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위원회_
[신문모니터위원회] 양심을 양심이라 부르지 않는 언론
이 보고서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 모임인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의 공동 창작물입니다.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는 매주 평일 저녁에 만나 신문에 대해 토론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읽고 미디어 비평을 함께 해 보고 싶으신 분,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은 분들은 민언련(02-392-0181)으로 연락주세요. |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 하는 근거가 된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않은 상황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한다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국회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더는 처벌받지 않게 되자 “그럼 군대 가는 사람들은 비양심이냐?” 는 비난이 여지없이 등장했습니다. ‘양심’과 관련된 표현이 이슈가 될 때마다 ‘양심/비양심’ 논란은 끊이지 않습니다. 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를 다룬 한겨레21 <차마 총을 들 수가 없어요>(2001/2/7 신윤동욱 기자)기사가 우리 사회에 양심적 병역거부 논의를 촉발한 지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양심’에 대한 담론이 제자리걸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양심’이 아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양심의 자유의 ‘양심’은 자주 오해됩니다. ‘양심적’이라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너는 양심도 없냐’처럼 양심-비양심의 대립 구도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의 ‘양심’은 ‘착한 마음’, 혹은 ‘선한 마음’이 아닙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서의 양심은 개인적인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조’를 말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을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 정의했습니다.(96헌가11) “양심은 민주적 다수의 사고나 가치관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현상으로서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라고도 말했죠.(2002헌가1) 즉, 군대에 가든 가지 않든, 그것을 결정하는 내면의 소리가 바로 양심이라는 겁니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는 소신에 따라 입대하면 ‘양심적 병역이행자’라는 표현도 가능하겠죠.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
마찬가지로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는 ‘착한 일을 할 자유’가 아닙니다. ‘양심의 자유’는 어떤 규범이나 명령이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비추어 도저히 수용될 수 없을 때, 이에 저항할 수 있는 헌법적 기본권입니다. 민주주의는 양심의 자유를 최상위 가치로 여기는 체제입니다.
자유로운 시민은 양심에 어긋나는 명령이나 상황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04년 한 학생이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시키던 종교의례 참여를 거부했습니다. 2006년에는 한 교사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죠. 일본에서는 일장기 게양식 때 일어나지 않거나 기미가요(일본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는 저항 운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두 애국을 강제하는 국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양심의 자유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입니다.
그 한 가운데, 양심적 병역거부
양심은 실정법상 의무와 충돌할 때 더욱 박해받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그 한 가운데 있습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지’라는 정서는 한국에서 일반적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부조리한 문화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면서도 대가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도전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개인의 일방적 희생은 당연시된 겁니다.
병역 거부의 문제는 근대 민주국가, 그 가장 근간에 자리 잡고 있는 국가-시민 간 관계, 국가의 강제-개인의 자유 사이 긴장을 담고 있는 시금석 같은 사안입니다. 병역거부는 국가의 명령과 동원에 무조건 따르라는 국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애국을 강제하는 것에 저항합니다. 병역거부권 보장은 ‘특이’한 신념을 가진 몇몇 소수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고, 양심의 자유가 우리 모두의 보편적 권리임을 널리 알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의 자유는커녕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조차 제자리걸음입니다. 양심에 관한 이야기는 병역거부로 한정되고, 병역거부와 관련해서도 ‘양심’이란 단어를 사용조차 말자는 움직임이 힘을 얻어갑니다. 언론은 이와 관련해 논의를 진전시킬 의지가 있는 걸까요?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는 헌법재판소 판결이 있었던 2018년 6월 28일부터 2019년 2월 28일까지의 기사를 모니터했습니다. 모니터 대상은 종합일간지 경향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와 경제지 매일경제‧한국경제입니다.
언론이 양심적 병역거부 논의를 퇴보시켜온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1. 양심의 반대는 비양심?
