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모니터_
무책임한 ‘법관탄핵’ 받아쓰기 보도, 정치인 ‘입’ 따라 움직였다
등록 2021.02.24 10:40
조회 7872

4일 국회에서는 임성근 판사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2015년 12월 박근혜 씨의 ‘세월호 7시간’ 관련 칼럼의 명예훼손 1심 재판 판결문 작성에 개입한 임 판사의 탄핵은 이제 헌법재판소로 넘어갔습니다. 사상 초유의 법관탄핵을 두고 언론 보도도 이어졌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뉴스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를 활용해 임성근 판사의 연임 포기가 있었던 2020년 10월 8일부터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일주일 뒤인 2021년 2월 11일까지의 보도를 분석해 언론이 사법농단 법관탄핵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확인했습니다.

 

녹취록 폭로 전 언론은 ‘사법농단’에 무관심했다

사법농단 법관탄핵 관련보도를 확인하기 위해 ‘사법농단’과 ‘탄핵’이 동시에 들어간 기사를 분석했고, 검찰의 판사 사찰문건 관련 보도를 제외하기 위해 ‘사찰’이 언급된 기사는 뺐습니다. 다만 10월의 경우 ‘사법농단’, ‘탄핵’ 관련 보도로는 정확성이 떨어져 ‘임성근’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했고, 예능프로그램 관련 기사에서 동명이인이 언급된 경우도 제외했습니다. 먼저 사법농단 법관탄핵 사건에 대한 언론의 지속보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2020년 10월 8일부터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안 가결 하루 전인 2월 3일까지 보도를 분석했습니다.

 

임성근 판사 연임포기 후 월 평균 ‘10.6건’ 보도

월별 보도량 분석 결과, 10월(2020년 10월 8~31일)은 11건, 11월 2건, 12월 19건의 기사가 각각 실렸습니다. 3개월간 사법농단 관련 기사가 월 평균 10.6건 보도된 것입니다. 반면 1월엔 보도량이 204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직전 3개월 기사 건수를 합친 것보다 6배 넘게 늘었습니다. 2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기사 건수는 196건으로 분석기간 중 가장 많은 보도량을 보인 1월과 맞먹을 정도입니다.

 

사법농단 법관탄핵 월별 보도량.PNG

보도 월

보도량

10월 (2020/10/8~10/31)

11건

11월 (2020/11/1~11/30)

2건

12월 (2020/12/1~12/31)

19건

1월 (1/1~1/31)

204건

2월 (2/1~2/3)

196건

△ ‘사법농단 법관탄핵’ 월별 보도량(2020/10/8~2021/2/3) ©민주언론시민연합

 

1월 204건은 대부분 22일 이후 몰려 있고 내용도 비슷합니다. 1월 22일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정의당 류호정 의원,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이 진행한 탄핵소추 제안 기자회견과 1월 28일 더불어민주당 탄핵소추 추진 발표가 집중해서 다뤄졌기 때문입니다. 기자회견 관련 기사는 20건, 탄핵소추 추진 관련 기사는 165건에 달했습니다. 2월 1일부터 3일까지 196건도 국회에서 진행되는 탄핵소추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보도량이 적었던 지난해 10월부터 12월 사이에도 판사탄핵 관련 사안은 있었습니다. 임성근 판사는 10월 8일까지 연임신청을 하지 않아, 탄핵요건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었습니다. 12월 23일에는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도로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법관에 대한 탄핵추진안이 발표됐고,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언론의 큰 관심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보도량은 3개월간 월 평균 10.6건으로 적극적인 보도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사법농단 보도, 언론은 정치인 ‘입’ 따라 움직였다

언론 보도의 초점을 자세하게 분석하기 위해 주요 이슈 발생 후 1주간 보도량을 함께 확인했습니다. 분석 대상은 해당 기간 주요 이슈로 볼 수 있는 ‘임성근 판사 연임포기’, ‘이탄희 의원 탄핵추진 표명’, ‘4개당 의원 탄핵안 추진 동의’, ‘탄핵소추안 발의’입니다. 다만 ‘임성근 판사 연임포기’는 사건발생 후 뒤늦게 알려져 첫 보도가 나온 시점인 2020년 10월 28일을 기준으로 삼았고, ‘탄핵소추안 발의’는 표결이 진행되기 전까지 3일간 보도량을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주요 사건 중 ‘탄핵소추안 발의’가 3일간 196건으로 가장 많았고, ‘4개당 의원 탄핵 추진안 동의’ 153건, ‘이탄희 의원 탄핵추진 표명’ 19건, ‘임성근 판사 연임포기 첫 보도’가 6건순이었습니다. 이슈에 따라 보도량 차이가 매우 컸습니다.

