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조선일보 “북한 비핵화 의지 없다”는 근거는?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다양한 대내외적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원고지 약 115장 분량의 이 연설은 대미·대남 관계에 대한 북한의 입장과 경제 집중 노선의 실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신문은 이 시정연설을 해석한 기사를 내놓았는데요. 이중에서 조선일보는 타사와 다른 보도양상을 보였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번 시정연설을 두고 “핵 폐기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김정은 위원장이)했던 말들은 결국 다 속임수였다”라고 해석했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했습니다. 또한 시정연설 중 북한이 우리 정부에게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그만두라”라고 한 대목을 두고, “핵폭탄에 당하고 싶지 않으면 북한 편에 서서 미국에 양보를 요구하라는 것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북 시정연설에 대한 신문보도, 조선일보 빼고 대체로 비슷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조선일보의 북 시정연설에 대한 보도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13일,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 내용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국내에 알려졌고, 15일 관련 내용이 신문지면에 보도되었습니다. 15일 5개 종합일간지의 관련보도는 총 31건이었는데요. 경향신문이 8건으로 가장 많았고, 한겨레가 7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6건, 중앙일보가 4건이었습니다.
경향신문 |
동아일보 |
조선일보 |
중앙일보 |
한겨레 |
합계 |
8건 |
6건 |
6건 |
4건 |
7건 |
31건 |
△ 김정은 위원장 시정연설 관련 4월 15일 신문 보도량 비교(4/15) ⓒ민주언론시민연합
각 신문이 시정연설의 어떤 내용에 집중했는지는 1면 기사 제목에 잘 나타납니다. 15일 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제목은 <김정은 “오지랖 중재자 행세 말라”>(4/15 이용수 기자)였습니다. 조선일보는 시정연설의 여러 내용 중 ‘오지랖’이라는 단어를 부각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오지랖’ 발언을 두고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연설이 담고 있는 전체 내용보다 먼저 전해야 할 만큼 중요한지는 의문입니다.
△ ‘오지랖’을 부각한 조선일보 1면 기사 제목 (4/15) ⓒ민주언론시민연합
반면 한겨레는 제목을 <김정은 “3차 북미회담 용의”…트럼프 “좋을 것”화답>(4/15 이제훈 기자)로 뽑아서 ‘회담 재개’에 방점을 찍고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담았습니다. 경향신문은 <“3차 회담하자”는 북‧미…서로 “변하라”며 긴 대치 예고>(4/15 김재중 기자)에서 한겨레와 마찬가지로 북의 시정연설의 핵심을 ‘회담 재개’로 평가했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동아일보는 <북도 미도 남(南) 압박…좁아진 운전석>(4/15 한상준 기자), 중앙일보는 <북․미 인내심 게임, 입지 좁아진 한국>(4/15 정효식 기자)에서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졌음을 나타내는 제목을 썼습니다.
신문 |
1면 제목 비교 |
경향신문 |
<“3차 회담하자”는 북‧미…서로 “변하라”며 긴 대치 예고> |
동아일보 |
<북도 미도 남(南) 압박…좁아진 운전석> |
조선일보 |
<김정은 “오지랖 중재자 행세 말라”> |
중앙일보 |
<북․미 인내심 게임, 입지 좁아진 한국> |
한겨레 |
<김정은 “3차 북미회담 용의”...트럼프 “좋을 것” 화답> |
△ 북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 관련 4월 15일 1면 게재기사의 제목 비교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의 시정연설에 대한 총평 비교
같은 시정연설이지만, 해석은 제각각이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이번 김정은 위원장 시정연설을 분석해보니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이를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조선일보를 제외한 4개 신문사는 ‘북미 대화’에 기대를 표했습니다. 다만, 그 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공통적으로 내놨습니다. 일부 언론은 북한의 강경한 태도를 비판했어도, 조선일보처럼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주장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설/ 문 대통령에게 북편에 서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한 김정은>(4/15)에서 이번 시정연설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에서 요구했던 북핵의 완전한 폐기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고 해석했습니다. 또한 “그가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믿어 달라며 ‘뭐 하러 핵 가지고 어렵게 살겠나’ ‘내 자식들이 핵을 지고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던 말들은 결국 다 속임수였다는 얘기다”고 주장했습니다. “영변 핵 시설 해체와 대북 제재 사실상의 전면 해제를 맞바꾸자는 자신의 ‘가짜 비핵화’ 카드를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라는 주문”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여기에 “제재 효과가 1~2년 더 지속되면 북으로 하여금 진짜 비핵화를 결심하도록 만들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며 보다 강경한 대북제재를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처럼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고,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사리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대화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수차례 ‘비핵화 의지’를 밝혀왔습니다. 또 북한이 비핵화 선언을 번복했을 때 가중될 위험을 고려하면, 북이 쉽사리 약속을 어기는 것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단언하려면 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조선일보의 시정연설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시정연설의 자구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의도를 넘겨짚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이에 동조하는 언론도 없었습니다.
