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투자설명회 설문조사로 ‘국민 80%가 소주성 반대’로 과장한 한국경제
등록 2019.04.03 11:43
조회 630

한국경제는 2011년부터 ‘한경 머니로드쇼(이하 머니로드쇼)’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 홈페이지의 행사 설명에 따르면, 머니로드쇼는 ‘자산관리, 금융투자, 부동산시장 분야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로부터 재테크 트렌드와 투자 전략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1년에 한번 참석자들의 재테크 상황을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머니로드쇼는 평일 오후 1시 30분에서 5시 30분 사이에 서울(강남구), 부산(해운대구), 울산(중구), 대구(북구), 광주(서구), 대전(서구), 인천(송도) 중심가에서 열렸으며, 아무나 참가할 수는 있지만 사전 참가 신청을 받았습니다. 종합하면, 머니로드쇼는 부동산과 주식에 관심이 있고 그럴 만한 자금이 있으며, 평일 오후 시간을 비워둘 수 있고, 사전 신청자 또는 도심에 가까이 거주할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한국경제는 머니로드쇼 참가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3건의 보도를 내놨습니다.

 

전혀 통계적 유의성 없는 조사에 ‘국민’ 참칭

사람이 모였으면 어떤 내용이든 물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민간단체에서 행사 참가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때 설문 문항은 주로 행사의 만족도나 주최 측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묻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한경의 이번 보도는 다릅니다. 한국경제는 부동산과 재테크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수강생들을 모아서 강좌를 진행한 뒤,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찬반을 묻고 그 결과가 국민 모두를 대표하는 의견인 양 보도했습니다. 게다가 이 보도는 4월 2일 한국경제신문 1면에 보도되었습니다.

 

한국경제 <국민 80%, “소득주도성장, 수정 또는 중단해야 한다”>(4/2, 김일규강경민 기자)는 제목에서부터 국민 80%라고 단정했습니다. 이처럼 특정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에서 실시한 설문을 가지고 ‘국민’의 이름을 달고 발표하는 일은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머니로드쇼 수강생은 모든 국민을 대변할 수 있는 모집단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jpg

△ 자사 주최 투자설명회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국민’ 대상인 것처럼 보도한 한국경제(4/2)

 

 4면에 배치된 또 다른 설문 관련 기사 <머니로드쇼 참석자 54% “올해는 부동산과 해외주식이 유망”>(2019/4/2, 강경민 기자)를 보면, 머니로드쇼 수강생들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기사에서는 “자신의 자산 수준이 ‘5억~10억원’이라는 응답이 29.8%로 가장 많았다. 주택 등 부동산과 예금, 보험, 증권 등 금융상품을 모두 합친 것이다. 이어 △10억~20억원(24.3%) △5억원 미만(23.3%) △30억원 이상(11.4%) △20억~30억원(11.2%) 순이었다”고 합니다. 자산이 5억 이상인 참석자가 76.7%이고 10억 이상인 참석자는 거의 절반인 46.9%에 이릅니다. 통계청의 2018년 가계금융 복지조사에 따르면, 1가구의 순자산이 5억 이상인 가구의 비율은 20.1%에 불과하고, 10억 이상인 가구의 비율은 고작 6.1%입니다. 당연히 한국경제의 설문조사는 통계적 유의성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등장한 국제기관 보고서 짜깁기

한국경제 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는 정부 정책만 물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부 경쟁력은 C, 기업은 A>(2019/4/2, 김일규 기자)에서는 “정부의 경쟁력 수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43.5%는 ‘매우 낮다’고 답했다. ‘낮다’는 응답이 32.5%로 뒤를 이었다. ‘보통이다’(20.6%)까지 합치면 96.6%가 보통 이하의 점수를 줬다”며, 응답자의 96.6%가 정부에 박한 점수를 주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기업 경쟁력에는 후한 점수를 줬다. ‘선진국 대비 기업 부문 경쟁력이 높다’는 응답이 29.2%, ‘매우 높다’는 4.4%였다. ‘보통이다’(44.9%)까지 더하면 78.5%가 보통 이상의 점수를 줬다. ‘기업 경쟁력이 낮다’는 17.6%, ‘매우 낮다’는 3.9% 수준이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2.jpg

△ 설문 결과 정부 경쟁력은 떨어지고 기업 경쟁력은 높았다는 한국경제(4/2)

 

 한국경제는 이런 설문조사 결과를 뒷받침하고 싶었는지 세계경제포럼(이하 WEF)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이하 IMD)의 국가 경쟁력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보도는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WEF가 140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 한국 종합순위는 15위였지만, ‘정부 규제가 기업 활동에 초래하는 부담’ 79위, ‘정부의 미래지향’ 49위 등 정부 부문 세부평가 항목 순위는 낮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역시 지난해 평가대상 63개국 중 한국 종합순위를 27위로 매겼지만, 정부 효율성 부문은 29위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줬다. 정부 효율성 부문 세부항목 중 기업여건(기업 활동의 어려움)을 47위로 매긴 데 따른 영향이다”라고 기술했습니다.

 

종합적 평가 없이 맘에 드는 데이터만 부각해 왜곡하는 잔재주 여전

그러나 한국경제가 근거로 제시한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오히려 설문조사 결과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한국경제는 2018WEF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정부 규제가 기업 활동에 초래하는 부담’ 79위, ‘정부의 미래지향’ 49위 등 정부 부문 세부지표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들을 인용했는데, 이보다 더 낮은 순위를 기록한 분야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108위를 기록한 노동자 권리(worker’s rights)입니다. 또한, WEF보고서에서 기업 분야 세부지표라고 평가할 수 있는 지표들도 나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업가의 리스크 대면 태도(Attitudes toward entrepreneurial risk)에서는 77위, 권한 위임에 대한 의지(Willingness to delegate authority)에서는 88위를 기록했으며, 작업환경의 다양성(Diversity of workspace)은 82위였습니다.

 

같이 인용된 2018IMD국가경쟁력 보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경제는 이 보고서에서 ‘정부 효율성 부문은 29위’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줬다고 평가했지만, 보고서를 보면 정부 효율성은 29위인 반면 경영 효율성(business efficiency)은 더 낮은 43위를 받았습니다. 일정부분 노동계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노동시장(Labor market, 53위)을 빼도 세부 항목 평균이 39~40위 정도입니다.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항목은 다름 아닌 55위를 받은 ‘기업경영 관행(Management Practices)’이었습니다. IMD보고서는 정부보다 한국 기업에게 더 박한 평가를 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는 정부와 기업 중 어느 한 쪽이 더 잘하거나 잘못하고 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국제기관의 보고서 내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일부만 떼어 남 탓을 하는 데 쓴다면 현실을 왜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문지 만들 때 쓰인 나무에게 사죄해야 할 수준

한국경제는 이전에도 소상공인연합회가 사업주를 대상으로 주휴수당을 주고 싶은지 설문하여 99%가 ‘주휴수당 지급에 부담을 느낀다’고 대답한 설문조사를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민언련 보고서 <주휴수당 주고 싶은지를 사업주에게 물은 데이터, 보도가치가 있을까?>(1/25)에서도 지적했듯이 여론조사는 항상 표본 선택이 중요합니다. 전혀 통계적 유의성이 없는 이런 어설픈 조사들을 아직도 ‘국민’의 이름으로 발표할 수 있는 강심장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이들에게 국민은 무엇으로 보이는 것일까요?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4월 2일 한국경제 보도(신문에 게재된 보도에 한함)

 

monitor_20190403_123.hwp

<끝>

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 정리 공시형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