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시신 운구 영상이 꼭 필요했나요?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 여사가 향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고 강한옥 여사의 명복을 빕니다.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 모친상을 당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니 언론은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29일 KBS, MBC, SBS, TV조선, YTN의 저녁종합뉴스에서 문재인 대통령 모친상 소식을 전하면서 고 강한옥 여사의 시신이 이송되는 모습을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KBS‧MBC‧TV조선‧YTN, 천에 싸인 시신 운구 장면 그대로 보여줘
문제적 장면은 환자 운반용 이동식 침대에 모셔진 시신이 병원에서 운구차로 이송되는 모습이었습니다. KBS <문 대통령 모친 강한옥 여사 별세>(10/29 강예슬 기자), MBC <문 대통령 모친 강한옥 여사 별세…가족장으로>(10/29 이덕영 기자), SBS <대통령 모친 별세…“가족장으로 차분히 치를 것”>(10/29 전병남 기자), YTN <문 대통령 모친 강한옥 여자 92세로 별세>(10/29 신호 기자)에선 이런 영상을, TV조선 <문 대통령 모친 강한옥 여사 별세…향년 92세>(10/29 최지원 기자)에선 이런 사진을 썼습니다. 고인이 천에 싸여 병원에서 나오는 장면, 이를 따라가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모습이 화면에 나가고 있는 사이 기자들의 멘트는 ‘대통령의 이전 일정과 앞으로의 일정 수행 방식’ 정도를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KBS와 MBC, SBS는 인터넷판 기사의 영상을 수정했습니다. 수정된 기사에선 시신이 이불에 싸여 이송되는 화면 대신,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이나 병원 외관, 병원의 상황 등이 나왔습니다. TV조선과 YTN의 경우 30일 오후 5시를 기준으로 영상이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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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 모친상 보도 시 시신 운구 장면 사용 여부(10/29) ⓒ민주언론시민연합
*인터넷판 수정 여부는 30일 오후 5시 기준
한편, 조선일보는 29일 자사 유튜브 채널에 <문재인 대통령 어머니 강한옥 여사 별세>라는 제목의 20초 분량의 동영상을 올렸는데요. 문 대통령 모친 운구 장면이 담겨있습니다. 이 영상에는 많은 비판 댓글이 달렸고, 조선일보는 화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수정해둔 상태입니다. 31일 오후 6시 기준으로도 이 영상을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방송심의규정이나 가이드라인에 저촉되는 행태는 아니지만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시신 이송 장면은 주로 사건・사고, 재난보도에서 수습된 시신을 구급차로 옮기는 모습입니다. 실제로 세월호 침몰 이후, 인양 후 수습된 시신이 이송되는 장면이 방송에 많이 등장했습니다. 국가폭력에 의해 1년 넘게 병상에 계시다 사망하신 백남기 농민의 사망 당시에도, 부검 논란이 빚어지면서 입관 전에 영안실로 운구하는 장면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보도행태는 현재 있는 방송심의규정이나 가이드라인에도 저촉되지 않습니다. 작년 한국영상기자협회에서 개정한 ‘2018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에서도 △시신을 클로즈업 촬영하여 직접 방송하는 것은 명백히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명예훼손 등의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 △시신이 직접 노출되는 방식이 아니라 풀샷에서 시신이 운송되는 장면, 앰뷸런스로 이송되는 장면 등에 대한 촬영은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처럼 예를 갖추지 못한 상황의 시신을 굳이 보여주는 경우가 적절한 것일까요? 대통령 내외의 애도 모습을 담고 싶었다면, 대통령 내외만 클로즈업해서 촬영했어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실제 지상파 3사는 전날 내놓았던 시신 이송 장면을 모두 삭제해서 온라인판 기사로 다시 올렸는데요. 이때 기자의 멘트에 곁들인 화면은 대통령의 모습이나 병원의 전경 등이었지만, 아무런 무리가 없었습니다.
언론인 스스로 자신들의 보도행태가 윤리적인 것인지 거듭 되묻는 노력 필요해
최근 시신이 운구되는 장면을 촬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작년 고 노회찬 의원이 사망한 당시, TV조선과 연합뉴스TV는 시신이 이송되는 장면을 생중계했고요. 특히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에서는 정차 중 시신을 운구 중인 구급차의 창문을 클로즈업하는 몰상식한 행태를 보여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최근 고 최진리 씨 관련 보도에서도 마이데일리, 뉴스엔 등 일부 온라인 매체가 경찰이 시신을 운구하는 장면을 찍어 사진 기사 등으로 내보냈습니다. 더팩트와 뉴스엔 등은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설리의 자택 앞에 진을 치고 시신 운구 장면을 실시간으로 촬영‧공개했습니다. 스포티비뉴스는 “장례절차를 비공개하기 원한다”는 유가족의 부탁을 어기고 빈소를 단독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영상기자연합회는 곧 ‘2019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업데이트할 예정이며, 이미 개정본 검토 토론회까지 마쳤습니다. 그 개정안 어디에도 시신 이송에 대한 구체적인 촬영 지침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꼭 지침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제 그동안 관행으로 해왔던 많은 언론의 행태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가이드라인이 없다고, 방송심의규정 위반이 아니면 무엇이든 해도 될까요? 시신이 운구되는 장면이 왜 필요한가요? 그런 ‘그림’, ‘영상’이 우리 국민의 알 권리와 상관이 있나요? 사실은 ‘으레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화면이 필요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부터 중단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무례한 행위이며, 망자와 가족들에게도 상처를 줄 만한 보도행태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지상파 3사의 신속한 장면 삭제가 그저 대통령 모친이어서가 아니길 바랍니다. 그가 누구이든, 그의 가족이 누구이든, 망자가 예우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시신 상태로 운송되는 것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시민들은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10월 29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 YTN <뉴스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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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조선희 활동가 (02-39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