신문 |
주요 표현 |
경향 신문 |
회담 후 두 정상이 모두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면서 3차 회담에 대한 의지를 밝혀 다행스럽다.(중략)문제는 두 정상의 대화 의지에도 불구하고 북·미 간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 |
동아 일보 |
김정은은 연말까지 대화 창구는 열어 두겠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과의 관계는 훌륭하다”며 호응했다. 결국 북-미가 각자 입장은 분명히 하면서도 대화의 끈은 살려놓은 것이다(중략) 하지만 북-미가 비핵화의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이 전혀 다른 상태에서 설령 대화가 일부 복원된다 해도 의미 있는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
중앙 일보 |
대화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그 시기와 내용 등에서 각기 다른 셈법이 노출됐다 / 정상회담 개최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각자 상대를 향해 양보하라는 통첩을 내걸고 있다. |
조선 일보 |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에서 요구했던 북핵의 완전한 폐기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믿어 달라며 “뭐 하러 핵 가지고 어렵게 살겠나” “내 자식들이 핵을 지고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던 말들은 결국 다 속임수였다는 얘기다. |
한겨레 |
하노이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신경전을 펼치던 북-미 두 정상이 다시 대화에 나설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양쪽이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 절충점을 찾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
△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 대한 주요 평가 내용 (4/15) ⓒ민주언론시민연합
실제로 동아일보는 <사설/미국에 퇴짜 맞고 남한에 ‘오지랖’ 막말한 김정은의 억지와 허세>(4/15)에서 “결국 북-미가 각자 입장은 분명히 하면서도 대화의 끈은 살려놓은 것이다”며 ‘대화’의 기대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도 “설령 대화가 일부 복원된다 해도 의미 있는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어두운 전망을 내놨습니다. 중앙일보는 <트럼프는 대선까지 현상 유지, 김정은 대미 직거래 원해>(4/15 백민정 기자)에서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북한, 우리 정부의 입장차가 확연히 드러났다”며 “대화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그 시기와 내용 등에서 각기 다른 셈법이 노출됐다”며 동아일보와 비슷한 논조를 보였습니다.
경향신문은 <사설/3차 회담 의지 밝힌 북미정상, 창의적 중재가 필요하다>(4/15)에서 “회담 후 두 정상이 모두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면서 3차 회담에 대한 의지를 밝혀 다행스럽다”“문제는 두 정상의 대화 의지에도 불구하고 북·미 간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고 말했습니다. 한겨레도 <사설/ 3차회담 용의 밝힌 북-미, 새 돌파구 마련해야>(4/15)에서 “북-미 두 정상이 다시 대화에 나설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양쪽이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 절충점을 찾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시정연설의 어떤 내용을 가지고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나?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최근 우리 핵무장력의 급속한 발전 현실 앞에서 저들의 본토안전에 두려움을 느낀 미국은 회담장에 나와서 한편으로는 관계개선과 평화의 보따리를 만지작거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제재에 필사적으로 매여달리면서 어떻게 하나 우리가 가는 길을 돌려세우고 선 무장해제, 후 제도전복야망을 실현할 조건을 만들어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미국이 우리 국가의 근본이익에 배치되는 요구를 그 무슨 제재해제의 조건으로 내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와 미국과의 대치는 어차피 장기성을 띠게 되어있으며 적대세력들의 제재 또한 계속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사설/文 대통령에게 北 편에 서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한 김정은>(4/15)에서 “북의 ‘근본 이익과 관련된 문제’는 핵 보유”라고 해석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에서 요구했던 북핵의 완전한 폐기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한겨레는 <뉴스분석/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3가지 키워드는>(4/15)에서 다르게 분석했습니다. 한겨레는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때 미국의 협상 태도와 방안을 ‘선 무장해제, 후 제도전복야망’이자 ‘우리 국가의 근본이익에 배치되는 요구’라고 비판했다”고 전했습니다. 즉, 미국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기한 ‘비핵화 전 대북 제재 해제 불가’ 입장이 북의 근본이익에 배치된다는 분석입니다. 이처럼 시정연설 속 ‘근본 이익’이란 표현을 ‘핵 보유’라고 규정한 신문사는 5개 종합일간지 중 조선일보가 유일했습니다.
