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세월호 보고 조작 재판 현장을 악의적으로 그린 조선일보지난 8월 14일, 세월호 참사 보고 조작 사건 1심이 열렸습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김장수·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등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최초 보고 시점을 조작해 국회 답변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재판부는 피의자들이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을 기만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증거부족이나 고령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 또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번 1심 재판을 두고 언론들은 사실상 세월호 보고 조작에 대한 죄를 묻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며 결과에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이번 공판에서는 재판 내용 뿐 아니라 법정에 있던 일도 많이 기사화가 됐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이 해당 법정에 방청을 할 수 없었고, 이 일로 인해 소란이 있었던 겁니다. 당시 상황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는 둘로 나뉘었습니다. 그중 가장 문제적인 기사를 작성한 언론사는 조선일보입니다. 조선일보는 법정에 있던 유가족의 모습을 악의적으로 표현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세월호 유족들 모습 악의적으로 표현한 조선일보
세월호 참사 보고 조작 1심 보도는 공판 결과와 유가족 반응에 대한 내용으로 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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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동아일보 |
조선일보 |
중앙일보 |
한겨레 |
공판 결과 |
3 |
1 |
1 |
0 |
1 |
유가족 반응 |
1 |
0 |
2 |
0 |
0 |
합계 |
4 |
1 |
3 |
0 |
1 |
△ 세월호 참사 보고 조작 관련 1심 재판을 다룬 신문 보도량(8/14~17) ⓒ민주언론시민연합
경향신문은 이번 공판을 4건 보도했고 조선일보는 3건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 한겨레는 각각 1건씩 보도를 내놨습니다. 중앙일보는 모니터 기간 중에는 관련 보도를 내놓지 않았는데, 8월 19일 권석천 논설위원이 쓴 칼럼 <권석천 논설위원이 간다/“어떻게 대통령께 물어봅니까”에 모두가 얼어붙었다>(8/19, 권석천 논설위원)은 법원 판결을 비판했습니다.
경향신문은 공판 내용과 쟁점 사안을 기사 3건으로 다뤘습니다. 조선일보는 공판 결과에 대한 칼럼을 1건 보도했고, 유가족 반응에는 2건의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유가족 반응 내용은 재판 방청권을 얻지 못해 법정에 항의한 유가족들의 모습을 다룬 기사입니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공판에 대한 사실기사 <법정 못 들어갔다고...“판사 개XX”외친 세월호 유족들>(8/15, 박국희 기자)를 게재했습니다. 이 기사 외에는 판결 쟁점을 정리하거나, 결과를 따로 설명한 기사도 없었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을 비난하는 기사 맨 밑에 공판 결과를 짧게 언급해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은 법정에 들어가 공판을 방청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법원의 무신경한 행정 처리 때문이었습니다. 법원은 홈페이지에 방청 관련 공지를 올리지 않고 청사 입구에 입간판 형태의 안내를 했다고 합니다. 또한, 방청권은 선착순으로 30명만 받았습니다. 사실상, 별 일이 없어도 법원을 자주 드나드는 기자들, 혹은 재판의 원고나 피고와 직접 관련된 사람만이 방청권을 획득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소식을 접하지 못한 유족들은 방청을 위해 법원을 찾았지만 법정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해당 재판에서 있었던 유족들 모습을 폭력적으로 서술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재판 시작 직전 노란색 옷을 입고 법정 앞에 도착한 세월호 유가족 10여명이 “언제부터 방청권이 있어야 재판에 들어갔느냐” “우리 자식들이 죽었는데 왜 재판을 못 보게 막느냐”며 법정 경위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소동이 시작됐다. (중략) 하지만 재판부의 판결문 낭독이 이뤄지는 한 시간 내내 법정 밖 유족들의 욕설과 고함은 계속됐다. 판결문을 읽는 권 부장판사의 목소리가 법정 안에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유족들은 “김기춘 개xx나와라” “판사 개xx” “작살내라”라고 소리쳤고, 쾅쾅 소리가 날 정도로 법정 출입문을 세게 두드렸다.
