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모니터_
TV조선, 전쟁영화 예고편 같은 영상에 ‘준 전시상태’ 엄포까지
등록 2020.06.2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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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종편의 시사대담 프로그램에서는 ‘북한’에 관한 대담이 주를 이뤘습니다.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배경을 추측하거나,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서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 등을 다루는 대담이 자연히 많아졌는데요.

 

남북이 화해 분위기일 때를 빼면 종편에서 북한을 대하는 방식은 매번 비슷합니다. 탈북한 지 오래됐거나 북한의 내밀한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탈북자, 그 밖의 대북전문가나 군사전문가가 출연해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북한에 대해 극단적인 추측을 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의 전투적인 모습을 한껏 강조해서 보여주려고 자극적으로 편집한 영상도 문제가 큽니다. 극단적인 추측이나 자극적으로 편집된 영상은 북한에 대한 공포심과 적대감만 강화시킬 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데요. 지금부터 종편에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북한 보도의 문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1. 미검증 ‘북한발 정보’에 기댄 극단적 추측

채널A <뉴스A LIVE>(6월 17일)에서는 탈북자 출신 주성하 동아일보 차장이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미리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성하 씨는 검증되지 않은 ‘북한발 정보’를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주성하 동아일보 차장 : 저는 저 계획이 작년 10월부터 시작됐다고 제가 보고 있습니다. (중략)

 

주성하 동아일보 차장 : 이게 뭐 제가 판단해서 그런 게 아니고 제가 북한에서 받아온 정보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 8개월 동안 꾸준히 정보를 받아왔거든요. 그래서 작년 10월 중순에 김정은이가 백두산에 백마를 타고 올라가서 웅대한 작전 계획을 이야기한 것이 있습니다. 그 웅대한 작전 계획을 이야기하기 전 10월 10일에 북한 노동당 상무위원, 그래봤자 뭐 한 4명 정도밖에 안 됩니다. 상무위원들에게 웅대한 구상에 대해서 이야기한 거 있습니다. (중략) 그 이야기를 중앙당 책임일꾼들한테 강의로 하달한 게 있습니다. 책임일꾼이라고 하면 중앙당 과장급 이상입니다. 그래서 그게 사실 강의 자료가 없고 필기로만 받아 쓸 수 있는 자료인데 제가 그 내용을 작년에 벌써 입수했습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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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으로부터 고급정보를 꾸준히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기자 주성하 씨

채널A <뉴스A LIVE>(6/17)

 

“연락사무소 폭파계획 작년 10월” 근거는 북한 중앙당 강의자료?

주성하 씨는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계획이 “작년 10월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했습니다. “8개월 동안 꾸준히 정보를 받아왔다”며 본인이 북한에서 받아온 정보가 근거라고 말했는데요. 주 씨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 초부터 정세를 극단적으로 전쟁 양상으로 몰아가서 전쟁 직전까지 가지고 가서 한국 정부를 협박”한 다음에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얻으려고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2~3월부터 시작되었어야 할 북한의 대남 도발은 코로나19 사태로 미뤄졌다면서 “북한이 원래 서너 달 전에 했어야 될 도발을 지금 시작했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주장은 주 씨가 받아봤다는, 이른바 북한 중앙당 강의에서 책임일꾼들이 ‘필기로만 받아쓸 수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었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6월 4일 <노동신문>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는 개인 담화를 통해 9‧19남북군사합의 파기 또는 개성공단 완전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등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최근 북한의 대남 행보는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건은 박근혜 정부 당시 20대 국회가 여소야대 구도로 시작될 때부터 주요 이슈였습니다. 지난해 11월 13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국회의원 157명이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촉구 결의안’을 공동 발의하기도 했죠.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를 비롯하여 시민사회에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촉구해왔습니다. 즉, 주성하 씨의 주장은 북한 중앙당 강의자료 없이도 그동안 남북 상황을 바탕으로 예측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교차검증 없는 ‘북한발 정보’, 억측만 무성

그러나 정작 주성하 씨 발언을 살펴보면 주 씨가 북한에서 받아본 정보가 별로 가치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주성하 동아일보 차장 : 지금 원래 서너 달 전에 했어야 될 도발을 지금 시작했는데 제가 봤을 때는 저게 작전이 좀 변경돼 가지고 과거 김정은이 작년에 예상했을 때는 끝까지 전쟁 직전까지 몰아가서 그리고 그다음에 타협을 이끌어낸다. 이런 복안이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폭파하는 거 보니까 아예 타협할 생각을 이제는 버린 듯합니다.

 

주성하 씨는 자신이 북한에서 8개월간 꾸준히 받아온 정보대로라면 북한의 도발은 애초 서너 달 전 시작됐어야 하지만 연락사무소 폭파가 6월 16일에 일어났으니 ‘작전이 좀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까지 내놓았습니다. 즉, 북한이 “전쟁 직전까지 몰아가”, “그 다음에 타협을 이끌어낸다”는 게 북한발 자료에 의한 추측이었으나, “지금은 저렇게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거 보니까 아예 타협할 생각을 이제는 버린 듯하다”고 또다시 추측했죠. 결국 주 씨는 ‘북한에서 받아온 정보’가 언제든지 변경 가능한 것이고, 계획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시인한 겁니다.

