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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칼럼을 믿지 마세요"
등록 2019.02.12 15:43
조회 1556

2019년 2월 11일 자 중앙일보는 <서소문 포럼/“한국의 정책을 믿지 마세요”>(2/11,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논설위원)에서 한국의 정책 불안정성이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사는 고용노동전문기자인 중앙일보 김기찬 논설위원의 기명칼럼입니다. 제목도 <“한국의 정책을 믿지 마세요”>라고 강한 비판을 담은 이 기사의 소제목은 <세계경제포럼, “오락가락 한국 정책의 불안정성” 경고>, <잘못된 경제 레시피에 곪는 시장…정책 전환 서둘러야>입니다. 칼럼은 먼저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과 벤처기업인의 만남에서 일부 참석자들이 정책 불확실성을 지적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느닷없이 한반도 평화론”을 꺼냈다고 시작합니다. 이어진 칼럼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은 국가별 경쟁력을 항목별로 평가했다. 이 가운데 ‘사업을 하는 데 가장 문제 되는 요소’를 평가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정책 리스크가 얼마나 심각한지 부끄러울 정도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의 정책을 믿지 마세요.”

16개 요소 가운데 한국은 유독 정책 불안정(policy instability)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20점 만점(점수가 높을수록 안 좋음)에 무려 15.5점이었다. 독일은 4.8점, 일본 6.2점, 미국 5.3점에 불과했다. (중략) 이게 다가 아니다. WEF는 비효율적인 정부의 관료주의에도 12.1점, 비효율적 혁신 능력에 9.8점을 줬다. ‘한국 정부는 관료적이다. 효율성을 기대하지 말라. 혁신 능력도 만족스럽지 못하니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이쯤 되면 한국 정부의 정책은 물론 공무원까지 총체적으로 엉망이라는 평가를 내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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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난해’ WEF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인용한 김기찬 논설위원의 칼럼(2/11)

 

자료 ‘업데이트’ 안 된 중앙일보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이하 ‘WEF’)은 매년 전 세계 국가의 경쟁력을 평가해 국가경쟁력보고서(The Global Competitiveness Report)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김 논설위원은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은 국가별 경쟁력을 항목별로 평가”했다면서 이런저런 수치를 이야기했는데요. 그러나 지난해 10월 16일 발표된 국가 경쟁력 순위 보고서에서는 보도에 나오는 수치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WEF 측이 평가 방법에 설문조사를 줄이면서, 이 항목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사업을 하는 데 가장 문제 되는 요소’은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산출해왔는데, 이 항목이 삭제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기찬 논설위원이 언급한 수치는 무엇일까요? 바로 재작년인 2017년 9월 26일 발표된 보고서에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김기찬 논설위원은 2018년 발표된 보고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김 위원은 이미 자신의 같은 칼럼에서 ‘지난해’(2018년) WEF 보고서를 인용한 바 있습니다.

<서소문칼럼/유연성 잃어 튀지 않는 공으론 일자리 게임 못 이겨>(2018/10/22,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논설위원)에서 “얼마 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노사 간 협력은 평가 대상 140개국 중 124위였고, 임금 결정의 유연성은 63위, 해고비용은 114위로 최하위권에 랭크됐다”고 기술했었는데요. 이 내용은 2018년 보고서의 수치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김기찬 논설위원은 2018년이 아닌 2017년 보고서에 있는 ‘정책 불안정성’ 항목을 부각한 것일까요?

 

엉망진창 팩트

백보 양보해서 생각해보면, 김기찬 논설위원은 2017년 WEF 보고서가 그렇게 나왔으니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칼럼의 표현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기자는 “16개 요소 가운데 한국은 유독 정책 불안정(policy instability)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20점 만점(점수가 높을수록 안 좋음)에 무려 15.5점이었다. 독일은 4.8점, 일본 6.2점, 미국 5.3점에 불과했다. 전 세계 기업가와 경제·경영학자에게 제공돼 참고자료로 쓰인다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으로선 치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적한 ‘사업을 하는 데 가장 문제 되는 요소’라는 지표는 만점이 20점이 아닙니다. WEF에서 공개하고 있는 계산법에는 만점에 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 지표는 정량평가가 아닌 설문조사가 기준이고, WEF가 제시한 여러 항목 중 설문자가 가장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항목을 평가하여 점수화 한 것입니다. 일례로 2017년 WEF 보고서에 실린 대만의 정책 불안정 점수는 20.2점입니다. 만점이 20점이라면 나올 수 없는 점수라는 것입니다.

