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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심의위원회 시작부터 끝까지 삼성 ‘호위무사’ 자처한 신문
등록 2020.07.09 17:09
조회 448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검찰이 6월 9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이틀 뒤인 11일, 기소여부 등을 판단해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합니다. 이때부터 수사심의위원회 결정이 나온 6월 26일까지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사업현장을 직접 살피는 광폭 행보를 펼치며 본인 역할을 부각합니다.

  한국 언론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이 부회장이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한 6월 11일부터 7월 1일까지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를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와 이 부회장의 행보에 맞춰 우호적한 보도를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사심의원회 판결 전후로는 ‘삼성발 위기론’을 띄우며 ‘이재용 역할론’을 강조하는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이러한 행보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언론사는 사설에서도 이 부회장에 우호적인 입장을 드러냈고, ‘삼성 위기론’을 적극 펼치며 사실상 ‘호위무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기사는 언론이 쓰는데, 프레임은 삼성이 짠다?

영장이 기각되자 언론은 이재용 부회장이 6월 15일 삼성전자 챙기기 행보로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3개 사업부 릴레이 회의를 했다는 기사를 시작으로 19일 화성 반도체연구소 방문, 23일 생활가전 담당 경영진 간담회 참석 등 현장지시에 나선 모습을 연일 보도했는데요. “가혹한 위기”, “자칫하면 도태”, “한계 시험” 등 이 부회장의 말은 그대로 기사 제목이 되었고 삼성전자가 제공한 현장방문 사진이 함께 실렸습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삼성이 잘 돼야 하며 삼성이 잘 되기 위해서 이재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삼성과 이 부회장 측이 준비한 프레임에 맞춰 행보 의미를 부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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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6일부터 6월 25일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발언을 제목에 인용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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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6일 수사심의위원회 결정을 앞두고 언론은 ‘삼성발 위기론’을 강조하는 이재용 발언을 제목으로 사용했다. 한국경제(6/20), 조선일보(6/20), 매일경제(6/20), 동아일보(6/20)

 

‘이재용 행보’ 부각, 매경 > 한국 > 동아·조선

이 부회장의 동선과 그 내용을 부각한 ‘행보 보도’가 수사심의위원회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삼성 의도와 방향을 같이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 보도는 수사심의위원회 결정을 앞둔 2~3일 사이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민언련이 관련 보도를 분석한 21일 동안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에는 모두 82건의 이 부회장 행보 기사가 실렸습니다. 하루 평균 3.9건의 행보 기사가 나온 셈입니다. <매일경제> 20건, <한국경제> 15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각각 12건, <한국일보> 8건,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각각 6건, <한겨레신문> 3건이었습니다. 하지만 6월 23일 12건, 24일 11건, 25일 8건으로 수사심위위원회 판단 직전 행보 기사는 평균보다 월등히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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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한 6월 11일부터 결정일인 6월 26일까지 이재용 부회장 행보 보도량

 

이재용 ‘행보’ 쏟아낸 언론, 사설도 ‘친삼성’

행보 보도는 사설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행보 보도가 가장 많았던 신문의 사설이 삼성에 가장 우호적이었고, 행보 보도가 가장 적은 신문의 사설이 삼성에 비판적이었습니다. 분석기간 <매일경제>는 2건의 삼성 관련 사설을 내보냈는데 <이재용 불기소 권고는 무리한 대기업수사 관행에 대한 경고다>(6/29)는 “대기업이라서 특혜를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듯 ‘세 보인다’는 이유로 오기의 공격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며 삼성에 제기된 일련의 의혹을 억울하게 공격당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나머지 사설은 삼성 등이 전략적 제휴로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행보를 적게 보도한 한겨레의 경우 4개 사설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수사심의위원회 의의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삼성이 펼치는 여론전”을 경계하고 수사심의위원장에 편향적 인사가 오는 것을 비판하는 등 꾸준히 삼성을 견제했습니다. 사설은 언론사 입장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매일경제>와 <한겨레>의 논조 차이는 경제권력을 대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이 부회장 행보를 전한 보도가 아니더라도 <D램 값도 심상치 않다...삼성 복합위기 먹구름>(매일경제 6/22, 김규식·전경운·성승훈 기자) 같이 “삼성전자 사업부문에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경제 불안과 미‧중 무역분쟁, 한일 갈등 불확실성이 겹친 가운데 각종 수사‧재판으로 조직 혼란과 리더십 공백 우려도 나오면서 삼성을 둘러싼 복합 위기가 심화 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며 삼성 위기론을 강조하면서 수사 상황을 언급하거나 <[김동호의 시시각각] 전 세계가 삼성 노조지켜본다>(중앙일보 6/17)가 “오너 경영은 한국 기업이 급성장하는 원동력”이라고 서술한 것처럼 ‘이재용 리더십’을 강조하는 등 삼성 프레임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삼성 호소문을 보도지침처럼 따른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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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심사(6/9)를 앞두고 삼성이 6월 7일 ‘대언론 호소문’을 발표한 다음날 ‘따옴표’ 관련 보도

이같은 보도태도는 이 부회장 구속영장 심사 전후에도 반복됐습니다. 6월 9일 구속영장 심사를 앞두고 삼성은 7일 대언론 호소문을 발표합니다. 호소문 요지는 “일부 언론을 통해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거나 출처 자체가 의심스러운 추측성 보도가 계속되고” 있으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무리한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것입니다.

