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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언론과 거대정당의 어설픈 이해득실 계산에 국민들 표만 털린다
등록 2019.12.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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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28일 선거법와 공수처 저지를 위해 199개 법안에 대해 무작정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폭거를 저지름으로써, 20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로 남을 전망입니다. 자유한국당은 공수처와 선거법 반대를 둘 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자유한국당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 선거법으로 보입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얼마 전 단식에 들어갔을 때 몇몇 자유한국당 인사들에게서 공수처법은 협상하고 선거법을 막자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은 지속적으로 이번 선거법이 ‘좌파세력의 장기집권 음모’라며, 새로운 선거법이 자유한국당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자유한국당에 우호적인 언론들도 이와 같은 기사를 내놓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사가 조선일보가 낸 <비례 50100%연동형 땐 정의당 625>(11/28)입니다. 조선일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만 하면,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어떻게 조정하는지와는 상관없이 민주당과 정의당의 의석이 늘어나고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의석은 줄어든다”고 주장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왜곡입니다.

 

엉터리 의석수 계산으로 여론 호도하는 ‘기적의 수학가’들

햇빛이 식물을 얼마나 잘 자라게 하는지를 알아보고 싶으면 두 개의 화분을 준비하고, 흙의 성분·물의 양·주변 온도·식물의 종류·화분의 크기 등 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칠 법 한 다른 변수들을 통제하고 햇빛의 양만 조절해 주어야 합니다. 이를 변인 통제라고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과학 교과서를 처음 접한 그 순간부터 배우게 되는 너무나 기초적인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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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로 계산한 조선일보의 선거제도 예상 시나리오(11/28)

그렇다면, 선거법 개정의 영향을 알아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선거법 개정이라는 변수 이외에는 모두 변인 통제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에 대한 완벽한 방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 선거마다 지역구 구획부터 다르게 정해지고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도 매번 달라지며, 어떤 선거제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유권자들의 투표전략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최대한 변인 통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지난 20대 총선 결과에 새로운 선거법 계산식을 대입해서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정당지지율, 선거참여정당 정도의 변수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에서 계산의 근거로 삼은 것은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조선일보는 “27일 지금 당장 총선을 치른다면 선거 제도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예측해 봤다”며 “리얼미터 정당 지지율대로 유권자들이 비례대표 선거 투표를 했다고 가정”하고, “지역구 의석 분포는 지금과 같다고 봤다”고 했습니다. 즉, 조선일보의 계산법이란 지역구는 20대 총선의 결과를 대입하고, 비례대표는 현 시점의 지지율을 대입했다는 것입니다. 눈뜨고 봐줄 수 없는 해괴한 계산법입니다.

조선일보와 같은 날 서울경제도 같은 방식의 계산법을 사용한 기사 <민주·군소정당 이익 부합 ‘250+100%연동형대안 부상>(11/28)를 내고 “부의된 선거법에는 실제로 정당들의 목숨이 걸렸다”며 ‘셈법’만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선거제도가 불리한 것이 아니라 자유한국당이 망한 것 뿐

그런데 사실 조선일보는 비교적 제대로 된 계산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3월 민언련 모니터 <자유한국당 주장에 맞춰 표 편집한 조선일보>에 인용된 조선일보 <새 선거제 적용 땐128143, 한국당 11395>(3/18 남강호김동하원선우 기자)인데요. 이 기사에서는 선거법 개정안 원안(지역구 225, 비례 75, 연동률 50%)에 20대 총선 지지율을 적용했습니다. 그랬더니 더불어민주당 105석, 자유한국당 110석, 국민의당 61석, 정의당 15석, 기타 무소속 10석을 가져가 자유한국당이 제 1당이 되는 계산결과가 나왔습니다. 조선일보는 며칠 후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이 “자유한국당 의석을 강탈해서 팔아먹으려 한다”고 주장하자 자유한국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이 계산결과를 빼고 후속기사를 냈었습니다.

실제로, 20대 총선 결과는 표의 비례성이 깨진 선거였습니다. 지역구 득표수 총합 기준으로 보면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은 38.3%, 민주당 37.0%, 국민의당 14.9%, 정의당 1.6%를 얻었습니다. 비례 투표 기준으로는 자유한국당이 33.5%, 민주당 25.5%, 국민의당 26.7%, 정의당 7.2%였습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양 쪽에서 자유한국당이 득표율에서 앞섰는데도 민주당이 1당이 된 것입니다.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은 정의당이 연동형비례제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정당인 양 날조하지만, 사실 가장 억울했던 것은 지역구 14.9%, 비례대표 26.7%를 받고도 38석(전체 의석의 12.7%) 밖에 얻지 못한 국민의당입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20대 총선이 연동형비례제로 치러져 국민의당이 60석 이상을 얻었다면, 정치 지형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129석(123+6석)인 민주당과 111석(105석+6석)인 민주당의 영향력은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0대 총선 당시 자유한국당은 35%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있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상 초유의 헌정 파괴 사건으로 탄핵되기 전이었습니다. 그 난장판을 겪고 난 지금의 정당지지율로 선거결과를 계산하려고 하면 세계 어떤 선거제도를 들고 와도 자유한국당은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지금 시점에서 자유한국당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할 수 있는 선거제도란 득표율이 140%가 나왔다는 전설적인 러시아의 선거제도뿐일 것입니다.

 

이해득실 계산 속 사라진 ‘표의 등가성’ 문제

지역구 중심의 선거제도 하에서는, 10만명이 속한 지역구에서 투표하는 시민들의 1표는 20만명이 속한 지역구에서 투표하는 시민들의 1표에 비해 2배의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똑같은 유권자인데 국회가 선거구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내 표는 반쪽짜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비례대표 확대와 연동형 비례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까지 올라오게 된 배경에는 이런 고질적인 ‘표의 등가성’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14년 말 헌법재판소가 공직선거법 제 25조 제 2항에 대해 표의 가치가 3.65배까지 차이가 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려 선거구 획정을 다시 해야만 했던 사건(2012헌마190), 15년 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석패율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2015/2/25)은 선거제도 개혁이 공론화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표의 등가성 문제를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어느 지역에 살든지 1표의 영향력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비례대표 확대라는 점에서, 비례대표제 확대 필요성에 대한 판단은 박근혜 정부 시절 이미 의심의 여지없이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비례대표제 확대는 어떤 형태이든 간에 앞서 보았듯 지금껏 지지율보다 높은 의석을 공짜로 차지하고 있었던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위협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벤치마킹 하려고 했던 것이 국회의원들의 손을 거치며 복잡해진 배경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배경을 설명해 주는 언론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복잡해진 계산식은 그 자체로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최신형 블루투스 무선라디오에 ‘안테나가 없어 허전하다’길래 안테나를 붙여왔더니 ‘필요 없는 안테나를 쓸데없이 붙였다’며 나무라는 격입니다.

거대양당 국회의원이 아닌 보통의 유권자에게, 나의 한 표를 온전하게 한 표로 행사할 수 있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자유한국당, 그리고 자유한국당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언론들은 더 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11/28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서울경제, 한국경제(*지면보도에 한함)

<끝>

문의 공시형 활동가(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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