오해를 부추기는 언론
일부 언론은 ‘양심-비양심’ 프레임을 사용해 병역이행자와 병역거부자 사이 갈등을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조선일보·중앙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는 일상적 ‘양심’과 헌법에서 명시한 ‘양심’의 개념을 혼용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신문사 |
종합일간지 |
경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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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동아일보 |
조선일보 |
중앙일보 |
한겨레 |
매일경제 |
한국경제 |
|
양심/비양심 논란을 부추기는 기사 |
0 |
0 |
3 |
1(1) |
0 |
1 |
1 |
오해 바로잡는 기사 |
5(4) |
0(1) |
0 |
1 |
2(4) |
1 |
0 |
△ 양심/비양심 관련 보도량(2018/06/29~2019/02/28) ( )안은 사설/칼럼 Ⓒ민주언론시민연합
‘양심/비양심’ 논란을 비판 없이 단순 전달하는 기사는 조선일보가 3건, 중앙일보가 2건, 매일경제와 한국경제가 각각 1건씩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일보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을” vs “누군 양심이 없어 군대갔나”>(2018/11/02 엄보운 기자)입니다. 군복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우리는 양심이 없어서 그랬나” “우리는 비양심적 죄인인가”라는 헌법상 ‘양심’의 개념을 오해한 댓글을 기사 제목과 내용을 통해 비판 없이 전했습니다. 이외에도 조선일보의 <양심적 병역거부 반대 여론 들끓자 靑 “양심적이란 말이라도 바꾸는 게…”>(2018/11/03 이슬비 기자)와 중앙일보 <대체복무 산 넘어 산…교정시설 vs 지뢰 제거, 기간 44개월>(2018/11/03 정용수 기자)에서는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다 비양심적이냐”는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반면, 경향신문 <팩트체크/‘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에 관한 3가지 오해>(2018/11/03 이혜리 기자)처럼 헌법상 ‘양심’의 개념을 설명하며 대중의 오해를 바로잡는 기사는 경향이 9건, 한겨레가 6건 중앙‧매경‧동아가 각각 1건씩 있었습니다.
‘박탈감’ 분석은 나 몰라라
문제는 이런 기사에서 정작 병역복무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에 대한 분석이나 증언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단순히 ‘양심’이라는 표현 때문이라면 오해에서 기인한 것이니 바로 잡으면 됩니다. 상대적 박탈감이 실존한다면, 언론은 좀더 심도 깊은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대체 복무 기간인지, 대체 복무 형태인지, 아니면 병영 문화인지요. 그러나 몇몇 언론은 오해도 바로 잡지 않은 채 분노만 부추깁니다. 원인 분석이나 해결책 제시는 더욱 요원하고요.
△일상적 ‘양심’과 헌법에서의 ‘양심’을 혼용한 조선일보와 매일경제 기사
2. 양심을 양심이라 부르지 않기
‘양심’ 가리는 ‘종교적 병역거부’
양심적 병역거부를 ‘종교적 병역거부’로 축소하는 것은 2000년 이후 80여 명에 이르는 비종교적 사상 및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포함하지 못하는 개념이며, 헌법상의 ‘양심’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은 단순히 특정 종교나 교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엔 인권위원회 등 국제사회는 ‘양심적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병역거부권이 종교적 동기뿐만 아니라 도덕·윤리·인도주의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결 역시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 거부’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병역거부 행위가 개인이 가진 양심의 보호와 실현이 아닌 특정한 종교적 신념과 가치에 따른 행위로 비춰질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언론이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제대로 사용했는지 살펴봤습니다. 언론은 용어 사용에서부터 차이를 보였습니다. 다음 네 가지 기준으로 기사를 분류했습니다. ①종교적 병역거부로 표기한 기사 ②종교적 병역거부와 양심적 병역거부 표현을 둘 다 사용한 기사 ③양심적 병역거부로 표기한 기사 ④병역거부로 표기한 기사입니다.
조선일보의 ‘종교적 병역거부’ 못 잃어
유난히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표현을 지양하고 ‘종교적 병역거부자’ 표현을 고수한 언론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일보입니다.
‘종교적 병역거부’를 단독으로 표기한 26건의 기사 중 22건이 조선일보 기사였습니다. 조선일보는 국방부 발표 이전부터 ‘종교적 병역거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 판결과 대부분의 다른 언론이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헤드라인은 물론 단순히 병역거부를 언급하는 내용에서까지 ‘종교적 병역거부자’ 표현을 반복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언급할 때도 발언을 인용해 따옴표에서만 다루거나,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표현하는 등 ‘양심적 병역거부’ 표현을 피했습니다.
반면, 다른 언론사는 단독으로 ‘종교적 병역거부’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동아‧한겨레‧매일경제‧한국경제가 각각 1건 경향과 중앙은 단 한번도 단독으로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난 1월 국방부가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한다며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로 용어를 통일해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국방부 취지를 설명하거나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종교적 병역거부’라는 용어 사용이 어느 정도 불가피했습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조선일보의 사용빈도는 지나치게 높습니다.
