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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사능 수치 팩트체크 없이 보도한 언론들주한일본대사관(이하 주일대사관)은 지난 9월 24일부터 서울과 도쿄, 그리고 후쿠시마의 방사선량 수치를 홈페이지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방사능에 대한 한국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는데, 문제는 이 측정치가 왜곡되어 있다는 겁니다. 주한일본대사관이 홈페이지에 게재한 수치에 따르면 서울과 후쿠시마 방사선량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내용을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쳤고, 지상파 3사와 JTBC는 저녁종합뉴스에서 이 수치를 정면 반박했습니다.
서울과 도쿄 방사능 수치 비슷하다고 발표한 일본, 받아쓴 언론들
언론이 보도한 방사선 측정치는 9월 25일 주한일본대사관에 게재된 수치입니다. 이 수치에는 후쿠시마시의 방사선량이 한 시간당 0.133마이크로시버트(μSv), 이와키시는 0.062, 도쿄는 0.036, 서울은 0.119로 게재되어 있습니다. 수치만 보면 일본과 한국의 방사능 수치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옵니다. 심지어 이와키시와 도쿄가 서울보다 방사능 수치가 낮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일대사관이 제공한 수치에 대해서 사실관계 확인 없이 그대로 받아쓴 언론들이 있습니다.
국민일보는 9월 25일 16시 18분에 <“서울 방사선량, 후쿠시마보다 높다” 일본대사관 측정값 공개>(9/25 김상기 기자)에서 방사능 측정치를 언급하며 “표를 보면 서울의 방사선량이 도쿄는 물론 후쿠시마현 이와키시보다 높은 수준이다”라고 전했습니다.
같은 날 17시 08분에 조선일보가 <주한 일(日)대사관, 후쿠시마 방사능 수치 상시 공개...“서울과 비슷”>(9/25 김명진 기자)에서 “일본정부는 앞으로도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투명성을 가지고 세심하게 설명해 나가겠다”는 주한 일본대사관의 입장을 반박 없이 실어줬습니다.
연합뉴스는 다음날인 오전 7시 57분에 <일, 주한대사관 홈피에 후쿠시마·서울 방사선량 비교 공개>(9/26 박세진 특파원)에서 같은 내용을 다뤘고, YTN도 오전 8시 31분에 <일, 주한대사관 홈페이지에 후쿠시마·서울 방사선량 비교 공개>(9/26)를 보도했습니다.
한편, 조선일보는 27일 새벽 3시 23분에 <일 대사관이 서울 방사선량 매일 공개하자 여 일본특위, 후쿠시마 방사능지도로 맞불>(9/27 이하원 특파원‧안준용 기자)로 추가 보도하고, 이 기사를 27일자 조선일보 8면에도 게재했습니다.
받아쓰기 쓰기 전에 팩트체크가 이루어졌어야
만일 이 보도들이 사실이라면, 보도를 접하는 일반 시민들은 도쿄올림픽 방사능 위험에 대해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언론사들은 주일대사관의 결과를 받아쓰기 전에 과연 이 데이터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 적절한지 확인부터 했어야 합니다. 물론 언론이 모든 보도자료를 모두 점검할 수 없겠지만, 현재 심각한 갈등상황을 겪고 있는 한일관계나 도쿄 올림픽 등을 감안하면, 주일대사관이 이와 같은 데이터를 공개했을 때 먼저 의문을 갖고 차분하게 점검한 뒤 보도했어야 합니다.
