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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인권보고서, 입맛에 드는 정보만 부각하고 슬쩍 과장하는 보수언론2019년 3월 13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에서는 2018년 국가별 인권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각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보도(report)를 인용하거나 인권 이슈들을 소개하는 등 각국 인권 상황을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매년 국가보안법, 명예훼손 형사처벌로 인한 표현의 자유 침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여성과 인종,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등이 ‘단골 메뉴’입니다. 몇 년 전에는 여기에 이석기 체포와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이 인권 침해 사례로 포함되었죠.
그런데 올해는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 보고서에 짧게 문재인 정권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탈북자들의 북한 비판을 막았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이를 대서특필하였고, 극우 유튜브와 언론들을 통해 ‘미국이 문재인 정부의 북한 비호를 인권침해로 지적했다’는 식의 프레임이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탈북단체 인터뷰까지 따며 비판 열 올린 조선일보
주요 일간지 5곳과 경제지 2곳에서는 모두 국무부의 인권보고서 이슈를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방점을 찍은 곳은 딴판이었습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각각 1면에 <미 “문정부, 탈북단체에 북 비판 말라 압박”>(3/15, 황인찬 기자), <미 인권보고서 “문정부가 탈북단체의 북 비판 막아”>(3/15, 조의준․윤형준 기자)를 내고 “한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서면서 탈북자 단체들은 정부로부터 북한에 대한 비난을 줄이라는 압력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다”, “20년간 계속된 탈북자 협회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대북 전단을 날려 보내는 단체들의 노력을 막고, 경찰이 단체들을 찾아가 금융 및 행정 관련 정보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등의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보도의 요지는 미국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를 공개 비판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것입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탈북자 단체들과 익명 취재원들을 인용하면서 “북한 인권 비판 활동 자체를 막는 것은 ‘김정은 정권의 인권 탄압을 문재인 정부가 지원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조선일보), “익명을 요구한 탈북지원단체 관계자는(중략) 관련 단체가 위축된 사실을 전했다”(동아일보)면서 비판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조선일보는 <사설/‘한 정부가 탈북 단체 억압한다’고 미 비판 받는 세상>(3/15)에서 “우파 집회 TV화면에 잠시 비쳤다가 정권지지 세력에게 ‘좌표 찍기’를 당해 운영하던 냉면집을 닫아야 했다”며 “이런 기막힌 일이 있나”고 한탄했습니다. 이 인물은 일베가 주도한 ‘세월호 폭식 투쟁’에 자금을 지원했고, 전라도 비하 등의 지속적인 반사회적 행각으로 논란이 되었던 사람임에도 이런 사정은 일언반구도 없었지요.
한국경제도 <“한국정부, 탈북단체의 북 비판 막으려 압력”>(3/15, 김채연 기자)에서 “국제 인권단체는 그간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한 인권 개선 논의를 촉구했지만 정부는 침묵해왔다. 남북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북한 비핵화 조치를 견인한다는 명목으로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를 후순위로 미뤘기 때문이다”고 평했습니다. 중앙일보 역시 <“한국정부, 탈북자에 대북비판 말라 압력”>(3/15, 이유정 기자)에서 같은 내용을 언급했지만 따로 코멘트 없이 관련 내용만 건조하게 언급했습니다.
매일경제 <미, 북 인권문제에 전략적 수위조절>(3/15, 신헌철, 김제관 기자)는 “(북한에 대해)지난해보다 낮은 수위의 표현을 쓰면서 미‧북 간 대화 국면을 이어가려는 전략적 의지를 나타냈다”고 평가하는 한편, “한국 정부가 탈북자 단체의 북한 비판 목소리를 통제하는 것에 대한 각종 사례를 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하여 동아‧조선‧중앙 3개 일간지와 같은 논조를 보였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미국이 북한 인권문제에 수위조절을 했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경향신문은 <북한엔 “지독한 인권침해”표현 삭제, 중국엔 “독보적 인권침해국” 직격탄>(3/15, 박영환 기자)에서 북한, 중국, 일본에 대한 보고서 내용을 소개했지만 한국 관련 내용은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한겨레는 <폼페이오․비건, 잇단 유엔 접촉…‘대북제재 공조 유지’ 촉구>(3/15, 황준범 기자)에서 미국의 대북 동향을 소개하며, 미국이 대북 압박 수위 조절 차원에서 북한 인권보고서의 표현을 완화했다고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보수언론 보도와 탈북자단체의 주장이 미국만 한번 다녀오면 엄중한 경고가 되는 코미디
이처럼 거의 모든 언론이 국무부 인권보고서를 인용 보도했는데요. 그런데 보수언론이 “이런 기막힌 일”이라고 한탄하면서까지 호들갑을 떨 내용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일보에서 3월 15일 보도한 여러 기사 속에 언급된 국무부 인권보고서 관련 내용과 실제 원문을 비교해봤습니다. 그 결과 조선일보 인용보도의 표현은 약간씩 과장되어 있고 이로 인해 맥락이 달라졌습니다.
