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보도_
‘막말‧왜곡’ 사후정정, 반복되면 면죄부 될 수 없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참관 논평
등록 2020.04.0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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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전국동시지방선거, 재‧보궐선거 시기에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하여 ‘선거방송’을 심의합니다. 심의규정 역시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으로 따로 마련이 되어 있습니다. 선거가 그만큼 중요하고 선거의 특성상 평상시 방송보다 더 엄격한 형평성, 객관성, 중립성 기준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지난해 12월 16일부터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운영 중이고 4월 9일 현재 총 14차 회의까지 진행됐습니다. 이번 총선은 선거법 개정 이후 첫 선거라는 점, 거대 양당이 그 선거법을 우회한 꼼수로 논란을 일으켰다는 점,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재난 상황이 겹쳤다는 점에 있어 선거 방송, 선거 보도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그만큼 우려 역시 컸습니다. 자연스럽게 선거방송심의위의 책임도 막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2020총선미디어감시연대는 제1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의 심의가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매주 회의를 참관하고 있습니다.

 

‘막말 후 사과 또는 삭제’가 반복되면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오랜 기간 오보‧막말‧편파로 방통심의위 제재 대상이 됐던 종편 시사 대담 프로그램들은 나름의 방편을 찾아냈습니다. 출연자가 사실과 다른 주장, 막말 등을 내놓으면 곧바로 진행자가 사과를 하고 해당 방송분을 다시보기에서 삭제하는 겁니다. 이런 경향은 더 이목이 집중되고 제재도 더 엄중할 수밖에 없는 선거 시기에 더욱 강화됩니다. 문제는 방통심의위가 그간 종편의 ‘막말 후 진행자 사과 또는 영상 삭제’라는 사후적, 습관적 조처를 일종의 면죄부처럼 인정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방송은 문제였지만 사후조치를 했으니 제재를 경감하거나 제재하지 않는 심의 사례들이 있습니다. 물론 전문 방송인이 아닌 패널들이 생방송 중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경우 진행자가 빠르게 바로잡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매일같이 반복된다면 사후조치가 아니라 심의를 피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라 할 수 있으며, 심의기관은 이를 제지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방통심의위는 그렇지 낳았으며 선거방송심의위에서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10일이나 지났지만 정정했으니 문제 없다?…‘의견제시’에 그쳐

4월 9일 선방심의위는 TV조선 <신통방통>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TV조선 <신통방통>(3/10)에서 나온 “선거법이라는 것은 여야가 합의 처리해온 것이 지금까지 관행”, “단 한번도 합의 처리를 안 한 적이 없다”라는 최병묵 TV조선 해설위원 발언이 객관성 조항을 위반했는지 심의한 것인데요. 방통심의위는 최병묵 씨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했음에도 가장 낮은 수위의 조치인 행정지도 ‘의견제시’ 결정을 내렸습니다. 최병묵 씨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서도 팩트체크되었습니다. 1988년 3월 8일 노태우 정권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은 야당 의원들의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막고 단독으로 ‘소선거구제 개편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전례가 있습니다.

 

어째서 선거방송심의위는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 강제력이 없는 ‘의견제시’만 줬을까요? 그 이유는 뒤늦게라도 정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TV조선 <신통방통>은 10일이나 지난 뒤에 “지난 3월 10일 방송 중에 최병묵 위원님이 선거법은 단 한번도 여야가 합의 처리를 안 한 적이 없다고 말을 했었는데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때 날치기 통과 논란이 있었음을 말씀을 드리겠다”고 정정방송을 했습니다. 어느 때보다 공정해야 할 선거 방송 기간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방송하고 무려 10일이나 지나 정정했기 때문에 제재가 불가피한 사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위원은 ‘정정보도를 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습니다. 김인기 위원은 “나중에 정정보도도 했고 하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권순범 위원도 ‘문제없음’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박세각 위원은 88년 선거법 개정 때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었다며 출연자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박상호 위원은 “최병렬 전문위원이 TV조선 전문위원인데, 기본적으로 치우친 발언을 했다”며 “여야 합의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가 실질적으로 TV조선을 대표해 논설하기에는 분명히 균형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상병 위원은 “팩트를 전달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행정지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제재 수위에 대한 투표결과 정인숙, 박상호, 김영미 위원은 ‘권고’, 김용관, 박상병, 박세각, 권순범 위원은 ‘의견제시’에 투표했고, 최종 ‘의견제시’로 결정됐습니다. 