신문사 |
종합일간지 |
경제지 |
합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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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동아일보 |
조선일보 |
중앙일보 |
한겨레 |
매일경제 |
한국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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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병역거부’ |
0 |
1 |
22 |
0 |
1 |
1 |
1 |
26 |
‘종교적 병역거부’와 ‘양심적 병역거부’ |
6 |
4 |
13 |
3 |
70 |
31 |
3 |
130 |
‘양심적 병역거부’ |
72 |
27 |
16 |
38 |
8 |
7 |
23 |
191 |
‘병역거부’ |
1 |
0 |
0 |
3 |
9 |
1 |
1 |
15 |
합계 |
81 |
32 |
53 |
44 |
88 |
40 |
28 |
366 |
△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표현별 보도량(2018/06/29~2019/02/28) Ⓒ민주언론시민연합
종교 너머 보편적 양심의 자유를 봐야
양심적 병역거부를 종교적 병역거부라는 더 작은 개념으로 축소시켜서는 안 됩니다. 임재성 변호사는 저서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에서 ‘이단 낙인’이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가시화한 원인이라고 썼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종교적 병역거부자’라는 표현은 병역거부 행위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만의 별난 행위라는 인식을 퍼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안이 특정 종교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양심의 자유’가 달린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자 공동체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3. 대체복무제 도입 = 안보 사치?
조선일보 “전쟁 위협 속 소수자 관용 배부른 소리”
안보 사치론도 등장했습니다.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지휘부 마비, 최전방 국군은 ‘가족과 함께>(2018/07/26 양상훈 주필)은 양심적 병역 거부 처벌 위헌 판결을 언급하면서 “최악 폭력 집단의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가 안보 사치에 빠졌다”고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 <사설/우리 사회 안보 사치와 ‘설마’ 病 보여준 ‘병역 거부’ 판결>(2018/11/02)는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취지 파기 환송을 걸고 넘어집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소수자에 대한 관용인 병역거부 인정은 어불성설이라는 겁니다.
△ 병역거부 판결이 ‘안보 사치’라는 조선일보 사설(2018/11/02)
그러나 나라의 안보를 앞세워 시민의 본질적 자유를 침해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닌가요?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안 된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역사적으로 병역거부는 분단 상황 정도가 아니라 실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가운데서 인정돼 왔습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 병역거부를 인정했습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에게 대체복무를 시행했죠. 당시 병무청장이었던 허시 장군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민주주의에 대한 실험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소수자의 권리들을 보존하기에 충분한지 알아내기 위한” 척도라고 표현했습니다.(홍영일,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용의 증가」) 독일은 냉전구도가 강화되고 동서로 분단돼 있던 1961년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했습니다. (한홍구·최진,「국가폭력과 양심적 병역거부」,『녹색평론』2—4년 7-8월 통권 제 77호) 국가인권위원회도 말했듯, 양심의 자유는 “국가비상상태에서도 유보될 수 없는” “최상급의 기본권”입니다.
4. 지뢰 찾아라, 3년으로 해라…대체복무 징벌 여론 부추기기
알고 보니 대체복무 선진국
2017년 기준 2만 8000여명이 이미 대체복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전투경찰‧의무경찰‧의무소방‧공익근무‧사회복무‧전문연구요원‧산업기능요원‧공중보건의사‧공익법무관 등 다양한 대체복무·전환복무제도를 통해서 말이죠. 군복무의 형태도 역시 다양합니다. 그동안 언론은 전방에서 근무하는 병사와 카투사 사이 형평성을 논하지 않았고, 현역복무와 공중보건의사 간 형평성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현역과의 형평성’, ‘현역의 상대적 박탈감’을 고려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만이 더욱 힘들게, 더욱 오래 복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더 징벌적으로...여론 부추기는 언론
지난 12월 28일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제 정부안을 발표했습니다. ‘현역 육군 복무기간의 2배인 36개월, 교정시설에서 합숙 복무, 국방부에서 심사’가 그 골자입니다. 2007년 국방부가 스스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지 11년이 지나고 제안한 내용임에도 상당히 후진적입니다.
36개월로 대체복무 기간이 결정된다면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긴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게 됩니다. 국제사회는 대체복무 기간은 군 복무기간과 비슷해야 하고, 만약 그보다 더 길거나 어렵게 한다면 합리적이고 객관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미 한국 정부가 준비 중인 대체복무제에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하기도 했죠. 유엔 종교·신념의 자유 특별보고관과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내 대법원의 판결 취지와 국제 인권법에 맞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력 권고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총장도 비징벌적인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서한을 청와대 보냈고요. 그러나 정부안의 반인권적 성격을 지적하기는커녕 군복무자의 입을 빌려 대체복무를 더욱 징벌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하는 언론이 있었습니다.
