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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주 52시간 극장’, 한국경제는 서민경제 걱정할 자격 없다‘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 제도의 계도기간이 2019년 3월 31일 종료되었습니다. 4월 1일부터는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겠다고 보고하지 않은 모든 사업장에서 주 52시간을 초과해 연장노동을 하면 사업주가 처벌 대상이 됩니다. 계도기간 종료를 앞둔 3월 29일 한국경제는 노동시간 단축제도에 관한 기획기사를 내고 1면, 4면, 5면에 걸쳐 총 7건의 기사를 통해 노동시간 단축제도를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아주 가관이었습니다.
기자의 놀이터가 된 청와대 청원게시판…가벼운 기사의 무게
△청와대 청원게시판에서 절반 이상의 사례를 가져온 한국경제 기사(3/29)
한국경제는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여러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사례의 출처는 대부분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었습니다.
한국경제 <지킬 수 없고, 지켜도 행복하지 않은 주 52시간>(3/29, 전설리‧김진수 기자)과 <52시간 지키려 116명 뽑았더니, 일 더하겠다며 113명 떠났다>(3/29, 전설리‧김낙훈 기자)에서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끊임없이 “일하게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온다. ‘지킬 수도 없고, 지켜도 행복하지 않은 법’이라는 하소연이다. 지난 1년간 게시판에 올라온 주 52시간 근로 관련 청원은 2300건이 넘는다”며 7건의 청와대 청원 게시글을 인용했는데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한국경제가 어떤 청원 글을 인용했는지, 해당 청원이 몇 건의 동의를 받았는지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청원이 10명 남짓 동의를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기사 본문 |
청원글(링크) |
동의 횟수 |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30대 근로자는 “돈이 있어야 여유 있는 삶이 아니냐.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
주 52시간 근무...누구를 위한 정책인가요?(2019/3/11~4/10 종료예정) |
12명 |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한 주부는 “돈을 벌어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데 그걸 막는 나라가 원망스럽다” |
확인 안됨 |
|
법무부 소속 보호관찰소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조두순’(전자발찌를 착용한 특정 범죄자)이 밤거리를 배회해도 출동할 수가 없다”며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청원했다. |
저희는 조두순이 밤거리를 배회해도 저희는 출동하지 않습니다.(2019/3/16~4/15 종료예정) |
5510명 |
1년 전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한 논란이 시작됐다. 당시 화제가 된 근로자 글의 제목은 “저녁이 있는 삶보다 저녁거리를 살 돈이 중요하다. 일을 더하게 해달라” |
저녁이 있는 삶보단 먹고사는 삶이 더 절박합니다. … (2018/4/1~5/1) |
108명 |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탓에 평균 300만원 이상이었던 월수입이 200만원대로 줄어 매달 적자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는데 쉽지 않아 날마다 돈 걱정” |
주 52시간제 개편 좀 부탁드립니다. 간절합니다. (2019/2/22~3/24) |
9명 |
“줄어든 월급을 충당하느라 더 힘들게 일하고 있다” |
근무시간을 왜 나라가 강제하나요(2019/3/17~4/16 종료예정) |
14명 |
“일의 양과 직원 수는 그대로인데 근무시간만 단축해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가고 있다. 6000명의 직원이 250시간씩 하던 일을 직원을 뽑지 않은 채 갑자기 160시간에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주 52시간 잘시행될까요. 걱정이 한가득입니다. (2019/3/21~4/20 종료예정) |
8명 |
△ 한국경제 <지킬 수 없고, 지켜도 행복하지 않은 주 52시간>(3/29)에서 인용한 청와대 청원과 동의 횟수. (※동의 횟수는 4월 5일 오후 1시 기준임) Ⓒ민주언론시민연합
청와대는 지난 3월 31일 국민청원을 올리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30일 이내에 해당 청원을 지지하는 100명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만 청원게시판에 청원 내용이 공개되어 더 많은 국민이 청원에 동참하실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청와대는 ‘사전동의 링크(URL)’만 제공하고, 시민들이 이 URL을 공유해 사전 동의를 받게 했습니다. 청와대는 “미국 온라인 청원 시스템인 ‘위더피플’의 경우에도 150명 이상의 사전 동의를 얻은 청원만 게시판에 공개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방식으로 일부 악성 청원 노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한국경제에서 인용한 대부분의 청원 글은 그냥 인터넷 게시판에서 ‘퍼 온’ 수준이며, 정식 청원이 되지도 못할 요구들입니다.
