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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본질 제쳐두고 ‘폭동’ 강조한 한국언론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사망하자 경찰 폭력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지고 있습니다.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이 불씨가 되어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것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위 배후에 급진 좌파집단 안티파(ANTIFA)가 있다거나 ‘군대의 무한한 힘을 활용하겠다’는 등 발언으로 문제 본질을 외면한 채 시위를 자극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부 ‘유혈사태’ ‘매장약탈’ 과장한 자극적 보도
일부 시위가 과격해지며 약탈, 방화 등 사건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 NBC 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이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9%가 시위 양상보다 조지 플로이드 죽음과 경찰 과잉진압에 더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폭력적으로 변질된 시위 양상이 더 우려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27%에 그쳤습니다. 시위가 확산되면서 평화적 분위기가 정착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시위를 다룬 한국 언론은 시위대 주장이나 요구 내용보다 일부 폭력적 양상과 트럼프 행정부 입장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인종차별 문제와 대다수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뒤로한 채 언론은 일부 시위에서 나타난 약탈, 방화 등의 폭력적 양상을 자극적인 표현으로 강조했습니다.
조선일보 <방화·약탈로 번진 미美 인종차별 시위…유혈사태에 주 방위군 투입>(5/30 김수경 기자), 한국경제 <미美 대혼란…1968년 후 최악 유혈사태>(6/2, 김현석 주용석 특파원) 등은 ‘유혈사태’라는 표현을 쓰며 혼란을 과장했고, TV조선 <신통방통>(6/4) 윤태윤 진행자는 “미국의 폭동상황”이라며 아예 ‘폭동’으로 규정했고, “불특정 점포들을 향해서 시위활동을 펼치고 있다”며 시위 본질을 왜곡하기도 했습니다.
△ 미국 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LA 폭동 당시 총을 겨누는 듯한 한인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도한 TV조선 <신통방통>(6/4)
진행자 윤태윤 : 다음 주제는 미국의 폭동 상황을 좀 볼 텐데요. 미국 내 인종차별 항의 시위 가 정말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인 사회의 피해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중략) 물론 이들이, 시위대들이 한인 점포들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불특정 점포들을 향해서 시위 활동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인들도 이렇게 피해가 크다는 점을 지금 보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특정 브랜드 매장을 언급하며 시위 양상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6월 2일 방송된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에서 진행자 김진은 루이비통 매장을 약탈하는 영상을 마치 중계하듯 보여주며 경찰 과잉진압이 촉발한 시위라는 사실을 잊은 듯 “미국의 공권력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김진 : 그런가 하면 이 시위대가 루이비통 등 명품 매장을 약탈하는 영상도 저희가 확보했습니다, 함께 보시죠. 보시면요, 시위대가 루이비통 매장 안을 뚫고 들어가는 모습이에요. 유리창을 부수고 깨고. 인집된 사람들이 루이비통의 명품 물건들을 훔치는 영상이, 현재 미국입니다. 21세기에 가장 공권력이 강한 나라 중에 한 곳으로 꼽히기도 하고, 선진국 반열 중에서도 정말로 최우선에 손꼽히는 미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얼마나 미국 사회의 현재 공권력이 흔들리고 있는지, 미국 사회의 어떤, 평소의 어떤 모습과 질서가 파괴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싶고요.
일부 시위에서 약탈이 있었고, 인명피해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일부 한국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시위가 본래 목적을 벗어나 변질된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보도한 대로 대부분 평화적으로 시위하고 있고, 경찰과 주 방위군도 시위 취지에 동감하며 ‘무릎 꿇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일부 시위 양상을 과장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가 시위 의미를 변질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한인피해 보도, 본질 외면한 채 갈등 증폭
이번 시위 과정에서 한인사회가 약탈과 방화 등 피해를 입은 것은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한국 언론이 한인피해 보도에 비중을 두는 것도 당연합니다. 한국인이라는 동질성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1992년 ‘LA폭동’ 때 큰 피해를 입은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 ‘LA폭동 재연’을 언급하며 공포 키운 동아일보(6/3), 조선일보(6/4)
하지만 한국 언론에서 말하듯 “LA 폭동이 재연”된 수준은 아닙니다. 1992년 ‘LA폭동’ 당시 한인들은 치안공백 속에 스스로 자경단을 꾸려 인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번엔 경찰과 한인회, 영사관 등이 신속히 대책을 논의해 큰 치안공백이 발생하지 않았고 ‘LA폭동’과 비교해 한인피해 규모도 크지 않은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동아일보 <“LA폭동 재연될라” 총기 사는 교민들>(6/3, 윤수민 특파원 최지선 기자)처럼 ‘LA폭동’을 언급하며 공포를 조장하는 보도도 잇따랐습니다.
이번 시위의 본질은 인종갈등이고, 약탈과 방화 등도 시위진압으로 인한 치안공백에서 일어났습니다. 언론은 한인피해가 우려됐다면 자극적인 제목으로 폭력 양상을 과장 보도해 공포와 갈등을 조장할 것이 아니라 치안공백이 생긴 이유를 짚고, 해결방안 제시에 주력해야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보도도 LA경찰이 “한인을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말라” 당부했고, “LA 한인타운에 주 방위군이 투입됐다”는 점을 본문에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큰 제목만 보면 지금 상황이 ‘LA폭동’ 당시와는 다르다는 걸 독자가 체감하기엔 매우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종편은 트럼프 ‘앵무새’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배후에 급진 좌파집단이 있다고 주장하고, 군대를 동원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시위 해산을 위해 ‘블랙호크’라는 무장헬기를 띄워 논란이 됐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트럼프 발언과 행동을 옹호하는 내용이 종편에서 나왔습니다.
