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모니터_
서울대 파업서도 계속되는 ‘불편함’ 집중 보도어느 노동자 단체가 파업을 했을 때, 그 원인보다는 불편함이 초래된 결과에 집중해 보도하는 나쁜 버릇이 우리 언론계엔 있습니다. 대부분의 파업 관련 기사에서는 ‘시민들 교통 불편’, ‘출퇴근길 발 동동’ 같은 내용만 실릴 뿐, 노동자들이 ‘왜’ 파업을 하게 됐는지, 노동자와 사용자 간 갈등은 무엇인지 등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서울대 파업’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7일 서울대에서 기계‧전기 시설을 관리하는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이날 민주노총 산하의 서울대 기계‧전기 분회 조합원들이 중앙도서관을 포함한 20여개 건물의 중앙난방 장치를 끄고 농성에 들어갔는데요. 이들은 작년, 정부 지침에 따라 정규직화 됐음에도 대학이 비정규직 수준의 임금과 처우를 바꾸지 않는다며 파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은 사안의 전말은 뒷전에 두고 학생들이 겪을 불편만 호들갑을 떨며 보도했습니다. TV조선‧조선일보와 채널A‧동아일보는 ‘냉골 도서관’, ‘패딩 입고 벌벌’ 등의 제목을 달았습니다.
서울대 도서관이 춥다며 현장 생중계까지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난방을 중단한 바로 다음 날인 8일부터 학생들의 불편함을 전하는 방송 리포트가 이어졌습니다. TV조선 <파업에 난방 중단…서울대 도서관 ‘덜덜’>(2/8 김주영 기자)이란 기사 첫 부분에서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오늘, 서울대학교 중앙 도서관. 실내인데도 모두 두터운 옷차림입니다. 담요를 둘둘 감기도 하고 패딩점퍼를 겹겹이 껴입은 학생도 보입니다”라며 도서관 내부를 묘사했습니다. 학생들의 불편함을 전하면서 TV조선은 “정규직에 걸맞은 급여를 달라는 것”이 서울대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이유라고 소개합니다. 해당 기사 말미에는 “이들은 지난해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됐습니다”란 말도 덧붙였습니다. ‘정규직으로 전환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다’는 해석으로 들립니다.
TV조선은 다음 날도 ‘서울대 파업’을 다뤘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엔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기자를 파견해 스튜디오와 현장 연결도 했습니다. TV조선 <노조 파업에 도서관 사흘째 ‘덜덜’>(2/9 윤재민 기자)에서 김자민 앵커는 “민주노총 서울대 기계 전기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며 도서관 학생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는 소식 어제 전해드렸습니다. (중략) 오늘 상황은 어떤지 취재기자 연결해보겠습니다. 윤재민 기자 지금 도서관 분위기는 어떤가요?”라며 현장과 연결했습니다. 각종 재난 상황,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고위 핵심인사의 구속 여부나 축제 현장 상황 등에서 보던 현장 연결을, 서울대 도서관이 ‘춥다’는 이유로 시도한 것입니다.
△서울대 도서관을 현장 연결해 생중계하는 TV조선(2/9)
두툼한 패딩을 입고 나타난 기자는 “도서관 학생들은 오늘도 실내에서 두꺼운 점퍼를 입은 채 공부하고 있습니다”라며 “난방이 되지 않는 도서관 실내 온도는 최대 17도로 평시 온도인 25도보다 훨씬 낮습니다”라고 도서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얼마 남지 않은 변리사 시험과 회계사 시험, 그리고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막바지 공부에 열을 올릴 때인데 난방이 안 돼 불편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험 이름을 하나하나 들어가며 학생들을 걱정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또 이 사태의 원인을 “노조가 임금을 인상해달라며 기계실을 점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채널A 또한 <취업준비도 바쁜데…패딩 입고 벌벌>(2/8 권솔 기자)에서 ‘노조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고, 학생들은 추위에 떨고 있다’는 식으로 서울대 파업을 다뤘습니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학생들의 반응은 냉담합니다”라고 단편적으로 보도한 점입니다. 파업에 대해 학생들의 반응이 냉담하기만 했을까요? 같은 날 MBN의 <도서관 난방 중단>(2/8 임성재 기자) 기사에는 파업을 지지하는 학생도, 파업에 불만인 학생도 등장합니다. 채널A는 일부러 파업을 지지하고 연대하려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지우고 서울대 학생들 대부분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내부 갈등을 키우려한 셈입니다.
