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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침묵 관행’ 깨고 미스코리아 비판할 수 있을까?
등록 2021.05.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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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마스크에 비키니 영상…선정성 덧칠 ‘미코대회’>(5월 11일 최윤아 기자)는 5월 9일 미스코리아 서울지역 예선에서 참가자들이 수영복을 입고 촬영한 영상을 상영했다고 보도했습니다. 2년 전 성 상품화를 이유로 폐지된 수영복 심사가 재개된 것입니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비롯한 미인대회 성 상품화 문제는 계속 제기돼왔고, 수영복 심사는 해외 대회에서도 외면받은 지 오래입니다.

 

이번 한겨레 보도엔 성평등을 지향하는 사회 변화 속에 뒷걸음질 치고 있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또 주목할 사실은 미스코리아 대회를 주최해온 곳이 언론사라는 점입니다. 한국일보는 1957년부터 행사를 주최해왔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일보는 이번 논란을 비롯해 그동안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해 어떻게 보도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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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미스코리아 서울 예선에서 진행된 수영복 영상 상영을 보도한 한겨레(5/11)

 

성 상품화, 입상 비리…여러 차례 문제 된 미스코리아

한국일보가 66년간 주최해온 미스코리아 대회는 여러 차례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성 상품화입니다. 여성단체들은 1989년 성 상품화 문제 제기를 시작해 1990년대부터 미인대회의 폐지와 방송중계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이후 1999년 안티 미스코리아대회를 시작으로 미인대회 폐지 운동이 확산했고, 같은 해 민언련은 이달의 나쁜 프로그램에 MBC 미스코리아 중계방송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여성단체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MBC가 2001년을 마지막으로 중계를 중단하기로 했고, 돌아가며 중계해온 지상파 3사는 2002년부터 중단했습니다.

 

입상과 관련한 비리가 고발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 KBS <‘입상’ 뒷돈거래 의혹>(10월 20일)에 따르면 “딸을 (2012년 미스코리아) 대회에 참가시킨 55살 신모 씨”는 브로커로부터 미스코리아 사무국 팀장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300만 원을 브로커에게 제공한 신 씨는 사무국 팀장을 만났고, “심사위원을 맡은 협찬사 두 곳의 협찬금을 대신 지급하게 되면 입상 확률이 높아진다”는 팀장 이야기를 듣고, 제안대로 대회를 중계하는 케이블방송사 계좌에 4천만 원을 입금했습니다. 하지만 신 씨 딸은 입상하지 못했고, 신 씨는 돈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주최사인 한국일보는 해당 비리를 인정했습니다.

 

수영복 심사를 폐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2019년엔 한복을 속옷처럼 변형해 논란이 됐는데요. 당시 MBC <수영복 대신 리더십 본다더니…‘속옷’ 같은 한복쇼>(2019년 7월 12일) 등은 보도를 통해 미스코리아 대회 성 상품화 문제를 지적하며 “여성의 신체를 품평하고 획일화된 미적 기준을 부여하는 미인대회의 본질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같은 논란은 내년에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며 변화를 촉구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미스코리아 대회는 미인대회 성 상품화 한계를 비롯해 다양한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내부 문제의식은 있지만 지면 보도는 없어

미스코리아 대회와 관련한 문제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한국일보 지면에서는 관련 보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2013년 한국일보가 직접 인정한 입상 비리 문제는 물론 2019년 한복을 성 상품화한 대회 논란에도 한국일보는 관련 보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겨레가 5월 11일 보도한 올해 미스코리아 대회 서울지역 예선 관련 보도 역시 5월 14일까지 한국일보 지면엔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매년 미스코리아 대회가 끝난 뒤 입상자 관련 보도를 비중 있게 다뤄왔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대회에 비판적 내용은 한국일보가 외면해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일보가 미스코리아 대회에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편집국에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꾸준히 존재했습니다. 2019년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진행된 수영복 영상 상영 논란을 다룬 한겨레 <수영복 심사 폐지한다며…미스코리아 대회 “수영복 영상은 공개”>(2019년 7월 4일)는 한국일보 기자의 비판적 의견을 전했습니다. 한국일보 한 기자는 한겨레에 “기자들은 10년째 미스코리아 대회 폐지를 주장해왔지만, 회사 경영진은 이러한 목소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며 사측 대응을 비판했습니다.

 

이번 수영복 영상 상영에 대해서도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 지부 비상대책위원회와 젠더위원회는 5월 12일 미스코리아 대회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한국일보 지부는 “비키니 수영복 영상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은 심각한 기만”이라며 “미스코리아 대회의 폐지 혹은 완전한 결별”을 사측에 요구했습니다. 회사 구성원이자 언론인으로서 사측에 문제를 바로잡을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성평등 의제 적극적인 한국일보, ‘보도 힘’을 보여줘야

한국일보 지부 성명에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편집국 보도 방향과 정반대라고 지적한 대목이 눈에 띕니다. 한국일보 지부는 “뉴스룸은 매일 같이 성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와 기획물, 외고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콘텐츠의 지향점과는 정반대의 사업을 여전히 운영 중인 것은 큰 모순이 아닌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한국일보는 성 평등과 관련해 좋은 보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최근 성소수자의 의료기본권을 이슈화한 <트랜스젠더 의료는 없다> 기획보도를 연재했고, <양성평등진흥원은 정말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금했을까>(4월 21일 인현우 기자), <젠더이슈는 늘 왜 뒷전인가>(4월 16일 박수진 변호사) 등 기사와 외부 칼럼을 가리지 않고 관련 의제를 적극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목소리를 내고, 성 평등 지향 보도가 지면에 실리고 있는 점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그런데도 미스코리아 대회 논란을 지면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사주 비리나 혹은 사측 문제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언론계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들게 합니다. 중앙일보가 지배 관계에 있던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을 “직원 개인 비행”으로 보도한 사례나 조선일보가 사주 일가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침묵하고 있는 것도 같은 사례입니다.

 

언론계에서 언론사주 혹은 사측 문제를 보도하지 않는 관행이 형성된 배경은 다양할 것입니다. 그중에는 사주가 편집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하거나 기자를 해고하는 방식 등으로 문제를 제기한 언론인에게 불이익을 준 과거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언론사주 비리나 사측 문제는 취재하더라도 보도하지 않는다는 ‘침묵의 카르텔’이 굳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사와 사주 역시 비판의 성역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일보 지부가 미스코리아 대회 폐지를 촉구하며 “시대적 가치에 배반하는 전통은 구시대의 유물”이라 평했듯 언론사와 언론사주 문제에 침묵하는 언론계 관행도 사라져야 합니다. 성평등 의제를 적극적으로 다뤄온 한국일보가 언론계 관행을 넘어 지면을 통해 미스코리아 대회 문제를 보도하며 사회적 역할을 다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 모니터 대상 : 2012년 1월 1일~12월 31일, 2019년 1월 1일~12월 31일, 2021년 5월 11~14일 한국일보 지면보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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