 

사법농단 법관탄핵 주요 사안별 보도량.png

주요 사안

보도량

임성근 판사 연임 포기 첫 보도

(2020/10/28~11/4)

6건

이탄희 의원 탄핵 추진 표명

(2020/12/23~12/30)

19건

4개당 의원 탄핵 추진안 동의

(1/22~1/29)

153건

탄핵 소추안 발의

(2/1~2/3)

196건

△ ‘사법농단 법관탄핵’ 주요 사안별 보도량(2020/10/8~2021/2/3) ©민주언론시민연합

 

20건 안팎과 200건 육박하는 보도량 차이는 언론이 사안의 중요도를 명확히 달리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언급이 나올 때마다 보도량이 치솟았고, 그 중에서도 여야 대립 또는 찬반 대립이 일어날 때 크게 증가했습니다. 중요도에 따라 보도량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기에 따라 30배 이상 격차가 나는 것을 보면 언론이 계속 사법농단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 ‘입’만 바라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탄핵안 가결 이후에도 언론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법관탄핵이 정치권에서 실제로 추진되자 언론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2월 4일 임성근 판사 탄핵안이 국회에서 표결 후 가결됐고, 임 판사 측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과 사임 관련 이야기를 나눈 녹취록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1주일 사이 349건의 보도가 등장했습니다.

 

사상 초유 판사 탄핵안 가결, 1주일 349건 보도

다음으로 각 언론보도가 다룬 주제를 분석했습니다. 분류기준은 탄핵안 가결과 관련된 보도는 ‘탄핵안 가결’, 임성근 판사 측이 공개한 김명수 대법원장 녹취록 내용을 다룬 경우 ‘김명수 대법원장 녹취록’으로 분류했습니다. 두 가지 사안을 모두 다룬 경우 ‘중복’으로 분류했고, 그 밖의 주제는 ‘기타’로 분류했습니다.

 

그 결과 ‘탄핵안 가결’이 136건으로 가장 많았고, ‘김명수 대법원장 녹취록’ 103건, ‘중복’ 90건, ‘기타’ 20건 순이었습니다. 최초의 판사 탄핵안 가결이 가장 주목을 받았고, 같은 날 대법원 해명과 다른 김명수 대법원장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돼 논란이 된 결과였습니다.

 

주제 분석.JPG

주제

보도량

탄핵안 가결

136건

김명수 대법원장 녹취록

103건

중복

90건

기타

20건

합계

349건

△ ‘사법농단 법관탄핵’ 관련 언론 보도 주제 분석(2/4~11) ©민주언론시민연합

 

비판대상, 김명수 대법원장 가장 많아

임성근 판사 탄핵안 가결과 김명수 대법원장 녹취록 공개 이후 언론보도가 어떤 경향을 띄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개별 기사의 비판대상도 분석했습니다. 분류기준은 비판대상이 없을 경우 ‘없음’, 김명수 대법원장 비판은 ‘김명수’, 임성근 판사 비판은 ‘임성근’, 국회 탄핵안 가결 비판은 ‘탄핵안 가결’, 그 밖의 대상은 ‘기타’로 분류했습니다. 하나의 기사에서 여러 비판대상이 등장하는 경우 중복 계산했습니다.

 

총 349건의 보도 중 121건은 비판대상이 없습니다. 나머지 248건을 분석한 결과, 가장 비판횟수가 많은 대상은 김명수 대법원장이었습니다. 김 대법원장 비판은 168회 등장했고, 임성근 판사가 57회, 국회 탄핵안 가결이 41회, 기타가 19회 순이었습니다. 2월 4일 김명수 대법원장 녹취록이 공개된 이후 관련보도가 집중되면서 만들어진 결과로 풀이됩니다.

