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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규제완화 주장 민낯 드러낸 중앙일보 기획기사경제계와 경제계를 대변하는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이 주기적으로 내놓는 주장이 있습니다. 바로 ‘나쁜 규제 철폐, 규제 완화’라는 주장인데요. 이들 언론의 문제는 그저 ‘규제가 문제’라고만 말할 뿐, 무슨 규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대안은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독자들은 풀어야 될 규제가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고, 특정 규제를 왜 풀어야하는지, 그 규제를 풀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는 없는지 찬찬히 살펴볼 수 없었습니다. 규제완화 주장은 난무했지만, 그 실체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그저 ‘구호’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중앙일보, 기업관련법안 싸잡아 ‘기업자율을 침해하고 경쟁 지나치게 제한’
그런 의미에서 중앙일보의 특집기사 <규제의 뿌리, 국회>(11/21, 박수련·강기헌·임성빈 기자)는 좀 특별합니다. 막연하게 규제완화를 외치는 수준이 아니라, 최소한 어떤 규제가 문제라고 생각하는지는 짚어줬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는 1면 <“가맹점 최저수익 보장” 이런 법안까지 낸 국회>(11/21, 박수련·강기헌·임성빈 기자)에서 한국경제연구원과 함께 법제사법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정무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5개 상임위에서 발의된 법안 6271건 중 기업 관련 법안을 분석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전경련 산하 경제연구 기관입니다.
중앙일보는 이 자료를 토대로 “20대 국회가 낸 기업 관련 법안 1263건 중 83.7%는 민간 기업의 자율을 침해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강화 법안’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국회에 제출된 규제강화 법안의 다양한 예시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지적은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왜 이 규제가 문제인지 의문이 들었고, 심지어 일부 규제는 꼭 필요해 보이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 <규제의 뿌리, 국회>의 지적을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중앙일보가 든 규제입법 예시 하나같이 핀트 어긋나
우선, 중앙일보는 <“가맹점 최저수익 보장” 이런 법안까지 낸 국회>(11/21, 박수련·강기헌·임성빈 기자) 첫 머리에서 지난 3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비판했습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 개정안은 가맹사업자가 미리 가맹점주에게 최저수익률 보장에 관한 사항을 충분히 알리도록 하고, 가맹점주의 최저수익률을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이 개정안에 대해서 재계 관계자의 입을 빌어 “최저임금 인상과 경기침체로 어려워진 소상공인 문제를 정부가 민간 기업에 떠넘기고 ‘상생’으로 포장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과연 이 정도의 비판을 받아야 할 ‘규제’일까요? 국회의안정보와 회의록을 보면 이 법안의 입법취지는 소상공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더 많은 수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과다출점 규제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법안의 제안이유에서도 “가맹본부는 가맹점을 무분별하게 확대함으로써 가맹점사업자들이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음”을 입법취지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윤경 위원도 회의록에서 “(공정위가) 근접출점을 다른 식으로 규제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근접출점을 규제하는 것 또한 반대하시지 않습니까?”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근접출점을 일률적으로 규제하기가 어려우니 가맹사업자는 상권분석을 충실히 하고 최저수익률을 보장할 수 있는 정도로만 출점을 하게 해서 근접출점 규제 효과를 유도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중앙일보가 보도한 재계 관계자의 발언은 완전히 생뚱맞은 비난일 뿐입니다.
형사사건 실형이나 집행유예 받은 임원의 이사직 제한도 과도한 규제?