 

‘사후 정정’ 반복되면 문제라는 사실, 심의위원 중 단 1명만 지적했다

이런 사례는 더 있습니다. 3월 5일 선거방송심의위는 TV조선 <신통방통>이 사실과 다른 방송을 했다는 취지의 민원을 심의했습니다.(의결번호 제53호) TV조선 <신통방통>(2/10)에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대담을 나누던 중, 출연자인 김종래 충남대 특임교수가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주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충남대 특임교수는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항임에도 “이렇게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을, 8개부서가 했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어떻게 잘 굴러갈지 이 점을 야당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그 점이 궁금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이 때도 TV조선은 뒤늦게 정정을 했습니다. 다음날 TV조선 <신통방통>(2/11)은 방송 말미에서 “어제 저희 출연자 중에 김종래 교수께서 청와대 8개 부서가 선거에 개입했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표현했다”며 “아직 검찰의 공소 내용일 뿐 법적인 판결을 통해서 확정되기 전이기 때문에 정정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역시 이 때도 선거방송심의위의 판단은 같았습니다. 심의위원 대부분 모두가 문제가 있는 발언임을 인정했지만, 스스로 정정을 했기에 용서하자는 겁니다. 정인숙 위원은 “이 건의 경우에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방송사의 후속 조치가 바로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굳이 제재 대상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습니다. 박세각 부위원장은 “객관적인 사실은 아니라 할지라도 토론자는 검찰의 공소장에 있던 사항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며 “토론자의 발언을 가지고 제재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인기 위원 또한 정정보도를 했다는 점을 들어 ‘문제없음’ 의견을 냈습니다. 반면 유일하게 박상호 위원만 “후속 조치가 있다고 하지만 동일 프로그램이 유사한 위반 내용으로 계속해서 안건으로 상정되고 있다”며 “선거가 임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더 이런 부분에 대해 주의를 줘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정정을 해도 문제라는 인식을 위원장 포함 8명이나 되는 심의위원 중 단 한 사람만 갖고 있던 겁니다.

 

결국 이 심의 안건은 투표결과 ‘문제없음’으로 의결됐습니다. 선거방송심의위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방송에서 사실과 다른 발언, 그것도 선거 시기에 유권자의 판단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편향적 발언을 하는 것이 심각하지 않은 사안인가요? 이것이 초등학생들이 장난으로 싸우다 사과하면 용서할 수 있는 그런 사안으로 보이시나요? 사후 어물쩍 정정을 해도, 이미 잘못된 방송이 나간 것으로 인한 피해는 주어담을 수 없음을 심의위원들은 모르는 것인가요? 그리고 토론자의 발언을 가지고 제재하는 것은 곤란하다니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세금으로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심의위원들에게 비용을 지불하나요? 애써 민원을 접수하고 논의하고 있나요? 방송사들이 일단 아무말이나 무책임하게 내놓고, 다음날이든 열흘 후든 어물쩍 정정만 하면 용서가 된다면 방송심의가 왜 존재하나요?

 

정정 안 한 문제 보도 ‘의견진술’ 결정, 선거방송심의위는 과연

4월 9일 회의에서 선거방송심의위는 TV조선 <뉴스9> ‘앵커의 시선’이 사실을 왜곡했다는 취지의 민원을 심의한 결과 다음 회의에서 의견진술을 듣기로 결정했습니다. 2월 18일 TV조선 <뉴스9>에서 신동욱 앵커는 정부가 총선을 걱정한 민주당의 반대로 추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신 앵커는 “정부는 12‧16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지역에 즉각 규제를 확대 적용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걱정했던 대로 수원‧용인‧성남 이른바 수용성 집값이 급등해서 정부규제 기준을 넘어섰다”면서 “그런데 정부가 갑자기 결정을 유보했습니다. 총선을 걱정한 민주당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살펴봤더니 수용성 지역구 13곳 중 9곳이 민주당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지역구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다 “설마 설마하면서도 얼마 전 우한 교민 격리장소를 갑자기 변경했을 때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여 부동산 대책과 무관한 코로나19까지 끌어들였습니다. ‘정부가 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정책을 편다’는 프레임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불과 이틀 뒤인 2월 20일, 추가 부동산 대책을 내놨습니다. TV조선이 ‘선거를 걱정한 민주당 반대로 정부가 규제를 안 한다’고 규정한 지역이 대거 포함됐습니다. 풍선효과로 집값이 급등한 경기 수원 영통·권선·장안구, 안양 만안구, 의왕시는 조정대상지역으로 신규 지정했고 조정대상지역 2지역이던 성남 민간택지, 3지역이던 수원 팔달·용인 기흥·남양주·하남·고양 민간택지까지 전매제한을 강화한 겁니다.

 

이에 선거방송심의위 위원 일부도 문제의식을 표명했습니다. 김인기 위원은 “근거를 내놨어야 하는데 이런 근거가 없이 이런 오보를 했다”고 주장했고, 박상호 위원은 “이건 분명한 오보”라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권순범 위원은 “앵커의 시선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해당 코너를 기사로 볼 것인지, 칼럼과 논설처럼 볼 것인지에 따라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며 “앵커의 시선을 기사라고 본다면 앵커가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김인기 위원은 정부가 결정을 유보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없는 점이 문제라고 반박했습니다. 논의 끝에 강대인 위원장은 방송 담당장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제안했고, 다음 회의 때 담당자를 불러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습니다. TV조선이 이 보도에는 정정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는데요. 선거가 임박한만큼, 이 안건에는 방통심의위가 엄격한 제재로 왜곡이나 정파적인 보도 행태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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