국무부 인권보고서에서 인용된 대목의 원문을 보면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there were reports’, ‘defector organizations reported’, ‘defector organizations cited in the media attributed’ 등의 대목입니다. 해석하면 ‘(어떠한 내용의)보도가 있었다’, ‘(어떠한 내용을)탈북자 단체들이 말했다’, ‘언론에 인용된 탈북자 단체들은 (어떠한 것이라)보았다’ 정도의 말이 됩니다.
조선일보 보도 내용 |
미 국무부 보고서(원문) 내용 |
한국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탈북민들에게 북 비판을 삼가라는 요청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탈북민들이 정부 대북 정책에 비판적으로 보일 수 있는 대중 연설에 참가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
올해 정부 관계자가 탈북자들과 접촉하여 동계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달라는 보도들이 있었다. 또한, 보도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문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으로 보일 수 있는 대중 연설에 참여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다. (원문 During the year there were reports that government authorities contacted North Korean refugees and asked that they withhold their criticism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 in advance of the Winter Olympics. In other instances North Korean refugees were reportedly contacted and asked not to participate in public-speaking engagements that might be perceived as critical of the Moon administration’s engagement with North Korea.) |
한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서면서 탈북민 단체들은 정부로부터 북에 대한 비난을 줄이라는 직간접적인 압력을 받고 있다. 그 사례로 탈북민 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끊고, 재정‧운영 정보를 내놓으라 하고, 대북 전단 보내기를 차단한 사실 등을 적시했다. |
한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 국면에 들어서면서, 탈북자 단체들은 정부로부터 북한에 대한 비판을 줄이라는 직‧간접적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장에 따르면 이런 압력들의 예시로는, 2017년 12월에 20년간 이어진 탈북자 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끊고, 경찰들이 대북 전단 풍선을 막은 것, 경찰들이 탈북자 단체를 방문하여 재정과 운영 정보를 요구한 것이 있다. (원문 As the government engaged in talks with the DPRK, defector organizations reported coming under direct and indirect pressure from the government to reduce their criticism of North Korea. This pressure allegedly included, for example, the termination of 20 years’ funding support for the Association of North Korean defectors in December 2017, police blocking groups’ efforts to send leaflets into North Korea by balloon, and police visits to organizations and requests for information on financial and other administrative matters.) |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느리게 진행했고,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자리가 1년 넘게 공석 중이라고 지적했다. |
(한국)정부는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느리게 진행했다. 언론에 인용된 탈북자 단체들은 이는 정부가 북한에 대한 비판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 보았다. 관측통들은 또한 북한 인권대사 자리가 1년 넘게 공석이라고 지적했다. (원문 The government was slow to establish the North Korean Human Rights Foundation, mandated by legislation in 2016; defector organizations cited in the media attributed the delay to government reluctance to criticize the DPRK. Observers also noted that the position of ambassador-at-large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had been vacant for more than a year.) |
즉, 국무부 인권보고서에서 ‘미국이 문 정부가 탈북단체들을 억압했다고 엄중히 지적’했다는 대목들은 모두 국내언론이나 탈북자 단체들의 주장→국무부 보고서가 인용→그 언론들이 다시 국무부 보고서를 인용하는 과정을 거쳐 나온 대목입니다. 미 국무부가 국내언론과 탈북자 단체들의 주장을 인용 언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국내에서 만든 정보가 미국의 입을 통해서 다시 나오면, 그때부터 우리 언론이 대단히 권위 있는 엄중한 정보라도 되는 양 포장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와중에 오보로 확인된 것도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평창올림픽 당시 <정부, 태영호, 올림픽기간 공개활동 자제해달라>(2018/1/24, 김명성, 전현석 기자)에서 “정부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 등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탈북 인사들에게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공개 활동 자제를 권고한 것으로 23일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보도 이후 바로 당일, 태영호 전 공사가 당시 자문역을 맡고 있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는 태영호 전 공사에게 직접 그런 사실이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낸 바 있습니다.