중앙일보가 든 다른 예시들도 대체로 위와 같은 수준입니다. 중앙일보는 ‘청부입법’의 예시라며, 형사사건 실형이나 집행유예를 받은 임원의 이사직을 5년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을 들었습니다. ‘청부입법’이란 정부가 국회의원들을 시켜 원하는 법안을 대신 입법하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중앙일보는 ‘청부입법’이 졸속입법·과잉규제를 불러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렇다면 중앙일보가 지적한 ‘상법 개정안’이 문제적 규제일까요? 법제처가 발표한 <법제처 실무연구/주식회사 이사(理事)에 대하여 '형벌 관련 결격사유'>라는 논문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여러 정황을 볼 수 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도리어 지금도 사외이사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2년간 자격이 제한되고 있음에도, 일반이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격사유에 대한 규정이 없다고 합니다. 논문은 외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면서 일본과 영국에서도 특정 법률을 위반해 형사처벌을 받으면 이사직이 제한되는 규정이 있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논문은 해당 개정안에 대해 “경영진에 대한 감독 및 규제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지에 대하여 사회 전반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평했습니다. 그리고 “상법 개정안의 입법 필요성, 위헌성 유무, 국회 통과 가능성과 함께 사회적으로 합의 가능성 수준에서의 대안의 필요성도 같이 검토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중앙일보는 이런 배경을 전혀 설명하지 않고 무작정 ‘청부입법’, ‘졸속입법’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육아휴직 복귀자 불이익처우 금지” 이런 것까지 기업 옥죄는 규제?
△ 중앙일보가 지목한 ‘국회 계류 중인 기업 옥죄는 법안’(11/21)
중앙일보는 4면 시각자료를 통해 ‘국회 계류 중인 기업 옥죄는 법안’으로 형법 개정안, 상법 개정안, 청년고용법 개정안,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최고임금법안, 가맹정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8개 법안을 손꼽았습니다.
그러나 ‘육아휴직 복직 시 휴직 전과 동일 업무 및 임금 지급’하도록 하는 자유한국당 윤종필 위원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이 ‘기업 옥죄는 법안’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은 황당한 일입니다. 중앙일보는 육아휴직에 불이익을 주는 기업 관행을 지적해왔습니다. 일례로 <취재일기/왜 육아휴직은 여전히 그림의 떡일까>(2016/7/13)에서는 “한국은 선진국 못지않은 육아 휴직제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상당수의 엄마나 아빠 직장인은 인사상 불이익이나 상사 눈치 탓에 육아휴직 사용을 꺼린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보도에서는 육아휴직 복직 시 휴직 전과 동일 업무를 주고, 동일 임금을 지급하라는 개정안에 대해서 ‘기업을 옥죄는 법안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내용까지 기업을 옥죄는 나쁜 규제로 집어넣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태도입니다.
‘살찐 고양이법’에 대한 반박도 매우 감정적
중앙일보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발의한 <최고임금법안>도 기업을 옥죄는 규제로 손꼽았는데요. 중앙일보가 내민 근거는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A급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하는데 ‘연봉 상한제’가 있는 국내 기업에 어느 인재가 오겠느냐”고 황당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였습니다.
심상정 의원의 최고임금 상한제는 연봉이 최저임금의 30배 이상일 경우를 대상으로 하는데, 이는 2018년 기준 연봉 6억 4000만원에 해당합니다.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상위 0.1%의 노동소득자의 평균연봉이 6억 5500만원이었습니다. 계산해 보면 이 정도의 연봉을 받는 사람은 1만 8000명입니다. 이것이 평균연봉임을 고려하면 실제 규제 대상은 많이 쳐 줘 봤자 9000명 이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상정 위원이 발의한 것과 같은 최고임금 상한제는 일명 ‘살찐 고양이법’이라고 하는데, 2009년 리먼 사태 이후 양극화에 대한 비판이 커져가면서 세계 각국에서 도입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라는 프레임 자체가 편향
기본적으로 어떤 규제가 좋고 나쁜지를 판단하려면 신중한 접근과 균형 있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규제란 것은 특정인이나 특정계층에게 불편함과 불리함과 불이익이 간다고 하더라도, 사회에 반하거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게 한도를 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규제는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주는 것이지만, 누군가를 옥죄는 규제라고 그것이 나쁘다고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죠. 중앙일보가 규제들을 ‘기업 옥죄는 법안’이라며 묶어서 싸잡아 지적한 것 자체가 편향적인 프레임입니다.