실제로 뉴스1 <일 "후쿠시마·도쿄 방사선량, 서울과 동등한 수준이다">(9/25 장용석 기자)에서는 방사능 측정치가 정확하려면 공간선량률이 아닌 토양의 방사능 오염 측정치를 공개해야 한다고 전하며 주한일본대사관이 공개한 방사능 측정치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26일 지상파 3사와 JTBC의 저녁종합뉴스에서는 해당 측정치를 팩트체크한 기사가 이어졌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의 방사능 위험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일본이 제시한 수치에 대해서 사실 확인도 없이 덮어놓고 전한 것은 아쉬운 보도태도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시민이 ‘일본의 방사능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며 도리어 우리의 방사선 수치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상파 3사와 JTBC는 팩트체크를 했고, 다른 방송사는 아예 이 내용을 다루지 않은 데 비해 보도전문채널인 YTN은 이를 그대로 받아쓴 보도를 내놓은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방송국들, 빠르게 팩트체크 내놓았다
그렇다면 지상파 3사와 JTBC의 팩트체크 결과는 무엇일까요?
MBC는 두 꼭지를 할애해 <후쿠시마와 서울 별 차이 없다?‥일 ‘황당’ 홍보전>(9/26 나세웅 기자)와 <“콘크리트 덮인 곳만 측정”‥일 ‘교묘한’ 왜곡>(9/26 최훈 기자)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해 “자기들한테 유리한 수치만 골라서 공개하는 비과학적인 주장일 뿐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MBC는 직접 일본에서 방사능 수치를 측정한 취재화면을 활용하여 방사능 수치가 시간당 2.6마이크로시버트였다는 점을 확인시켜줬습니다. 게다가 일본이 높은 지역 수치는 빼고 수치가 낮은 도심 지역 측정치만 공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KBS도 <뉴스줌인/주한 일 대사관, ‘방사선량’ 공개…“교묘한 왜곡”>(9/26 정운섭 기자)에서 해당 통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KBS는 일본 시민단체가 측정한 토양 속 방사성 물질 수치를 언급하며 방사능 수치가 “상당히 높게 나타난 거”라고 말했습니다.
SBS는 <사실은/후쿠시마 방사선량이 서울 수준?..얄팍한 일 꼼수>(9/26 박세용 기자)에서 홈페이지에 수치로 기록된 ‘공간 선량’이 곧 공기 중의 방사선 양을 측정한 것이며, 공기 속 방사선을 측정하는 것이 제대로 된 측정 방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SBS는 “지금 원전 사고 터지고 8년이 지났는데 공기 중에 방사성 물질인 세슘, 이것 있겠습니까,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세슘이라는 게 물에 잘 녹아서 공기 중에 세슘이 설령 있더라도 비가 오면 씻겨 내려갑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 방사능 측정치에 의문 제기하는 MBC·KBS·SBS·JTBC 저녁종합뉴스 갈무리(9/26)
JTBC는 <서울과 방사선량 비슷?…일본대사관 ‘억지’ 비교>(9/26 어환희 기자)에서 “같은 서울, 같은 도쿄라도 어디에서 측정하는가에 따라 수치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라며 수치가 왜곡되어있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정정은 없었다.
한편, 26일 저녁종합뉴스에서 이와 같은 팩트체크 보도가 나온 이후, 언론은 변화된 모습을 보였을까요? 기존 주일대사관 정보를 받아쓰기했던 언론들은 당시 보도를 정정하고 만회할 만한 후속보도를 심도 있게 준비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앞선 보도를 내놓았던 어떤 언론에서도 이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일 대사관이 서울 방사선량 매일 공개하자 여 일본특위, 후쿠시마 방사능지도로 맞불>(9/27 이하원 특파원‧안준용 기자)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일본경제침략대책 특별위원회가 공개한 방사능 오염 지도를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이 보도는 도리어 일본발 방사능 측정치에 쐐기를 박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사는 “네 도시의 방사선량 수치는 모두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다”라며 주한일본대사관이 게재한 방사능 측정치를 근거자료로 썼기 때문입니다.
YTN 역시 일본 방사능 측정치에 대한 이후 후속보도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국내 보도자료를 베끼는 것에서 나아가 일본의 자료까지 확인 없이 베끼는 언론의 행태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9월 25~27일 주한일본대사관의 방사능 측정치 다룬 신문 (온라인판 포함), 2019년 9월 26일~27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평일),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YTN <뉴스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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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박진솔 활동가(02-392-0181) 정리 주영은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