 

비판대상.JPG

비판대상

등장 횟수

김명수

168회

임성근

57회

탄핵안 가결

41회

기타

19회

△ ‘사법농단 법관탄핵’ 관련 언론 보도 비판대상 분석(2/4~11) ©민주언론시민연합

 

단순사실‧정치권 반응 전달 67%

전체 보도흐름과 보도가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보도형식도 분석했습니다. 기준은 해석이나 평가 없이 사실전달에 집중한 경우는 ‘단순사실 전달’, 정치권에서 나온 반응이나 정치인, 정당의 입장을 전달한 경우 ‘정치권 반응‧입장 전달’, 법조인들의 평가 및 반응을 다룬 경우 ‘법조계 반응’, 사건흐름과 향후 방향을 집중해서 다룬 경우 ‘심층보도’, 다른 의혹을 제기한 경우 ‘추가의혹 제기’, 사설이나 내‧외부 오피니언은 ‘사설, 오피니언’, 그 밖은 ‘기타’로 분류했습니다.

 

그 결과 ‘정치권 반응‧입장 전달’이 122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단순사실 전달’ 110건, ‘사설‧오피니언’ 42건, ‘법조계 반응’ 29건, ‘심층보도’ 19건, ‘추가 의혹 제기’가 10건 순이었고, ‘기타’는 17건이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단순사실 전달’과 ‘정치권 반응‧입장 전달’ 보도의 비율입니다. 사법농단 법관탄핵 보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두 기사형식을 합하면 약 67%에 달합니다. 반면 사안을 깊게 분석해 전달하는 ‘심층보도’는 약 5%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거나 정치권에서 나온 발언을 전달하는 역할에 그친 것입니다. 분석보다 전달에 치중하는 관행이 또 드러났습니다.

 

형식 분석.JPG

보도 형식

보도량

단순 사실 전달

110건

정치권 반응, 입장 전달

122건

법조계 반응

29건

심층 보도

19건

추가 의혹 제기

10건

사설, 오피니언

42건

기타

17건

합계

349건

△ ‘사법농단 법관탄핵’ 관련 언론 보도 형식 분석(2/4~11) ©민주언론시민연합

 

취재원 중 전‧현직 판사 65%

보도형식 분석에서는 ‘법조계 반응’도 주목할 요소입니다. ‘법조계 반응’은 단순사실 및 정치권 반응‧입장 전달, 사설‧오피니언에 이어 많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법조계 반응’ 보도는 전문가 입장이 전달될 수 있는 만큼 구체적인 분석을 위해 취재원을 살펴봤습니다. 직군 및 출신에 따라 ‘전‧현직 판사’, ‘변호사’, ‘판사‧변호사 외 법조 관련인’, ‘법조관련 단체’, ‘기타’로 구분했습니다. 분석 결과, 29건 기사에서 취재원은 100회 등장했습니다. ‘전현직 판사’가 65회로 가장 많았고, ‘변호사’ 18회, ‘법조관련 단체’ 10회, ‘판사‧변호사 외 법조 관련인’ 4회, ‘기타’ 3회 순입니다.

 

비율을 보면 ‘전‧현직 판사’가 취재원의 65%를 차지했습니다. ‘변호사’로 분류된 취재원 중에도 판사출신 변호사가 5회 등장해 전체보도에서 판사출신 취재원 비중은 70%에 달했습니다. 반면 교수, 검사 등 다양한 법조 취재원은 4회에 그쳤습니다. 법관부패 사건임에도 언론이 가장 적극 찾은 취재원은 법관이었던 것입니다.

 

취재원.JPG

취재원

등장 횟수

전현직 판사

65회

변호사

18회

판사, 변호사 외 법조 관련인

4회

법조 관련 단체

10회

기타

3회

합계

100회

△ ‘법조계 반응’ 관련 보도 취재원 분석(2/4~11) ©민주언론시민연합

 

핵심 빠진 언론, 이번에도 제 역할 못했다

사법농단 사건은 민주주의 대원칙인 3권 분립을 무너뜨리며 사법부가 재판결과를 임의로 결정하고 변경한 범죄행위입니다. 언론은 재판을 농단한 판사들이 죄에 걸맞은 심판을 받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합당한 법의 심판을 촉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정치권에서 사법농단 법관탄핵이 추진되고 나서야 적극적 보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마저도 대부분 보도가 단순사실 전달과 정치권 반응 전달에 그쳤고, 전문가 입장을 전달하는 법조계 반응 보도 역시 판사출신 인물 주장을 중계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법관탄핵이 정치권을 통해 발화된 이후에야 의제를 다루면서도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본연 역할을 해내는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후 1주일간 보도를 분석한 결과, 언론은 사법농단 법관탄핵 사건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무책임한 받아쓰기와 따옴표 보도

양적 분석에서는 언론이 사법농단 법관탄핵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다가 정치권 발화 이후 이슈를 따라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도내용을 분석하니 정치인 발언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그친 ‘따옴표’ 보도, 제대로 된 검증 없이 특정세력을 부각시키는 보도, 극단적 발언으로 갈등을 야기하는 보도가 확인됐습니다.