게다가 기사 내용 중에서도 부실한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중앙일보는 기사의 중간제목으로 <주 52시간제 졸속 입법, 부작용 속출>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기사에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없이 “지난해 2월 개정안이 통과돼 5개월 이후 시행되자 부작용이 속출했다”고만 언급했습니다.
또한, 박재호 의원이 발의했다고 나와 있는 ‘형법 개정안’이란 것은 실제로는 개정이 아니라 <기업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으로 제정안입니다.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은 새로운 조항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존 법률에 있는 내용에 대한 처벌규정을 벌금 500만원에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하는 내용일 뿐입니다. 이처럼 법안의 정확한 내용과 개정인지 제정인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도 실망스럽습니다.
‘카페베네’ 몰락이 규제 때문?
한편, 중앙일보가 5면 전체를 할애한 기사인 <카페베네 발 묶인 2년 새, 스타벅스 263곳 증가>(11/21, 박수련·강기헌·임성빈 기자)는 그야말로 ‘규제 탓’ 기사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중앙일보는 유통 규제가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면서 대표 사례로 ‘카페베네’를 들었습니다. 중앙일보는 “프랜차이즈 업계는 국내 유통산업에서 반복된 ‘규제의 실패’가 스타벅스 같은 외국계 직영 브랜드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한다”며, 공정위가 2012년 내린 반경 500m이내 출점규제 제한 조치를 그 원인으로 들었습니다.
△ 카페베네 몰락 이유가 규제 때문이라는 중앙일보 5면 기사(11/21)
이는 소위 ‘토종 브랜드’들이 무리한 사업확장과 품질관리·투자 실패 등 경영 리스크로 몰락했다는 기존의 분석과 배치됩니다. 스타벅스는 1971년 원두 판매점으로 시작해서 1987년 커피전문점으로 전환했는데, 1992년 스타벅스 체인점 숫자는 165개였습니다. 반면 카페베네는 2008년 창업됐는데 2010년 체인점이 300개가 넘었고 2011년에는 500개가 넘었습니다. 이런 빠른 사업확장은 필연적으로 품질관리의 실패와 높은 폐점률을 불러왔고, 여기에 무리한 외국 진출과 창업자의 문어발식 신규 브랜드 창업이 기름을 부었습니다. 가맹점주·직원 착취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2011년 고용노동부 표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부가 조사한 56곳 중 55곳에서 노동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고 2014년에는 가맹점주에게 판촉비용을 떠넘기고 과중한 인테리어 시공 비용을 강요하는 등의 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9억 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중앙일보 <스타벅스는 웃는데, 카페베네는 왜…>(2017/4/6)에서도 카페베네의 실적 악화 원인을 “과도한 확장과 투자 실패”로 진단한 바 있습니다.
‘저 규제는 해로운 규제다’ 마오쩌둥식 규제 보도 자제해야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1958년 어느 날 참새가 곡물을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저 새는 해로운 새”라면서 참새를 박멸시켰습니다. 문제는 참새는 곡물뿐만 아니라 메뚜기도 잡아먹었다는 것입니다. 참새가 없어진 중국은 메뚜기들의 습격으로 고통 받았고 기근은 더 심해져 30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규제를 다루는 보수언론과 경제단체의 방식이 이와 같습니다. 중앙일보의 이번 보도는 아무 실증적 근거 없이 모든 규제를 싸잡아 ‘저 규제는 해로운 규제’라고 지목하는가 하면, 그나마 근거를 제시한 사례마저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분석을 내놓아 헛다리를 짚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정말로 규제 때문에 어려운 산업이 있더라도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정당하게 보호받아야 할 시민들의 권리만 침해당하는 결과만 불러올 것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11/21 중앙일보(*지면보도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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