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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무원 피격사건, 무분별한 인용보도로 정쟁‧갈등‧분노 키웠다
등록 2020.10.0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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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이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사실이 공개된 다음날인 9월 25일 북측은 유감 표명과 함께 피살경위를 담은 통지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해당 내용이 남측 국방부와 해양경찰이 공식 발표한 내용과 엇갈리면서 진실공방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신문은 진상규명보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성급하게 전하거나, 정쟁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증폭시켰고, 남북대결 국면을 부추기는 듯한 보도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공무원 총격 사망 사고가 보도된 9월 24일부터 10월 5일까지 5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의 지면 및 온라인 보도를 모니터링해 문제 유형을 정리하였습니다.

 

연유를 몸에 바르고 태우라? 정치권 주장 확인 없이 보도

남북 당국의 발표 내용 중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은 숨진 공무원의 월북 여부와 북쪽의 주검 훼손 여부입니다. 북측 해역에서 사건이 일어났다는 제약 탓에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해 사건 경위를 놓고는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내놓거나 불필요한 정쟁으로 갈등을 키웠는데요.

 

북한 총격 사망 사고_연유몸에발라.jpg

△‘연유를 몸에 바르고 태우라’는 주호영 의원 발언 그대로 보도한 동아(9/29), 조선(9/30)

동아일보, 조선일보는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정치권이 내놓은 주장을 따옴표로 그대로 보도하는 기사로 논란을 더 키웠습니다. 동아일보 <“군 ‘연유 몸에 발라 태워라’ 북한군 통신 입수”>(9월 29일 박민우 기자)는 “‘연유를 몸에 바르고 태우라’는 구체적인 내용의 북한군 통신이 우리 군에 입수됐다”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도 <“연유 발라 태워라” 감청했는데… 청‧여는 “공동조사해야” 되풀이>(9월 30일 주희연 기자)에서 주 원내대표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모씨 시신에 ‘연유를 발라 태워라’라는 북한군 통신을 우리 군이 확보한 사실이 알려졌다”며 해당 내용을 제목에 언급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사설/ 북한의 엽기적 만행에 '평화'에 매달리는 대통령>(9월 26일)에서 “문 대통령은 이 씨가 피살됐는데도 23일 유엔에서 당초 녹화한대로 화상 기조연설을 했다”며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엄중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지적했습니다. 매일경제도 <검은 정장에 근조리본…야 “문 유엔연설은 국제사회 웃음거리”>(9월 29일 박제완 기자)에서 대통령의 유엔연설에 대한 야당의 비난을 제목에 실었고, ”북한 정권의 살인 화형에 대한 방조를 넘어 범죄에 공모하는 행위“라는 야당 주장을 그대로 싣기도 했습니다.

 

야당 주장 그대로 실으며 정치권 정쟁 동조

‘연유를 몸에 바르고 태우라’는 주 의원의 발언에 대한 비판은 야권에서 나왔습니다. 한국일보 온라인판 <주호영 “北, 연유 발라 태우라 지시” 주장에 야당서도 “부정확”>(9월 29일 김한빈 기자) 등에 따르면 “연유를 몸에 발라’라는 표현에 대해 야당 내에서도 “부정확한 표현”이라고 선을 긋는 분위기“라며 국민의 힘에서 이번 사안의 진상조사를 맡고 있는 태스크포스(TF) 팀이 “국방부 비공개 보고 때 나온 내용은 공개해 얘기하지 않는 게 원칙이고, 주 원내대표의 말씀도 부정확하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겨레 <‘주검 훼손’ 규명 핵심과제…여야, 첩보 싸고 해석 제각각>(9월 30일 이제훈 김지은 노현웅 서영지 기자)도 주 의원의 주장을 보도하면서도, 군 관계자가 “‘몸에 발라’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는 내용도 함께 전달했습니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정치권의 발언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취재를 통해 최소한의 검증과정을 거친 뒤 기사화한 것입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9월 15일 사전 녹화돼 9월 18일 유엔으로 보내졌고, 어업지도원이 실종된 날은 그로부터 나흘 뒤인 9월 21일입니다. 시점만 따져봐도 이번 사안과 직접 연결 짓는 건 무리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부분은 고려하지 않은 채 야당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실으며 정쟁을 키웠습니다.