특히 한국경제 기사에는 “1년 전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한 논란이 시작됐다. 당시 화제가 된 근로자 글의 제목은 ‘저녁이 있는 삶보다 저녁거리를 살 돈이 중요하다. 일을 더하게 해달라’였다”라고 표현한 내용도 있었는데요. 확인해 본 결과, 이 청원은 작년 4월 1일에 올라와 11일 한국경제 기사<“‘저녁 있는 삶’보다 저녁거리 살 돈이 중요…일 더하게 해주세요”>(2018/4/11, 문혜정 기자)를 통해 언론에 노출까지 됐는데도 동의 인원은 고작 108명이었습니다. 이를 보면, 이 청원 글은 ‘당시 화제가 된 글’이 아니라 ‘한국경제가 화제로 만들려고 했다가 실패한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조두순이 밤거리를 배회해도 충동하지 않는다’는 청원은 52시간제 비판 글이 아닌데
한국경제에서 인용한 청원 중 가장 많은 동의를 받아 그나마 보도 가치가 있었던 ‘조두순이 밤거리를 배회해도 출동하지 않는다’도 애초 청원글을 보면 제도개선의 취지가 노동시간 단축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해당 청원에 따르면, “주 52시간으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었으나, 상부에서 ‘예산이 부족하다, 기재부에서 예산을 주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인력충원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청원글을 보면 ‘전자발찌 착용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보호직 공무원의 부족한 인력의 보강과 직원의 안전을 위해’ 무도실무관 제도가 도입되었는데요. “법무부의 대책(인원보충) 없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무도실무관들이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9조(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의 근로시간 연장 신청 등)를 찾아 근로시간 연장을 요구하였으나 특별한 업무가 아니라며 거부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야간에 언제 발생할지 모를 출동과 사건을 대비하기 때문에 대기시간으로 인정받았던 시간들을 무급휴게시간으로 전환하여 모든 업무가 중단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례(2016다243078)에 따르면 언제 발생할지 모를 출동과 사건을 대비하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시간을 무급휴게시간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즉, 사실관계를 보면 무도실무관에 대한 탈법적 노무관리와 무도실무관의 열악한 처우가 문제의 본질이지, 해당 청원이 주 52시간제에 대한 호소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울먹이며 ‘야근하고 싶습니다’?
기사 속에는 청와대 청원이 아닌 기자가 발로 뛰어서 찾아낸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례 역시 주 52시간제의 문제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기사는 “중견 자동화설비 제조업체인 C사의 한 임원은 야근을 하다가 늦게까지 불이 켜진 사무실을 발견하고 찾아갔다. 20대 연구직원이 일을 하고 있었다. 임원은 “빨리 퇴근하라”고 다그쳤다. 직원은 “이것만 하고 가면 안되나요. 실력을 키우고 싶습니다”며 울먹였다”고 전했습니다. 대표적인 연구직종인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대학원생은 사람이 아니라’는 농담이 유행하는 것이 현실인데 작위적인 내용에 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세상에 별별 일과 사람이 다 있으니 있을 수도 있는 일이겠지요. 절대 거짓으로 지어냈다고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2018년 중순 리얼미터-CBS 여론조사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 긍정적 여론이 51.7%, 부정적 여론이 31.6%였습니다. 그중 20대는 59.2%가 긍정적, 17%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30대의 긍정적 여론 68.6%, 40대의 긍정적 여론 65.8%와 비교하면 3번째지만, 20대의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긍정적 여론은 높은 것이 분명합니다.
속 편하려고 베트남으로 공장 이전한다는 사례, 그러나?
다른 기사인 <“수출 물량 줄일 수밖에…” 기업 경쟁력까지 꺾일 위기>(3/29)에는 베트남 공장 이전을 생각하는 기업인의 인터뷰도 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직원이 200여 명인 수도권 아웃도어업체 A사는 주력 생산시설을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노이 인근에 공장 부지를 매입해 내년 초 공장을 준공할 예정이다. 이 회사 대표는 “업무 특성상 1년 중 절반은 바쁘고 절반은 좀 여유로운데 내년 주 52시간 근로체제에서 법을 지키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차라리 공장을 해외에 두는 게 속 편해 이전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 호치민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제공하는 베트남 노동법 번역본에 따르면, 베트남의 초과 노동시간 제한은 일 12시간, 월간 30시간, 최대 연간 200시간이고 정부가 허용하는 경우 최대 연간 300시간입니다. 1주로 환산할 경우 주당 5.8시간이고, 월별로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한다고 해도 최대 주당 6.9시간이며, 이를 어길 경우 형사처벌을 받습니다. 베트남은 48시간제를 하고 있으므로, 최대 ‘주 55시간제’인 셈입니다. 게다가 단서조항으로 “국가는 주 40시간 근무를 실행할 것을 권장한다”고 합니다. 베트남이 해외기업 유치에 힘을 쓰는 상황이라서 이런저런 편의를 봐준다지만 베트남 노동법을 봤을 때, 공장을 이전해도 별로 ‘속이 편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저임금 위반 사례는 신고부터 하는 게 어떨지.
