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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와 정준영을 키운 한국 예능, 무엇을 권장해 왔나
등록 2019.03.1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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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승리가 사내이사로 있던 클럽 버닝썬의 폭행‧마약‧탈세‧성범죄 의혹에 이어 가수 정준영의 불법 동영상 촬영과 유포 사실까지 드러나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방송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들은 최근까지 각 방송사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에 두루 출연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방송사들의 예능프로그램도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예능이 승리의 사업을 키워준 셈?

승리가 출연했던 방송부터 보겠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뭔가 홍보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언론사들은 누군가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 방송의 영향력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방송 내용에 허위과장이 있지 않은지 종합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출연자들에 대한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승리는 2016년 12월 21일(506회)과 28일(507회), MBC의 간판 예능 중 하나인 <라디오스타>에 빅뱅 전 멤버들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그러던 중 승리가 크리스마스 파티를 직접 주최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은 당시 파티 상황을 설명하며 “DJ 부스를 중심으로 양 옆에 계단이 있는데, 12시를 알리는 효과음과 함께 양 옆 계단에서 산타복장을 한 여자 분들이 쇼를 하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승리는 ‘개츠비’에 빙의해서 여자 분들이 연출을 해주시면 한 계단 씩 내려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파티 증거 사진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같이 출연한 남성 진행자들‧빅뱅 멤버들은 사진을 돌려보며 ‘대박이다’, ‘승리가 진정한 셀럽(celebrity‧유명인)이다’, ‘장관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승리는 ‘승츠비’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해당 사진엔 노출 있는 산타 복장을 입은 여성들이 병풍처럼 서있었습니다. 제작진은 해당 사진을 방송에 그대로 보여주며 ‘한국으로 출장 온 세계 각국의 산타’라는 자막을 달았습니다. 방송 말미에 진행자들은 승리에게 “이미지가 바뀌었다. 승리는 통 크고 남자답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2018년 3월 9일(235회)과 16일(236회), 승리는 MBC의 관찰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습니다. 생활 예능‧버라이어티 예능이 예능가의 대세인 지금, 그들이 예능에서 ‘실제 생활’이라며 보여준 모습은 승리에 대한 친근함과 호감도를 높여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들 방송 제작 중에는 사업 홍보임을 의심하거나 되돌아 볼만한 부분이 충분히 있었지만, 제작진과 방송사는 오히려 그들의 이미지 메이킹을 도운 셈입니다.

 

승리는 성공한 아이돌 출신 사업가 이미지를 쌓았습니다. <나 혼자 산다>에선 미국‧중국‧일본 직원들과 사업 구상을 논의하고 강남대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승리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라멘 사업의 가맹점주들과 세미나를 여는 모습, 최근 문제가 불거진 클럽 버닝썬에 찾아가 음향과 조명 장비들을 점검하는 모습 등이 전파를 탔습니다. ‘위대한 승츠비’, ‘영 앤 리치(young and rich) CEO’라는 자막이 계속 붙었습니다. 다른 출연자들은 ‘정말 긍정적이다’, ‘에너지 넘치는 모습 보기 좋다’ 등의 평가를 이어갔고 승리 또한 ‘예전엔 빅뱅의 사고뭉치 멤버였으나 지금은 책임감을 갖고 살다보니 사고 칠 시간이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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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클럽 버닝썬 운영 모습이 담긴 <나 혼자 산다>(2018/3/16)

 

승리는 같은 해 5월 27일(89회), 6월 3일(90회)엔 SBS의 <미운 우리 새끼>에도 출연했습니다. 방송은 ‘승츠비’, ‘진짜 셀럽의 삶’, ‘진짜 연예인’이라며 승리를 띄워줬습니다. 이날 프로그램엔 발리에서 휴가를 보내는 승리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초호화 숙소에 묵거나, 풀 파티(pool party)‧승마 등을 즐기는 승리의 모습을 보며 다른 출연자들은 ‘멋지게 산다’,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결과론이긴 하나 방송이 승리의 재력, 초호화 휴가 등을 동경의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일탈행위가 미화될 뻔 했습니다. 게다가 일부 프로그램에선 승리의 클럽은 물론 각종 사업이 줄줄이 소개되면서 되레 범죄의 온상이었던 사업장을 홍보해준 게 아니냐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습니다.