신문도 똑같이 파업 이유 왜곡‧불편 위주 보도
조선일보는 TV조선과 비슷한 논조로 <패딩에 핫팩…민노총이 난방 끊자 ‘냉골 서울대’>(2/9 이정구 강다은 기자)란 기사를, 동아일보는 채널A와 비슷한 논조로 <“냉골 도서관,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2/11 고도예 송혜미 이윤태 기자)란 기사를 냈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도서관을 찾은 학생은 평소의 10분의 1’, ‘학생들은 두꺼운 패딩 외투를 입고 핫팩을 흔들며 공부했다’, ‘학생의 양손은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등 도서관 분위기를 싸늘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파업의 원인이 된 임금 협상과 관련해 “노조 측은 ‘시설 관리 직원은 성과급‧상여금‧명절휴가비가 없고, 복지 포인트도 행정‧사무직의 30% 수준인 30만원’”이라고 주장했다고 인용하면서 “기존 서울대 행정‧사무직 직원들과 같은 대우를 요구하고 있다”고 서술했습니다. 앞선 노조 측의 주장은 사실이나 뒤의 기자가 해설한 ‘같은 대우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과 다릅니다.
한겨레 <“직접고용 해놓고 왜 차별하나요”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파업>(2/8 이정규 기자)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서울대 시설관리‧청소 노동자들은 “서울대에 정액 급식비와 복지 포인트 40만원, 명절휴가비 1회에 40만원을 요구”했습니다. “교직원 행정사무직은 복지 포인트로 100만원, 명절휴가비는 월 기본급의 60%를 받고 있”어서 그들은 나름대로의 소박한 요구를 한 것입니다. 같은 요구를 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서울대는 명절휴가비는 줄 수 없고, 정액 급식비 10만원이 포함된 연 30만원의 복지 포인트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정규직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규직과 차별하고 있는 이 지점이, 노동자들을 파업으로 이끈 것입니다.
△서울대 파업 맹비난하는 조선일보 사설(2/11)
그러나 여기에 더해 조선일보는 <기고/도서관 난방 중단…응급실 폐쇄와 무엇이 다른가>(2/11), <사설/한파주의보 속 도서관 난방 끊은 민노총 서울대 노조>(2/11)에서 서울대 파업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특히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조카뻘, 동생뻘 되는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게 방해해 휴가비나 복지비를 인상시키겠다는 노조를 보면서 혀를 차게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했습니다.
파업을 나쁘게만 보는 전형적인 시선입니다. 서울대 노동자들은 공부를 방해하려고 난방을 끈 것이 아니라, 파업을 위해 자신의 업무를 중단했을 뿐입니다. 학생들의 난방이 중요하다면, 그만큼 중요한 업무를 맡은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사용자가 문제인 게 아닐까요.
그러면서 사설 말미엔 정규직이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란 느낌의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서울대 시설관리직은 1년 전 정규직으로 채용되면서 신분 보호를 받게 됐다. (중략) 당장 모든 직원 처우를 똑같이 해 줄 예산이 어디 있나. 높은 경쟁을 뚫고 채용된 기존 정규직들은 가만있겠나.”
진정 해결을 원한다면 원만한 협상 돕는 보도를
누군가의 파업이 다른 누군가에겐 불편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기능적으로 분화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맡은 일이 크든 작든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개개인이 중요합니다.
난방이 안 돼 학생들이 불편함을 겪었다면, 그만큼 시설관리직의 업무는 중요한 것입니다. 진정 학생들을 위해 이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면 학생들의 추위를 걱정하는 기사를 쓸 때가 아닙니다.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용자와 노동자 간 협상이 빠른 시일 내에 원만히 이뤄지는 데 도움이 되는 기사를 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업의 원인을 제대로 보도해야 합니다. 정규직을 보장받은 노조가 욕심을 부려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호도할 일이 아닙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2월 8~10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 YTN <뉴스Q>(1부) / 2019년 2월 9일~11일 동아일보, 조선일보
<끝>
문의 엄재희 활동가 (02-392-0181) 정리 조선희 인턴