△ 대체복무 징벌적 여론 부추기는 중앙일보 기사(2018/7/4)
중앙일보는 <현역 다녀온 취준생 “대체복무, 산골·섬으로 배치해야”>(2018/07/04 최선욱 기자)기사에서 공시생과 취준생의 입장이라며 대학교 게시판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의 반응을 전했습니다. “주소지 근처에서 복무를 금지해야 한다” “출퇴근하면 공시 준비에 유리해질 수 있다”는 주장들입니다. 한국경제 역시 <“군필은 비양심적이냐”…“公試준비 힘든 곳으로”>(2018/07/07 임락근 기자)에서 “대체복무자들이 남는 시간에 공무원시험이나 고시 공부를 할 수 없도록 산간도서 지역에 보내야 한다”는 말을 실었습니다. 비판 없이 반응만 전하는 따움표저널리즘의 문제가 양심적병역거부 보도에서도 드러납니다.
병영 문화·군복무 조건 개선해야
물론, 양심적병역거부자와 현역과의 형평성은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론은 달랐습니다. 지난 10월 입대예정자 52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체복무제 도입방안 실태조사>(2018/11/6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에 따르면, 합숙복무일 경우 81.6%가 1.5배 이내의 복무기간이면 적절한 기간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국방부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5배인 27개월(34.6%)이 2배인 36개월보다(24.3%) 더 많이 지지받았습니다.
형평성의 문제는 대체복무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병영문화와 군복무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2018년 사병 월급은 이병 기준 30만 6,100원, 병장 기준 40만 6,000원에 불과합니다. 군 복무 중 사망자 수는 2013년 이후 매년 줄고 있지만 2017년에만해도 75명에 달합니다. 군대 내 가혹행위와 폭력 사건 역시 끊이지 않습니다. 병영문화가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참 갈 길이 멉니다.
입영대상자들 역시 복무조건을 중요하게 고려합니다. 앞서 언급한 인권위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체복무기간이 군복무기간에 비해 더 길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절반 가까운 43.5%는 그 이유로 “군복무에 비해 자유로운 생활, 평등한 관계 등 기본권 제약이 덜할 것이므로”를 선택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군복무에 비해 업무의 강도가 낮을 것으로 예상되므로”가 28.2%를 차지했습니다. 많은 응답자들이 기본권 보장, 업무강도, 합숙여부 등을 대체복무조건으로 고려한 것입니다.
병역거부 운동이 오히려 군 복무 환경 개선해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는 병역거부운동이 2002년 사병 월급 개선을 이슈화시켰고, 2005년부터는 병역거부활동가를 주축으로 군 인권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병역거부자들이 군 복무 처우 개선, 실질적인 보상, 복무기간 단축 문제 등을 국가에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맥락을 생략한 언론의 보도는 ‘형평성’ 프레임으로 병역복무자와 병역거부자 사이 대결 구도를 만들고 징벌 여론을 확산시켰습니다. 내가 고생하(했으)니 너도 고생하라는 논리는 이제 물러나야 합니다. 그 논리가 여지껏 우리 모두 ‘공평하게 불행을 공유’하는 데 머무르게 때문입니다.
5. 당사자 목소리 삭제하기
병역거부자 목소리는 어디에
헌법재판소 판결 다음날인 작년 6월 29일, 언론은 대대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특히 사진 기사만 봐도 각 언론의 입장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헌법재판소 판결 다음날 사진기사 비교 (2018/6/29)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선일보는 4면에서 “특정 종교 병역 혜택을 반대한다”는 팻말을 들고 있는 시민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한겨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인권단체 회원들이 서로 포옹하는 사진을 1면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처벌받았던 백종건씨가 다른 병역거부자들과 격려의 악수를 나누고 있는 사진을 3면에 실었습니다. 경향신문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악수하는 사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체복무제 마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사진을 각각 4,5면에 실었습니다. 중앙일보와 매일경제는 대체복무제 법안을 촉구하는 단체와 병역거부자 처벌 합헌을 주장하는 단체의 사진을 모두 다뤘습니다. 동아일보와 한국경제는 사진이 없었습니다.
병역 거부 문젠데…월남전 참전 용사만 있고 병역거부자는 없다
7개 일간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다룬 인터뷰와 외부필진 칼럼 중 양심적 병역거부 당사자가 몇 번 등장하는지 분석해봤습니다. 당사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밝힌 본인과 가족으로 한정했습니다.