 

사실 확인은 저널리즘의 기본이지만, 특히 남북긴장 국면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정치인의 일방적 주장, 사소한 정보까지도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의 특수성 탓에 정보 확인에 제약이 많고, 자칫 잘못된 기사로 최악의 경우 군사적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관련 소식은 정치권에서도 폭발력이 큰 사안입니다. 불필요한 정쟁이 갈등만 키우지 않도록 더욱 신중한 보도태도가 필요합니다.

 

커뮤니티발 분노 옮기며 갈등 키우다

한편, 어업지도원 총격 사망 당시 군 당국이 표류 사실을 인지하고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는데요. 군 당국은 북측이 총을 쏠 거라 예상하지 못했고, 북측 해역에서 발생한 일이라 제약도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북측이 코로나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해 불법 월경자 사살 명령을 내린 상황 등을 고려하지 못한 안일한 대응이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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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비판하는 내용을 커뮤니티 댓글을 인용해 채운 조선일보(9/26)

조선일보도 정부를 질타하는 기사를 실었는데요. 하지만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커뮤니티 일부 댓글을 인용하여 채웠습니다. <“평소엔 처맞다가 밥주니 꼬리 흔드는 똥개도 아니고…”>(9월 26일 원우식 남지현 기자)에서 “많은 국민은 (북한) 통지문에 더욱 분노했다”며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 MLB파크와 고려대 커뮤니티 사이트 고파스에 올라온 댓글을 바탕으로 보도했는데요. “평소 쳐맞다가 밥 주니 꼬리 흔드는 똥개도 아니고 청와대고, 통일부고, 외교부고 이틀 동안 입 닫고 있다가 이때다 싶어서 보도자료 뿌리고… 이게 북한 속국인가 싶다”, “사과해서 끝이면 조두순도 사과했으니 끝인가요” 등의 댓글을 여과 없이 소개했습니다. “친문 성향 포털사이트 ‘다음’”, “친문 커뮤니티 ‘클리앙’” 등의 표현과 함께 조국 전 법무장관 페이스북 댓글에 실린 “김정은이 토착왜구, 개독교들보다 낫다” 등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부각하였습니다.

 

조선일보 <“문 대통령 행적 초단위로 해명하라” 1020 분노>(9월 25일 원우식 김영준 기자)에서는 ‘1020’이 분노했다며 고려대 커뮤니티 사이트 고파스와 서울대 커뮤니티 사이트 스누라이프에 실린 정부 비판 댓글을 소개했습니다. “네이버의 10대와 20대가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순위표에서는 1·2위를 포함해 절반 이상”이 피살된 공무원 관련 기사였다는 점도 1020 분노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 기사도 “친문 성향이 강한 포털사이트 ‘다음’” 등에서 가져온 댓글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민간인이 북한군에게 피격 당할 때까지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부와 군 당국은 비판받을 만합니다. 이와 관련해 민심을 전하는 것도 언론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일부 커뮤니티 댓글, 그 중에서도 정치 성향이 양극단엔 있다고 알려진 커뮤니티 사이트의 자극적 댓글을 민심의 잣대로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10‧20대가 분노하고 있다며 소개한 특정 대학 커뮤니티 이용자가 청년을 대표하는 것도 아닙니다. 선택적으로 골라온 댓글 중에서도 자극적인 내용을 골라 제목에 쓰고, 비교하는 방식 역시 갈등을 부추기며 여론을 호도할 수 있습니다. 민심을 전하고 싶다면, 최대한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시민의 이야기를 들은 후 기사에 담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도 연령, 세대, 정치 성향 등을 고려해 신중히 보도해야 합니다.