기업이 불리하거나 사실에 반하는 보도에 대해 반론과 보도 자제를 요청할 수 있기에 호소문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삼성 호소문을 좀 더 살펴보면 “삼성이 위기”이며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경영이 정상화 되어야”하고 “삼성 경영이 정상화되어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언론이 “길을 열어달라”며 보도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일종의 ‘보도지침’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삼성의 호소내용이 적절한 것인지 따져보는 게 언론의 일차적 역할이지만, 대다수 언론은 호소문을 인용한 따옴표 제목을 양산하며 삼성 프레임을 적극 수용했습니다.

구속영장 기각 직후에도 “한국기업 보도에 인색한 일본 언론들이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과정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으며 “소니 측은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라며 이 부회장 재판이 삼성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동아일보 칼럼 <[광화문에서] 삼성전자와 소니, 다시 역전될까 두렵다>(6/10, 박형준 도쿄특파원)처럼 삼성에 편향적인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수사심의위원회’ 보도, ‘삼성X파일’ 사건 판박이

언론의 ‘친삼성’ 보도행태는 이번만이 아닙니다. ‘국정농단 사건’, ‘노조와해’, ‘산재‧직업병 문제’ 등 삼성이 재판을 받을 때면 대다수 언론이 삼성의 역할론, 위기론을 들고 나왔고 삼성에 불리한 내용은 아예 보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민언련 보고서 <이재용 2심판결에 대해 조중동 환영, 한겨레경향 비판, 한국일보는?>(2018/02/07), <삼성 분식회계 의혹은 침묵폴더블폰 공개는 환영>(2018/11/09) 등에서도 볼 수 있듯, 언론의 ‘친삼성’ 보도행태는 반복되었습니다.

삼성그룹의 불법 대선자금 및 고위검사 뇌물 제공 관련 대화 내용이 담긴 안기부 도청 파일이 폭로된 2005년 ‘삼성그룹 X파일’ 사건’도 대표적 사례입니다. 삼성의 잘잘못을 따져야 할 사건이었지만, 언론의 프레임은 핵심을 빗겨갔습니다. ‘불법도청’ 사실만 앞세운 프레임과 ‘삼성 위기설’ 앞에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묻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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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 당시 보도와 2020년 이재용 부회장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전후 보도가 거의 같다. 왼쪽은 2005년 매일경제(8/09)와 중앙일보(8/15) 기사이고, 오른쪽은 2020년 중앙일보(6/10)와 동아일보(6/10) 기사이다.

 

수사심의위원회 ‘편향성’ 논란 외면

수사심의위원회는 6월 26일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합니다. 그러자 이들 언론은 검찰이 수사심의위원회 판단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국경제는 사설 <‘기업, 개혁대상인가 성장엔진인가’ 정부‧여당에 묻는다>(6/29)에서 “민간 법률전문가 가운데 무작위로 추첨 선정된 수사심의위의 결론은 다수 국민의 시각과 바람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매일경제도 사설 <이재용 불기소 권고는 무리한 대기업수사 관행에 대한 경고다>(6/29)에서 수사심의위원회에 선정된 외부 인사들은 “법조 방면에 일정 수준 이해가 있고 합리적 상식에 기반해 법률 사안을 판단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춘 지식인들”이라며 검찰이 “심의위의 권고를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집에서 결과 들은 이재용, 담담하게 이런 일도 생기네요”>(6/29, 조강수 사회에디터)에서 “일본 검찰이 소니를, 미국 검찰이 애플‧구글을 1년7개월 이상 수사한다면 그 나라 국민이 납득하겠냐”는 익명의 ‘법조계 인사’와 이재용 씨가 자택에서 소식을 접하고 “이런 일도 생기네요라고 말했다”는 ‘삼성그룹 쪽 인사’의 말을 인용하며 수사심의위원회 신청과 판단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반응을 골고루 전했습니다. 이런 보도만 보면 이 부회장이 무엇 때문에 수사를 받고 있는지, 수사심의위원회 위원구성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더욱 노골적인 ‘친삼성’ 행태로 의심되는 보도도 있습니다. 6월 30일 매일경제 1면에는 <정진기언론문화상 대상에 삼성전자>(6/30, 김시균 기자)가 실렸습니다. 삼성전자의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높게 평가해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하는데, 정진기언론문화상을 수여하는 정진기언론문화재단은 매일경제 최대주주입니다.

삼성그룹은 한국 최대 기업이자 글로벌 대기업으로 경제, 사회적 영향력이 적지 않습니다. 언론이 많이 보도하고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삼성의 핵심 경영진에 대한 범법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우호적 보도로 사건 본질을 비켜가게 하는 행태는 ‘광고주 삼성 편들기’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6/11~7/1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보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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