 

재미‧화제성이 덮어버린 민감한 소재들

최근 화제가 된 정준영의 ‘황금폰’ 에피소드는 2016년 1월 27일(463회) MBC <라디오스타>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정준영과 가수 지코가 함께 출연했고, 친한 관계라 알 수 있는 사생활들을 폭로하며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지코는 정준영이 “영화 시사회 같은 데 가서 여배우가 나오면 ‘내 거다’라고 말한다”, “마주치면 다 이상형(이라고 한다)” 등의 폭로를 이어갔습니다. 진행자들이 정준영을 쳐다보는 장면엔 ‘그저 부러운 아재들’이란 자막이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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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대상화하는 농담을 주고받는 예능 프로그램(2016/1/27)

 

이때 지코는 “정준영에겐 ‘황금폰’이라고 있다. 정식으로 쓰는 휴대전화가 아니고 카카오톡만 쓰는데, 거기엔 포켓몬 도감처럼 많은 분들이 있다”라며 폭로를 이어갔습니다. 이에 질세라 정준영도 “지코는 우리 집에 오면 ‘형 황금폰 어딨어요?’하고 묻는다”며 “형 오늘은 ‘ㄱ’ 가볼게요(목록을 살펴본다는 의미)”라고 한다며 휴대전화를 넘기는 시늉을 했습니다. 남성 진행자들과 출연자들은 웃거나 ‘와’하는 감탄사를 내뱉었고 제작진은 재밌는 자막을 입혔습니다. 마치 혈기왕성한 젊은 남성들의 짓궂은 장난처럼 보이게 만든 것입니다.

 

파티에서 여성들을 줄 세워 자신의 배경으로 썼다는 에피소드,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내 거’라고 하거나 여성의 연락처를 모아놓은 목록을 ‘포켓몬 도감’이라며 돌려본다는 에피소드는 여성에 대해 그들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여성을 전리품처럼 대한 게 아니냐, 여성을 대상화‧객체화하는 게 아니냐고 충분히 지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작진은 이를 편집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막이나 효과를 달아 방송에 냈습니다. 재미나 화제성에 대한 욕심으로 민감한 소재를 농담거리로 소비하고만 것입니다.

 

문제 일으킨 연예인 재기용에도 고민 필요

정준영은 2016년 9월에도 불법 동영상 촬영 혐의로 고소당한 바가 있습니다. 이에 약 3년 간 고정 출연하던 KBS2 <해피선데이-1박2일>(이하 1박2일)에서 ‘출연 잠정 중단’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1박2일> 측은 “검찰의 조사 발표 이후 정확한 거취를 다시 한 번 결정할 예정”이란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후 정준영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3개월의 자숙 기간이 지나 2017년 1월 15일(479회), 정준영은 <1박2일>에 복귀했습니다.

 

복귀할 당시 제작진은 별다른 사과나 해명 없이 그를 다시 복귀 시켰습니다. 게다가 무혐의가 난 2016년 10월부터 방송에 복귀한 2017년 1월 사이, <1박2일> 멤버들이 정준영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모습이 계속 연출됐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그 동생’이라는 별명으로 그를 부르며 그가 빠진 상황을 웃기게 표현했고 몇몇 화에서는 카카오톡 채팅방이나 영상편지로 방송에 등장했습니다.

 

캐릭터 쇼가 필요한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상 출연자 한 명이 빠지는 일은 큰일이었을지 모릅니다. 또한 정준영이 갖고 있는 시청률에 대한 지분과 화제성 등이 제작진으로서는 아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작진과 방송사가 재미, 화제성, 시청률에만 목매다 출연자의 도덕적 해이를 검증하지 않았고, 이것이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도덕적‧법적 문제를 일으킨 연예인의 프로그램 하차와 복귀는 이전부터 논란이 돼 왔습니다. 이번 사안을 계기로 방송사들이 출연자 재기용 기준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재미 욕심에 잃는 것 없는지 고민해봐야

지난해 8월 18일(37회)에 방송된 tvN의 예능 프로그램 <짠내투어>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승리가 여자 연예인에게 맥주병을 주며 ‘남자 다섯 명 중 호감 가는 상대에게 술을 따르라’고 말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방통심의위는 해당 장면이 성희롱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고, 제작진의 성평등 감수성 부재가 드러났다며 ‘경고’와 ‘해당 방송 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습니다. 당시 <짠내투어>의 책임PD인 김종훈 CP는 심의 결과에 대해 “예능 PD들이 재미에 대한 욕심 때문에 사회의 트렌드나 양성평등의 가치를 깜빡 잊을 때가 있다”며 “이번 기회에 크게 반성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목적이 재미와 웃음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어떤 소재든지 재미로 포장되기 쉽고 다른 장르의 프로그램에 비해 파급력이 큰 만큼 그들이 다루는 소재와 출연자의 언행이 도덕적 기준과 사회의 상식에 부합하는지 살펴봐야할 것입니다. 이번 사안이 방송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6년 1월부터 방송한 <라디오스타>, <나 혼자 산다>, <해피선데이-1박2일> 등 지상파‧케이블의 다수 예능 프로그램

 

<끝>

문의 임동준 활동가 (02-392-0181) 정리 조선희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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