그 결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한국경제는 병역거부자 당사자의 목소리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반면, 한겨레는 18건의 인터뷰/외부 칼럼 중 6건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다루면서, 왜 병역거부자 당사자에게는 한번도 왜 병역거부를 하냐고 묻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조선일보는 <독자의 글/독자센터에 병역 기피·악보 약화 우려 담은 기고 쏟아져>(2018/11/9)에서 월남전 참전 용사, 대한민국 병역명문가회 중아회장 등의 반대 여론만 다루었습니다. 경향신문·중앙일보·한겨레·매일경제가 백종건 전 변호사, 임태훈 군인권센터소장, 임재성 변호사,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등 당사자를 인터뷰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한겨레는 특히 병역거부 당사자이자 가족인 정재영씨의 기고를 두 번이나 다뤘습니다.
“왜 병역거부를 합니까?” 묻지 않는 언론
이날 조선일보 사진기사처럼, 많은 언론은 병역거부자에 대한 분노만 전하고 병역거부 당사자의 목소리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병역거부 당사자의 존재를 지운 것입니다. 병역거부자를 다룬 언론들도 병역거부를 하면 몇 년 형을 받는지, 전과자로서 어떤 불이익을 받는지를 주로 조명했습니다. 이런 접근 속에서 병역 거부자는 혐오·규탄의 대상 혹은 경외·동정의 대상이 됐습니다. 공감이나 공명의 대상이 되긴 어려웠죠.
병역거부와 관련해 지난 20년 동안 소모적인 찬반 대립만 이어진 것은, 한국 사회가 당사자에게 “왜 병역거부를 합니까”라고 묻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병역거부자들이 무말하는 ‘종교적’ ‘정치적’ ‘반전평화’의 신념을 직접 다뤄야 ‘양심의 자유’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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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인터뷰/외부 필진 칼럼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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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인터뷰 및 기고/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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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비양심 관련 보도량(2018/06/29~2019/02/28) Ⓒ민주언론시민연합
△ 병역거부 반대 여론만 싣는 조선일보 (2018/11/9)
그럼에도, 군사주의에 도전한다
한국에서 군대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습니다. 병역의 의무는 신성했고, 평화의 우선적 단위는 국가였습니다. 가해자-피해자 구도에서 가해자만이 평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힘의 논리가 상식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설/종교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는 ‘현역’이 상실감 안 느끼게 해야>(2018/06/29)에서 “국가 안보는 국민이 모든 자유를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전제 조건이다. 안보 없이는 양심의 자유도 평화도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정말 자유보다 안보가 먼저라고 믿으시나요? 군사주의가 집어삼킨 사회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비애국적이고, 반국가적인 행위가 되었습니다.
그 아래서 너무 많은 이들이, 아니 우리 사회 전체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한국 징병제는 그 자체로 징벌적입니다. 군대 문제는 언제나 불행을 경쟁하는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군복무자 사이에서는 더 힘든 곳에서 근무한 것이 훈장이 됩니다. 왜 너는 나만큼 불행하지 않느냐는 상대적 박탈감 속에 여성, 병역면제자, 병역거부자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요. 그 사이 꼭 군대를 가야 하는가, 한국은 한국전쟁 때의 세 배가 되는 병력을 꼭 유지해야 하는가는 이야기되지 않았습니다.
‘국민개병제’는 원칙이 아닌 제도일 뿐입니다. 언론은 자기 복제와 해묵은 논쟁을 마치고 군대 문제의 개선을 위한, 양심의 자유의 내면화와 확산을 위한 새로운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보장은 그 시작에 불과합니다. 황현산 칼럼 <삶의 창/군대 문제(2009/09/11 황현산 문학 평론가)를 인용하며 보고서를 마칩니다.
“우리에게서 군대 문제는 많은 모순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기는 쉽지 않다. 우선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 이데올로기도 있지만, ‘누구나 다 겪는 고통’이라는 생각도 군대 문제를 의제로 내걸 수 있는 길을 막는다. 방위산업체 근무자나 이공계 대학원생들, 특별히 국위를 선양한 젊은 인재들에게 군 입대를 면제해 주는 정책도 사실상 의제화의 길을 막는다. (중략)
최근에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세계관에 반해서 군대에 입대하기보다는 차라리 감옥행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내가 그들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는 그들의 용기와 희생이 자주 원한 폭발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가짜 의제를 마침내 진짜 의제로 바꿔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6월 28~2019년 2월 28일 종합일간지(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경제신문(매일경제,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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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위원회 오경민 회원
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