조선일보 기자의 지독한 엘리트주의
위 보도를 쓴 기자가 직접 쓴 기자칼럼에서도 이 같은 시각은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조선일보는 <기자의 시각/‘판사 개XX’에 침묵한 법원>(8/17 박국희 기자)에서 재판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재판 방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법원이 법원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렸다고 말했습니다.
재판 운영은 판사의 재량 사항이다. 법정 질서 유지 차원에서 판사들은 법에 근거해 재량껏 재판을 진행한다. 재판 도중 방청석에서 휴대전화가 울리면 "누구냐. 퇴정시켜라"고 명령하는 판사들은 요즘도 드물지 않다. (중략) 과연 일반 사건 관계인이 판사 면전에서 '개XX'라는 욕설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전화벨이 울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방청객을 쫓아내던 법원은 어디 갔나. 법원의 권위를 법원 스스로가 무너뜨리고 있다.
△ 세월호 보고 조작 사건 재판 방청기를 쓴 조선일보 기자 칼럼(8/17)
현장에 나가있던 기자는 유족이 왜 분노하고, 왜 화가 났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고 멀리 떨어져 당시 상황을 단순 서술하기에 이릅니다. 더 이해하기 힘든 건 기자의 시선이었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의 반응에 이유를 찾고 그것을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왜 유족들에게 주의를 주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는 건 기자가 해당 사건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했습니다.
또한, 이 칼럼에서는 기자를 특별한 위치에 올려놓는 시각도 보였습니다. 칼럼의 구성을 보면, 기자는 칼럼 첫 머리에 휴대전화를 보다가 법정에서 쫓겨난 기자의 경험을 말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 출석 당시 법원에서 기자와 민간인을 통제한 사례를 말한 뒤, “지난 14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세월호 보고 조작 재판 때 법원 모습은 180도 달랐다”고 기술했습니다. ‘기자도 쫓겨나는데 유가족들은 뭐냐’는 하소연을 하듯이 비교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호 관련 사건 재판을 세월호 유가족들이 방청하지 못한다면 또 누가 방청해야 한다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기자는 기사 말미까지 엘리트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판사의 경고 조치를 바랐습니다.
유가족이 재판부에 항의한 게 아니라, 여성에 욕설을 가한 것으로 만드는 프레임
이 기자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해당 기자는 기사에서 한 번, 사설에서 한 번씩 재판장이 여성임을 강조했습니다. 사실기사에서는 “여성 재판장인 형사 30부 권희 부장판사는 법대에 앉으며 법정 밖 고함에 깜짝 놀란 듯했다”고 썼고, 칼럼에서는 “그럼에도 유족들은 법정 밖에서 여성 재판장을 향해 “판사 개XX” “X같은 X나와” 같은 욕설을 퍼부었다”고 썼습니다. 어떤 여성혐오적 맥락도 없는데 그 재판장이 여성임을 강조한 것이죠. ‘항의하는 세월호 유가족’과 ‘큰 소리에 놀라는 여성’을 대비시킨 조선일보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이왕이면 유가족이 재판부에 욕을 했다기보다는, 유가족이 여성에게 욕을 했다고 프레이밍하는 것이 더 대중의 감정을 더욱 자극할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같은 상황, 전혀 다른 기자칼럼
경향신문은 다른 방향으로 지적했습니다. 경향신문 기자칼럼인 <기자메모/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로막고…꼭 그렇게 선고해야 했나>(8/16, 이혜리 기자)에서는 이런 의견을 내놨습니다.
권 재판장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법정에는 여유 공간이 있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그곳에 서서 방청하도록 할 수도 있다. 다른 재판에서도 방청을 원하는 시민이 많은 경우 서서 선고를 듣게 하거나, 아예 법정 문을 열어놓기도 한다. 상황을 진정시키는 차원에서라도 잠시 휴정하거나 유족들에게 법정에 들어가게 할 수 없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 뒤 선고를 이어갈 수도 있다. (중략) 다시 묻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말 법정에 들어갈 수 없었나, 법원은 꼭 그렇게 선고를 해야 했나.