 

언론은 중계자인가

2월 4~11일 보도분석에서는 ‘정치권 반응‧입장 전달’ 보도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보도는 여야 정치인 발언에 대한 심층 분석은 거의 하지 않은 채, 정치권 입장을 받아쓰거나 단순사실 관계를 중계하는데 그쳤습니다.

 

뉴시스 기사를 전재한 세계일보 <여야, ‘김명수 사퇴’ 공방…“정쟁 말라”vs“자격 상실”>(2월 6일)은 제목에서부터 여야 발언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여야 대변인이 김명수 대법원장과 임성근 판사를 두고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충견으로 나팔수로 빙의한 것”, “녹취라는 비인격적 꼼수”라고 표현한 대목도 고스란히 전달했습니다. 이어 국민의힘 김웅 의원과 전주혜 의원의 페이스북에 있는 “레오 3세와 같은 반열에 오르는 분”, “사기 공화국”이라는 표현도 여과 없이 실었습니다.

 

한국일보 <주호영 “김명수, 청과 긴밀히 교류...양심 있으면 물러나야”>(2월 10일 손효숙 기자)도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발언을 제목으로 옮겨왔습니다. 주 원내대표가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대법원장의 배석판사로 있던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의 법무비서관으로 갔다”며 제기한 ‘김명수 대법원장 청와대 교류론’을 강조하면서 김명수 대법원장 녹취록에 대해 “(탄핵 거론은) 거래 없이는 할 수 없는 얘기”라는 주장 역시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반면 주 원내대표가 언급한 정황 외 근거 또는 주장을 검증하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습관성 따옴표 보도

임성근 판사의 탄핵은 정치권 주도로 이뤄졌고, 국회의원 표결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기 때문에 언론이 의견과 입장을 듣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언론은 정치인의 의견과 입장을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가치판단과 검증을 거쳐 전달해야 합니다. 이런 절차가 사라진 단순전달은 맥락 없이 발언만 확대, 재생산하는 따옴표 보도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따옴표 보도는 한국 언론이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입니다. 한겨레 <한겨레 프리즘/따옴표 아닌 ‘물음표 언론’>(2020년 11월 8일)은 “기자들이 사실확인이나 교차검증, 더 나아가 언론인으로서의 해석과 판단을 회피할 경우 언론은 그저 권력자의 주장을 확산하는 ‘스피커’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치인 발언을 견제, 검증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정치인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뉴스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언론이 중계자 역할을 넘어 주장의 근거를 찾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검증 없이 ‘임판사 동기 성명’ 그대로 전달

앞서 ‘법조계 입장’ 관련 보도를 분석하면서 전‧현직 판사들의 입장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중에는 임 판사를 옹호하고, 김 대법원장을 비판한 ‘임성근 판사 동기 성명서’도 있습니다. 한국경제 <임성근 사시동기 140여명 “김명수 먼저 탄핵해야” 집단반발>(2월 5일 김명일 기자)는 사법연수원 17기 동기 성명 전문을 기사와 함께 싣고 “법조인이 이 사건과 관련해 집단성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탄핵돼야 할 사람은 임 판사가 아니라 바로 김 대법원장”, “이미 형사재판에서 죄가 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행위에 대해, 범여권 국회의원들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선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한 것” 등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했습니다.

 

매일경제 <거짓해명 김명수 ‘진퇴양난’…제 식구들마저 등 돌렸다>(2월 5일 고재만‧정희영 기자)도 “17기 전체 약 309명 중 200여 명이 가입한 단톡방에 성명서가 올라왔고 140여 명이 동의 의사를 밝혔다”면서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비판과 윤종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글을 전하고,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 자유대한호국단의 김 대법원장 고발을 덧붙였습니다.

