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방송사의 재난보도 시스템 원점에서 재점검하라
등록 2019.04.0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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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7시 무렵 강원도 고성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화재는 강풍을 타고 빠르게 번졌고 인근 속초 시내까지 위협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망자 1명, 부상자 11명이 발생했고 인근 지역 주민 3,000명 이상이 대피하는 등 긴급 재난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해 피해를 줄이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하지만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상파 3사, 종합편성채널 4사, 보도전문채널 2사의 고성 산불 보도를 모니터한 결과, 9개 방송사의 ‘재난 보도’는 허점이 많았습니다.

 

장애인은 재난에서 예외?…뉴스에서 사라진 수어 통역

이번 산불 보도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수어방송의 부재였습니다. 산불이 확산되던 4일 오후 11시 57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SNS를 통해 “두 공중파 방송국은 재난 속보에 수어통역을 지원하십시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는 KBS‧MBC에서 진행하던 특보에서 수어 통역이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 지적을 9개 방송사로 범위를 넓혀 확인한 결과는 더 심각했습니다.

 

9개 방송사 중 고성 산불 보도에서 수어 통역을 진행한 방송사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적한 산불 특보뿐만 아니라 각 방송사의 저녁종합뉴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성 산불 보도를 진행한 KBS‧SBS‧JTBC‧TV조선‧YTN‧연합뉴스TV 모두 수어 통역은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KBS‧SBS‧JTBC‧YTN‧연합뉴스TV에서 밤새 진행된 산불 특보에서도 수어 통역은 없었습니다. 가장 먼저 수어 방송을 시작한 방송사는 JTBC‧TV조선‧MBN으로 5일 오전 7시였습니다. 이어 KBS 오전 8시, 채널A 9시 20분, SBS 오전 9시 50분, YTN 오전 11시, MBC 오전 11시 30분, 연합뉴스TV 오전 11시 44분이었습니다.

 

방송사

4일

5일

KBS

X

O(오전 8시)

MBC

X

O(오전 11시 30분)

SBS

X

O(오전 9시 50분)

JTBC

X

O(오전 7시)

TV조선

X

O(오전 7시)

채널A

X

O(오전 9시 20분)

MBN

X

O(오전 7시)

YTN

X

O(오전 11시)

연합뉴스TV

X

O(오전 11시 44분)

△ ‘고성 산불’ 보도(4/4~5) 수어 통역 유무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와 같은 방송사들의 행태는 위법의 소지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방송법 제69조(방송 프로그램의 편성 등) ⑧항에는 “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시청을 도울 수 있도록 한국수어ㆍ폐쇄자막ㆍ화면해설 등을 이용한 방송(이하 "장애인방송"이라 한다)을 하여야 한다. 이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업자가 장애인방송을 하는 데 필요한 경비 및 장애인방송을 시청하기 위한 수신기의 보급에 필요한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24조에 따른 방송통신발전기금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필요한 경비에 대해 지원금을 줄테니 ‘장애인 방송’을 제대로 하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모든 방송에 장애인을 위한 방송을 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여 방송법 시행령 제52조(장애인의 시청지원) ①항에서 “다음 각 호의 방송프로그램을 제외한 방송프로그램의 경우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사업자의 제작여건과 시청자의 수요를 고려하여 장애인방송을 하여야 하는 비율을 정하여 고시할 수 있다”고 규정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예외 없이 무조건 장애인방송을 해야 하는 방송으로 1.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40조에 따른 재난방송 또는 민방위경보방송 프로그램, 2.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14조 각 호에 따른 방송프로그램, 3. 장애인의 방송시청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방송통신위원회규칙으로 정한 방송프로그램, 4. 기타 장애인의 복지를 목적으로 편성된 방송프로그램”이라고 적시해두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모든 방송에서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해야 마땅하지만, 사업자의 여건을 고려해서 비율을 정해서 장애인방송을 할 수 있게 하되 반드시 장애인 방송을 해야 하는 방송 성격을 규정해 둔 것이며, 여기에 재난방송이 첫 번째로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사실상 모든 대피가 완료된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다음날 오전에서야 수어방송을 시작했고, 그마저도 지상파가 종편보다 늦었습니다. 방송사들이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역시 재난의 대상이라는 점을 인식했다면 이와 같은 문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산불 대피 보도 누가 빠르게 했는가?