경향신문은 세월호 유족들의 불만을 들으면서도 좁은 법정에서 그렇게 선고를 했어야 했냐고 물은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당시 유족들의 행동을 ‘폭력적’으로 그려낼 때, 경향신문은 유족들이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 기사에 담았습니다. 경향신문은 같은 칼럼에서 “핵심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다. (중략) 엄밀히 말하면 유가족들이 ‘범죄 피해자’는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책임 회피로 진상규명이 지연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가족들이 입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 정권 책임’ 회피에 앞장서는 조선일보
1심 공판이 나오고 이틀 뒤, 조선일보는 신문에 <만물상/세월호 ‘보고 시각’>(8/16, 이명진 논설위원)을 게재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보다 더 직관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변호했고, 이번 공판 결과를 자축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가 TV생중계까지 자처하며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일의 결과치곤 허망하기 짝이 없다”며 “세월호 참사는 불법 증축, 과적, 허술한 화물 결박, 평형수 부족, 운항 미숙이 겹쳐 일어난 사고였다. 배 회사가 직접 책임자지 왜 정권이 책임자인가. 그런식이라면 이 정권 들어 일어난 수많은 사고도 전부 정권 책임인가”라고 말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끝까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전 정권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칼럼은 이어서 “세월호 구조에 나선 해경 등의 대응은 부실했지만 ‘보고’가 이뤄지던 시각 세월호는 이미 심하게 기울어 손쓰기 힘들었다. 그 시각 대통령이 배 옆에 있었어도 더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도 했습니다. 지난 헝가리 유람선 사고 때 조선일보가 논설주간의 칼럼을 통해 민경욱 자한당 대변인의 ‘골든타임 3분 막말’을 변호한 것과 겹쳐 보였습니다.
조선일보의 이와 같은 태도는 공판 하루 전에 게재된 <김대중 칼럼/한국의 민주주의도 이렇게 무너지는가?>(8/13, 김대중 고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칼럼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책에서 ‘잠재적 독재자는 자신의 반민주적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 위기나 자연재해, 특히 전쟁과 폭동, 테러와 같은 안보 위협을 구실로 삼는다’라는 내용을 인용합니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세월호 사건의 책임을 박근혜 정권에 돌리는 것이 현 정권의 문제임을 암시합니다.
이 정권은 유난히도 국가적 재난이나 재해에 민감하다. 정권도 재해(세월호 침몰)를 기회로 잡았다.
조선일보는 의도적으로 ‘재해’의 예로 세월호 침몰을 썼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재해란 ‘재앙으로 말미암아 받는 피해’로 ‘지진, 태풍, 홍수, 가뭄 따위에 의하여 받게 되는 피해를 이른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굳이 찾아보려면 산불과 지진 등 재해로 인해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입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조선일보가 생각한 ‘재해’는 세월호였나 봅니다. 세월호 사고 때 지난 정권이 국민적 분노를 샀던 대표적인 까닭은, 그것이 분명한 인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건 기록만 훑어보아도, 이후에 나온 기사들만 몇 개 찾아보아도 그 사건은 인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일이 반박하지 않아도 국민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당시 사태를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고 행여나 비판을 받을까 사안을 덮고 은폐하는데 급급했던 전 정권에게 죄를 묻는 일 역시 당연하고, 더 조속하게 진행되어야 할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 일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왜 정권이 책임인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보도 행태는 조선일보가 정치적 공세에 눈이 멀어 최소한의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썸네일 : 경향신문 <무죄추정 원칙 뒤로 김장수·김관진 숨겨준 '세월호 재판부'>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8월 13일~17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지면보도에 한함
<끝>
문의 공시형 활동가(02-392-0181) 정리 주영은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