 

특정 집단의 주장이나 입장은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성근 판사 동기 성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경제가 보도한 것처럼 해당 성명은 임성근 판사 동기 중 일부가 모여 있는 단체 SNS방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그렇다면 언론은 한 기수의 절반이 넘지 않는 인원이 발표한 성명이 대표성을 띈다고 할 수 있는지, 사실관계와 사회정의 구현에 부합하는지, 성명 당사자와의 연결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전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한 보도는 찾기 힘듭니다. 대부분 “임 부장판사 동기 법조인 140여 명”, “법조인들이 이 사건과 관련해 집단성명을 낸 것은 처음”이라는 것 외에 별다른 검증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앞서 언급한 매일경제 기사와 한겨레 <‘탄핵 임성근 동기’들 카톡 성명…그들은 누구를 대표하는가>(2월 5일 신민정 기자) 등이 성명 배경을 짚은 게 전부였습니다.

 

임 판사 동기들의 성명은 핵심 쟁점을 왜곡하는 내용이 포함되는 등 편향적 주장이 담겨 있습니다. “형사재판에서 죄가 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행위에 대해, 범여권 국회의원들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선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한 것”이라며 무죄선고를 근거로 탄핵소추안을 비판한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1심 판결문의 왜곡입니다. 1심 판결문은 임 판사의 사법농단 행위를 모두 사실로 인정했고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였다고 명시했습니다. 다만 직권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아 직권남용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심 판결문을 제대로 해석한다면 법원에서도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행위에 대한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안은 문제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성명을 보도하더라도 적어도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은 주장은 언론이 먼저 바로잡아야 했으나 대부분 성명을 전달할 뿐이었습니다.

 

극단화 유도하는 오피니언

임성근 판사 탄핵안 가결과 김명수 대법원장 녹취록을 다룬 일부 오피니언에서는 극단적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매일경제 <김세형 칼럼/거짓말 명수(대법원장)의 버티기>(2월 9일)는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판하며 “국회가 임성근 판사를 탄핵시킨 2월 4일을 ‘사법치욕의 날’로 신문들이 제목을 뽑았는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정치의 눈치를 심하게 보면서 거짓말을 한 게 들통난 때문”이라는 비문을 실었습니다. 이어 김 대법원장이 “(임명동의) 국회 표결을 앞두고 임성근 판사에게는 아는 야당의원들에게 잘 좀 얘기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럼에도 임성근 판사의 사표 수리를 해주지 않아 탄핵 절차의 아가리로 밀어넣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동아일보 <김순덕의 도발/대법원장은 ‘남자 추미애’였다>(2월 6일)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김경수 경남지사가 그리 당당한 이유를 이제 알겠다”며 “대법원장에 문재인 정권의 충실한 법비를 앉혀놨으니 겁날 게 없었던 것”이라고 힐난했습니다. 이어 “보은판결은 재판개입-사법농단 아닌가?”라는 중간제목과 함께 파기 환송심을 통해 판결이 바뀐 이재명 경기도지사, 은수미 성남시장을 언급하며 의도적 재판결과 변경이 있었다는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김 대법원장이 정권과 결탁해 특정 인물에게 유리한 판결을 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임성근 판사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화 녹취록은 여러 면에서 비판받을 문제입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판사들에 대한 제대로 된 개혁의지가 없었다는 점이 드러났고, 임 판사는 본인 사임을 위해 대법원장과 대담을 녹음하여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사법부에 신뢰를 보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식적 비판과 극단적 주장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사법부에서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나 이를 이유로 근거 없는 주장, 극단화를 유도하는 주장이 합리화될 수는 없습니다. 매일경제와 동아일보에 실린 오피니언은 김 대법원장 녹취록 공개를 빌미 삼아 뚜렷한 근거도 없이 ‘재판개입’을 주장한 셈입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정황이 전부였기에 사실 음모론에 가깝습니다. 취지가 무엇이든 자극적 단어를 동원해 근거가 부실한 주장을 내세우는 글은 상식적 비판이 아닌 선정적 막말일 뿐입니다. 진영 가르기 식으로 여론의 극단화를 유도하는 주장은 사회 해악이라는 점을 언론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0년 10월 8~31일 빅카인즈에서 ‘임성근’ 검색에서 나온 결과 중 관련보도, 2020년 11월 1일~2021년 2월 11일 빅카인즈에서 ‘사법농단’ 검색 후 ‘탄핵’ 키워드 일치, ‘사찰’ 키워드 삭제 후 나온 결과 중 관련보도

<끝>

 

monitor_20210224_008.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