김기찬 논설위원은 독일 4.8점, 일본 6.2점, 미국 5.3점인데 한국이 15.5점이라며 개탄했지만, 이 보고서에서 국가 경쟁력 1위로 평가된 스위스는 ‘비효율적 정부의 관료주의’라는 항목에서 19.0, ‘비효율적 혁신능력’에 9.9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 스위스도 “1위를 자랑하는 스위스에게는 치욕”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요?

심지어 중앙일보는 박근혜 정권기인 2015년 WEF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금융시장 성숙도가 우간다보다 낮다는 결과가 나오자, 중앙비즈 지면을 통해 <우간다보다 못한 87위라던 금융 순위, 넉 달 만에 6?>(2016/3/18, 하남현 기자)라는 기사를 내고 WEF보고서는 설문 위주라서 정확하지 않다며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 보도에서는 “매년 9~10월 WEF가 내놓는 국가경쟁력 평가는 기업인에 대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작성된다. 이 평가의 한 부문인 금융시장 성숙도 조사에는 각국 기업인이 체감하는 금융 만족도가 반영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심지어 2017년 정책불안정성은 2011~2016년에 비교하면 낮아진 것

년도별 경향을 따져 봐도 김기찬 논설위원의 주장에 힘이 실리기는 어렵습니다. 2009년부터 항목이 폐지된 2018년까지 김기찬 씨가 든 세 항목에서 한국이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2017년에 비효율적 혁신능력을 제외한 나머지 두 항목에서 한국이 받은 점수는 낮은 축에 속했습니다.

 

년도(발표일기준)

정책불안정

비효율적 관료제

비효율적 혁신능력

2009

16.7

16.9

-

2010

15.2

15.3

-

2011

16.7

16.8

-

2012

18.3

13.4

10.3

2013

15.2

16.1

5.3

2014

18.0

15.5

7.8

2015

17.3

16.4

9.5

2016

19.2

15.7

9.8

2017

15.5

12.1

9.8

2018

항목 폐지

△ 2009~2018년까지 ‘사업을 하는 데 가장 문제되는 요소’ 세부지표 변화 추이.(WEF 홈페이지)

 

김기찬 논설위원은 정권에 따라 정책이 심하게 변한다는 말을 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책 불안정성이 가장 높았던 해는 2016년(19.2)이었습니다. 2017년에는 15.5로 감소하였죠. 그럼에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갑자기 정책 안정성이 심각해진 것처럼 표현한 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죠. WEF보고서에 명시된 설문조사 기간이 당해 2월에서 6월까지인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촛불 시위와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으로 정책 불안정성과 비효율적 관료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감소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아전인수 식 통계 활용한 보도행태 아쉬워

김기찬 논설위원의 WEF 보고서 인용 칼럼은 큰 문제가 없는 작은 실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칼럼의 결론은 험악할 정도입니다.

 

질 좋은 노동력 같은 훌륭한 재료가 있으면 뭐하나. 나오는 레시피마다 이념형 실험용이니 맛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접어야 할 판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같은 레시피로 조리한 걸 먹고 곳곳에서 탈이 난다. 그런데도 건강·맛과는 상관없는 고무줄처럼 질긴 요리법만 나온다. ‘바꿔 달라’는 항변엔 ‘그게 옳다’는 강변만 돌아온다. 수 만부의 레시피 홍보물을 ‘경제 팩트 체크’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배포하는 두둑한 베짱을 과시한다. 그 사이 음식을 먹은 고용시장의 내부 장기가 곪아가고 있다.

 

이 칼럼의 요지는 “기업인들이 ‘정책 불안정성’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다른 소리를 해서 답답하다. 한국의 ‘정책 불안정성’은 이미 세계경제포럼에서도 높다고 평가한 바 있는데 대통령이 그걸 모르쇠로 일관하니 답답하다. 그 사이 고용시장의 내부 장기가 곪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 논설위원은 이 주장을 위해서 굳이 2018년이 아닌 2017년 데이터를 가져왔고, 그 해석도 제멋대로였습니다.

언론이 자신이 하고 싶은 주장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여러 데이터를 찾아보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결론을 내놓고 입맛에 맞는 통계만을 아전인수 격으로 끼워 넣어 맥락이 제거된 해석을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왜곡이 아닐까요?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2월 11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경제 보도(신문에 게재된 보도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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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 정리 공시형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