KBS <트럼프의 재구성/트럼프식 계산법>(4/15 박성래 기자)에서 북한이 왜 미국의 하노이 제안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짚어줬습니다. 미국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기한 “북한이 비핵화하고 나야 미국이 제재를 풀어준다”는 협상안은 북한의 입장에선 ‘강도같은 요구’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KBS는 “북한 것은 당장, 게다가 몽땅 넘겨야 하고 미국 것은 나중에 천천히 준다고 한다. 북한 입장에선 목숨이 걸린 핵인데, 뭘 믿고 당장, 몽땅 넘기겠는가?”라고 반문합니다. 때문에 김 위원장이 ‘근본이익’에 배치된다며 반발한 것인데, 조선일보를 이를 ‘핵보유’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다시 ‘대화 분위기’ 조성 중인데…“핵 폐기 의사 없다”고 단언할 수 있나
한편 조선일보는 <김정은 “미, 하노이 방법으론 우릴 까딱도 못 움직일 것>(4/15 윤형준 기자)에서 “김정은은 이번 연설에서 ‘핵 무장력의 급속한 발전 현실 앞에서 저들의 본토 안전에 두려움을 느낀 미국’ ‘장기간의 핵위협을 핵으로 종식시킨 것처럼’ ‘핵시험과 대륙간 탄도로켓 시험발사 중지를 비롯한 중대하고도 의미 있는 조치들을 주동적으로 취하여’ 등 세 차례에 걸쳐 ‘핵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사실상 자신들이 핵 보유국임을 다시 강조며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여기에 “김정은이 다시 ‘핵’을 언급한 건 북한이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받은 인도·파키스탄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는 걸 노골화한 것. 결국 핵폐기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는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의 주장도 담았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담은 신문은 조선일보가 유일했습니다. 하지만 핵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다가 이번 연설에서 3번 언급한 점을 들어 “핵폐기 의사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건 과도한 해석으로 보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이나 의지를 단어 하나하나로 유추해 내는 것은, 왜곡의 여지가 크기 때문에 위험한 행동입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도 시정연설 이후 트위터에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점에서 3차 정상회담은 잘 될 것”이라며 “머지않아 핵무기와 제재가 제거될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하고, 그러고 나서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국가 중 하나가 되는 것을 지켜보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노이 결렬 이후 다시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데, 자구 하나 가지고 “핵 폐기 의사 없다”며 결론 내는 것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입니다.
비핵화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
한편, 김정은 위원장 시정연설에는 “힘으로는 우리를 어쩔 수 없는 세력들에게 있어서 제재는 마지막 궁여일책이라 할지라도 그자체가 우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전인 것만큼 결코 그것을 용납할 수도 방관시 할 수도 없으며 반드시 맞받아나가 짓뭉개버려야 합니다. 장기간의 핵위협을 핵으로 종식시킨 것처럼 적대세력들의 제재 돌풍은 자립, 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합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NEWS&VIEW/김정은 “오지랖 중재자 행세 말라”>(4/15 이용수 기자)에서 “극도의 내핍을 무릅쓰더라도 미국의 비핵화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장기전을 펴겠다는 것이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대화의 의지가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는 태도이죠. 그러나 경향신문은 <미국이 계산법 바꾼다면…싱가포르 합의 복귀 전제로 협상 뜻>(4/15 유신모 기자)에서 “핵보유국이 됐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동시에 협상이 장기화될수록 핵보유 기간이 길어지므로 미국에 유리할 것이 없다는 의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즉, 미국과 거래할 비핵화 협상의 카드로 분석한 것입니다.