물론 미 국무부가 국내의 많은 보도자료 중 어떤 특정한 보도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탈북자 단체의 주장을 보고서에서 언급한 미 국무부 측의 의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론이라면 최소한 국무부 인권보고서에서 인용된 내용이 검증된 것인지, 처음에 누구 입에서 나온 말이었는지는 알렸어야 합니다.
인권보고서 남은 30페이지 내용은 ‘깜깜’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의 남한 파트는 전체 31페이지입니다. 보수언론이 인용 보도한 관련 내용은 모두 합쳐도 1페이지가 채 안됩니다. 그렇다면 남은 30페이지에는 무슨 내용이 실려 있을까요? 그 결과 보수신문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결과만을 강조했을 뿐, 정작 우리가 귀기울여 들어야 할 부분은 보여주지도 않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국가보안법을 인권침해 사례로 지적하는 대목이 다수 보입니다. 특히 ‘표현의 자유’ 항목의 ‘국가 보안’ 문단에는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돕거나 반체제적인 활동을 범죄화한다. 정부는 이 법을 사용하여 시민들을 체포, 구금했고, 외국인을 추방했으며, 정당을 해산시켰다.”고 적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국면에 들어가면서, 북한에 긍정적인 미디어 노출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12월 KBS ‘오늘밤 김제동’에서 친 김정은 단체를 이끌며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유능한 지도자’라고 평가한 김수근 씨를 보수 야당 구성원들이 공격했지만, 연말까지 아무도 구속되거나 조사받지 않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오늘밤 김제동’의 김수근 씨 출연분에 대해 맥락을 무시하고 비판에 앞장섰던 보수언론으로써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또한, ‘노동자 권리’ 항목에서는 노동자 파업권에 대해 “너무 협소한 노동쟁의의 법적 정의 때문에, 구조조정이나 대량해고 같이 경영권 아래 있는 많은 사안들에 대한 파업이 불법으로 규정된다. 주로 노동조건이나 임금, 복리후생, 노동시간 등을 다루지 않는 파업은 불법이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역시 문재인 정부에 ‘친노동’ 프레임을 씌우며 거의 대부분의 파업에 불법 딱지를 붙이고 강경대응을 주문하던 보수언론들에게 불편한 대목입니다.
그밖에도 국무부 인권보고서에서는 여성 인권 문제를 다룬 부분이 두 페이지 반, 난민 불인정 문제가 1페이지, 노동 문제를 다룬 부분이 7페이지 반이나 되는데, 이런 내용들을 짧게라도 소개한 언론은 “한편 보고서는 ‘차별, 사회적 학대, 인신매매’ 항목 중 ‘여성’ 부문에서 미투 운동의 전개 과정에 대한 기술과 함께 비서 성폭행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사건을 언급했다. ‘부패’ 부문에서는 뇌물수수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 결과를 실었다.”고 ‘여성’, ‘부패’ 관련 항목만 언급한 동아일보뿐이었습니다.
국무부 인권보고서에서 특정한 대목만 취사선택하여 정부 비판의 재료로 이용한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물론, 아예 한국 관련 내용을 보도하지 않은 경향신문과 한겨레 모두 사실보도보다는 신문의 정파성에 치중한 보도를 내놓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특히, 명백히 미국 국무부 인권보고서와 정반대의 보도를 내놓고 있는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과연 본인들이 인권으로 누굴 비판할 처지인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3월 15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경제 보도(신문에 게재된 보도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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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 정리 공시형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