이번 산불은 4일 저녁 7시 17분쯤 고성 산불이 발생했고 8시 이후 심각성이 부각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방송사가 저녁종합뉴스를 하는 시간대였기에 자막속보가 아닌 뉴스에서 산불소식이 보도되는 경우가 경우가 많았습니다. 민언련이 확인한 결과, JTBC, YTN, 연합뉴스TV, SBS, KBS가 저녁 8시부터 10시 사이에 하는 저녁종합뉴스에서 고성산불 소식을 처음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7시 30분 가량에 시작되는 MBC, 채널A, MBN의 저녁종합뉴스는 고성 산불을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MBC, 채널A는 인제 산불 관련 보도만 있었고 고성 산불은 전하지 않았습니다. MBN은 아예 산불이라는 것 자체를 전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재난관련 뉴스특보는 편성도 늦었던 KBS와 SBS

저녁종합뉴스에서 첫 보도를 안 하거나 늦게 한 것, 벚꽃타령을 한 것 등은 어찌 보면 그저 사소한 차이일 뿐입니다. 당시 고성 산불의 심각성이 인지되지 못하는 시간이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8시 45분쯤 불이 속초 시내로 번지면서 주민 대피령이 확대되는 등 사태의 심각성이 커졌습니다. 이처럼 그야말로 무서운 속도로 불이 번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뉴스특보를 편성했어야 합니다.

 

산림청이 산불 재난 국가위기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때가 밤 10시 즈음이었습니다. 이에 YTN은 9시 52분부터 1시간가량 정규편성 방송 중 뉴스특보를 왼쪽 위에 띄운 뒤 방송했습니다. 연합뉴스TV는 뉴스특보 표시는 없었으나 정규편성 방송 중 8시 48분부터 13분, 9시 6분부터 23분가량 고성 산불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그러나 11시 이전까지 보도전문채널 이외의 모든 방송사들은 드라마와 예능, 시사프로그램을 내보냈습니다. 그나마 가장 빠르게 정규방송을 중단한 곳이 MBC입니다. MBC는 <더 뱅커>가 끝난 밤 11시쯤 예능 프로그램 <킬빌>을 결방시키고 뉴스 특보 체제에 돌입했습니다. MBC는 특보를 2시까지 했습니다.

 

KBS 1TV는 다큐멘터리 <시민의 탄생>을 끝난 후 밤 10시 53분부터 11시 5분까지 짧게 뉴스 특보를 전한 후 다시 정규 편성 방송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했습니다. 그리고 밤 11시 25분에서야 <오늘밤 김제동> 방송을 중단하고 뒤늦게 특보를 재개해서 마찬가지로 2시까지 진행했습니다.

 

SBS가 가장 황당합니다. 예능 프로그램 방송 도중인 밤 11시 52분부터 58분까지 특보를 방영했다가 다음날 새벽 12시46분부터 산불 소식을 집중적으로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오후 10시에 편성된 드라마 '빅이슈'를 기존대로 내보냈고, 예능프로그램 '가로채널'도 그대로 방영되었습니다. 그리고 밤에 특보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음날 5일 새벽 5시가 되어서야 특보가 시작되었습니다.