주한미군 철수, 미국 핵우산 제거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조선일보의 해석은 “주한미군 철수론”까지 나아갔는데요. 이는 시정연설의 “앞으로 조미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고 서로에게 접수가능한 공정한 내용이 지면에 씌여져야 나는 주저없이 그 합의문에 수표할 것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어떤 자세에서 어떤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명백한 것은 미국이 지금의 정치적 계산법을 고집한다면 문제해결의 전망은 어두울 것이며 매우 위험할 것입니다”라는 부분에서 발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NEWS&VIEW/김정은 “오지랖 중재자 행세 말라”>(4/15)에서 북한이 “미국에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한 것”이라고 부연한 뒤, 갑자기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위 연설 관련해서) 김정은이 군사 분야의 ‘다른 행동조치’를 요구한 것이라고 보도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조선일보는 “3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금지, 한·미 연합훈련 영구 중단, 주한미군 철수, 미국 핵우산 제거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고 분석합니다. 새로운 계산법→다른 행동 조치→주한미군 철수‧핵우산 제거까지 나가는 겁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미국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기한 ‘비핵화 전 대북 제재 해제 불가’ 즉, ‘지금의 정치적 계산법’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으며,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분석한 언론이 대부분입니다. 중앙일보도 <트럼프는 대선까지 현상 유지, 김정은 대미 직거래 원해>(4/15 백민정 기자)에서 “미국의 빅딜과 이에 근거한 한국 정부의 중재안도 받기 어렵다는 것으로, 새 판을 짜야 한다는 주장”이라며 고유환 동국대 교수의 발언을 인용했습니다. 동아일보도 이전 하노이회담에서 제기한 다른 안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협상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국민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한미군 철수 의제를 꺼내든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은 수차례 ‘주한미군 철수’와 ‘북미대화’가 관련이 없다는 점을 밝혀왔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2월 22일 백안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한미군 철수를 김정은과 논의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고, 협상 테이블에 오를 의제도 아니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올해 2월 13일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연방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북미 비핵화 대화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올해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러나 김 위원장은 비핵화·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지위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주한미군은 비핵화 프로세스에 연동된 문제가 아니라, 한미 동맹에 의해 한국에 미군이 있는 것”이라며 “남북간, 북미간 종전선언이 이뤄지고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주한미군을 유지할지 여부는 한미 양국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주한미군 주둔은 비핵화 과정과 연동된 것이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 이후 한국과 미국의 결정에 따를 뿐입니다. 진정한 한반도 평화 체제가 안착이 된다면, 당연히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한미연합훈련은 불필요해집니다. 미군이 주둔할 필요도, 핵우산이 있을 필요도 없게 될 겁니다.
감히 북한이 어디서…“어처구니 없는 일”이라는 조선일보
시정연설의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습니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 발언을 두고 조선일보 이외의 4개 신문사는 “대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사설/ 문 대통령에게 북 편에 서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한 김정은>(4/15)에서 위 발언에 대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책임을 미국에 지우면서 만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생각을 고쳐먹는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고 한 것이다”며 “국제 정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김정은의 말만 듣는다면 세계 초강대국의 한쪽 당사자가 상대와 신경전을 벌이는 줄 알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고 표현했습니다.
한겨레는 <뉴스분석/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3가지 키워드는?>(4/15)에서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라고 단서를 달아 협상의 의지를 밝혔다”며 북한이 협상의지를 보인 것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사설/3차회담 용의 밝힌 북-미, 새 돌파구 마련해야>(4/15)에서는 “하노이 회담 때처럼 북한에 굴복을 요구하는 ‘일방주의적 빅딜’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니, 미국이 상호주의 해법을 제시하라고 공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 자신의 협상 카드를 제시한 것에 불과한데도, 조선일보는 ‘어처구니없다’며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냈습니다. 조선일보는 미국과 북한을 대등한 관계로 보지 않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조선일보가 평화 통일을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추가 도발의 명분?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지금 미국에서는 우리의 대륙간탄도로케트 요격을 가상한 시험이 진행되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군사연습들이 재개되는 등 6.12조미공동성명의 정신에 역행하는 적대적 움직임들이 노골화되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를 심히 자극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김정은 “미, 하노이 방법으론 우릴 까딱도 못 움직일 것”>(4/15 윤형준 기자)에서 “한 북한 전문가는 ‘미국이 자신들을 겨냥해 군사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 건 추후 ’도발’의 명분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분석을 한 신문은 조선일보가 유일했습니다.
누구보다 ‘오지랖’에 집중한 보수언론…“핵폭탄에 당하고 싶지 않으면”이라는 해석까지
이번 시정 연설에서 ‘오지랖’ 발언은 언론에 의해 크게 부각되며 화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정확하게 “남조선 당국은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여야 합니다”입니다.