 

탈북자 출신 전문가가 말하는 ‘북한발 정보’는 이렇게 진위가 불확실합니다. 그런데도 종편에서는 탈북자 출신 전문가의 입에서 나오는 ‘북한발 정보’가 검증된 사실인 것처럼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북한처럼 정보통제가 심한 곳에 대한 정보는 교차검증이 필수입니다. 탈북자들의 미확인 북한발 정보에 의존해 억측을 쏟아내는 것이 과연 국가안보에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종편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2. 대북 공포심, 적대감 부추기는 자극적인 영상

종편의 북한 보도 문제점은 출연자 발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극적으로 편집된 영상도 심각한데요.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6월 19일)의 영상 구성은 특히 도드라졌습니다.

 

전쟁영화 예고편 같은 TV조선 영상, 3년 전 자료화면

<보도본부 핫라인>이 ‘심상치 않은 북한?’이라는 제목과 함께 내보낸 영상은 시작부터 비장하고 긴박한 타악기 소리가 들립니다. 타악기 소리를 배경으로 북한 조선중앙TV 남자 아나운서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비무장지대에서 철수하였던 민경 초소들을 다시 진출‧전개하여 전선 경계근무를 철통같이 강화할 것”이라며 북한의 공식입장을 강한 어조로 전하는 내용이었죠. 이 내용이 끝나자마자 ‘비무장화 지역 요새화’라는 붉고 큰 글씨의 자막이 화면 중앙에 떠올랐습니다. 자막 뒤에는 북한 GP 초소와 함께 무언가를 공중으로 쏘는 화면이 나타났습니다. 붉은 불빛이 여기저기 번쩍이는 가운데 긴장감을 불러오는 타악기 소리는 영상이 나오는 내내 계속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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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 대한 공포심‧적대감 자극하는 방식으로 영상 구성한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6/19)

 

다음으로는 조선중앙TV 여자 아나운서 목소리가 등장했습니다. “불을 즐기는 전쟁 미치광이들을 무자비하게 불로 다스리는 것은 주체조선의 변함없는 단호한 대응방식이다. 우리 최고 수뇌부에 감히 도전해 나서는 자들은 지구상 그 어디에 있든 천 길 땅속을 뒤져서라도 마지막 한 놈까지 철저히 소탕해버린다는 것”이라고 역시 북한의 입장을 강한 어조로 전달하는 내용이었죠. ‘전쟁 미치광이’, ‘단호한 대응방식’, ‘철저히 소탕’과 같은 자극적인 문구가 담긴 내용과 함께 여기저기 포탄이 날아다니는 영상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구성한 영상에서 인용한 북한 조선중앙TV 방송은 2017년 10월 방송분이었습니다. TV조선은 최근 남북관계 경색 국면을 보여주기 위해 무려 3년 전 영상을 인용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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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조선중앙TV 방송 인용해 위기감 고조시키는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6/19)

 

TV조선의 자극적인 영상 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쾅’ 하는 폭발음을 시작으로 ‘롤러코스터 탄 남북관계’라는 자막과 함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폭파되는 연락사무소 화면 위로는 두 손을 맞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웃는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시청자 불안심리 조장하는 영상, 대체 왜?

<보도본부 핫라인>이 구성한 영상은 결국 ‘북, 군사행동 시작?’이라는 자막과 함께 끝났는데요.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전쟁영화의 예고편이라도 되는 듯한 구성이었습니다. 영상을 보여주기에 앞서 진행자 엄성섭 씨는 이렇게 말했는데요.

 

진행자 엄성섭 : 북한의 움직임, 특히 인민군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북한이 준 전시상태를 갖춘다는 의견도 나오는데 영상 먼저 보겠습니다.

 

“북한의 움직임, 특히 인민군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며 보여준 영상은 한참 철지난 자료화면과 함께 자극적인 자막, 효과음이 뒤섞여 있을 뿐입니다. 마치 전시상태로 들어가는 듯한 ‘긴박한’ 분위기의 영상을 내보냈지만, 이날 <보도본부 핫라인>에서 꼭 전달해야 하는 ‘긴급한’ 북한 관련 소식은 없었습니다. 냉정하고 차분한 상황 분석도 없었습니다.

 

전쟁의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고,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북한과 종전이 아닌 휴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불안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정 시청자를 위한 방송이라면 남북 긴장상황을 한낮 이야깃거리로 생각하여 ‘준 전시상태’라는 엄포와 함께 자극적인 영상으로 국민의 불안 심리를 조장해서는 안 되겠죠.

 

* 모니터 대상 : 2020년 6월 15~19일 TV조선 <보도본부핫라인><신통방통><이것이정치다>,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뉴스TOP10><뉴스A라이브>, MBN <뉴스와이드><아침&매일경제>

* 출연자 호칭을 처음엔 직책으로, 이후엔 ○○○ 씨로 통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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