 

JTBC는 자정이 넘은 12시 5분에 특보를 편성해서 다음날 오전 8시까지 방송했습니다. 밤새 산불소식을 전한 방송사는 KBS, MBC, JTBC, YTN, 연합뉴스TV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외의 TV조선, 채널A, MBN은 특보를 편성하지 않았습니다. 저녁종합뉴스에서도 고성산불을 전하지 않고, 특보도 마련하지 않았던 MBN은 다음날 아침 7시에나 산불속보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보도부터 재난보도에 나선 JTBC

각 방송사의 첫 보도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방송사는 JTBC였습니다. JTBC <강원 산지 ‘비 없는 태풍’…미시령 부근 산불 확산>(4/4 조승현 기자)는 강원도 미시령에서 리포트를 진행했습니다. 손석희 앵커는 조승현 기자에게 “근처에서 큰 불이 났다면서요”라며 고성 산불에 대해 물었고 조 기자는 “촬영을 하던 중에 근처에서 불꽃이 튀고 연기가 나는 걸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와봤더니 도로 양쪽에서 시뻘건 불꽃이 날리고 또 맹렬한 불길이 타올랐습니다”라며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JTBC는 “소방대원들이 소방차와 장비를 가지고 진을 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지나다닐 수 없는 상태”, “수많은 소방 차량들이 도로 양쪽에 늘어서서 눈에 보이는 불길마다 제압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바람이 워낙 거세다 보니까 불길이 번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장을 전달했습니다.

 

<고성 산불, 속초 시내까지 급속히 번져…대피령 확산>(4/4 조승현 기자)에서는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이 불길이 속초 시내 쪽으로 번지고 있다는 것”, “속초 시내 쪽에 있는 마을 그리고 동쪽에도 점점점 대피령이 확대가 되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며 현장의 심각성을 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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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산불 현장을 빠르게 전달한 JTBC <뉴스룸>(4/4)

 

‘산불 우려’ 대신 ‘벚꽃 축제 취소’ 걱정한 TV조선‧채널A

이 와중에 채널A와 TV조선은 상황 파악을 못하고 벚꽃축제나 언급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먼저 채널A <태풍같은 강풍… ‘양간지풍’에 산불 속출>(4/4 이은후 기자)는 리포트의 시작이 벚꽃축제였습니다. 이은후 기자는 “그제부터 시작된 강릉 벚꽃축제 행사장입니다. 영동지방에 태풍급 강풍이 예보되면서 강릉시는 축제를 잠정 중단했습니다”라며 상황을 설명했고 이후에야 강풍으로 인한 피해들을 전달하면서 2005년 낙산사 화재사건을 언급했습니다. 보도 말미에 이 기자는 “연일 건조한 날씨에 강한 바람까지 더해지며 산불도 속출하고 있습니다”라며 전국의 화재소식을 전했습니다.

 

TV조선도 고성 산불 소식을 현장에서 전한 직후 보도에서 벚꽃 축제 취소 소식을 다뤘습니다. TV조선 <“서 있기도 힘든 강풍”…벚꽃축제 중단>(4/4 이승훈 기자)는 채널A와 마찬가지로 벚꽃축제 현장을 찾아 소식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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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지역 강풍에 벚꽃 축제 찾아간 채널A(위), TV조선(아래)

 

이번 산불 확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강풍이었습니다. 연합뉴스TV <시속 100km 태풍급 강풍…산불 초비상>(4/4 김동혁 기자)는 4일 오전부터 강풍으로 인한 화재 확산을 우려하는 보도를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실제 태풍에 가까운 30㎧의 강풍과 건조한 기후로 고성에서 발생한 화재는 속초까지 빠르게 번졌습니다. 이런 강풍 속에 TV조선‧채널A가 ‘산불 걱정’ 대신 ‘벚꽃축제 취소’에 관심을 보인 것에 대해 뭐라고 평가해야 할까요?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4월 4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 YTN <뉴스Q>(1부)

 

* 김종훈 민중당 의원실이 각 방송사와 방송통신위원회에 요청한 재난방송 관련자료 확인을 통해 방송사 최초 수어 보도 시간을 4월 9일에 수정했습니다.

 

* 추후 재확인 결과 MBC는 5일 오전 2시부터 5시까지 특보편성이 없었습니다. 이에 내용을 4월 18일에 수정했습니다.

<끝>

문의 임동준 활동가 (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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