채널A<뉴스Top10>(6/3)에서 이도운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이쪽 잘 아는 교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약탈하고 방화하고 공권력에 대응하는 게 뭔가 조직적 대응이 있는 것 같다”면서 “좌파 파시스트들의 어떤 움직임”일 것이며 “관련된 백악관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종대 보도본부 뉴스연구팀장은 블랙호크를 동원해 시위 해산을 한 것에 대해 원래 무장 공격헬기지만 “도어건을 없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백악관이기에 정보가 있을 것’이고 ‘이쪽 잘 아는 교민의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다’는 추측성 발언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시위대 해산을 위해 군대와 군용 장비를 동원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없이 ‘총을 없앴으니 괜찮다’는 식의 주장 역시 공권력의 존재이유를 망각한 발언입니다.
△ 미국 인종차별 시위대에 “좌파 파시스트들의 어떤 움직임“ 언급한 이도운 문화일보 논설위원 채널A <뉴스Top10>(6/3)
이도운 문화일보 논설위원 : 트럼프 대통령이 안티파라고 그랬죠? 좌파 파시스트들의 어떤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거는 좀 과한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현지에 있는, 이쪽 잘 아는 교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약탈하고 방화하고 공권력에 대응하는 게 이게 단순한 시위대가 아니라 뭔가 조직적인 대응이 있는 것 같다는 의사를 표시를 했고 트럼프 대통령 가족 중에 일부도 약간 그런 의사를 표시했는데 그게 아마 그거와 관련된 백악관은 정보를 갖고 있겠죠. 그래서 그런 상황도 배제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렇게 군까지 동원께서 철저하게 대응하는 것 같습니다.
하종대 보도본부 뉴스연구팀장 : 무력을 기치로 진압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는데 사실 동원된 헬기 같은 경우는 블랙호크는 원래 무장 헬기거든요. 근데 이번에 동원한 걸 보면 그 옆에 있는 도어건을 없앴어요. 그러니까 즉 시위대한테 기관총으로 쏘겠다, 이런 생각이 아예 처음부터 없다는 거죠. 그다음에 라코타헬기 같은 경우에는 수송용 헬기예요. 이게 무장 공격하는 헬기가 아니라. 그러니까 즉 다시 말하면, 시위대가 모여 있으면 헬기가 30m 상공에 떠 있는데 그걸 좀 더 낮추면 엄청 바람이 세 가지고 서 있기도 힘들 거거든요.
진행자 김종석 : 그렇죠.
하종대 보도본부 뉴스연구팀장 : 즉, 다시 말해서 시위대를 해산용으로 하는 거고 그 다음에 아까 험비 같은 경우에도 그게 수송용 차량이에요. 그게 무슨 어떤 전차나 탱크 이런 게 아니고. 그래서 지금 현재까지 동원된 군의 여러 가지 무기들은 해산용이지 이게 시위대를 직접 공격할 용은 아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분노 바이러스’와 ‘포위당한 삼성 타운’
인종차별과 경찰의 폭력진압에 맞서 집단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아닌 비판 대상인 권력집단의 시선을 따라가는 보도 양상도 유감스럽습니다. 언론이 처음부터 시위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보도했다면, 불필요한 공포와 갈등을 조장하지 않고 사건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폭력 양상을 과잉 보도하고 정부나 기업의 주장에 힘을 실어 시위 본질을 흐리는 한국언론의 보도태도는 이번 사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한국경제 <미美 140개시 폭동…‘분노 바이러스’에 경제 재개 멈췄다>(6/2 김현석 특파원)는 “유혈 폭력시위로 이제 막 ‘코로나 봉쇄령’에서 벗어난 미국 경제가 다시 혼란에 휩싸였다”며 나이키,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 대기업과 자영업자를 언급하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전날 같은 신문에 보도된 <상여 끌고 장송곡 틀고…욕설·비방에 포위당한 ‘삼성 타운’>(6/1 이수빈 송형석 윤아영 기자)이 닮아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분노 바이러스’라는 이름에 인종차별 문제는 경제논리로 가려지고, ‘포위당한 삼성 타운’이라는 문장에서 삼성 본사 앞 시위 목소리는 욕설과 비방으로 규정될 뿐입니다. 시위대에 반감을 갖고 근본 원인을 외면하는 듯한 시위에 대한 보도태도는 한국언론에서 ‘기본값’이 된 지 오래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려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것에 항의하며 삼성본관 앞 철탑에 올랐던 김용희씨는 355일 만에 땅을 밟으며 “권력을 견제하고 사회적 약자들이 피눈물 흘리는 현장을 세상에 환기시키는 게 언론인”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세상을 향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사회적 약자들의 시위를 보도할 때 한국 언론은 김용희 씨의 말을 곱씹어보길 권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5/28~6/5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서울경제, 한국경제(*지면보도에 한함), TV조선 <보도본부핫라인><신통방통><이것이정치다>,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뉴스TOP10><뉴스A라이브>, MBN <뉴스와이드><아침&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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