 

월북여부 확인, SNS까지 탈탈 털어야 하나

군 당국은 사망한 어업지도원이 월북을 시도하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동료와 유가족은 월북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유가족 측은 군 당국이 월북의 근거로 발표한 ‘배에 슬리퍼를 벗어두고 간 점’, ‘구명동의를 챙겨 입은 점’을 근거로 월북을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문제는 신문이 월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사망한 어업지도원의 소셜미디어를 과도하게 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일보는 <SNS 활발·가족 사랑한 가장이 자진월북?>(9월25일 김현종 기자)에서 “가족 사랑도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A씨(어업지도원) SNS엔 아들과 딸 사진이 유독 자주 등장한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또 “A씨의 SNS에서 특별히 업무 고충이나 어려움 등을 토로하는 글은 찾아볼 수 없다”라며 월북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습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포스터를 공유한 걸 보면 A씨는 공무원으로서 애국심이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 목포의 한 미혼모 주거지원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다녀온 뒤 관련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등 이번 사안과 직접 연관이 없는 내용을 나열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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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된 공무원 A씨 SNS 게시물을 보도한 한국일보(9/25)

소셜미디어 게시글과 댓글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은 기사도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총살 공무원의 SNS에 담긴 모습은...‘딸 바보’ ‘아들 자랑’>(9월24일, 원우식 기자)에서 “2016년에는 이씨가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가 지인이 ‘공주님 보면 피로가 확 풀리겠어요’라고 댓글로 칭찬을 건네자 이씨는 “네 과장님, 이 맛에 사네요”라고 답했다”고 썼습니다. 중앙일보도 <SNS엔 “꽁주, 이맛에 산다”...피격당한 공무원 딸바보 아빠였다>(9월24일 고석현 기자)에서 “A씨는 딸이 자고 있는 모습부터 딸을 안고 웃는 모습 여행을 가서 가족들과 포즈를 취하는 모습 등을 올렸다. 지난 2월엔 딸이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올리며 “생애 두 번째 스케이트 타는 딸”이라고 자랑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사망한 어업지도원이 소셜미디어에 자녀나 태극기, 봉사활동 등 사진을 올렸다는 사실이 월북 진위여부를 따지는 데 참고자료는 될 순 있지만, 해경 조사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사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댓글의 세세한 내용까지 소개하는 것은 고인의 사생활을 불필요하게 ‘전시’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언론의 과도한 사생활 캐기는 진상규명에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정부 비판 넘어 한반도 평화 기조까지 문제 삼아

북한군의 이번 총격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피살 사건 때보다 의도성이 짙다는 점에서 더 잔혹하다 할 수 있습니다. 북측에 대한 남측 여론도 날로 나빠지고 있으며, 남북연락사무소 폭발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도 회복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이전까지 한반도 평화 기조를 폄훼하고, 남북대결 국면을 조장하는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사설/군이 추 아들 구하려는 노력 절반만 했어도 북 만행 막았을 것">(9월 26일)에서는 “핵으로 무장한 북한군 120만이 건재한데 ‘군사력 아닌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게 지금 우리 군”이라고 비판하며, 국방부가 “국방백서에서 ‘북한군은 우리 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을 두고 “정치 지도자들이 평화 쇼”를 한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한국경제 <북 피격 와중에…서울시 ‘평양여행학교 강행’>(9월 26일 정지은 기자)은 시민단체가 대학생 등 청년을 대상으로 평양 역사, 먹거리 등을 강의하는 프로그램을 두고도 “북 피격 와중에” 서울시가 “행사를 강행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청년들에게 북한을 바로 알리려는 취지”의 행사조차도 해선 안 될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론은 국방부가 국방백서에서 ‘북한군은 우리 적’이라는 문구를 지운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해당 문구는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로 바뀐 수준이고, 문구를 삭제한 2018년 당시는 남북 정상이 4.27 판문점 선언으로 상호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합의한 때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평화 쇼’로 치부하는 것은 과도할 뿐 아니라 앞으로 평화정책 마련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어업지도원 피격을 이유로 시민단체 등 민간에서 행하는 남북교류 협력사업마저도 논란거리라고 한다면, 남북관계가 경색된 시기엔 평화를 이야기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09/24~10/05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및 온라인 보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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