1면에서부터 ‘오지랖’을 강조한 조선일보는 15일 자 6건의 기사 중 4건의 기사에서 ‘오지랖’을 언급했습니다. 동아일보도 마찬가지로 6건 중 4건에서 ‘오지랖’을 꺼냈습니다. 중앙일보는 4건 중 2건이었습니다. 반면, 한겨레는 7건 중 2건 경향신문은 8건 중 2건으로 앞선 보수신문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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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일간지 |
합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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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동아일보 |
조선일보 |
중앙일보 |
한겨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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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연설 보도 중 ‘오지랖’이 포함된 기사 |
2(8)건 |
4(6)건 |
4(6)건 |
2(4)건 |
2(7)건 |
14(31)건 |
△ ‘오지랖’이 포함된 보도량 (괄호는 ‘시정연설’ 관련 전체 보도량)(4/15) ⓒ민주언론시민연합
‘오지랖’이라는 표현은 외교적 결례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북미회담이 교착에 이른 상태에서 남한 정부에 불만을 표시한 수준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이 단어를 지나치게 부각하며 날선 비판을 가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설/文 대통령에게 北 편에 서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한 김정은>(4/15)는 “핵폭탄에 당하고 싶지 않으면 북한 편에 서서 미국에 양보를 요구하라는 것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중앙일보도 <사설/북한, 막말과 협박으로 대화의 판 깨선 곤란하다>(4/15)도 “모욕적인 언사다”라고 규정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사설/미에 퇴짜 맞고 남에 ‘오지랖’ 막말한 김정은의 억지와 허세>(4/15)에서 “김정은의 ‘오지랖’ 운운하는 태도에 대해선 단호하게 짚고 가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한겨레는 < >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당부를 ‘북한식 어법’으로 강하게 표현한 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경향신문도 < >에서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를 받아들일지도 낙관하기 어려울 정로 태도가 강경하다”고만 언급했습니다.
신문 |
내용 |
경향 신문 |
북한이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를 받아들일지도 낙관하기 어려울 정도로 태도가 강경하다. |
동아 일보 |
사실상 북한과의 입장 통일을 주문한 한미 ‘갈라치기’ 전략이다. 문 대통령을 향해 대북제재 한미 공조를 깨고 북한 편을 들라는 노골적인 협박성 발언이다. 특히 김정은의 ‘오지랖’ 운운하는 태도에 대해선 단호하게 짚고 가야 한다. |
조선 일보 |
한국에는 자기편에 설 것을 통첩하듯 요구한 것이다. 핵폭탄에 당하고 싶지 않으면 북한편에 서서 미국에 양보를 요구하라는 것이다. 미국이 아니라 자기편에 설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
중앙 일보 |
‘오지랖 넓다’는 ‘무슨 일이든 앞장서 간섭, 참견하고 다니는 것’을 뜻하는 모욕적인 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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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문 대통령이 미국의 강경한 대북 접근법을 바꾸는 데 여태껏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당부를 ‘북한식 어법’으로 강하게 표현한 셈이다 . 청와대는 일단 이 메시지가 ‘대화를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 김정은 위원장 시정연설 중 ‘오지랖’ 관련 신문사 보도 비교 (4/15) ⓒ민주언론시민연합
‘오지랖’ 표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외교언어가 상대국의 언어문화를 고려해야한다고 본다면, ‘오지랖’은 사려있지 못한 외교적 결례인 건 맞아 보입니다. 그러나 자극적 표현 하나에 집착한다면 전체 큰 흐름을 읽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15일 현안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북한에서 내왔던 어떤 발표문, 그리고 보도의 수위 이런 것들을 감안해서 봤을 때 총체적으로 총평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 단어(오지랖)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계시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큰 틀에서 한반도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될까 거기에 더 많은 고민을 해야 되는 게 저희의 숙제가 아닌가 싶다”고 답했습니다.
한겨레는 <문제는 남쪽의 ‘넓은 오지랖’이 아니다>(4/16 이제훈 선임기자)에서 이번 ‘오지랖’ 발언에는 “새겨들을 내용과 부적절한 대목이 섞여 있다”며 심층 분석했습니다. 이제훈 기자는 “‘우리의 입장에 보조를 맞추어야’라는 김 위원장의 주장은 부적절하다”면서 “남북미 3자는 서로 다른 자기 정체성을 기반으로 ‘상대적 힘의 계산’과 ‘이익 저울질’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북의 발언의 부적절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오지랖’ 발언이 “지지부진한 남북관계” 때문인 점도 짚습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선 남북관계 발전이 핵심인데, 대북 제제의 틀 안에서 이렇다할 진전이 없다보니 북한의 입장에선 “말로써가 아닌 실천적 행동”을 보여달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한겨레는 “차이를 줄이고 공동 이익의 기반을 넓히려는 노력은 3자 모두의 몫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바늘구멍보다 좁은 출로를 찾아 한반도 평화의 너른 광장에 이를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보수언론이 ‘오지랖’ 발언을 모욕적이고 협박이고 강하게 항의해야 한다며 단편적 분석을 내린데 비해, 한겨레 보도에는 한반도 평화를 안착시키기 위한 진지한 고민이 엿보였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4월 15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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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