 유치 등

마냥 긍정적 현상만 나타나고 있지는 않습니다. 경제지들이 ESG 붐을 이용해 돈벌이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ESG 열풍이 불자 경제 전문지를 비롯한 언론사들이 너도나도 ESG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 '대한민국 ESG 클럽'과 매일경제 '매경 ESG 클럽'이 가장 눈에 띄는데요. 각자 지면을 통해서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두 경제지가 모집하는 ESG 클럽이 무엇인지 찾아봤습니다. 

한국경제는 ESG 클럽 회원기업에 연 2회(상반기 공공부문, 하반기 민간부문) 자신들이 주최하는 ESG 경영대상 평가심사비를 할인해준다고 합니다. 자사 일간지와 월간지 지면 기사를 지원해 회원기업의 ESG 경영추진 경과와 성과, CEO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홍보 활동도 알린다고 합니다.

이밖에 글로벌 인재포럼 ESG 특별세션 및 특별 이벤트 초대, 회원기업 CEO 라운드테이블 초청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열립니다. 회원기업이 되기 위해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 알아보니 연회비가 2000만 원이고, 100개 기업을 모집하겠다고 합니다. ESG 클럽만으로도 한국경제는 연 매출 20억 원을 올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 

매일경제도 한국경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먼저 프리미엄 ESG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지식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ESG 경영을 돕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회원기업이 되려면 연회비 1000만 원(코스닥 상장사 또는 매출 1조 원 미만 비상장사) 혹은 2000만 원(코스피 상장사 또는 매출 1조 원 이상 비상장사)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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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4일 자사 멤버십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대한민국 ESG 클럽"을 홍보하는 <한국경제> ⓒ 한국경제

 

기업들, 언론사 ESG 광고·협찬·행사 압박 받아
 
그런데 기업들은 언론의 이런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을까요? 한국광고주협회가 5월 4일부터 열흘간 국내 200대 기업 광고·홍보 담당자 대상으로 실시한 'ESG 경영전략 및 언론관계 실태조사'를 살펴보죠.

조사 결과 ESG 경영이 이슈가 된 2020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언론으로부터 'ESG 이슈'를 이유로 광고 혹은 협찬비, 행사 참여를 요청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0%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중 42.3%가 ▲ 기사 게재를 위한 광고·협찬비 요청 ▲ 포럼 등 행사를 위한 광고·협찬비 요청 ▲ 포럼 등 행사 참여 등 모든 부분에서 언론사로부터 요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ESG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멤버십 유치 사업을 펼치는 언론사들이 늘어나자 기업 임직원들은 다양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 취재에 나선 KBS와 MBC 기자들이 'ESG 광고나 협찬, 행사 참여 등을 요청받은 적이 있냐'고 묻자, 기업 임직원들은 하나같이 보복을 두려워하며 언급을 꺼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참여하지 않으면 필요할 때 도움을 주지 않겠다거나 두고 보라는 식의 압박을 가했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상당수가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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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질문하는 기자들 Q> 11회 “언론사는 ‘ESG 행사’ 열풍! 그러나 ESG 현실은?” 화면 갈무리 ⓒ KBS

 

참으로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언론은 기업이 정말 ESG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되려 ESG를 돈벌이 전략으로 이용하는 'ESG 플레이어'로 뛰어든 겁니다.

ESG 행사 개최와 멤버십 유치 등을 통한 돈벌이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경제지는 ESG 보도도 잘하고 있을까요? ESG 관련 보도는 무수히 많습니다. 문제는 '유의미한 보도를 하고 있느냐'인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의미한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입니다.
 
우리나라는 ESG를 평가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단체가 없고, 평가기준이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산업재해와 관련한 사항은 기업 측 정보제공 의무가 없습니다. 언론에서 기업이 ESG를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는지 검증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ESG를 잘 수행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면 긍정 사례로 알리는 것 역시 마땅합니다.
 
ESG 보도는 충실하게 하고 있는가

 
하지만 기업의 ESG 실천을 검증하는 보도는 드뭅니다. 경제지 ESG 기사 대부분은 기업을 칭찬하거나 홍보자료를 받아쓰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경제지 보도대로 '기업들이 잘하고 있구나'라고 믿기 힘듭니다. 산업재해, 경영세습, 횡령, 채용 비리 등 각종 문제가 드러난 기업들조차 ESG 등급이 높다고 홍보하는데, 사실 확인이나 비판 없이 언론보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포스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2020년 기준 ESG 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포스코는 국내 대기업 중 탄소배출량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은 평가에서 A+를 받은 포스코 자회사 포스코인터내셔널을 살펴볼까요.

경향신문은 3월 22일 단독보도 <포스코인터, 한 해 2천억원 미얀마 군부 통제 기업에 준다>를 통해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미얀마 국영 석유가스회사(MOGE)와 함께 2004년부터 미얀마 슈웨지역에서 가스개발 사업을 벌여왔는데, MOGE가 미얀마 군부 핵심 자금줄로 꼽힌다고 지적했습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2018년 한 해에만 1억 9400만 달러(2192억 원)를 미얀마에 석유가스 사업 대금으로 냈다고 하니, 미얀마 군부로 큰 금액이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미얀마 시민이 군부 쿠데타로 1000명 넘게 사망한 지금도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곳으로 수익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에서 이 문제를 다룬 기사를 하나 찾았는데요. 바로 <포스코인터, 미얀마發 '리스크'>(3월 23일)입니다. 기사 일부를 보자면 이렇습니다. "미얀마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와 시위대의 충돌이 장기화하면서 현지 사업을 진행하는 국내 상장사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이날 주가 하락은 미얀마에서 진행하는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언론이 정말로 ESG를 생각한다면 이런 방법은 아닐 겁니다. 민언련에서 ESG를 '제대로' 실천하는 언론은 없는지 살펴봤습니다. 우선, 영국 공영방송 BBC '퓨처 플래닛'이 있습니다. BBC 퓨처 섹션 중 하나인 퓨처 플래닛은 환경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데요. 특이한 건 디지털 탄소발자국에 주목해 자신들이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에서 얼마만큼 탄소가 배출되는지 측정해 독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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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 퓨처 플래닛은 기사마다 하단에 취재·기사 게재 시 발생한 탄소 배출량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BBC 퓨처 플래닛 기사 화면 갈무리. ⓒ BBC

 

글로벌 기후변화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있습니다. 가디언은 프로젝트 참여뿐만 아니라 앞으로 화석연료 기업 광고는 더 이상 싣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2030년까지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는 기업활동을 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BBC 퓨처 플래닛과 가디언 방침이야말로 진정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ESG를 실천하는 언론 활동으로 보입니다. 한국 언론의 ESG 활동 또한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당신이 보는 경제지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 5회 "'더 나은 세상' 내건 ESG 열풍, 언론에겐 그저 돈벌이 먹잇감인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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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특별모니터는 지난 8월 27일 공개한 <당신이 보는 경제지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 5회를 갈무리했습니다.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 https://youtu.be/4tffBcaJ1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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