한국경제는 주 52시간 근로제와 임금 변화를 설명한다며 주 52시간 적용 시 감소하는 임금을 표로 만들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시급 기준으로 계산을 해 보면 이 표는 사실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우선, 한국경제가 제시한 A사의 월급은 작년 한국경제 기사 <“‘저녁 있는 삶’보다 저녁거리 살 돈이 중요…일 더하게 해주세요”>(2018/4/11, 문혜정 기자)에서 제시된 값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런데, 최저임금으로 계산해 보면 주 52시간을 일하는 노동자의 2019년 최저월급은 239만 4000원입니다. A사는 최저임금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죠. 한국경제가 2018년 말 기준으로 작성된 작년 기사의 값을 그대로 쓰면서 최저임금은 업데이트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B사 사례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시간 68시간 기준 월급 375만원이라면 시급은 9,589원입니다. 노동시간 52시간 기준 월급 291만원이라면 시급은 10,146원이죠. 2년 사이의 시급 인상률을 계산해 보면 연간 2.4%입니다. GDP상승률과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거의 자연인상률에 가깝습니다. 만약 모든 기업이 B사처럼 임금을 올린다면 인건비가 줄어드니 기업들은 주 52시간을 적극 환영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한국경제는 ‘52시간 근무제가 인건비를 상승시킨다’고 하고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한국경제 기사에서 제시한 임금 변화 표(3/29)
년도 |
2019년 |
2018년 |
2017년 |
최저임금 |
8350원 |
7530원 |
6470원 |
40시간 |
1,74,1571원 |
1,570,543원 |
1,349,457원 |
52시간 |
2,394,661원 |
2,159,496원 |
1,855,504원 |
68시간 |
3,265,446원 |
2,944,768원 |
2,530,232원 |
△최저임금, 노동시간에 따른 월 최저 월급 변화. 2년 전과 비교하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도 임금 감소량은 크지 않음. Ⓒ민주언론시민연합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 동시 비판은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
박근혜 정권 말, 한국의 노동시간이 OECD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어 장시간 노동에 대한 비판 여론이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명 ‘워라밸’, 일과 생활의 양립이 화두가 되어 노동시간을 줄이라는 요구가 거셌습니다. 실제로, 위에서 소개한 리얼미터-CBS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의견이 51.7%,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31.6%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인 편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추가 노동시간에 대해 1.5배 임금을 가산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감소하면 당연히 임금은 감소하게 됩니다.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노동자들은 임금 감소를 어느 정도 감수하고 일과 생활의 양립을 선택할 수 있으나,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도 불구하고 주 40시간 기준 월 최저임금(174만원)이 통계청 기준 월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461만원)에 미달하는 현실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이 두 축이 된 것은 이런 맥락이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해 임금이 크게 감소하는 것을 막는 한편, 가산수당 지급이 필요 없는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도록 유도한다는 계산이지요. 게다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노동시간 단축은 일반적으로 비효율적 장시간 노동을 감소시켜, 단위시간당 생산량인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전 세계적으로 관측됩니다. 노동경제학에서는 노동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줘야 한다고 보기에 노동시간 단축은 자연적으로도 시급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지속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거의 공포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 왔습니다. 2019년 1월 1일부터 4월 1일까지 최저임금이 키워드인 한국경제 기사는 총 384건에 이르며, 내용도 하나같이 최저임금 ‘부작용’ 강조뿐이었습니다. 종합해 보면, 저임금&저생산성&장시간 노동을 하던 ‘그 시절’이 좋았다는 자신들만의 주장일 뿐입니다. 아무리 경기가 좋지 않더라도 이런 주장에 찬성할 노동자는 없을 것입니다. 과연 ‘강성노조’가 문제인지 모든 문제를 그대로 내팽개쳐 두고 노동자들이 알아서 생산성만 올려주길 바라는 ‘강성기업’, ‘강성언론’이 문제인지 이제 고민해 볼 때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3월 29일 한국경제 보도(신문에 게재된 보도에 한함)
<끝>
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 정리 공시형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